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교입문
내가 기독교에 접근하게 된 경위와 내가 알고 있는 기독교의 몇 가지 사항에 대하여 이해(理解)하는 바를 기술하련다.
아버지는 유교(儒敎)의 전통을 지키시며 제사를 지내셨다. 어머님께서는 이미 젊은 시절에 교회를 다니셨다. 또한 나는 중학교 때 이웃에 사는 교회 집사님의 권유와 그런저런 이유로 해서 성결교회에 나갔다. 그러다가 내가 본격적으로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내 나이 열일곱 살 때, 6.25.동란이 일어나 용인군 원삼면 학일리, 아버지의 고향으로 피난을 가서 부터다. 고향에 있는 동안에 시골 풍속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는데 종가집에는 제사가 일 년에 열여덟 번을 지낸다. 제사를 모시는 일이 큰집의 몫으로써 큰집 며느리가 일 년 내내 제사 준비에 신경을 쓰고,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제사 지내는 날은 집안의 여자들이 제사상 차리기에 여념이 없는데 막상 제사 지낼 때를 보면 남자들만이 제사를 모시고 여자들은 밖에서 또는 부엌에서 시중만 들뿐, 제사상에 와서 조상님에게 절을 올리지 않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딸자식도 자식이고, 며느리도 친정에서는 출가외인이라고 우리 집안에 시집을 왔으면 우리 집안의 가족이요 우리 집안의 자식인데 조상님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에서 소외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남녀차별이라 하겠다.
미래의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신본하는 남녀평등의 사회를 지향하는 새나라가 되자면 제사 지내는 풍속부터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사는 밤늦은 시간, 자정에 지내는데 이것도 꼭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상의 은덕(恩德)을 기리는 기념식이 제사이고 보면 초저녁에 지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사 지낼 때 큰집만의 경제적인 부담도 없애고 남녀가 한자리에 앉아서 함께 제사를 지내야하며 저녁식사를 할 때 한상에 둘러앉아서 찬송과 기도와 집안 어른의 교훈으로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형제자매가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 기독교를 우리 집안의 종교로 가지기를 작정 했다.
그 다음 해1951년 1.4후퇴 때에도 피난을 아버지의 고향으로 갔고 그 때에도 제사 지내는 제도를 고치기 위해서는 개종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굳혔다. 그 후로도 내 나이 열여덟이 되던 해 수원고등학교 2학년에 편입을 해서 졸업할 때까지 2년간 수원 중앙침례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지금은 김장환(金章煥) 목사가 당회장으로 계시지만 그 당시에는 성결교회 집사이셨던 이 집사님(성결교회 본당 이우호 목사님의 형님)이 천막을 치고 예배를 주관하셨다.
18,9세 때 가장 괴로웠던 신앙상의 고민은 십계명 중에 「간음하지 말라」라는 계명이었다. 성경에 보면 ‘여인을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도 준엄하여 이 계명 하에서 젊은 나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생각에 시달렸다. 기독교 최고의 윤리인,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와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계명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젊고 예쁜 여성을 보면 아름다움에 사랑하고 싶은 애욕이 발동하고 이것이 간음죄에 해당한다는 죄의식에 허덕이게 되는 것이었다.
집안 형편상 아버지는 늙으셨고 어머님이 병환 중에 계셨으므로 집안의 장남인 내가 일찍이 스무 살에 결혼하였지만 또 하나 다른 이유는 그 간음죄의 의식에서 해방되고자 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기독교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가질 수 있었던 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대학교 농과 대학 부설 중등농업교사양성소에 들어갔을 때부터였다.
류달영 교수님께서 2년간 교육학 강의를 맡아 주셨는데 온화하신 얼굴에 부드럽고 잔잔한 음성으로 세계 석학자들의 사상과 기독교, 불교의 달마대사 이야기,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미국의 실용주의와 죤 듀이의 교육철학, 덴마크의 그룬트비히, 페스탈로치의 교육, 롱펠로우의 시(詩) ‘화살과 노래’ 등 명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류달영 교수님은 우리 학생들에게 ‘스승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현실에 생존하고 있는 위대한 인격을 찾아서 자기 스승을 선택하여 가지라. 불연이면 과거 역사 속에 빛을 남긴 분들 중에서 스승을 찾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6.25를 겪으며 공부다운 공부도 못하고 고등학교 시절 대학 입학시험을 위해 애쓰던 공부와는 판이한 공부로써 류달영 교수님의 강의에서 내 인생의 좌표를 설정하기 시작했다.
농과대학에는 조백현 학장님, 현신규 임학박사님, 이은웅 교수님, 표현규 교수님, 잠업의 김상섭 교수님, 토양학의 오왕근 교수님, 임목신림학의 이창복 교수님, 그 밖에도 기라성 같은 학자님들이 열심히 강의 하셨다. 이분들로부터 생물학의 신비를 감지하였고 교육학 강의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다.
내가 농대의 더부살이와 같은 중등 농업 교사 양성소에 입학하기는 서울대하교 공과대학 입학시험에 낙방을 하고서 당시 후기 대학으로 한양공대나 인하공대에 갈 실력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서울 대학이 아니면 안 간다.'는 오만과 하루 속히 학업을 마치고 아홉 식구의 장남으로서 직업인으로 집안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당시 이선근 문교부장관의 ‘교사는 비상상태가 아니면 병역을 면제해 준다’는 방침이 있었기 때문에 중교(中敎)에 입학하고 나서 새로운 인생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다. 그러나 농업분야는 겨우 낙제 점수만 면했고 교육학은 졸업당시 전체 졸업생 중에 내가 최고 점수를 받았다. 류달영 교수의 「새 역사를 위하여」라는 책은 달달 외울 정도였다. 이 책의 ‘머리말’과 맨 끝장의 ‘조국을 바라보고’는 명문 중에 명문이라 지금 읽어도 가슴을 뛰게 하는데, 이글이 내 인생을 농촌 운동 내지 농협운동에 뛰어들어 헌신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대중교 1학년 봄에 내가 일생을 농촌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을 하게 한, 또 한 분의 훌륭한 스승을 만나 뵐 수 있었는데 이 분은 나의 종교 신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류달영 교수님의 초청으로 농대 강당에서 강연을 하였던 함석헌 선생님이시다.
나는 6.25.가 터지던 17세 때 우리나라의 위대한 애국지사의 한 분이신 백범 김구 선생님의 강연을 들어 본 일이 있었지만 그때는 내가 철이 없었던 때였다. 그러나 함석헌 선생님의 강연은 내 나이 19세로서 한창 철이 들 무렵이었기 때문에 나의 젊은 가슴을 뛰게 하고 내 신앙을 재점검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그간 유교를 버리고 기독교에 귀의하여 보수적 신앙의 교회에 얽매어 왔었는데 유교에 대하여 재인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함석헌 선생님은 장장 두 시간을 꼿꼿하게 서서 열강을 하시는데 칠판에 하늘 천(天)자를 써 놓으시고 그것을 해석하시며 요(堯)임금, 순(舜)임금의 말씀과 옛날 중국의 천자(天子)와 예수님은 다 같이 하느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다고 풀이하시며 영국의 H. G. 웰즈의 「세계문화소사」의 '창조진화론'을 설명하시며 인류의 발달사를 말씀하시는데, 지구상에 아메바 같은 단세포 동물이 출현한 후에 하늘로 머리를 둔 만물의 영장인 직립(直立)동물로서의 인간이 태어나기 까지 고고학적∙생물학적 발달의 대요를 설명하시고 이 지구상에 인간을 내놓기까지 하느님은 온 우주만물을 동원하여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인간은 ‘우주적 존재’라는 말씀은 그때까지 내가 어느 목사 어느 선생님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놀라운 강의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너희도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고 너희도 하느님의 아들이다.’라는 위대한 강의였다.
그날 이후 나는 매주 토요일만 되면 서울 중앙 신학교 강당에서 오후 2시에 열리는 함 선생님의 예배모임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그의 저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류달영 선생님의 「새 역사를 위하여」와 함께 내 젊은 날에 가장 깊은 감명을 받은 책 중의 책이 되었다. 함석헌 선생님은 말씀하시길 ‘죄란 없다’라고도 하였다. 사람들, 특히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죄, 죄, 죄 하면서 죄의식에 매달려서 스스로 속박하고 있는 것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리하여 참되고 씩씩하게 살지 못하며 면죄부(免罪符)를 받으려고 교회에 헌금을 내고 교회에서만 참회 기도를 드리는 신앙을 안타깝게 여겨 하신 말씀이다. ‘기도’는 땀 흘려 일하는 곳에 참기도가 있다고 하시곤 하였다. ‘죄는 없다’고 하신 말씀은 우리민족의 고난의 역사가 죄를 속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사람에게는 죄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죄란 무엇이냐?’라고 다시 묻는다면 ‘죄란 다하지 못한 책임’이라고 대답하신다. (여기서 맹자의 말씀을 빌리면 ‘하늘에 죄를 지으면 더 빌 곳이 없다‘라고 갈파한 말씀도 상고할 필요가 있다.)
함석헌 선생님은 죄란 없다고도 하고 있다고도 하셔서 얼핏 보기에는 모순이지만 ‘진리는 모순이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실천적인 신앙으로 이웃사랑의 빛을 발하기를 강조하시곤 하셨다.
내가 고등학교 2년간과 그 후까지도 침례교회에 다녔는데 내가 늘 성경을 읽고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에는 하느님이 계신 것으로 믿게 되지만 교회에서 나와 일상생활을 할 때나 생물학을 배울 때에는 자연과 신비가 대립하는 개념으로 파악되기도 하였다.
온 우주는 하느님의 섭리로 창조되어 그 법칙에 따라 운행된다고 믿지만 자연과학을 배우며 자연현상을 보면 자연은 제 스스로 존재하며 저절로 운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회의에 회의가 거듭되었다.
왜? 하느님은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들이 참되고 선하게 살기를 바라신다면 애시 당초 그렇게 만드시지 않고 악(惡)을 함께 창조하였는가? 왜 사람이 악한 일도 하게 하였는가? 사람을 자유(自由)하는 존재로 창조하였기 때문에? 신학적 변증법이론은 여러 가지로 하느님의 창조의 당위성을 설명하지만 내게는 자연주의 또는 무신론과 창조론이 대적되어 어느때는 하느님이 계시다가도 어느 때는 하느님이 안 계신다. 이것은 진실로 내게는 영원한 숙제이며 고민거리였다. 나의 죄의식과 더불어.
그래서 농대중교 1학년 여름,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일요일 오전 서울로 함 선생님 댁을 방문하였다. 충정로의 일본 가옥의 2층 『다다미』방에서 선생님을 마주 대하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께 큰 절을 올리고서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드렸다.
“선생님, 정말 하느님이 계십니까?”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으신 채 아무 대답도 하시지 않으시려는 듯 머리 숙여 듣고 계시다가 꽤 시간이 흘렀는가? 할 때 내 얼굴을 건너다보시며 넌지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하느님 믿으면 하느님 계신 것이고, 하느님 안 믿으면 하느님은 안계시지요 뭐.”
나는 더 여쭈어 볼 질문이 없었다. 갑자기 말문이 콱 막혔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아! 이것은 칸트의 인식론과 얼마나 다른 것인가? 먼저 믿으라는 것인데 원 참, 스스로 밝히라는 뜻이렸다.’
그 후 내가 농대중교 2년을 마치고 군(軍)에 입대하여 부산항만사령부에서 3년을 지내는 동안 함 선생님이 이따금 내려와서 들리시는 이중탁(李重鐸)씨 댁에서 신세도 지고 무교회 신앙하시는 분들의 검소한 살림살이도 볼 수 있었다. 군에서 제대(1957년 10월)하고서는 자유당 시절, 취직난도 있었지만 내가 농촌운동 또는 농촌의 농업학교 교사가 되기 전에 농업실습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여겨서 함 선생님께 편지로 허락을 받아서 1958년 4월부터 그해 10월까지 선생님이 경영하시는 천안 「씨알농장」에서 지낼 수 있는 영광의 기회를 가졌다.
농장에서의 나의 생활은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온몸을 냉수마찰하고 헛간을 손질한 강당(2~3간)에서 당시 김종대(중앙신학생 후에 홀트아동복지회 근무), 홍명순(김종대와 동일), 이금용, 권술용, 안부근 등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함 선생님의 아침 기도회에 참석했다. 모두 일곱 명이 모이는 모임이다.
그해 1년 동안 아침기도 모임에서는 함 선생님의 강의로 四書중의 한 권인 「大學」을 배웠다. 낮에는 농업노동을 하고 저녁식사 후에는 찬송과 기도, 함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가정 예배로 하루의 일과를 마친다. 그때 배운 「대학」이 기반이 되어서 내 스스로 「중용」「논어」「맹자」를 읽는 계기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한 해였던가.
1958년 6월 25일을 전후해서 함 선생님은 1주일간을 단식을 하시며 당시 사상계(思想界) 잡지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집필하셨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나에게는 처절한 싸움인 것처럼 보였다. 농장 식구들과도 별로 말씀도 없이 기도하면서 쓰시고, 쓰시면서 기도하셨다.
일상의 선생님은 새벽 4시에 일어나시어 냉수마찰을 하시곤 6시까지 기도와 성경 또는 고전 읽기로 시작하신다. 낮에는 우리들과 함께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셨다.
농장에서 생산하는 계란을 젊은이들(특히 홍명순 씨가)이 배낭에 챙겨드리면 그것을 등에 지고 3등 열차 편으로 서울에 가시면 사모님께서는 그것을 광주리에 이고 다니시며 팔아서 생활하셨다. 기차 안에서 젊은이들이 자리를 양보해 드리면 깍듯이 인사하시고 자리에 앉으신다. 옆에서 누가 보거나 말거나 아래 위 한복에 두루마기에다가 수염이 허연 노인이 영어 원서를 무릎 위에 펴서 보시면 시끄러웠던 주위는 어느덧 엄숙한 분위기로 조용해진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날 내가 복숭아 과수원에 거름을 주려고 바퀴가 두 개 달린 인분 마차를 커다란 황소에 달고 천안 읍내의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서, 어느 집 뒷간에서 인분을 잔뜩 퍼 담고 ‘ㄱ’자로 꼬부라진 골목을 돌아 나오는데 한쪽의 마차 바퀴가 낡은 일본가옥의 모서리 기둥을 치어 집 기둥이 쑥 빠지는 것이 아닌가? 이때의 난감함이란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빠진 기둥을 놓아 둔 채 집주인에게 변상해 줄 것을 약속하고 농장에 돌아와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같이 왔던 집주인이 농장의 살림을 보고 자기가 농장 실습생을 돕지는 못할지언정 자기 집은 자기가 고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웃의 목수를 보내고 쟁기로 다시 집을 세우고 기둥을 바로잡도록 조치해 주셨다. 나에게는 「씨알농장」에서 농업실습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귀중한 경험이었다.
나는 요사이 집사람과 함께 가끔 교회에 나가지만 교회에 가서 기복(祈福) 신상에 근거한 설교이거나 다른 종교를 비방하며 집착하는 배타적 보수 신앙의 설교이거나, 또한 사업적인 교회 사업의 선전 등에는 염증을 느끼곤 한다. 교회는 무수히 난입하였지만 범죄는 날로 흉악해져 가고 있다. 이제 님은 가셨는데 참사람 참스승님이 그리울 뿐이다. 단지 6개월 선생님을 가까이 모셔 보았고 1959년 후로는 시골 학교선생, 1963년부터는 농협에 입사하여 오늘날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의 성경공부는 읽었다하면 일장(章)이상이라야 했다. 몇 줄 읽고 음미하는 방식의 공부가 아니고 창세기부터 줄줄이 소리 내어 읽어가며 그 장을 모두 끝내야 직성이 풀린다.
예전에 선비들이 고전을 읽을 때 소리 내어 읽는다고 했다. 나도 성경 전체를 독파하기로 하고 몇 달 몇 날이 걸리더라도 독파하여 이스라엘 역사를 공부하기로 했다. 유대민족의 역사와 생활습관과 사상을 모르고서는 성경의 의미를 알 수 없고 어느 대목에서는 그들의 풍속을 모르고서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조차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조차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성경을 세 번 읽고야 대강을 짐작할 수 있었고 기독교의 진리는 일단 유대민족의 역사 속에서 잉태되어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성경이 모두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틀린다고 생각한다.
성경을 읽을 땐 유대민족의 역사서이며 고전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 요긴하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에서도 취할 것이 있고 버릴 것이 있다. 유대나라 풍속에 일곱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큰형이 장가를 들어 살다가 죽으니 그 아내를 둘째가 취하여 살고, 둘째가 또 죽으니 셋째가 취하여 살고, 그렇게 하여 일곱째까지 아내를 물려받으며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대목은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 교인들이 예수에게 부활에 관하여 물으며 칠형제가 다 죽은 후에 천국에서는 그 아내가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고 질문한 대목이다. 예수를 궁지에 몰아넣거나 그를 시험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을 잘못 읽었느니라. 천국에서는 시집가는 것도 장가드는 것도 없고 각 개인은 천사와 같으니라. 너희는 성경을 읽지 못하였느냐.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하지 않더냐? 그러므로 하느님은 산 자의 하느님이지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니라’라고 대답하고 있다.
여기서 일곱 형제에게 차례로 인계되는 아내가 있다는 것, 이와 같은 유대민족의 풍속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혹시 지금같이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진 세태에서는 과부 형수를 데리고 사는 동생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내 단견일지도 모르지만) 한국 여인은 수절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속이었다. 과부를 남이 보쌈을 해서 데리고 가서 살았다는 것은 있었어도 형수를 데리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우리 역사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유대나라의 그와 같은 풍속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수에게 질문한 사두개 교인도 만일을 가정하고서 한 이야기런지 모르나 그런 풍속이 유대나라에 있었던 것이 틀림없기에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예수님은 지혜롭게도 천국의 생활은 결혼생활이 없다는 것과 하느님은 인류에게 대대로 내려가며 말씀하시는 역사적인 하느님이라는, 따라서 사람이 죽은 후에 어떻게 하느님이 죽은 사람에게 조치할 것이냐에 관심의 초점을 가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고 산 자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앙의 중요한 내용이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가 있지만 이것은 하나의 비유이며 또한 그들이 죽지아니하고 천국에서 살아있음을 전제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심판이야기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먼저 문제되는 것은 하느님이 계시냐 안 계시냐이다.
이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우주 만물의 존재를 보면 자연현상이 있고 이 자연 현상 속에는 신비가 있다. 자연 과학이 발견한 모든 원리와 법칙이 모두 신비가 아닌 것이 없다. 자연과학은 자연현상의 원인규명을 공부할 때 그 자연현상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분석하고 원리를 설명한다. 그러나 그 같은 현상이 왜 전개되며 존재하는가를 물을 때에는 알 수 없는 경지에 봉착한다. 그래서 철학자들이 불가지론(不可知論)을 말하지만 거기엔 신비가 있다. 그러므로 신비가 있은 즉 신의 비밀이 있다는 것이니, 신의 비밀이 있으면 신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우주만상은 피조물임을 알게 되고 따라서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씨알농장에서 오직 한 번 봬온 유영모(柳永模)선생님 (함석헌님의 선생님)에게서 들은 말씀인데 ‘신비를 풀어 헤치는 것이 과학이요 과학적 현상을 덮으면 신비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과학적 제반현상의 배후에 있는 그 의미를 찾으면 신비일 따름이라 종교와 철학이 그것을 밝혀 줄 뿐이다. 신의 존재를 과학적 분석방법으로 증명하려는 데에서 자가 당착에 봉착한다. 신은, 신비가 있음을 인정한다면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다음 기독교 신앙에서 어려운 대목은 1.기적 2.부활 3.영생 4.재림 5.천국인데 이 다섯 가지를 믿을 수 있다면 기독교 신앙은 입문에 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하여 나의 견해와 생각, 믿음을 간기하기로 한다.
1.기적에 대하여
기적에 대하여는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다. 미국의 시인(詩人) 휘트먼은 그의 저서 「풀잎」에서 풀잎 하나도 기적임을 표현하고 있다. 또 사람들이 남녀가 결혼하여 아기를 탄생시키는 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성경에서 성모 마리아가 처녀로 잉태하여 아기 예수를 낳았다고 쓰여 있다. 이것은 자연과학의 견지에서 볼 때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없느냐의 논쟁이 있지만, 종교적 문제를 자연과학으로 증명하려니까 논쟁이지 처녀 잉태설도 하나의 신화로 보면 어색 할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에서 천신의 아들 환웅(桓雄)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곰과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탄생시켰다거나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가 알에서 나왔다고 하여서 신화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또 신이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고 믿으면 처녀 잉태설도 못 믿을 것이 없다. 함 선생님은 ‘생선을 먹을 때 뼈와 가시는 발라내고 먹으며 굳이 뼈와 가시를 먹고 싶으면 바싹 구워서만이 먹을 수 있다. 처녀 잉태 설 같이 어려운 대목은 가시나 뼈를 바삭 구워야 먹을 수 있듯이 그 의미의 해석은 빌어서만이 이해가 가능하다. 이해가 되지 않는 기적의 부분은 그대로 두어도 신앙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기적의 부분은 하나의 신화로 보고 그 이야기가 가르치고자 하는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궁리할 뿐이다.
처녀 잉태설 말고도 예수님이 물위를 걸었다거나 질병을 말씀 한마디로 고쳤다거나 하는 것은 보통 사람의 생각으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현상이지만 그것은 하나의 기적이요 신화로써 접어두고 어떤 때 예수님이 사랑의 기적을 베풀었는가 하는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 세상에서 나타나는 알 수 없는 현상들은 나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한에 있어서 굳이 그런 기적의 현상을 거부하거나 부인하려고 할 것이 못된다. 아인슈타인은 위대한 과학자인데 그는 자기가 발견한 원리 또는 진리도 우주 안에 꽉 들어찬 진리의 사막에서 모래알 하나를 발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바에야 우리같이 자연과학의 전문가도 아닌 처지에서 어떻게 기적적인 현상에 대하여 ‘아니’라 할 수 있으리요? 성경에 나오는 기적에 속하는 사건은 기적인 채로 두자. 과학의 발달로 입증할 날이 있을 것임을 믿고 기대하며 놓아두는 것이다. 신비가 존재하는 바에 기적적인 현상인들 없으란 법은 없다. ‘기적은 기적인 채로 두어라’고 하는 것이다.
2. 부활에 대하여
부활의 문제는 사람이 죽었다가 어떻게 다시 살아나느냐이다.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 수 있을까마는 여기에서는 사람의 목숨이 끊어진 후에 영혼이 존재하느냐 아니냐, 다시 살아난다고 할 때 육체냐 영체냐, 즉 정신이냐 하는 것이다. 보수 신앙에서는 육체까지도 다시 살아난다고 하지만 현대과학을 배운 우리는 무덤 속에서 썩어진 후에 흙이 되어버린 우리 육체가 재결합이 되어 다시 원래 모양의 사람으로 살아난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부활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면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장을 숙독(熟讀)을 해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의 몸에도 썩어질 것이 있고 썩지 않을 것이 있어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산다고 하였다. 육(肉)의 몸이 있은 즉 영(靈)의 몸이 있다고 하였다. 단재(丹齋) 신채호(申菜浩)선생은 그의 「조선사론(朝鮮史論)」서두에 사람의 몸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는 생물학적인 유한한 생명을 가지는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유한한 몸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활동할 때 역사적, 사회적 존재로써의 신체(身體)라고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육체는 자연과학의 대상이 되는 썩어질 몸이고 신체는 역사적, 사회적 관계 속에서 실존적 의미를 가지는 썩지 않는 몸이다. 썩어질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을 다시 산다고 할 때 썩어질 것은 육의 몸이요 썩지 아니할 것은 영적인 정신세계의 영체를 이름이다. 여기에서 ‘죽어도 죽지 않는다’라는 말씀이 성립하는 것이며 그래서 예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다고 할 때 나는 지금 이 모양의 약골에다가 꺽다리이며 구부정하고 이마가 좁고 눈매가 시원스럽지 못한 못생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지 아니한다.
이 육체 그대로 다시 살아나기를 원하지 않을뿐더러 이 모습 그대로 다시 부활되지도 아니한다. 누에가 번데기가 되고 다시 나비가 되는 수는 있어도, 사람들이 예수 믿으므로 죽었다가 이 지구상에 다시 부활되어 살아난다고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현재 지구상의 인구만 해도 초만원인데 이 지구상에서 죽은 자가 예수 믿으므로 온통 다시 살아난다고 하면 이 지구는 구더기 들끓는 변소 같아서 악취가 창궐할 것이고 아름다운 지구는 단번에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맙소사, 제발 그런 따위 믿음이라면 그것은 하나의 허황된 욕심일 뿐, 자손들을 위해서도 두 번 다시 태어나기를 거절해야 할 것이다. 부활은 영체로써 하늘나라에서 다시 산다는 뜻이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느 기간 동안 살면 죽는 것이고 죽은 다음에는 흙으로 돌아가게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며 신의 섭리이다. 늙어서도 죽지 아니하고 천년만년 산다면 지겨울뿐더러 ‘죄가 많아 오래 산다’는 우리의 속담이 옳은 말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이 있다는 것은 그 정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영성(靈性)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느님은 인류가 대(代)를 이어가며 살아갈 때 사랑하는 분으로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시다. 하느님도 인류역사와 더불어 사시는 역사적 존재로써의 하느님이시다. 사람의 정신적 생명은 육체적 죽음 후에도 살아 있다는 데에 근거하여 부활 신앙이 성립한다. 내가 죄를 지으면 나는 죽는다. 정신적으로 죽는다. 기(氣)가 꺾이고 몸이 생물학적 입장에서 살아 있어도 산자가 아니요 정신이 죽으면 육체는 시체가 된다. 죽은 자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용서하시고 사랑의 말씀으로 다시 살려 주시면 나는 다시 산다. 이때에도 사도바울과 같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 7장 24-25)’라고 탄식을 하다가도 그로 인하여 (하느님의 사랑에 힘입어)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을 입으리로다 (고전 15장 53절)’라는 승리의 노래를 부른다. 부활신앙은 내가 오래도록 생존하기 위하여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수단으로 믿는 것이 아니요, 죽은 정신을 살리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인 것이며 그 믿음은 죽어도 죽지 않는 생명이 있음을 앎으로써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을 깨우쳐 주고자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것의 전부이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의 말씀을 힘입어서 다시 산다.
3. 영생에 대하여
사람이 죽었다가 무덤 속에서 다시 살아나서 육신이 부활하여 영원히 산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믿을 수도 없고 그렇게 믿어서도 안 된다. 예수가 무덤 속에서 다시 살아서 무덤이 비었고,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바다 위를 걸으셨고 도마에게 창으로 찔린 자리를 만져보게 하셨고 그다음 하늘로 올라가시고, 천사들이 나타났고, 그 다음에 명령하시길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장 20절)’ 이렇게 말씀 하신 것은 마태가 성령을 받아 기록한 마태의 글이라고 본다. 나는 기적에 관하여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믿어지지 않는 부분이 있을 때 신화로써 또는 시(詩)로써 파악하거나 옛날 사람들의 낮은 과학적 지적 수준에 맞게 기록한 것이라고 보고 그 기록에서 진리를 캐내고자 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그대로 접어둔다. 금광에서 순금을 캐낼 때는 돌들도 나오는 법이니까. 돌이 많다고 노다지 금광을 발견하고서 금을 캐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부활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생이라는 말의 뜻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의 이 못난 사람인 채로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아는 한에 있어서는 사람도 다른 생물과 마찬가지로 자기 일생을 살다가 죽게 마련인데 이 ‘마련’이라는 것은 신의 창조물로서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러므로 신이 마련한 육체의 죽음을 거부한다는 것은 신에 대한 배신이다. 그러면 ‘영생이 없느냐’라고 일반 신자들이 재차 질문할 것이고 목사님은 노발대발 야단 칠 것이지만 잠깐 참아 주기 바란다.
사람이 영생을 바라고 믿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아니 아름답다기보다 너무도 당연한 인간의 본성이다.
인생이 다만 이 현세뿐이 아니고 내세가 있다고 믿어서만이 할 일을 다 할 수 있다. 삶이 다만 이생뿐이라면 ‘내일 죽을지도 모르니 오늘 먹고 마시자 (고전 15장 32절)’라고 할 것이다. 이런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이 있다. 이런 현세주의 생각 때문에 이성(理性)을 상실하고 현실주의, 이기주의, 향락주의, 배금주의로 살다가 허무주의로 떨어진다. 그리하여 더욱 향락을 찾는 물질주의로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물건으로 보고서 살인과 강도, 인신매매를 서슴지 않는다. 사람은 영생할 수 있고 영생하는 존재라는 것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사람의 생명이 온 천하를 얻어도 못 바꾸는 영원한 가치, 존엄성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런데 다시 돌이켜서 사람이 영생할 수 있고 영생하는 존재라는 것은 그 영성(靈性)을 두고 하는 말씀이지 생물학적 존재가 영원히 산다는 것은 아니다.
혹자는 종교란 인생이 죽음 앞에서 당하는 고통과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또는 그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에 부응한 기만적인 사술(詐術)이거나 아편과 같은 일시적 처방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물론 사람은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두렵고 몸에 죽을병이 들고 보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을 우리가 안다. 하지만 병이 들어서 죽기 전까지 고통스럽지 죽고 나서야 무슨 고통이 있으리오. 어느 의미에서는 죽음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죽음을 자초하여 자살하는 것은 생명의 신성에 대한 모독으로써 죄악인 것이지만 질병으로써 죽음이 닥칠 때는 순순히 죽음을 받아 드릴 수밖에 없다. 우리가 영원한 삶을 시간 개념으로 말하지만 우리가 영원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영원’도 일순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순간과 찰나 속에서도 ‘영원’이 있을 수 있다. 이른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씀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의 믿음은 사람이 나고 죽는 유한시간 속에서 해방되자는, 죽음의 공포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삶이 육체적으로는 유한 생명이지만 영성으로는 영원한 삶이라는 신념이 있어야 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영생은 시간개념의 영원한 삶이 아니라 생명의 가치이다. ‘영생’이란 생명의 가치가 절대 존엄성이 있다는 값의 표현이지 시간의 척도로 하는 말이 아니다.
살아 있어도 죽은 자와 다름없는 산송장이 있고 육신은 죽었지만 그 정신세계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 (또는 가지는) 사람이 있는 것을, 우리는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요, 죽은 목숨이다’라는 경우가 있고 죽었어도 죽은 자가 아니요 영원히 산자가 있다. 그것이 영혼(soul)으로 또는 정신(spirit)으로 마음(mind)의 세계에서 산다고 여러 가지로 말하지만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다. 예수가 그렇고 정몽주의 사육신이, 그리고 충무공이 그렇다. 진리에서 ‘참’으로 살다가 간 사람들은 모두 영생한다. 왜? 영(靈)은 불멸이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의 얼굴이 수천수만이라도 닮은 얼굴은 있지만 똑같은 얼굴은 한사람도 없듯이 또는 사람의 개성(individuality)은 누구와도 같지 아니하고 나는 나일뿐이라는 독자성이 있는 것과 같다.
이처럼 ‘생명’에 관하여 이야기를 할 때에는 밥을 먹고 호흡을 하면서도 희망이 없이 취생몽사하는 사람을 일러 왈, ‘죽은 사람’이라 하고 취생몽사하면서 살다가 어느 날 반성하고 희개하여 홀연히 깨달아 각성하고서 다시 기운을 내는 사람을 일러 왈 ‘다시 살았다’고 하는 것이다. 또 예술가의 눈으로 보면 석굴암의 부처님이 돌에 새긴 조각품인데도 ‘살았다’고 하는 경우가 있고 또 교육을 할 때 훌륭한 스승이 사람을 감동시켜서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면 그분의 말씀은 ‘산 말씀’또는 ‘산교육’이라고 한다.
또 우리가 살아가면서도 ‘생존’하고 있는 것과 ‘생활’하고 있다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임을 알고 있다. 과학적 물질적인 현상으로써의 살아있는 생명을, 종교 철학적 의미로써의 생명으로 일컬을 때가 있다.
붓글씨를 쓸 때에 ‘붓 끝이 붓의 생명이다’라고 하면 붓끝이 기능면에서 붓글씨를 쓸 때 요긴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써의 ‘생명’을 뜻한다.
이와 같이 ‘생명’이라는 단어에는 과학적인 형상을 가리킬 때가 있고 영적 의미의 생명을 가리킬 때가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기독교는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냐를 이야기하고 넘어가야겠다.
기독교(기독교만이 아니지만)는 진리와 정의를 사랑으로 구현하는 것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고, 사랑(아가페)은 사랑 그 자체가 진리이며 정의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는 사랑의 실천으로 진리를 구현한 분이다. 또는 그가 하느님의 아들인 것을 입증해서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가르쳐 준 것은 자기를 믿고 영생을 구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진리요 빛이요 길이요 생명이다’라고 하셨다. 생명은 진리의 또 다른 이름인 것임을, 진리와 빛과 길과 생명이 같은 것임을, ‘나’라는 매개로써 하나인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면 영생이란 것도 시간개념을 초월한 사과 열매 (진리와 빛)같은 것으로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신앙에 들어가는 결단을 할 때에는 미래의 삶을 희망하고 믿으며 생활하는 것이다. 그러면 영생은 먼저 시간개념을 함축한다고 하겠는데 모순이 아니냐고 할 것이다. 그렇다. 여기에는 오묘한 모순이 있다. 그것은 왜일까? 우리 인생은 시간 속에 사는 역사적 존재이므로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속에 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활을 하는데 어찌 미래가 없으리요. 미래의 생활, 미래가 없는 사람은 희망이 없는 죽은 사람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오직 현생(現生) 뿐이리요, 또한 내세(來世)가 있다고 믿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므로 내세(來世)가 있다고 믿는 자는 미래가 있는 자이다. 우리의 삶이 이생뿐이라고 믿는 자는 너무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어제가 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목숨을 받은 우리인생은 우주의 무한 세계 속에서 반드시 내세가 있음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또 한편 미래는 현재를 살고 있는 내 속에 있다.
그러므로 내 믿음 안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아득한 하늘과 땅 사이에 이 몸은 두 번 다시 얻을 수 없다.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다. 그래서 나의 본체(identity)는 영원히 산다. 어디에서 어떻게 사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천국에서냐 지옥에서냐 영원한 행복이냐 영원한 형벌이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러나 영원한 시간을 생각할 때에는 천국에서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씀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4. 재림에 대하여
재림을 믿는 것은 이 세상의 종말을 전제로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또는 우주만물이 존재하고 그것이 생겨난 것을 미루어 생각하면, 우주만물이 존재하고 그것이 생겨난 것을 미루어 생각하면, 우주만물의 시작(start)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시작이 있으면 과정이 있고 과정이 있으면 끝(goal)이 있다. 물질에는 근본과 끝머리가 있고<물유본말(物有本末)> 일에는 시작(start)과 끝(goal)이 있다<사유종시(事有終始)>
태초가 있은 즉 종말이 있다. 그런데 종말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 사람은 질문하는 존재이다. 왜? 하느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는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모세도 여호와 하느님이 부르시니 성큼 응하지 아니하고 도대체 자꾸만 부르시는 당신은 뉘시냐고 질문한다. 하느님은 부르시는 이요 사람은 질문하는 존재이다.(출애굽 3장) 질문하는 것이 사람이다. ‘종말이 온 다음엔 어떻게 되느냐’고 물을 수밖에 없다. 왜?
우주만상은 돌아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느님께 돌아가고 떠나간 사람은 다시 와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주님은 다시 와야 하기 때문이다. 원수도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데 하물며 사랑하는 님이야! 이것을 일러서 불교에서는 인연(因緣)이라고 하였던가? 그리고 윤회설도 있지 아니한가? 동양철학에서는 태극으로 설명한 것이 아닌가? 종말 후에 ‘다시’란, 다시 와야 하는 당위(當爲)라기보다 다시 오는 것임으로써이다. 당위(當爲)는 존재(存在)에서 생기고 모든 존재는 의미 없이 존재하지 아니한다. 나의 존재도 존재할 필요가 있어서 있는 것이고 내가 존재하는 이상 나는 할 일(當爲)이 있다. 그 할 일이란 무엇인가? 이야기가 비약을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존재와 당위의 관계성은 또 왜 생기겠는가?
그것은 모든 존재는 관계적 존재로 태어났고 지어졌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인간도 관계적이다. 하느님은 부르시는 분이고 사람은 따라야 하며, 사람은 질문하는 자이고 하느님은 응답하시는 분이다. 오신 분인 주님은 가셨고 사랑하는 주님이 가신 후에는 다시 오셔야하고 다시 오신다. 언제 오시는가? 이 세상 종말에 오신다. 종말은 언제인가? 다시 시작할 때는 언제인가? 지금이 그때이다. 어디로 오시는가? 여기로 오신다. 지금 여기에서 기도하고 사랑하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어떤 과정을 밟아서 다시 오시는가?
1990년 전에 태어나신 님, A.D 4년 전에 돌아가신 님, 2000년에 다시 오시는가? 아니다. 님은 수시로 오신다. 아니다. 언제 오시는지 모르게 오신다. 아니다. 지금도 오신다. 홀연히 오신다. 발자국 소리 들린다. 그리하여 나를 구제할 오신다. 날로 달로 오신다. 새벽마다 오신다. 밤마다 오신다. 내 뒤를 따라 오신다. 내 앞을 인도 하신다. 말씀으로 오신다. 말씀은 생명이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느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의 빛이라.(요한 1장 1-3절)’ 그러므로 님은 빛으로 오신다. 님은 어떤 모양으로 오시는가? 하느님은 인격적 신이시다. 하느님은 역사적으로 오신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삭을 통하여 야곱을 통하여 역사를 지어가는 산 역사 속에서 산 인격을 통하여 말씀하시며 오신다. 하느님은 영(靈)으로 오신다. 산 인격을 통하여 말씀으로 영(靈)으로 오신다.
영(靈)은 시간을 초월한다. 그러므로 태초부터 오셨다. 또 시간 속에서 시시각각으로 오신다. 성령(聖靈)으로 산 사람, 현실적인 역사 속에서 산 인경을 통하여 오신다. 언제 어디에 누구에게 오시는가? 지금 여기에 나에게 오신다. 내게 지금 여기에 오셔서 내 죄를 씻어 주시고 나로 하여금 하느님의 아들이 되도록 영생을 주시려고 내안에 우리들 속에 오신다. 오! 하느님 어서 오십시오.
지혜가 말하며 명철이 소리를 높이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明哲)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그가 길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가로되 사람들아 내가 인자(人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여호화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전, 아득한 옛날,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기 전에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일어서기 전,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느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의 흙먼지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라.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창공으로 바다 수면 위를 두루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에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머물며 살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잠언 8장에서) ‘
사랑하는 님은 지혜이며 태초에 계셨으며 영원 전부터 계셨다. 오! 님이여! 지혜이시여! 어서 오십시오. 다시 오십시오. 아멘.
5. 천국에 대하여
나는 천국이 어떠한 곳이며 지옥이 어떠한 곳이냐를 말하지 않겠다. 천국에 대하여는 4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너무도 잘 설명해 주셨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하느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오느냐 하는데 대하여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대답해 주신 말씀으로 이글을 맺어야 하겠다.
‘하느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장 21절).’
하느님은 초월적인 존재라고도 하고 내재하신다고도 하고 전지전능하시다고도 한다. 또 무소부재(無所不在)하여 아니 계신 곳이 없다고도 한다. 그러므로 긴 말을 할 필요가 없겠다.
‘나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고 우리 속에 계시다’고 믿는 믿음이 신앙의 기초임에는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