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의 성흥산성에 우람하게 버티고 서서 백제의 옛 땅을 굽어보는 느티나무 거목. 수령은 220년 남짓으로 백제의 역사와 비교하기에는 터무니없지만 나무둥치에 기대서 혼곤한 낮잠에 빠져든다면 꿈속에서 백제의 왕들을 만날 수 있을 듯싶다.
백제의 옛 수도 부여는 언제나 ‘보는 곳’이 아니라 ‘듣거나 느끼는 곳’일 뿐이었습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몇 기의 탑 그리고 박물관에 박제처럼 남아 있는 유물들…. 금동관의 화려함이나 미륵보살반가상의 조형적인 미감, 웃는 얼굴이 그려진 수막새의 천진함. 그런 것들은 박물관의 차가운 유리벽 너머에 갇혀 있을 뿐이었습니다. 정림사지 석탑과 같은 빼어난 백제 탑들도 있긴 하지만, 그것도 벌판에 덩그러니 혼자 서있는 것이어서 황량함을 안겨줄 따름이었습니다.
부여의 대표적인 관광지 낙화암을 둘러보는 백마강 유람도 기실 ‘백마강 달밤에~’로 시작하는 뽕짝메들리가 겹쳐지면서 정작 백제가 아니라 1970~1980년대 풍경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아무리 ‘패망의 역사’라고는 하지만, 어지간한 감수성이나 상상력이 아니고서는 일반인이 부여에서 ‘백제의 우아한 향기’를 맡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1400여 년이란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의 깊이 때문이기도 하겠고, 신라에 철저하게 짓밟힌 탓이기도 합니다. 백제라면 그 찬란한 문화보다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낙화암이나 삼천궁녀 따위를 입에 올리는 후대 사람들의 무관심도 한몫을 했겠지요.
이런 부여를 여행하는 방법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옛 백제시대 역사와 유물, 그리고 유적지를 연결해가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역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가는 여행법이야말로 부여를 제대로 보는 방법입니다. 실타래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는 여정이 어찌나 흥미진진하던지요. 화려한 유물과 애잔한 역사, 그리고 역사의 간극을 메우는 상상력까지 더해지면 부여만큼 흥미로운 곳도 드물 듯합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려 했다면, 부여여행은 심심하고 재미없는 기억으로만 남을 터입니다. 그러나 이제 부여에도 ‘볼 것’들이 생겼습니다. 오는 18일 개막하는 ‘세계대백제전’을 계기로 부여에 백제문화재현단지가 들어섭니다. 규암면 합정리 일원의 100만평 땅에 금을 그어 부여도읍 시절 백제 사비성을 지었고, 당시 사찰과 백제마을 등을 재현했습니다. 여기에 들인 돈만 3117억원. 백제문화단지 전체에 쏟아부은 돈만 6094억원에 달합니다. 옛 도시 하나를 새로 지어낸 셈이지요.
차분하게 차근차근 옛 문화를 복원하는 대신 한꺼번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은 것에서, 어쩐지 고대국가 백제에 대한 문화적인 관심이나 애정보다 관광객 유치로 발생할 이익을 쫓는 자본의 셈법이 먼저 읽히기도 합니다. 역사 자료부족으로 ‘복원’이 아닌 ‘재현’의 공간이 가진 한계는 역시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백제문화재현단지에 세워진 웅장한 사비성의 모습이나 능사의 오층목탑의 위용은 더없이 빼어났습니다.
이로써 부여는 박물관의 유물이나 애잔한 이야기 말고도 풍성한 볼거리를 갖게 된 셈입니다. 부여 땅에 풍성한 볼거리가 들어선 지금, 괜한 걱정이 앞섭니다. 테마파크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볼 것들에 눈이 팔려 혹여 이야기와 역사읽기의 즐거움을 포기하지는 않을까 싶은 탓이지요.
사실 새로 지어져 반짝반짝 윤이 나는 백제문화재현단지를 둘러보고, 대백제전 기간에 펼쳐지는 대규모 공연만 봐도 썩 괜찮은 여정이 될 듯싶지만, 애잔한 역사 속에서 1400년 전의 자취를 따라 낡고 오래된 것을 찾아가는 여정의 감동과 어찌 견줄 수 있겠습니까. ‘마음 여행’과 ‘보는 여행’. 이 두 여정이 한데 어우러질 때 부여로 떠나는 ‘백제여행’은 더 깊어지고 즐거워질 것입니다.
문화일보 : 부여 = 글 · 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 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