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1. 11;20
노인 한 사람이
'예수 불신 지옥, 예수 믿고 천당'이라는 피켓을 들고
8량짜리 전철 5호선 앞칸에서 뒷칸까지 왔다갔다 한다.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다니는데 군대식으로
표현하자면 잘 숙달된 조교급이다.
저런다고 안 믿던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까.
내가 주로 다니는 5호선 강동역을 기준으로 저런 피켓을
들고 신앙을 전파하는 노인이 세 명이다.
성심병원 4거리 그늘막에 노숙자급 노인 한 명이 있고,
강동역 1번과 4번 출구를 연결하는 횡단보도에 쓰러지기
직전으로 보이는 노인 한 명이 매일 땡볕에 피켓을 들고
앉아있는데 그들의 추한 모습을 보면 믿던 사람들도
등 돌리겠다.
1번 출구 엘리베이터 앞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보이는 남녀가 정장을 한 차림으로 홍보지를 꽂은
가판대 앞에 차렷자세로 서있다.
'깨어라, 파수대' 등 내가 기억하던 홍보지는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홍보지 이름이 바뀌었나 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신천지 교회
소속 젊은 학생들 서너 팀이 강동역 주변에서 떼 지어
다녔다.
"인상이 좋다, 잠깐만 시간을 내줄 수 있을까요"등으로
말을 걸며 접근하기도 했는데, 그들 신천지 교인들은
이만희 교주가 코로나 문제로 구속이 되자 조용히
사라졌다.
12;00
당구장에 들렸다가 반대방향인 검단산행 전철에 다시
오르니 경로석이 시끄럽다.
한 노인이 술에 취하지는 않았는데 큰소리로 젊은이와
야당을 욕하며 일장연설을 한다.
지난번에도 시끄럽게 굴다가 신고를 받고 달려온 지하철
보안관에게 끌려 나갔는데 오늘도 똑같은 행동을 하고,
동작 빠른 어느 젊은이가 바로 신고를 했다.
저 노인을 이번에 세 번째 목격을 하고,
시끄럽게 추태를 부릴 때마다 주변의 젊은 승객에게
괜히 민망해진다.
12. 10.
노인 한 사람이 내 옆 빈자리에 덥석 앉는다.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내 다리에 닿고, 오른쪽 옆자리의
여성에게도 다리가 닿자 그 여성이 몸을 좁히며 짜증을
내지만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지하철 의자가 6인용이면 조금 낫지만,
7인용 좁은 의자에 앉으면 옆사람과 몸이 닿기에 대부분의
승객들은 몸을 좁히는 등 신경을 써 상대방을 배려한다.
그러나 이 노인네는 몸을 좁히기는커녕 한수 더 떠
유튜브를 틀었고, 휴대폰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소리는
주변 사람들이 짜증 나게 만든다.
내가 무릎을 살짝 밀으니 불쾌한 표정을 짓기에 나 역시
눈싸움에 밀리지 않으려 인상을 쓰며 째려본다.
여차하면 소리를 질러 기선을 제압하려 했는데
이 노인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이러니 젊은이들에게 꼰대 소리를 듣는 게 아닌가.
그동안 전철 안에서 빈자리가 있어도 가급적 앉지를
않았다.
요즘은 빈자리가 있는데도 앉지를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싶어 자주 앉는다.
앉지 않으면 서있는 위치에 따라 신경 쓰일 때가 많다.
젊은이 앞에 서면 혹시 자리양보를 바라는 게 아닌가,
여자들 앞에 서면 자칫 성추행이나 성희롱으로 망신을
당하지나 않을까,
경로석 앞에 서면 노인네들의 배타심과 추태가 보여
아예 문가에 서는데,
문가에 서있어도 내리고 타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문득 정민 교수가 쓴 문해피사(文海彼沙)의 노인지반
(老人之反)에 대한 글이 생각난다.
그는 노인이 젊은이와 반대로 하는 일의 목록을 재미있게
썼다.
요점정리를 하면
< 밤에는 잠을 안 자고 낮에 깜빡깜빡 존다.
아들은 사랑하지 않고 손자만 사랑한다.
근래 일은 기억 못 하고 아득한 옛일만 기억한다.
울 때는 눈물이 안 나고 웃을 때 눈물이 난다.
가까운 것은 안 보이고 먼 데 것이 보인다.
맞아야 안 아프고 안 맞으면 아프다.
흰 얼굴은 검어지고 검던 머리는 희어진다.
화장실에 가면 쪼그려 앉기가 힘들고,
인사를 하려다 무릎이 꺾어진다. > 등이다.
이것이 노인이 젊은이와 반대로 하는 것이라는 건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구구절절(句句節節)이 맞는
이야기다.
자식보다 손주가 더 예쁘다?
어제 일은 까맣게 잊어도 수십 년 전의 일이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니 지금 내 모습이 그렇다.
우는데 눈물이 안 나오고 웃을 때 눈물이 나고,
근시에서 노안으로 바뀌며 신문이나 책의 활자가 저만치
떨어져야 겨우 보이고,
안마를 받아야 안 아프고, 안마를 안 받으면 온몸이
쑤신다.
피부는 검어지고 머리털은 하얘지고,
화장실에서나 식당 등에서 앉았다가 무릎꺾기가 힘들고,
인사한다고 몸을 숙이려다 무릎이 먼저 푹 꺾인다.
먼 옛날 어쩜 이렇게도 정확히 표현을 했을까 탄복을
한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광화문 집회에 딱 한 번
나가보고 두 번 다시 나가지 않았다.
특정 종교인과 노인들의 배타심(排他心)이 하늘을
찌르는 모습을 보고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노인지반(老人之反)이라는 말은 노인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인터넷과 AI시대엔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고 굳게
믿었던 가치관도 허물어진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바뀌지 않을 노인의 고집,
훈계나 '나 때는'라는 말을 고집하면 주변을 잃기에
괜히 고상(高尙)한 척도 잘난 척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노인들도 고집(固執)과 아집(我執)을 버리고,
자기만의 사고방식과 행동에서 탈피하여 주변사람들과
조화를 이뤄야 젊은이들에게 욕을 먹지 않는다.
국어교사 출신인 어느 지인은 내 글을 읽고 수구꼴통
이라고 했다는데 사실 심한 수구꼴통이 아닌데도
내가 그렇게 보였나 보다.
나 스스로 합리적인 보수요, 타협이 가능하고 진보가
섞인 보수라고 생각을 했는데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마터면 내릴 역인 풍산역을 지나칠 뻔했다.
잠시 나홀로 생각의 감옥에 갇혔던 모양이다.
2024. 6. 21.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