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시작. "우리 2천만 동포가 담배를 석달만 끊고 그 대금을 매일 각 사람 앞에 20전씩만 수합하면 국채 1,300만원을 갚을 터인데.... 어찌 힘 안드는 담배 석달이야 못 끊을 자 있으며 설혹 못 끊더라도 1원에서 천백원까지 낼 사람이 많을지니 무엇을 근심하리요. 나부터 800원을 내겠노라." 1907년 2월 17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서상돈의 이 글은 국채보상운동을 온 나라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부녀자들은 가락지, 비녀까지 한납하면서 적극 가담하는 등 거국적으로 전개된 이 운동은 일본 통감부의 저지로 큰 결실을 맺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