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2.10.9)
말씀/ 누가복음 17:11-19,
신앙인의 앞모습과 뒷모습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인생을 바꾸는데 단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는 책이 있습니다. 이런 책 있으면 사서 읽보실 의향 있습니까? 그런데 중고서적을 알아보니 최소 49,000-216,000까지 책정되어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책에서 세 가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청소, 둘째는 웃음, 셋째는 감사 입니다. 성경 데살로니가 전서도 우리가 항상 해야할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빠지지 않고 공통적으로 들어있네요. 청소를 기도로 바꾼다면 고바야시 세이칸이 말한 것과 성경 말씀이 비숫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을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가요? 돈 들지 않고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그러면서 무력한 삶에 활기를 넣어주고,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변화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생을 바꾸어준다는 것입니다. 모두 다 중요하지만 오늘은 세 번째 감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감사의 반대가 무엇일까요? 불평 불만 짜증 아닙니까? 불평 불만할 때 일이 잘 되고 복이 굴러들어올까요? 반대로 항상 웃고, 감사하며 산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어린아이라도 항상 가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고 말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사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8을 보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미국 뉴욕에 이민을 간 지 20년이 넘은 72세의 어느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그동안 고생을 참 많이도 했습니다. 험난했던 20여 년의 이민 생활이 남긴 건, 당뇨와 고혈압, 관절염으로 거동조차 불편해진 몸 이었습니다. 자식들도 다 결혼시켜 떠나보내고 어느덧 혼자서 쓸쓸한 노년을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사람을 잘 못 믿어 전 재산을 잃고 말았습니다. 상심한 할머니는 한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같은 연배의 한 멋진 신사 할아버지가 백마 탄 왕자님처럼 할머니에게 나타나 자신이 무조건 힘이 되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집에서 할머니를 지내게 하며, 병원에서 진찰도 받게 하고, 휠체어 신세가 된 할머니를 위해 일거수일투족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뜻밖의 행복한 삶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주위에서 그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할머니를 위해 왜 그렇게 헌신을 하세요?”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어. 그냥 이 사람에게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런데 그런 일이 사실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할머니를 오랫동안 지켜본 친척이 할머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평생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늘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또 항상 말을 가려 할 줄 알고, 언제나 덕스러운 말을 찬찬히 하며, 감사가 입에서 늘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 할머니는 뜻하지 않게 절망적인 환경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불평이나 원망 없이 오히려 그것조차 감사하며 조용히 조국으로 돌아가려했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감동되어 할머니의 여생을 돕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할머니에게 인생의 변화가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 순히 우연 이었을까요?그 삶이 감동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면 감동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삶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같아야 합니다. 어떤 책을 보니 뒷모습에도 내가 있다는 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게 앞모습 관리는 잘 하는데 뒷 모습관리는 엉망인 경우가 많습니다. 늘 상대방에게 직접 보이는 부분만 관리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안 보겠지 생각하고 있는 곳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동안 쭉 지켜보았는데 무척 성실하더군요” 앞에서는 감사를 잘 하고 겸손히 받아들인 것 같은데 뒤에서 욕을 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오히려 뒤에서 감사하고 뒤에서 칭찬을 많이 하고 안 보이는 뒤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앞 모습은 꾸밀 수도 있는데 뒷모습은 꾸지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은 뒷모습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그렇지만 하나님도 이런 뒷모습의 진실한 모습을 보신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예가 누가복음 17:15-19절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리셨습니다. 이 마을은 갈릴리 지역에서 사마리아로 내려가는 접경 마을 이었습니다. 마침 열 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사람들과 가까이 하지 못하는 나병환자들은 멀리서서 예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다른 어떤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만 하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일제히 제사장이 있는 마을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가던 도중에 자신의 몸이 깨끗해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얼마나 놀랍고 기뻤겠습니까! 뒤 돌아볼 틈도 없이 제사장에게 판정을 받기 위해 달렸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열린 새로운 세상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이방인 한 사람 나병환자는 가던 길을 돌아서서 예수님께로 향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큰 은혜에 감사하지 않고 그냥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도 빨리 가족들 친구들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돌아와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감사드렸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물으셨습니다.‘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는 모두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믿음과 순종을 보였습니다. 하나같이 낫고자 하는 소망과 열망을 보였습니다. 그 결과 모두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열 문둥이들의 앞모습 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이고 사람이 보이는 앞 모습에는 믿음이 있었고, 소원이 뜨거웠고, 앞 모습은 모두가 긍휼의 은혜를 입고 불치병에서 치유되는 간증거리를 가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침받고 돌아선 뒷모습은 다 같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감사한 사람은 이방인 한 사람뿐 이었습니다. ‘영생을 얻고 싶다.’고 예수님께 찾아 왔던 부자 청년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 역시 어려서부터 율법을 지키며 사람들 앞에서 모범적인 신앙인 같았지만 예수님께서 그의 뒷모습을 찔러보니 사랑할 줄도 베풀 줄도 모르는 욕심덩어리가 속에 있는 자였습니다. 앞모습의 외적인 모습은 아주 훌륭했지만 진실한 뒷모습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없는 자였습니다. 결국 재산을 다 필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는 말씀에 걸려 넘어지고 애당초 구하고자 하였던 영생마저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아홉 문둥이의 이 예화는 단지 문둥병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지금 시대의 교회처럼 앞에서 은혜를 구하고 믿음의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뒤에서 감사하고 진실되이 말씀을 쫓아 사는 사람, 끝까지 감사하며 은혜를 감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오히려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많은 은혜를 누린 성도들이 더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앞모습을 보고 감탄하다가 뒷모습을 보고 실망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똑같이 이 시대를 향하여 탄식하십니다.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열심히 사는 것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축복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교회에 가서 정기적으로 봉사하는 것 중요합니다. 믿음의 도전 성공 승리 다 중요 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자녀들에게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사업을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잘 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의 뒷 모습입니다.그리아니 할지라도 고통스럽고, 실패하고, 병들고, 앞이 막막할 때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를 하는 뒷 모습의 삶을 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진실한 신앙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도 보십시오. 앞에서는 언제나 한 말씀이라도 양들을 먹이시기 위해서 늦게까지 말씀을 섬기시고 뒷모습은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시곤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 똑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앞모습 뒷모습이 똑같은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뒤에 남아 감사를 한 이방인 문둥이를 영생으로 축복하신 것처럼 뒤에서 감사를 잘 하는 사람을 더 큰 축복의 세계로 인도하십니다. 아멘! 감사는 당연한 도리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기적을 일으키게 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통해서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의 예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미국의 실업가 중에 '스탠리 탬'이라는 박사가 있습니다. 그는 회사를 크게 세우고 돈을 많이 벌어서 유명하게 되었는데, 1976년에 갑자기 병이 들었습니다. 척추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척추암은 수술로도 약물로도 고치기 힘든 병이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가 절망 가운데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몇 달 후에 그가 병상에서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출근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아니 어떻게 병이 낫게 된 것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탠리 탬은 “아 네, 전 하느님 앞에 감사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병이 다 나았습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병들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병들어 죽게 되어도 감사합니다. 하느님, 저는 죽음 앞에서 하느님께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살려 주시면 살고,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하나님, 무조건 감사합니다.” 매순간마다 감사하고 감사했더니 암세포는 없어졌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가 다시 회복하게 된 것은 '감사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해군 장교인 가와가미 기이찌 씨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오고 나서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짜증이 났고 불평불만이 쌓여져 갔습니다. 결국 그는 전신이 굳어져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불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 그는 정신 치료가인 후찌다 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후찌다씨는 그에게 “매일 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만 번씩 하세요”라고 처방했습니다. 기이찌 씨는 자리에 누운 채로 매일 밤 계속해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계속했습니다. 매일 “감사합니다”를 했기 때문에 감사가 몸에 배여 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두개의 감을 사와서 “아버지 감을 잡수세요”라고 말했는데 그 때 아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는데 신기하게도 손이 움직였고 차츰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던 목도 움직여지게 되었습니다. 말로만 하던 감사가 실제 감사가 되었고 불치병도 깨끗이 낫게 한 것입니다.
감사는 우울중 치료에 특효가 있다고 합니다. 요즘 미국의 정신병원에서는 우울증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약물치료 보다는 소위 '감사'치유법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에서 감사한 일들은 무엇일까를 찾아내게 하고 감사를 회복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약물치료보다도 이 감사치유법이 훨씬 더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이 감사치료법은 단지 정신과적인 치료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탠리 탬'의 경우와 같이 육체의 질병에도 대단한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세계 최고의 암전문 병원인 미국 텍사스 주립대 MD앤더슨 암센터에 31년간 봉사한 김의신 박사는 신앙이 암 치료에 실제적인 효과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교회 성가대원들과 일반인들을 비교해보니 성가대원들의 면역세포(일명 NK세포) 수가일반인보다 몇 십 배도 아닌, 무려 《1000배》나 많은 것으로 측정되었다고 합니다. 감사로 찬양하고 사는 것이 그만큼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고 면역계를 강화하며 에너지를 높이고 치유를 촉진합니다. 감사는 정서에 좋은 반응을 일으켜 혈압을 떨어뜨리고, 소화 작용을 촉진한다고 합니다. 1998년 미국 듀크 대학 병원의 해롤드 쾨니히와 데이비드 라슨 두 의사가 실험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매 주일 교회에 나와 찬양하고 감사하며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7년을 더 오래 산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존 헨리 박사도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누구나다 성장하고 발전하고 변화되어 생명력 있고, 활력있고 아름다운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은 높은 고지 점령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 영적 스윙 훈련을 잘 하면 누구나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하나가 바로 남이 보든 보지 않든 여건이 좋든 좋지 않든 언제나 감사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고바야시 세이칸 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의 본질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 감사하고, 저렇게 하니 감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진정한 감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우리도 언제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럴 때 언제나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사할 때 우리의 삶에 변화와 기적도 따른다는 것입니다. 저의 신앙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준 두 가지도 ‘주님이 하신다’는 것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것 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저와 여러분 모두 앞모습 이던 뒷모습이던 감사를 잘 함으로 밝은 미래와 승리의 미래를 열어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