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나무치고 사연이 없는 나무가 없지만, 청주 중앙공원의 수령 900여 년의 은행나무(충북도 기념물에는 압각수(鴨脚樹)로 표기되어있다. 은행나무의 잎이 오리발의 물갈퀴처럼 붙어 있는 특징을 표현한 말이다)는 여느 나무와 달리 구전(口傳)이 아니라. 16세기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다음과 같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고려 공민왕(공양왕의 착오) 때에 왕방(王昉)·조반(趙胖) 등이 명나라로부터 돌아와 왕에게 아뢰기를 “예부(禮部)에서 신들을 불러 말하기를 ‘너희 나라 사람 파평군(坡平君) 윤이(尹彝)와 중랑장 이초(李初)라는 사람이 와서 황제에게 호소하기를 고려가 군사를 움직여 장차 상국(上國) 침범하려는 것을 재상 이색(李穡)과 조민수(曺敏修) 등이 옳지 않다. 하여 곧 모두 죽이고 귀양을 보냈는데 그 물러난 재상들이 나를 보내어 천자께 고하고 친왕께서 천하의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치도록 청하였다’
윤이와 이초 등이 기록한 이색과 조민수의 이름을 내보입디다.” 하니 대간이 윤이와 이초의 무리들을 국문하기로 청하고 잇달아 이색 이림(李林), 변안렬(邊安烈), 이인민(李仁敏), 정지(鄭地), 이숭인(李崇仁), 이종학(李鍾學), 이귀생(李貴生) 등을 청주 옥에 가두고 문하평리(門下評理) 윤호(尹虎) 등을 파견하여 국문하였으나 여러 죄수들이 모두 불복하였다. 이때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져 앞에 냇물이 넘치어 성의 남문을 무너뜨리고 곧바로 북문까지 뻗치니 성안의 물 깊이가 (한)길이 넘어 관사(官舍)가 물에 잠기고 백성들이 집은 거의 없어졌다. 객관(客館) 문 앞에 은행나무 수십 그루가 있었는데 옥관들이 창황히 이 나무에 올라가서 죽음을 모면하였다. 왕이 수재로 교서를 내려 죄수들을 모두 놓아주도록 하였다.>
사가(史家)들은 거짓 보고한 파평군 윤이와 중랑장 이초의 사건을 두고 “윤이· 이초의 옥사”라고 한다. 1390년 제34대 공양왕 재위 2년 고려는 사실상 이성계와 정도전 일파에게 조정이 장악당한 상황이었다.
이때 이성계에게 축출당한 사람 중에서 파평군 윤이(尹彛)와 중랑장 이초(李初)가 이성계에게 앙심을 품고, 그해 5월 명나라에 가서 “이성계는 이인임의 아들인데 이인임은 공민왕을 시해했고, 그의 아들인 이성계는 우왕, 창왕을 시해했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에 이성계 등은 그들을 잡아 구속하고 연루자로 지목된 우현보, 등은 순군옥(巡軍獄)에 가뒀고, 이색, 이임, 우인열, 이인민, 정지, 이숭인, 권근, 이종학, 이귀생 등 9명은 청주 관아의 감옥에 가둬 국문하도록 했다.
1390년(공양왕 2) 그때 마침 비가 많이 와서 옥사(獄舍)가 무너지고 갇혀 있던 사람들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객관 앞에 있는 은행나무에 매달려 겨우 살아났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왕은 하늘이 죄 없음을 증명한 일이라 여기고 그들을 사면했다. 그 은행나무가 현재 청주 중앙공원의 “압각수(鴨脚樹)”이다. 훗날 권근(權近)이 당시의 소회를 한 편의 시로 남겼다.
근거 없는 소문으로 아우 주공에게 불행이 미치니 流言不幸及周公
갑자기 큰 바람이 일어 벼를 쓰러뜨렸네. 忽有嘉禾偃大風
고려 공양왕이 청주에 큰물이 넘쳤다는 말을 듣고 聞道西原洪水漲
하늘의 뜻이 예나 이제나 같음을 알았도다 是知天意古今同
청주 압각수의 나이테에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이 다 새겨져 있을 것이다. 특히 천우신조로 살아남은 최고위직 문하시중을 지낸 목은 이색(李穡), 이색이 문장을 극찬한 도은 이숭인(李崇仁)은 훗날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더불어 고려 사은(四隱)으로 추앙되는 분이고, 이림(李琳?~1391)은 32대 우왕의 장인이자 33대 창왕의 외조부, 우인열(禹仁烈)은 개국 원종공신으로 조선건국에 이바지하였고, 이인민(李仁敏, 1330~1392)은 이조년의 손자로 고려의 문신이며, 정지(鄭地, 1347~11391)는 남해 관음포에서 왜적을 크게 무찌른 인물이며 권근(權近,1352~1409 )은 조선건국에 참여하여 개국 원종공신으로 책봉되었으며 이종학(李鍾學)은 이색의 이귀생은 이림의 아들로 각기 부자간이다.
그들은 기울어져 가는 고려 사직(社稷)을 지킬 것이나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워야 하느냐에 깊이 고뇌했을 인물들이다. 혹 그들의 후손 중 압각수의 은혜에 감사한다면 씨를 받아 그들의 사당(祠堂) 등에 심고, 청주시도 시목(市木)으로 느티나무 대신 고려 명신들을 살려낸 이 유서 깊은 압각수로 변경했으면 한다.
첫댓글 이 회장님! 입각수 은행나무에 대한 사료를 자세히 조사하셨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