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 한 수, 단풍에 빠지다
차가운 산 시월의 아침, 서리 맞은 나뭇잎 일시에 바뀌었다.
타는 듯해도 불이 난 건 아니요, 꽃 핀 듯하지만 봄이 도래한 건 아니라네.
가지런히 이어져 짙붉은 장막을 펼친 듯, 마구 흩날려 붉은 수건을 자른 듯.
단풍 구경하려고 가마 멈추고, 바람 앞에 선 이는 우리 둘뿐이려니.
寒山十月旦(한산시월단), 霜葉一時新(상엽일시신).
似燒非因火(사소비인화), 如花不待春(여화불대춘).
連行排絳帳(연행비강장), 亂落剪紅巾(란락전홍건).
解駐籃輿看(해주람여간), 風前唯兩人(풍전유량인).
―‘두목의 단풍 시에 화답하다’(화두녹사제홍협·和杜綠事題紅葉) 백거이(白居易·772∼846)
당시(唐詩) 가운데 단풍 노래의 수작(秀作)을 꼽으라면 단연 두목(杜牧)의 ‘산행’. ‘저 멀리 차가운 산 비탈진 돌길 오르자니(遠上寒山石徑斜 원상한산석경사), 흰 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보이네(白雲生處有人家 백운생처유인가)./저물녘 단풍 숲이 좋아 수레를 멈추나니(停車坐愛楓林晩 정차좌애풍림만), 서리 맞은 단풍잎 이월의 꽃보다 붉어라(霜葉紅於二月花 상엽홍어이월화).’ 단풍 삼매경에 흠뻑 빠져든 시인은 이월 봄꽃보다 더 아름답도록 붉은 단풍에 매료되어 가던 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노라 고백한다. 백거이가 만난 가을 산의 단풍은 좀 더 유난스럽다. 불타는 듯, 봄꽃이 활짝 핀 듯, 붉은 비단 장막을 펼쳐 놓은 듯, 붉은 수건을 갈기갈기 자른 듯, 혹은 눈앞에 가지런히 펼쳐지기도 하고 혹은 이리저리 바람에 흩날리기도 한다. 화사한 단풍에 취해 저도 모르게 황홀경에 빠져든 두 시인, 하나가 간결미를 살렸다면 다른 하나는 화려한 맛을 도드라지게 했다. 그래도 단풍에 매료되어 ‘가던 길 멈추었다’는 공감대가 있으니 ‘같은 곡조를 서로 다르게 연주했다’라 할까.
화답시(和答詩)는 대개 친분이 두텁거나 특별한 인연을 가진 사이끼리 주고받는다. 백거이가 두목보다 서른 남짓 연장인 데다 사회적 신분 또한 현격한 차이가 있었기에 둘이 직접 시를 주고받은 건 아니다. 단풍 숲의 매력에 도취된 백거이가 불현듯 두목의 시를 떠올리며 모티프를 얻지 않았나 싶다.
✵ 백거이[白居易, 772~ 846, 자는 낙천(樂天),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는 당나라 중기의 위대한 시인이자 중국 고대문학사 전반에서도 일류에 속하는 대시인으로 대여섯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아홉 살 때는 이미 음운이 복잡한 율시(律詩)를 쓸 줄 알았다고 하며, 주요 저서로는 “장한가(長恨歌)”, “비파행(琵琶行)”등이 있습니다.
참고로 백거이는 이백(李白)이 죽은 지 10년, 두보(杜甫)가 죽은 지 2년 후에 태어났고, 같은 시대의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병칭되었다.
백거이는 평생을 관리로 살아오면서 딱 4년간의 좌천 생활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순탄하게 승진하였는데, 그는 56세 이후부터 정쟁의 회오리에 말려들지 않고 명철보신(明哲保身)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였고, 백거이는 이런 삶을 스스로 중은(中隱)이라 명명하고 반관반은(半官半隱) 생활을 추구하였으며, 그리하여 중책과 요직에 임명되는 것을 마다하고 지방관리나 낙양 파견 근무를 주로 하였으며, 한직에 있기에 격무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나머지 시간은 친구들과 산수 유람을 하고 음풍농월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향유하였고, 그런 자신을 풍월노인(風月老人)이라 칭하였다.
설레었나봐
네가 오니 붉게 물들어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 〈이준식의 漢詩 한 수(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3년 10월 13일.(금)〉, Daum, 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밤새 쌀쌀한 날씨에 따뜻하게 잘 주무셨는지요?
주말이 기다려지는 금요일 아침! 가을이 어느새 마음 속에 깊숙히
스며들고 있네요.
길을 걸어도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는것 같고, 바람 한점을 마셔도 가을을 마시는 것 같은 계절이네요~
오늘도 뚝 떨어진 기온에 건강 유의하시고, 몸도 마음도 활력이 넘치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