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四京과 삼소三蘇
고려는 개경외에 동경, 서경, 남경을 설치했다.
동경은 신라의 도읍지였던 경주慶州로 안휘성安徽省 합비시合肥市이다.
서경은 고려(고구려)의 도읍지였던 평양平壤으로 섬서성陝西省 서안시西安市,
남경은 후백제의 주요 도시였던 익주益州로 호남성湖北省 단강구시丹江口市이다.
고려가 개경부근에 새롭게 건설했던 도읍지는 양주楊州였는데
양주는 남경이 아니라 신경新京이었다.
신경은 하남성 허창시許昌市이다.
이곳에는 고려의 역사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고려의 남경이었다고 억지 주장하는 서울에서
고려의 유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도참설을 신봉했던 고려의 황실은 개경부근에
세 곳의 길지를 택해 궁궐을 축조하고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다.
이는 고조선 때의 진한, 막한(또는 마한), 번한의 각 도읍지를
국가의 중심으로 중시했던 전통의 연장이다.
고려의 삼소는
백악산白岳山의 송림松林,
백마산白馬山의 승천부昇天府,
기달산其達山의 협계陜溪인데,
송림은 하남성 우주시禹州市,
승천부는 하남성 여주시汝州市,
협계는 하남성 락녕형洛寧縣이다.
고조선의 삼소나 고려의 삼소는 모두 일직선상에 위치하는 세 곳으로
저울추, 저울대, 저울접시에 비견될 수 있는 거리상으로 균형잡힌 곳이다.<표 2>
대륙 하남성에는 고려의 궁궐유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곳곳에 축조한 이궁과 행궁
송악과 개경, 동서남의 삼경, 신경, 강도, 송도, 임진, 한양, 송경에
고려의 궁궐이 있었음은 엄연한 사실이며
삼소에도 당연히 고려의 화려한 궁궐이 있었다.
임시도읍지였던 라주, 복주, 청주, 덕수에도 궁궐이 있었지만
그 이외에도 고려는 여러 곳에 이궁과 행궁을 축조했다.
그 중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은
강화江華, 광주廣州, 백주白州, 진위振威, 그리고 봉화奉化 등이다.
한반도에 이곳과 지명이 같은 곳은 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고려의 궁궐은 찾아볼 수 없고, 또 그 흔적조차 없다.
광주는 산동성 태안시泰安市,
백주는 산서성山西省 예성현芮城縣,
진위는 하남성 녹읍현鹿邑縣,
봉화는 강소성江蘇省 소주시蘇州市이다.
이곳에는 고려의 궁궐유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표 3>
고려는 목조건축물, 금속활자, 도자기, 황칠 등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긴 나라였다.
전성기 때의 국토는 하남성을 중심으로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절강성, 강서성, 복건성, 호북성, 호남성의 전지역과
산서성, 섬서성의 대부분,
그리고 한반도와 만주를 그 통치영역으로 관장했던 거대한 건원칭제국이었다.
그 문화유산은 조선이 대륙에서 반도로 이전할 때
팔만대장경판, 도자기, 불상과 불탑 등 극히 일부 옮겨온 것도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중화민국(대만)의 고궁박물관과
중국 각성의 역사고고박물관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도 1> 고려의 도읍지와 별도
구분 | 지명 | 현위치 | 비고 |
1 2 3 4 5 6 7 | 松嶽 開京 江都 松都 臨津 漢陽 松京 | 河南省 鞏義市 〃 登封市 江蘇省 鎭江市 〃 南京市 河南省 開封市 山東省 濟南市 〃 臨淸市 | |
8 9 10 | 松林 昇天府 陜溪 | 河南省 禹州市 〃 汝州市 〃 洛寧縣 | 白岳山 白馬山 其達山 |
11 12 13 14 | 平壤 慶州 益州 楊州 | 陝西省 西安市 安徽省 合肥市 湖北省 丹江口市 河南省 許昌市 | 西京 東京 南京 新京 |
15 16 17 18 19 20 21 22 23 | 德水 江華 羅州 福州 廣州 白州 振威 淸州 奉化 | 河南省 洛陽市 〃 義馬市 湖南省 長沙市 浙江省 杭州市 山東省 泰安市 山西省 芮城縣 河南省 鹿邑縣 山東省 臨沂市 江蘇省 蘇州市 | |
구분 | 지명 | 현위치 | 비고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 臨潢府(開平) 大定府 開封府 臨安府 會寧府 和林 大都 應天府 | 寧夏自治區 銀川市 〃 中衛縣 四川省 成都市 雲南省 昆明市 陝西省 楡林市 內蒙古自治區 巴彦淖爾市 甘肅省 蘭州市 四川省 南溪縣 | 遼․元의 도읍지 遼의 도읍지 宋․金의 도읍지 南宋의 도읍지 金의 도읍지 元의 도읍지 元․明의 도읍지 明의 도읍지 |
<지도 1> 료 , 금 , 원 , 명의 도읍지
구분 | 지명 | 현위치 | 년대 | 비고 |
1 | 松嶽 | 河南省 鞏義市 | 918 ~ 919 | 開城 |
2 | 開京 | 〃 登封市 | 919 ~ 1010 1011 ~ 1232 1270 ~ 1290 1291 ~ 1360 | 皇都 |
3 | 江都 | 江蘇省 鎭江市 | 1232 ~ 1260 1290 ~ 1291 | 蒙古里의 침입 哈丹의 침입 |
4 | 松都 | 〃 南京市 | 1260 ~ 1270 | 蒙古里의 침입 |
5 | 臨津 | 河南省 開封市 | 1363 ~ 1381 | |
6 | 漢陽 | 山東省 濟南市 | 1381 ~ 1383 1390 ~ 1391 | 朝鮮의 도읍지 |
7 | 松京 | 〃 臨淸市 | 1383 ~ 1390 1391 ~ 1392 | 朝鮮의 건국지 |
<표 1> 고려의 도읍지
구분 | 지명 | 현위치 | 비고 |
8 9 10 | 松林 昇天府 陜溪 | 河南省 禹州市 〃 汝州市 〃 洛寧縣 | 左蘇 中蘇 右蘇 |
<표 2> 삼소三蘇
구분 | 지명 | 현위치 | 비고 |
11 12 13 14 15 | 平壤 慶州 益州 楊州 德水 | 陝西省 西安市 安徽省 合肥市 湖北省 丹江口市 河南省 許昌市 河南省 洛陽市 | 西京, 鎬京 東京 南京 新京 興王寺 |
16 17 18 19 20 | 江華 羅州 福州 廣州 白州 | 河南省 義馬市 湖南省 長沙市 浙江省 杭州市 山東省 泰安市 山西省 芮城縣 | 穴口 錦城 安東 兎山 重興闕 |
21 22 23 | 振威 淸州 奉化 | 河南省 鹿邑縣 山東省 臨沂市 江蘇省 蘇州市 | |
<표 3> 고려의 이궁과 행궁소재지
http://cafe.daum.net/greatchosunsa/JAVp/15
마지막 총통 아베노부유키가 1945. 9.12. 마지막연설에서 증명을 하였습니다.
확인 하실분만 클릭하세요.
http://cafe.daum.net/hanjungil.net/Lt4z/116
KBS 정도전의 연속극에서 명나라가 자주 나옵니다.
고려 바로 옆에 명나라가 존재 하였던 것입니다
┗ economet 17.11.23. 06:39
economet 예전에 coo2.net그리고 최두환교수님의 다음카페에서 영인본 위변조
그리고 서양의 기록물 위변조 관련 사진보고 영국의회도서관
그리고 독일의 한 대학 도서관에 가서 소위 진본 초판이라는 신문과 도서 가서 찾아보고 직접 확인해봤습니다.
진짜로 1800년대에 Corea를 언급했던 The Times의 기사는
지도가 달려있을 경우 어김없이 지도와 거기에 딸린 글씨체가
그 당시 존재하지 않았던 체로 바뀌더군요.
예: Garamond체가 Times체로 바뀌거나
(진짜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언급 안하겠습니다! 또 다시 조작하고 대응논리 개발할테니!)
@우전 최두환 교수님이 원본을 보고 번역한 하멜표류기에는 악어도 나오지요.
한반도에 악어가 살고 있는가..
중국 제주에서 강을 하나 건너면 왜놈들 거주지역이 있는데,
하멜이 강을 건너 탈출한것
@우전 http://cafe.daum.net/greatchosunsa/75XT/9394
리성계를 주원장으로 둔갑시킨 반도식민사관자들.
http://cafe.daum.net/greatchosunsa/75XT/9264
대조선을 이해하려면 명?청을 알아야 ㅡ지명선선생
http://cafe.daum.net/chosunsa/OTOR/479
明史는 조선왕조실록을 베낀 소설에 불과하다.
@우전 1920년대 손문과 장개석과 왜놈들이 조선역사를 한반도로 이식을 시작했다고 함.
고로 중공이 들어서며 연변 조선족을 학살했겠지요
한국에서는 조선사 편수회에서 이병도와 신석호가 왜곡시작
해방후 서울대 교수
60년대 문교부 장관..
80년대 후반에 사망했는 모양..
지금 4세.5세까지 새끼를 쳐서 왜곡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것.
고고학회는 이병도 제자인 고 김원룡 사단이...병도가 왜곡한 3.000년 역사를 가르치고 있지요.
결론은 병도부터 5세까지 100년동안 왜곡한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현실..
통일되면 간도는 유엔에 제소했어니까 찾고 역사를 바로세워야
민족정기가 바로서고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겠지요
친일파 재산도 환수해야
고려가 한반도에만 있었다고 주장하지않지요. 어떤 영토 점유지역은 한반도를 넘어갈수도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대륙고려"라고 말할수 없지요. 인천대학의 어떤 분은 논리적인 여러 사료등 정황증거를 가지고 고려말기 압록강넘어 만주 지금의 심양부근까지 점유하고 있었다고 말하는데 상당히 개연성이 있는것으로서 그것을 대륙고려라고 말하지않습니다. 전촉왕 왕건이 고려를 건국했다고 혹세무민하면서 고려/조선이 전중국대륙을 지배했다고 말하고 중국역사자체가 대륙조선역사라고 하는것이야말로 정통역사를 개똥으로 만들려는 저의를 가진 민족역사말살, 사대매국,혹세무민하는 행위입니다.
고려가 대륙에 잇었다.
그러나 대륙 전체를 차지했다고는 말을 안했지요.
이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명나라 태조인 홍건적 주원장과 나하추 목을 베었다고 나오지요..
조선은 고려때보다 대륙에 영토가 넓었는데
조선말 1905년 을사능약 까지 간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다,
일본한테 외교권 박탈 당하고 1909년 우리 허락없이 일본이 간도를 청나라한테 넘겨준것이 간도협약.
그런데 1952년인가 이전의 중일조약은 무효라고 판결..
그래서 100년 만기 3일 앞두고 2009년 정부에서,
국제사법 재판소에 간도(한반도 1.5배) 되찾기 소송을 했지요.
앞으로 지도나 자료를 제출하여 심사를 하겠지요.
통일후에는 찾을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