2024. 6. 15.
지난 수요일 이수회에서 만난 동창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책 출간은 언제 할 건지,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동창은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훌쩍 이민을 떠났고,
반세기라는 세월이 흐른 후에 그날 처음 만난 거다.
50년 동안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인터넷은 사람과 사람의
간격(間隔)을 좁혀 주기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해준다.
내가 책을 낼 수가 있을까.
나의 재주 없는 글이 책으로 나오면 수많은 글쟁이들이
비웃지나 않을까,
남을 의식하는 건 아닌데 아직은 졸필이니 한동안 고민을
해야겠지.
글은 곧 그 사람이고,
글씨는 그 사람의 얼굴이라 했다.
초등학교 때는 연필로 공책에 글씨를 썼고,
중학교 때는 잉크를 찍은 펜으로 글씨를 썼다.
고등학교에서도 처음엔 펜으로 쓰다가 나중에 '모나미
153'이라는 볼펜으로 썼다.
볼펜은 아마도 1963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걸로
기억이 나는데 당시 선생님들은 볼펜으로 쓰면 글씨가
늘지 않는다며 환영하지 않았고, 펜으로 글씨 쓰기를
원했다.
중학교 시절 국어 담당인 최재화 선생님이 내가 쓴
글씨를 보고 "명조체나 궁서체, 고딕체가 아니면서
나름대로 필체에 특징이 있고 잘 쓴다"라고 칭찬을
하셨고,
글씨는 "바로 그 글씨를 쓴 사람의 얼굴"이라며 계속
정진하라고 격려를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가급적 펜으로 글씨를 썼고,
아버지의 필체를 닮은 펜글씨는 군대에 가서도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였다.
제21사 66연대는 최전방 GOP 부대라 지뢰사고 등으로
여러 병사들이 순직을 하고, 자신의 신변을 비관하여
자살을 하는 등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였다.
글씨를 제법 쓴다고 연대 군수과에 배속이 되었고,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매화장 보고서' 6부를 작성하여
영현(英顯)과 함께 사단에 송부하였다.
영구 보존서류인 매화장 보고서는 복사지나 볼펜 사용을
일체 금하고, 오탈자(誤脫字) 수정을 인정하지 않기에
밤을 새워서라도 오로지 펜 글씨로 써야만 상급부대에
보낼 수 있었다.
작성한 6부 중 1부는 연대에서 보관하고, 나머지 5부는
상급부대인 사단, 군단, 1군 사령부, 육군본부, 국립묘지
등으로 보냈는데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에도 내가 썼던
'매화장 보고서'가 그곳에 있으려나.
학생 때나 젊어서는 글씨를 쓰는 게 자신이 있었다.
천광유지 기획실에서 근무를 하였고, 이어 주택은행에
입사해 대출 채권서류 작성 시에도 또박또박 정자로 쓴
서류는 감사를 진행한 검사부 직원들도 인정을 하였다.
그러나 31세에 원인불명으로 오른팔이 마비가 되자
글씨는 점점 힘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은행 대리라는 신분은 일이 많은 초급 책임자로서
남에게 흠 잡히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은 잠을 못잘 정도로 참기 어려웠다.
인사부에서 근무할 때는 영업점 외에 컴퓨터가 없을
때라 펜 글씨로 직접 '은행장 연설문'을 쓰기도 했다.
이후 차장, 지점장으로 승진하여 글씨를 많이 쓸 일이
없었고, 결재도 도장이나 사인으로 하니 애로사항은
별로 없었지만 은퇴 후 글씨를 쓸 일이 없어지며 점점
악필(惡筆)로 변해간다.
그나마 만년필로 쓰면 예전의 필체가 조금 나오기도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 글씨나 서예는 포기를
했다.
너무 무료해 컴퓨터로 '느림의 미학'이라는 글제로
평범한 에세이(essay)를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815편이 되었다.
나는 글을 쓰며 윤색(潤色)을 하지 않는다.
체계적으로 글 쓰기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꾸미거나
기교를 부리지 못하고, 나의 머리와 가슴속에서 나오는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옮기기에 바쁘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른다.
누가 왜 쓰느냐고 물어도 답을 할 자신이 없다.
작문을 쓰는 것도, 논술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 내 글은 논리(論理)의 산물도 아니다.
논리, 즉 사고와 서술방식이 정연(井然)함도 없다.
60년 전 국어 담당 최재화 선생님은 "글을 쓰는 것은
인격을 짓는 것이요, 글은 바로 그 사람이니 마음의
움직임을 따르라" 했다.
당시엔 어려서 그 말씀의 뜻을 몰랐고, 어렴풋이 기억만
날뿐이다.
가끔 이생각 저 생각을 글로 옮기며 덧칠, 즉 윤색(潤色)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유감스럽게 그럴만한 재주가
없다.
하영자 음악 선생님처럼 노래를 잘부를 수도 없고,
송진섭 미술 선생님처럼 그림을 잘그릴 수도 없고,
이기철 영어 선생님처럼 영어를 잘할 수도 없고,
이기준 수학 선생님처럼 육상과 수학을 잘할 재주도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쓰는 것이다.
따라서 본인의 감정에 충실하라"라고 말씀을 했던
최재화 선생님은 어디서 어떻게 계실까 오늘따라
많이 그리워진다.
2024. 6. 15.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