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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재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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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재 사랑방 1994년 여름을 기억하시나요?
달희 추천 0 조회 133 10.08.23 21:50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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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8.23 22:14

    첫댓글 1994년 여름은 정말로 뜨거웠군요, 해마다 다사다난했다지만 올해 더위를 잊을 수 없네요, 오늘 학교에서 전기 과다 사용으로 정전되어서 급식소에서 뜨거운 미역국을 먹는데 어찌나 뜨겁던지 화탕지옥이구나 생각했지요, 이 모든 것도 다 지나가고 기어이 서늘한 가을은 오겠지요?

  • 10.08.24 00:01

    94년 여름을 똑똑히 기억합니다...어제 딸과 대화를 나누다 그러잖아도 그해 여름 얘기를 했지요....작은 딸을 가져서 막 입덧을 하던 때니.....정말 그해 여름이 덥기도 했지만 근 두달 비한방울 내리지 않았다는 것도 아시지요..ㅎㅎㅎ

  • 10.08.24 09:31

    1994년, 마른장마가 영남지방에 있었죠. 중부지방엔 비가 많이 오는데 유독 영남지방엔 올듯하다가 그냥 지나가 버리고 강줄기 마다 바닥을 드러냈죠. 그땐 에어컨도 가정집에는 거의 없었고....39.9도.....대구에서 길가다가 죽겠다는 위기감을 처음 느낀 불통 더위였죠. ^^

  • 10.08.24 09:00

    그렇군요. 달희님이 확연히 기억하는 것을 저는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군요. 그럼요. 겸험은 가장 큰 스승이지요.

  • 10.08.24 09:20

    사람마다 기억하는 것이 다르지요. 전 우리 모두 가슴 아프게 복직했던 것 말고는 거의..... 몇 년 떠나 있던 학교에 돌아가니 OMR카드 사용하고 행정실 아저씨까지 차를 다 가지고 있는 것이 무지 생소했던 기억이.... 지구가 자꾸 뜨거워지고 뜨거워진 만큼 사람들은 에어컨을 더 돌리고 그 열기가 지구를 또 둘러싸고... 악순환이 계속되어 후손들은 어떻게 살까 걱정되지요.

  • 10.08.24 09:56

    그 때는 그렇게 더워도 젊어서 견딜 수 있었는데... ㅎㅎㅎ 지금은 에어컨이 있어도 힘드네요. 세월 탓이겟죠?

  • 10.08.24 10:04

    그 더위는 젊었기 때문에 이겨 냈지만 그 보다 덜 더워도 힘들어 사망 하겠습니다 나이 때문인가 봅니다 이제 추억이 그리운 나이입니다

  • 10.08.24 11:34

    정말로 힘들 때는 "나는 지금 자서전의 가장 힘든 부분을 쓰고 있는 중이야." 혹은 "나는 지금 갈등이 최고로 고조된 영화의 한 부분을 찍는 중이야."라고 생각하라던 어느 분의 말이 떠오릅니다. 어떤 드라마도 어떤 소설도 갈등이 없는 것은 없지요. 우리네 삶도 냉혹한 갈등으로 단련되지 않으면 진정한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 글이 주제에 어긋난 건 아닌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건 더위 탓이지 제 탓은 아님!!

  • 10.08.24 12:33

    아! 저두 기억해요 그날 서울의기온이 36도였지요
    그날에 모임이 저희집에있어서 부엌에서 고생했지요
    그날 김일성이가 저나라로갔구요

  • 10.08.24 15:44

    정확한 연도를 기억하지는 못해도 그 즈음의 여름에 무지 더웠어요. 그 땐 에어컨도 없고 선풍기 뿐이었는데 낮동안에 데워진 아파트 옥상이 식지를 않아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자다가 온식구가 근처 모텔을 간적도 있었지요. ㅎㅎ 올 여름도 꽤 더워서 그때 일 떠올리곤 했었는데 달희님께는 사건이 있는 해였군요.

  • 10.08.24 16:32

    옛날엔 이리 더운 날이 없었어요. 왜냐면 추억은 아름답기 때문이죠.^^

  • 10.08.25 19:11

    그래요. 그해 여름 우리딸애를 낳았어요. 낳은 지 며칠 안 지나 김일성주석이 죽었고, 조문 가던 대학생도 잡히고, 특히 박용길 장로님(문익환 목사 부인)이 판문점에서 잡혀 수갑 찬 모습이 신문에 크게 났지요. 그뿐 아니라 그해 철도노동자들이 대대적으로 파업해서 남편이 아기를 보러 대구에 올 때 기차를 못타고(파티마 병원은 동대구역에서 가깝죠.) 버스 타고 오곤 했죠. 그런 걸 보며 딸아, 너는 통일 된 세상, 그래서 노동 운동을 해도 빨갱이라 몰리지 않는 세상에 살아라. 그 세상을 위해 엄마도 일하겠다는 내 바람을 담아 아이 이름을 새누리라고 지었어요.

  • 10.08.25 19:14

    그리고, 저 더위에 강해서 자취 생활 5년 동안 선풍기 없이 살았는데, 어찌나 더웠는지 온몸에 땀띠가 나서 어쩔 수 없이 선풍기 바람을 쐬었지요. 그러니까 담박에 손저림 현상이 오더군요. 그래, 그런지 딸애 또래들이 자라면서 무지 별나고 해서 그또래 애들 담임할 때 너무 힘들었어요. 생각해보면 그때 제가 몸이 많이 망가진 것 같아요.

  • 10.08.25 21:23

    ㅎ 보리누리님 저도 그해여름 아들을 낳았습니다. 오늘이 음력으로 그녀석 생일입니다. 어제 몇가지 음식만들면서 나중에 넌 생일에 엄마 맛있는거 사줘야한다고 햇더니 꼭 그리하겠다고합니다. 런닝 안입으면 안되는줄 알고 그때까지 살았는데 그여름 런닝을 벗었고 민소매 셔츠도 처음으로 입었고 양말도 벗어봤습니다. 보기만해도 더웠던지 어머님께서 민소매셔츠사다 억지로 입히셨는데 정말 시원하더군요. 8식구 먹을 보리물 끓여서 식혀 냉동실에 얼리는일도 제겐 큰 일이었고, 거기에 아이낳기 며칠전 좀도둑이 들어서 문도 못열고 아이때문에 선풍기도 못틀고, 아이낳고 나흘째되는날 어머님몰래 뜨거운물로 샤워하고 양치하고 머리감고.

  • 10.08.25 21:24

    ..냄새때문에 제자신이 참을수가 없어서...그래서인지 저 요즘 팔이저려서 병원다녀요. 아들녀석오면 이 얘기도 꼭 해줘야겠습니다. 그래도 말없는 아빠나 형과 달리 엄마 맘을 잘 알아주고 달래주기도하는 아주 키특하고 예쁜 녀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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