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annes Brahms - String Sextet No.1 in B flat major, Op.18
브람스 - 현악 6중주 1번 B flat 장조 Op.18
Leipziger Streichquartett
Hartmut Rohde, viola
Michael Sanderling, cello
24곡이라는 많은 실내악곡을 남긴 브람스는 현악 6중주곡은 단 2곡을 남겼을 뿐이다.
그의 젊은 날의 자화상과도 같은 이 두 곡은, 평생을 통해 그에게 많은 영향을 준 두 여인,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과 아가테 폰 지볼트(Agathe von Siebold)와 깊은 관계가 있다.
브람스는 정서적으로 가장 기복이 심했던 1859년에
그의 현악으로는 첫 번째 실내악곡인 6중주 Bb장조를 썼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항상 함께했던 두 여인,
클라라와 아가테와의 드라마와 같았던 지난 날을 돌아보며
작곡한 현악 6중주 2번 G장조는 1864년에 쓰여졌다.
1856년 슈만의 죽음으로 클라라와 그의 가족의 후견인이 된 브람스는
클라라의 연주 여행 등을 동행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려 깊고 자기 성찰적인 성격의 브람스는
그토록 오래동안 사랑하고 갈망하던 클라라와의 결혼을 안하기로 분명하게 밝혔다.
슈만의 죽음으로 그들 사이의 모든 장벽이 사라졌지만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은 그상태로,
그리고 현실이 될 수 없는 환상으로만 남게 되었다.
클라라 역시 브람스를 그의 음악에 대한 존경심과 용서가 얽힌 가운데
그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이러한 감정의 심한 기복이 진정될 즈음인 1858년 여름에
브람스는 아가테 폰 지볼트를 소개 받았다.
아가테는 통상적인 미인은 아니었지만 풍만한 모습과 풍부한 유머 감각,
그리고 아름다운 소프라노 목소리를 소유한 성악가였다.
브람스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서 브람스의 전 생애에 걸쳐 큰 영향을 준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Joseph Joachim)은 브람스에게
'그녀의 머리 결을 쓰다듬으면 얼마나 즐겁겠느냐'하고 말할 정도로
아름답고 풍만한 머리 결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와 브람스와의 관계는 열정적이었지만 순수했다.
1858년 9월 중순의 어느 날, 클라라가 두 사람이 포옹하는 것을 보고
질투와 놀람으로 그 자리를 피하면서 '그는 사랑과 헌신이라는 단어와 함께 나를 떠났다.
그는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빠진게 분명하다.'라며 슬퍼했었다.
그러나 당시 브람스의 음악에 대한 평가는 브람스와 아가테의 관계에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1번 D단조가 요아힘의 지휘로 1859년 1월 27일 초연되었는데
이 곡이 싸늘한 반응을 받았다.
오랜 기간 정성을 들여 작곡한 이곡에 대한 나쁜 평가는
브람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브람스는 이미 3년전 클라라와 그녀의 자식들을 돌볼 부양자로서의
자신의 능력에 불안감을 가졌었던 경험이 있었는데,
후에 친구 George Henscel에게 토로한 것과 같이
그는 지금 당시와 비슷한 진퇴양난에 부딪히고 있었다.
"나는 당시 아가테와 결혼했어야 했지만,
내 음악은 콘서트 홀에서 야유를 받고 비난을 받았었다.
나는 내 곡이 비록 지금 야유를 받았지만 언젠가는 관객의 입장이 바뀔 수 있고,
또 나도 잘할 수 있기에 그런 비난은 잘 견딜 수 있지.
그러기에 그러한 실패 후 나의 혼자만의 방에 들어 갔을 때 나는 슬프지 않았지.
그러나 반대로..! 만약 이러한 순간에 아내가 걱정스럽고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본다면
나는 견딜 수 없었을 게 분명하네!
이것은 또 다른 실패라 할 수 있지. 한 예술가를 그렇게 사랑한 여인을 위하여.....
아직 그녀의 가슴 속에는 승리의 확신이 없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위안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성공의 가능성이 없는 남편을 동정하는 부인은....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네..!!"
브람스는 이러한 열정적인 욕망과는 다른 고통스러운 편지를 아가테에게 보낸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반드시 당신을 다시 만날 겁니다.
그러나 나는 결혼이란 구속을 받을 수 없군요.
내가 당신에게 돌아가야 하는지,
돌아가서 당신에게 키스하며 당신을 사랑합니다 해야 하는지 편지 주세요."
비록 그들의 많은 편지들이 이 두 주인공에 의해 불 태워졌지만,
아가테와 브람스에 관한 많은 것들이 그녀의 생애에 관해 쓴 글에 인용되었다.
그녀는 결과적으로 행복한 결혼을 했으나, 브람스와의 슬픈 기억은 오래 남았다.
당시 그녀는 약혼을 파기하는 편지에 그가 준 반지를 반환했으며,
이 후 두 사람은 다시 만난적이 없었으며, 두 사람의 관계는 이것으로 완전히 끝났다.
브람스가 현악 6중주 1번을 작곡한 것은 이 사건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비록 당시 브람스의 이러한 기분과는 달리 1860년대에 그는 많은 곡을 작곡하였지만,
현악 6중주 1번은 이러한 사건의 직접적인 반응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접적인 영향은 곳곳에 배어있는데,
아마도 클라라의 남편과 보호자로서
그가 존경하는 슈만의 자리를 차지하는 두려움으로 인한 클라라와의 결혼 거절,
'나는 아가테에게 마치 불한당처럼 했었다'는 그의 독백처럼
아가테에 대한 회한이 뒤섞여져 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첫 현악 실내악곡으로서 그가 가장 존경하는
베토벤의 모방을 시도한다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브람스는 그가 4중주보다 6중주를 작곡한 것은 베토벤의 위대한 현악 4중주곡에 가려
비교되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렇치만 6중주의 풍만하고 가득찬 울림은
브람스의 윤택한 직물같은 대위법의 운용에 더 맞는 것도 사실이다.
1악장 : Allegro ma non troppo B flat장조 3/4박자, 소나타 형식.
느긋하면서 친근감이 느껴지는 고전풍의 제1주제와
왈츠 풍의 제2주제가 부드러운 대비를 이룬다.
이 악장에서 나타나는 선율과 리듬,
그리고 느슨한 구성과 유연한 흐름은 다분히 슈베르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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