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월남엔 전략촌이 많습니다. 마을과 마을의 지하는 땅굴로 이어졌고 그 속은 베트콩 들의 주둔지입니다.
한국군이 마을로 들어 서면 주민들이 나와 땅 속에 아무것도 없다며 안심시킵니다. |
![]() | 『전쟁을 모르는 識者라면 「모른다」고 해야지 「아는척」 하고 나오니 세상이 어지러운 겁니다. 한국군은 8년 동안 연병력 32만여 명이 월남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
![]() | 「한겨레 21」은 지난해 9월초부터 최근까지 월남인들의 주장을 보도하면서 한국군이 학살한 양민들의 수가 9000여 명이 넘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목격자라고 소개된 월남인들의 주장은 |
![]() | 육사 5기생으로 1947년 4월8일 소위로 임관하여 부임한 곳이 제주도 9연대였다. 이미 남로당 지하조직에 의해 4·3 사태가 터져 제주도 전역이 월남처럼 피아구분이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한다. |
![]() | 蔡장군의 주장을 요약하면, 월남전은 대한 민국의 안보가 위기에 몰리지 않도록 미군을 대신해 참전한「조국 안보 수호 전쟁」이었고, 적군 앞에서 용감하게 싸운 勝戰( 승전)의 기록이 축적된 「승리의 전쟁」이 었으며, |
참전 8년 동안 대한민국의 경제가 기아선상에서 탈출하여
조국 근대화를 이룩하게 만든 「가난으로부터의 탈출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1960년대 경제 후진국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글을 누비는 형제들의 노고를 기억하며 그들의 희생에 감사할 줄 알았다.
2000년 경제 선진국을 넘보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고엽제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형제들의 고통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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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관련한 사진에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친 시선들이 많아서 한번 올려봅니다.
개인적으로 조중동을 싫어하고 한겨레를 선호하는 입장이지만, 진위가 가려지지도 않은 내용들을 제대로된 근거도 없이 기사화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한국군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베트남양민들이 단한사람도 없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일반화하여 매도하는 것은 또다른 피해자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어줍잖은 댓글로 참전용사들을 모욕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양심에 손을 얹고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과연, 스스로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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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월한국군의 베트남양민학살사건 그허구와 진실 2부 <퐁니사건편>
2000년 7월26일 MBC토론에서 주월한국군의 베트남양민학살사건에대해 참석한 전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중장은
공개적으로 베트남양민 학살사건이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한국군의 양민학살 주장은 1997년 경부터 월남 거주 한국 유학생의 논문과 기사 로 우리 사회에 조금씩 소개되다가 작년 가을부터는 「한겨레21」을 통해 최근 까지 집중 연재되었다
한겨레 21」의 기사들은 「미군보다 잔인 했던 용병」, 「아! 몸서리치는 한국군!」 「아이건 산모건 사정없이…」 「여성 돌 아가며 강간한 뒤 살해」 등의 大小 제목하에 당시 사건의 목격자라고 주장하는 월남인들의 말을 중심으로 보도한 것들이다. 지난 6월27일 오후 2시경 대한민국 고엽제 후유증 전우회(회장 양상규) 소속 회원 2400여 명이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신문사 앞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전우들의 명예를 매도한 한겨레측은 즉각 사과하라』며 시위와 난동을 벌인 것도 「 한겨레 21」의 이런 보도가 주된 원인이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실위원회와 박정희기념관 반대 국민연대는2000년 11월 14일 서울 종로 참여연대 2층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의혹과 관련,당시 주베트남 미군사령부에서 작성한 100여종의 보고서와 사진 20여장을 공개했다.
위원회측은 이 보고서가 지난 68년 2월12일 쿠앙남성 디엔반현 퐁니마을(희생자 69명),같은 해 10월22일 쿠앙남성 쑤지엔현 홍차우마을(희생자 4명),69년 4월15일 쿠앙남성 디엔반현 푹미마을(희생자 22명) 등 3건의 학살 의혹 사건에 대한 미군의 진상조사 보고 내용이라고 밝혔다.또 지난 68년 4월29일 웨스트모얼랜드 당시 주베트남 미군사령관이 채명신 주베트남 한국군사령관에게 보낸 미군측 진상 조사 내용과 한국측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편지도 함께 공개했다.
<<<<<<<<<<<<<<<<<<<<<<<<<<<<<<<< 편지 내용 >>>>>>>>>>>>>>>>>>>>>>>>>>>>>>>>>>>>>>>>>>>>>>>>>>>>>
1968년 4월 29일자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이 채명신 중장에게 보내는 편지
채명신 중장
주월 한국군 사령관
606 Tran Hung Dao
Saigon, Vietnam
친애하는 채명신 장군
당신도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나에게는 전쟁범죄에 관한 주장이나 불만이 제기되었을 때 적절한 절차에 따라 조치를 취해야 할 지시가 항상 내려져 있습니다. 이 지시는 제네바 협약의 서명국으로서의 미국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내려진 것입니다.
나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제3 해병상륙군의 요원들은 제네바 협약에 대한 위반 의혹이 제기된 사건들, 즉 1968년 2월 12일 쿠앙남성(省) 디엔반구(區)의 퐁니 마을과 퐁눗 마을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된 사건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제한된 조사의 결과 이 사건은 역시 제네바 협약의 서명국인 귀국이 응당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일임이 인정되어 우리의 조사는 종료되었습니다.
동봉한 증언, 사진자료, 그리고 다른 문서들은 제3 해병상륙군의 기초조사 과정에서 수집된 것으로, 우리의 조사가 완전하고 광범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나는 디엔반구 구장이 이 사건을 한국군 해병 제2여단의 단장과 토론하였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아마 장군께서도 받아보셨을 것입니다. 이 사건이 갖는 심각한 본질 때문에 나는 이 사건이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당신의 벗
W. C. 웨스트모어랜드
주월 미군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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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공개된 주월미군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 의편지다 이편지는 주월한국군의 학살 행위를 미군측이 3곳에 의혹을품고
월남 정부의 압박을 박아 미국측이 조사에착수했다는건알수있다.
1. 푹미 사건
(사진/68년 2월12일 퐁니·퐁넛사건 때 해병제2여단장을 지낸 김연상 준장(사진은 해병대사령관 시절의 모습.왼쪽)과 69년 4월15일 푹미 사건 때 여단장을 지낸 이동호 준장)
<출처:한겨레21>
< 퐁니.퐁넷마을 사전 현장 사진 >
퐁니.퐁넷사건이란
1968년 2월12일 해병 청룡사단 제2대대6중대가 퐁니마을로 이동중 베트콩의 저격과 부비트랩에 희생당하여 부상자 7명이
(미해병대원2명포함) 발생하자 해병2대대 6중대는 베트콩의 마을로 오인하여 81미리박격포로 마을포격 하였다
이로인해 민간인 69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증언록: 미해병 상병 상등병 J.Vaughn의 증언
2월 12일 월요일 13시 경 CAP D-2 해병대와 Sylvia대위 그리고 Seacrest하사관은 서쪽의 제1루트를 통해 퐁니마을에서 작전 수행을 하고 있는 한국 해병대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한국군은 마을에 포격을 가한 다음 자동화기로 습격을 시작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집이 불타고 마을에서 연기가 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PF중의 하나가 부상당한 소년과 여자를 CAP으로 데리고 왔을 때 비로소 나는 한국군이 마을의 민간인게도 총을 겨누고 있고 따라서 더 많은 부상자들이 도움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15시경 우리는 퐁니와 퐁넛으로 들어가 도와주라는 허락을 받았다.
우리의 경비대는 5명의 미해군과 26명의 PF 그리고 S-3으로 구성되었다. 나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pictiorial study를 위해 카메라를 가지고 갔다.
퐁니.퐁넷 사건의 원인
퐁니.퐁넷 마을 사건배경에는 이런문제적요소가있었다 베트콩들이 얼룩무늬복장을 입어 우군과 헷갈리게만들어 자주출물하여 이마을에서만 전사자3명 부상자 14명이 발생할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던점
두번쨰 문제는 마을 입구앞에 부비트랩이 설치되어 부상자가 속출하자 이성을 잃었던점.
셋번쨰 문제는 마을에 숨어든 베트콩의 저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하여 베트콩의 저항거점으로 판단되어 마을을 81미리 박격포로 제압하여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점
사건후 한.미.월 합동보고서 내용
권고사항
1. 한국 해병 여단은 푹미마을 민간인들에게 발생한 사망, 부상, 상해, 재산피해에 대한 보상금을 이른 시일 내로 지급할 것.
2. 한국 해병 여단은 사망, 상해, 재산피해 책임자들에게 적절한 징계처분을 내릴 것.
3. 베트남 제1군단과 한국 해병 제2여단은 책임전술지역 내 민간인과의 관계개선을 위하여 특별히 활발한 민사심리작전에 착수할 것.
4. 미해병 제3상륙전부대는 가능한 모든 한도 내에서 민사심리작전을 지원할 것.
5. 해병 제3상륙부대는 지뢰와 부비트랩을 경고하는 표지판을 가능한 3개 국어로 제작하여, 남베트남 제1군단 전술지대에 있는 모든 아군병력이 사용할 수 있도록 배포할 것.
6. 남베트남 지방군은 1번국도를 따라 카우라우 다리에서부터 바렌 다리까지의 정찰작전을 보호할 것.
7. 정보교환과 상호신뢰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도로정찰작전을 보호하는 한국 해병 여단 소속 부대와 남베트남 지방군 부대는 어떠한 작전을 수행하든 아주 친밀하게 정기적이며 지속적인 관계를 가질 것.
미 해병 대령 해럴드 체이스
남베트남 육군 중령 카오 칵 낫
한국 해병 소령 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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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퐁니학살사건에대하여 간략하게 각종 자료를 조합하여 써봣습니다.
참고로 노르망디 작전떄 미영 연합군의 폭격기에 프랑스인 5천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D.DAY때 방공호에있다 미영연합군의 폭격에 무너진 방공호에 질식사하는순간까지도 수첩에 이렇게썻답니다.
나는 죽어갑니다.
하지만 전 억울하지않습니다 오히려 해방의기쁨을 맞고있습니다.
프랑스여 영원하라. 연합군이여 영원하라
나라를 위해 조국을위해 싸운신분들을 학살자로보지맙시다 . 전쟁으로 인해 억울한 민간인들은 발생하지만
퐁니사건처럼 아무명분없는전쟁에 나가셔서 살기위해 이런 조국의 부름에 한순간청춘을 전쟁으로 보내신분들입니다.
솔직히 제가 이렇게 베트남관련 학살 관련글을 올리는거는 소련님의 잡담글을 보고 매우충격을 먹었습니다.
알지도 못하시는 지식내용으로 잡담글 후 그글에대해서는 바로 또 반론들어가드리며 참조 문헌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한국군이 승려를 강간 하고 학살했다; 베트콩의 38년전 심리전 전술이였습니다.
첫댓글 전시에 군인들에게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는게 아이러니죠... 하지만 그 국가 즉 대한민국엔 책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책임인가요?
베트남전이 어떤전쟁인지를 이해하시면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위에서 언급한데로 우리는 그 전쟁으로 인해 얻은것도 많고 지금 글 쓰는 저도 그 혜택을 받고있는거지요. 하지만 그로 인해 희생되어야 했던 우리군에게 국가는 책임을져야 하구요 또한 그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베트남 민간에도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네.어떤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여기 베트남에대해서 검색해보면 우리나라가 월남전 이후에 조금이나마 어떤식으로 베트남에 지원 하고 사과했는지 다 나와있습니다..좀 찾아보고 글 쓰세요..무작정 까데기만 좋아하는 언론에 속지 마시고~
귀염돌이샵 왜 열폭합니까?? 글이나 잘 읽고 답글 다시오 찾아보라 마라 말하기 전에
채명신장군 인터뷰를 보니, 여태껏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드네요...
저따위 전쟁에 미국편으로 참전한게 잘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