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엔 하이얀 뭉게구름이 피어 오르던 날
고향가는 길이 이렇게도 어려운가?
우리는 대학 재학 중 동,하계 방학 때 마다
고향민들의 보다 좋은 삶을 위해
청춘의 피와땀을 내고향 안동에 뿌렸다.
안동 길안면, 서후면, 임동면, 도산면, 예안면 농촌봉사활동을 전개 하였다. !
그 당시의 자료를 찾아 여기에 올린다.
<1975년 여름방학 중,수령750년 천년기념물제175호, 점심시간 -용계은행나무앞에서, 현 내고향안동 운영진들>
앞줄 좌4 공대학생회장 배영환, 유갑종교수(안동고총동창회장), 뒷줄 내고향안동 여성 운영진들, 좌8 농대학생회부회장
이창희, 그옆 경북의대본과 영철. 효대 약학과학생들, 우1 농대 농화학과 대표,
참가인원 남 31, 여24, 총 55명 이다.
인원 구성은 경북대 공대생18, 농대12, 문리대7, 의대본과2, 간호2, 영남대7, 효성여대7명 이다.
고향의 발전을 위하여
고향을 계몽하기 위하여
청야회(green field)는 경북대학교 총학생회 산하 농촌봉사활동 써클이다.
경북대, 영남대, 효성여대, 계명대 4대학 연합 안동 출신 학생들의 서클이며 순수 농촌 봉사활동이 설립 목적이다.
우리는 그동안 대학별로 개인별로 너무 많은 준비를 해 놓았기에
뭐 부터 해야 될지 늘 수다 떨고 실수 바가지 덮어 쓰며,,
그러나 모두 내일같이 열심히 하였다.
농기구, 의약품 ,숙박용구, 조리용구, 쌀, 마른반찬, 교육도구, 학용품, 운동기구, 천막, 텐트, 등
트럭으로 1차 분량이나 준비하며 대기하고 있었다.
어린이 교육프로그램까지 다 마치고 있었다.
그런데 봉사활동 불가 통보가 날아오다니 !
당시는 유신정권 체제라서 연합서클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다시 경북도청 새마을과, 경북대총장실, 안동군수실, 안동경찰서, 농촌지도소,
길안면사무소, 각 당국에 우리의 뜻을 호소하러 다녔다.
도전은 계속 이어 졌다.
꾸중하고 몰아내면 그 다음날 또 찾아 갔다.
그리고 또,,,
< 도연 ~ 지레 자갈밭 >
지성이면 감천이라 !
이런 상황과 소문을 듣고 우리의 진실된 마음을 읽었던,
경북대 유갑종 교수님이 전면에 적극적으로 나서다.
당시 직위가 위태로울 정도로 암울한 시대였으나,
유교수님은 나의 끈질긴 노력에 미소를 지으셨다.
단 주민들이 감동하고 피부로 느낄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쾌히 지도교수로 승낙하여 주시고, 행정적인 모든 절차를 책임지고 결단을 내렸으며,
드디어 우리는 안동으로 출발하게 되었고 3주간의 농촌봉사활동에 동행까지하셨다.
이후 교수님은 재대구 안동고 동창회, 총동창회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다.
<안동 길안행 완행 버스안 유갑종 경북대 교수와 재대구지역 안동학생들>
달려라~, 달려~
안동으로 ~ 길안으로~ ,,
당시 안동에서 최고의 오지인 구수, 남촌, 용계, 도연, 지례를 향하여,,,,
대구에서 안동 길안까지 비포장 길, 4시간 덜컹거리는 버스속에서도 우리는 즐거웠다.
그 즐거움은 잠시였다.
정면 본인 옆의 안경 쓴 분은 경북대 공대 유갑종교수님이다.
<그리운 고향 동네 - 당시의 안동 길안면 용계리 초가집>
< 태풍으로 유실된 농로 복구 의논하는 유갑종 경북대교수, 배영한회장, 김기철 총무 - 용계 도리마에서 >
동네 어른들과 의논하는 유갑종교수(중), 공대학생회장 배영환(우2), 청야회장 김기철(우1)
유실된 도로, 논둑, 밭둑, 도랑 복구가 우릴 힘들게 한다.
식사 당번 외 남 여 전원 투입된다.
모래나르기, 모래치기, 세멘섞기, 바르기, 미장하기, 축대쌓기, 등
다리뼈, 손가락뼈가 부러진 대원, 고열과 토사로 인사불성이 되는 대원이 속출한다.
<용계 은행나무 옆 텃밭 잡초 제거 - 남학생 노동근로 봉사반>
새로 텃밭을 개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돌, 지심, 제거 중이다.
새마을운동으로 동네 지붕은 기와나 쓰레이트로 새로 이었다.
용계 본 동네 마을은 깨끗한 편이다.
<고향 어린이 문맹 퇴치에 앞장서고 있는 장현숙님 - 야간 학습 운영 - 용계국민학교에서>
오전 4시간 수업, 야간 2시간 호야 불 빛 아래에서 수업하다.
교실 2개는 남, 여 침실로 쓰다.
모기, 파리, 해충 때문에 여학생들 애를 먹다.
환자가 자주 발생하여 3명이 교대로 등에 업고 고개 너머 길안 장터로 안동시내로 가다.
십리 밖 멀리서도 어린이들이 많이 왔다.
우리가 먹을 음식 반찬보다 그들에게 줄 선물을 더 많이 준비해 오다.
어린애들은 밤에도 찾아와서 우리와 함께 즐겁게 놀다 간다.
<의료봉사활동 취지 알리며 가정방문 - 안동여고졸 경북대 의대>
안동여고졸업 유일한 74학번 경북대 입학동기생 2명, 좌 문리대사학과, 우 의대간호학과
고마운 동기들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처음 1주일 동안은 주민들이 시큰둥 했으나 하루 하루 우리와 가까워 져 간다.
2주째 접어 들어서는 우리에게 힘에 버거울 정도로 너무나 많은 일을 부탁 요구한다.
그래서 예정에도 없이 며칠 더 봉사를 하기로 결정한다.
<가전제품 출장 수리중 - 경북대 공대 학생들 - 도연리에서>
집집마다 고장난 물건, 신고가 많이 접수되었다.
수리 공구가 모두 여기에 있는데 출장 수리 요청이 많다.
선배님, 빨리 좀 고치이소, !
점심시간 다 가니더~
<마스게임 오락 지도 - 은하공주, 문영희, 선화엄마, - 용계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어린애들 옷이 깨끗하고 신발은 흑, 백, 고무신이 대부분 이었다.
성격은 대부분 명랑 활발하였으며 효성여대 학생들이 주로 지도하였다.
이가 많아 집에 돌아 갈때 이약을 배급하였다.
효성여대 학생들은 정말 불철 주야 설겆이, 청소, 등 솔선수범하여 열심히 일하였다.
< 꿀맛같은 저녁식사 - 유갑종지도교수님 저녁식사 점검 - 용계국민학교 교실에서>
내일은 고된 일이 많다, 많이 먹어라 !
1조는 남촌쪽 동으로 7마장 마실로 가고, 5조는 도연쪽 6마장 거리의 마실로 간다.
환자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오늘 저녁은 밥, 된장국, 김치, 콩조림, 멸치조림이다.
<용계 동네를 흐르는 맑은 물줄기 - 현재 임하댐 상류에서>
정겹고 그립고 한때의 청춘을 불태웠던 꿈이 어린 동네이다.
<거름을 들로~ 밭으로~나르다 - 근로 봉사대원들 - 구수리에서 >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부지런히 일을 했는데도 끝이 없다.
누구네 집 무슨일을 몇시까지 어떻게 하라 !
이런 부탁과 지시는 계속 되었고 우린 지칠줄 모르고 움직였다.
<안동시장님 길안면장님,,,,손님들 예고 없이 방문, 학생 수업 장면 시찰>
안동군수님, 경찰서 애들(창문밖), 길안면장님 격려차 방문하다.
찬조내역 공개 - 석유 5말, 쌀 5말, 라면 2박스, 음료수 2박스, 세멘트 20포대, 농기구,
소독약품, 의약품, 학용품
다음 해에 또 와 달라는 요청을 하고 가다.
<동네 소독 후 가정 방문 - 남병식(경북대공대), 권차남(경북대의대)- 용계에서>
안동군 보건소 직원들 마중하기 위해 세수를 제대로 하다.
대부분의 집이 대문이 없다.
그날 저녁 주민들이 삶은 감자와 옥수수 한방틔 손수 가져다 주셨다.
고마워요!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
<골목길 정비 및 도랑치기 - 구수리 남촌에서>
잡초가 무성해 큰 비가 오면 물이 차인다고하여 물도랑 만들기 작업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더위는 점점 더해져 런닝 바람으로 일하다.
<점심은 꿀맛이다 - 용계국민학교 운동장, 내고향안동 운영진들>
밥, 시원한 콩나물 냉체, 된장, 풋 고추라도 밥이 모자랄 지경이다.
밥 한 그릇 개눈 감추듯 ,,, 비우고, 한톨의 쌀알까지 박박 긁어서,,,
<가마솥 누룽지라도 긁어 먹자 - 용계국민학교 운동장에서,,,,취사반>
누룽지는 내 꺼야~ !
용계동장님과 이웃에서 가마솥 5개 제공, 밥솥으로 3개, 국솥으로 2개 사용, 땔감나무는 산에서 해옴,
당초 2주간 계획했으나 도연리부터 남촌재 밑까지 워낙 범위가 넓고 할 일이 많아서 4일 더 일하다.
마지막 주엔 경비도 떨어지고 음식도 떨어져 일정량의 급식만 배급하여 배가 고프다.
<동네 청년회와 하루 일과 토의중 - 용계국민학교에서 좌3 남병식, 좌4 권오관, 우3 이창희, 우4 이용해>
좌4 남병식, 그옆 동네 청년이며 초등학교 동기인 권오권, 우3 농대학생회부회장 이창희,
그 옆 초등학교 동기인 이용해, 동네 청년들과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반성하다,
내일 할 일을 계획 의논하다. 환자 발생부터 걱정이다.
그러나 교수님은 용서치 않는다.
<아궁이에 굼불 - 지례에서>
<안동시 새마을과에서 보낸 영화 상영차 도착 - 길안면 용계국민학교 정문앞에서>
안동군청에서 영화 상영차 도착하다
전기가 없어서 받데리로 상영하다.
학교 담 위와 주변에 어린이들이 몰려와 처음 보는 영화차 신기해 구경하느라 야단법석이다.
대한뉴스, 새마을 운동, 어린이 영화 , 애정영화, 전쟁영화, 등
쉬지 않고 2일간 연속 상영 하다가 그만 고장이 나뿌렀다.
<연기는 피어 오르고,,>
연기가 피어 오르는 집을 보면 집이 그립다,
밤이면 모기와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로 잠을 못 이루었다.
아~~배가 고프다.
그래도 참았다.
하늘의 별빛은 유달리 반짝인다.
온 몸이 무겁고 피곤하지만 잠이 안온다.
잠 한번 실컨 자고 싶었다.
<2004. 9. 산다리에서 용계로가는 다리위에서 본 산다리 보>
이 강을 건너 산다리 뒷편 용계재로, 모두 무거운 짐을 지고 15리를 걸어 넘어가다.
<산다리에서 용계 가는 길, 재의 정상 부근>
길안 장터에서 산다리를 거쳐 큰 재를 하나 넘어야 용계로 간다.
환자를 등에 업고 한밤에도 몇번 3명이 교대로 이 재를 넘었다.
의료봉사팀은 밤 낮 쉴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
응급환자가 자주 발생하여 의료봉사반(경대의대4명, 공대3명, 영대약대1명, 효대약대2명)은
몇배로 애를 먹었다.
<용계 도연폭포위에서 - 내고향안동 운영진>
지금은 임하댐으로 수몰된 도연폭포에서,,,
마지막 날 수영도 하고 몸도 깨끗이 씻다.
실타래 한발을 풀어도 안될 정도로 폭포 아래는 수심이 상당히 깊단다.
희귀종인 귀달린 뱀장어가 잡힌다고 한다.
<용계 도연폭포 주변 360도 회돌이 물줄기 >
지금 사진 찍고 있는 자리에서 뒤로 오솔길을 따라 재(약산)를 넘어 15리 정도 가면 오대리가 나온다.
우리는 환자 수송을 위해 이 길을 깜깜한 밤 후라시 하나로 2번 왔다 갔다.
좌로 물길따라 내려 가면 황천마을 지나 임하댐사무소로 나오고, 우측 상방향 쪽으로 가면 현재의
지례민속촌 임동으로 나온다.
우로 7마장 정도 가면 용한이네 집을 지나 우리 본부가 있는 용계국민학교가 나온다.
<3주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빨래하거나 말리고 있는 내고향안동 운영진들,,, - 도연폭포 아래에서>
교수님도 아랫쪽에서 손수 빨래하는 모습이 약간 보이고 있다.
여학생들이 도와 줄려고 해도 절대 사절, 뭐든지 직접 하신다.
먼저한 사람은 빨래를 널고,,,쉬고,,
일부는 아래쪽 도연폭포에 수영하러 가다.
<용계 도연리 마을 전경 - jauin 님 제공>
그렇게 아름다운 경치가 모두 물에 잠기다니 ! 이거야 말로 산전벽해다
<새로 조성된 용계 마을 모습 - 2005. 5. 촬영>
<고된 피로 뒤의 해방감 - 도연폭포 아래에서 ,,,앞줄 현재 내고향안동 여성운영진들>
3주간의 고되고 힘들었던 모든 봉사활동을 무사히 마치고 도연폭포 아래에서 물장난 치다.
첫주 선발팀 25명은 1주전 먼저 떠나고 후발팀 25명이 마무리 봉사를 하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어깨동무하며 포즈를 취하다,
그 다음 해인 1976년
이번에는 학교와 각 당국에서 모든 친절을 배풀어 주었다.
안동군 길안면 송사리를 향해 또 버스에 오르다.
이후
각 서클에서는 농촌봉사활동 붐이 일어났다.
우리는 경북 도청을 고향 안동에 유치하기 위하여 다시 모였고
본 카페를 창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국민 학생들, 고향 주민들, 우리를 도와 주신 관계공무원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그들은 우리 카페를 찾아 오고 있습니다.
아직 연락이 되지 않는 분들, 다시 한번 만나 뵙기를 기도하며..
내고향님들 끝까지 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본 자료를 제공해 주신 경북대총학생회, 청야회, 고향 친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젊은 피로 뭉친 힘이 지금의 카페를 있게 했군요. 대단한 역사이고 다시 뭉칠 수 있는 힘이 대단하십니다. 화이팅입니다. 짝짝 짝~
고향의 발전을 위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서 힘든 줄도 모르고 지칠줄도 모르고 최선을 다 했던 그시절이 다시 뇌리를 스친다. 본 자료를 구하느라 애쓴 희경에게 고마움을 전한데이....내고향 회원 3,500명 돌파를 축하 합니다. 젊음의 땀을 쏟아 부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 가고파라 ^^
그때 그시절 한참 생각해 보게 했습니다 아련이 떠오르는 남병식이 모습이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했네요
회원 3,500명 돌파를 진심으로 축하 ,,,, 또 축하 !!! 내고향안동 화이팅 ! ^^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하수님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 합니다. ^^
짝짝짝.....1975년도 부터 시작하셨구나. 내고향 안동. 그 시절 얼굴로 더 눈에 익는 운영진들 그 때 그 모습들이 그립습니다. 모두 팽팽하고 예쁘군요.
회원 3,500명 돌파는 모든 회원들이 밤낮 없이 열심히 뛰어준 덕분이라 생각 들어요,,, 아련히 떠 오르는 그 시절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리며 다시한번 피가 솟아 오릅니다. 모든 회원님께 머리 숙여 감사 드리며 더욱 분발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
1975년.10살베기 소녀도 거기 있었답니다..조그마한 산골 동네에 난리가 났었죠.잘생긴 언니 오빠야들 몰래 훔쳐보기도 하면서...야간 수업시간엔 공부보다 타지에서 온 얼굴 뽀얀 오빠언니들 보는 맛에 담배 엮다 말고 은행나무 및 작은 학교로 달려갔던 기억이 나네요.고향을 위한 운영진 여러분의 노고에 박수보내며 회원 3,500이 아니라 35,000돌파때까지 쭈~~욱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내고향 안동이길 바래봅니다..
미니별님 무척 반갑구요,,,그때 길안 용계국교 동창들은 모두 연락이 되는지요? 자주 만나뵙길 빕니다. 감사 합니다. ^^
※ 농촌 개몽 활동 여러분들께서 솔선수범 하시느라 지나고 보니 보람이 큽니다.^^
김명순님 댓글 달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땀 흘리며 봉사했던 그시절이 다시 그리워 집니다. 늘 좋은 시간 되세요 ^^
힘들고 어렵던 그 시절 고향 주민들을 위해 청춘을 바친 님들께 머리숙여 감사 드립니다. 당시 님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였던 서후 한두실 처녀 였답니다. 문영희운영자님 연락 받고 급히 들어왔니더,,,아련히 기억에 남는분도 있군요,이렇게 다시 만나 뵈오니 만감이 교차 되는군요, 세월의 파편들을 다시 한조각씩 맞추어 봅니다. 회원 3,500명 돌파를 진심으로 축하 드리며 모든 회원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빕니다. 자세한 인사는 휴대폰으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
어려운시기에 농촌봉사활동과 농촌계몽활동에 정말고생많이 하셨읍니다 늘 건강하십시요/감사합니다.
두리봉님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 합니다. ^^
이글보고 많은걸 느끼고 감동했고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당..![~](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힘내세요 ![파이팅](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68.gif)
...감동적이야욤...방긋 ^^*
은하수02님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 합니다. ^^
어려웠던 시절 봉사활동 감동적으로 보고 감사함을 으낌니다 여러분들이 있어 발전된 고향이 ...........그때 그시절 고생 많았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희숙님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 합니다. ^^
옛추억이 그립고 가슴찡합니다.멋진!! 그 젊음이 부럽고.., 훌륭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여러분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멋찐정보 ,,감사히 잘봤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감동받았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많은걸 느끼고
,활동하신 모든분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