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모든 것을 바친 남자. 그의 부단한 노력은 선수들에게도 큰 자극이 된다.(사진 이휘영) >
<자신의 축구철학이 완성될 때까지 그라운드에 쏟아붓는 그의 열정은 계속된다.(사진제공=인천 유나이티드) >
축구철학가 인천 유나이티드 장외룡 감독
유럽 축구계의 최고 명장으로 떠오른 첼시의 조세 무링요 감독. 만 15세에 감독의 꿈을 품고 지도자 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감독이었던 아버지의 후광으로 선수 생활을 한다는 주위의 비판에 과감히 선수 생활을 포기했다. 그의 집에는 트레이드 마크인 수많은 메모장 외에도 어린 시절부터 작성한 축구 노트가 한 가득 쌓여 있다고 한다.
한국에도 비슷한 피가 흐르는 감독이 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무링요 보다는 성격이 다소 온순하다고 할까. 그 또한 고등학교 1학년 때인 만 15세에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30년 넘게 축구일지를 쓰고 있으며 오랫동안 기록해 온 낡은 노트들로 집은 가득 차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장외룡 감독에 관한 이야기다.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인천 구단 감독실을 찾았다. 감독실의 왼편에 자리한 화이트 보드엔 자신의 축구철학이 담긴 영어 단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책상 위엔 K리그 상대팀들의 경기장면이 담긴 6mm 테이프와 노트북, 그리고 쓰다 만 수많은 메모장들이 가득했다. 확실히 그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마치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처럼.
축구철학에 큰 영향을 ** 일본 생활 부산 대우에서의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아주대에서 코치로 활동하던 장외룡 감독은 본격적인 지도자 수업을 위해 1989년 일본행을 선택한다. 그가 처음 일하게 된 곳은 PJM 퓨처스라는 미국계 회사였다. 거기서 그는 브레인스토밍 등의 방법을 통해 상대방과 체계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한 것은 JFL(일본 실업리그) 소속이었던 사간 도스에 들어간 이후부터다. 그 곳에서 처음 맡았던 직책은 유소년 총괄 감독. 유소년들이 축구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그는 자식들의 교육 문제로 잠시 귀국해 부산 대우의 감독대행을 수행하지만 수원과의 챔피언 결정전에서 그 유명한 ‘샤샤 핸드볼 골’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어지는 J리그의 감독 생활. 2000년 베르디 가와사키에서의 감독 생활을 시작으로 3년간의 콘사도레 삿포르 감독직을 거쳐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 창단 멤버로 한국에 귀국했다. 그는 8년여 간의 일본 생활이 현재의 자신을 낳았고 그 과정에서 뛰어난 명 지도자 출신들과 함께 생활하는 큰 행운을 누렸다고 했다.
“유소년 총괄 감독 시절 1986년 아르헨티나대표팀 수석코치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그 다음엔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유고대표팀 수석코치를 맡았던 차브리네스, 그리고 브라질대표팀 수석코치였던 카를로스까지 유럽과 남미의 명 지도자들로부터 축구철학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이 시기가 진정으로 나의 축구철학을 완성할 수 있었던 중요한 시기였다.”
부지런한 감독 장감독이 일본에서 따낸 S급 최고 지도자 자격증은 외국인 중에서는 단 2명만이 취득에 성공했을 뿐이다. 다른 1명은 독일 대표팀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리트바르스키. 장감독은 일본어로 직접 시험을 치렀기 때문에 독일어로 시험을 본 리트바르스키보다 자신의 성과가 더 값지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의 책상에는 두 가지 과제가 흩어져 있었다. 왼쪽에는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듯한 자료들이, 나머지 한쪽에는 K리그 상대팀들을 분석한 6mm 테이프와 카메라가 있었다. 그의 학구열은 고시생 못지 않다. 현재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축구 생리학을 수강하고 있고, 논문 발표를 준비 중이다.
장감독은 “피로회복을 위해 많은 드링크들이 출시돼 있는데, 그 중 매실 추출물이 피로회복에 좋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논문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의 폭넓은 관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 하나의 과제물은 노트북에 갈무리돼 있는 제주 유나이티드의 경기들이었다. 주말에 상대해야 하는 팀에 대한 철저한 전력 분석이었다. 9월 16일 경기에서 인천은 FC 서울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장감독은 “FC 서울에 대해 많은 분석을 했다. 특히 박주영 등 서울의 공격수들에게 골을 허용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 내기 위해 노력했다. 핵심은 간단했다. 히칼도의 발끝을 봉쇄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전술을 연습해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복해서 비디오 분석을 했지만 원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상하게 대구와 만나면 게임이 잘 안 풀린다. 아마 다음에는 이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축구라는 스포츠가 아무리 감독의 역할이 중요하더라도 정작 경기는 선수들의 발끝에서 좌우된다. 시즌 초반 주축 선수들이 이적 등으로 빠져 나갔고 간판 공격수인 라돈치치도 이적 문제 등이 겹치면서 동계훈련을 함께 소화하지 못했다. 주전들이 제대로 호흡을 맞춰보지 못한 것이 전기리그와 컵대회 부진으로 이어진 것 같다”며 전반기의 부진을 아쉬워했다.
장감독은 이정수의 수원 이적에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도 포백을 쓰고 싶었는데, 정수의 부재가 치명적이었다. 일단 포백의 중앙 수비수는 헤딩과 피딩 능력, 그리고 스피드를 두루 갖춰야 한다. 물론 임중용도 있지만 그는 좋은 리딩능력에 비해 스피드가 다소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 포백을 쓰기에는 불안한 요소가 있다.”
인천 선수들이 말하는 장외룡 장감독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지난 시즌 초반 개막과 함께 2연승을 기록하자 언론들의 관심이 인천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광주와의 3차전. 선수들이 이전과 달리 개인플레이가 늘면서 전반전 종료 후에는 라커룸에서 서로 말다툼을 벌이는 광경까지 연출됐다. 이때 장감독은 갑자기 선수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모두 내 잘못이라며 선수들에게 사과했다.
인천의 창단멤버인 베테랑 전재호는 “정말 기분이 묘했다. 감독의 그런 행동을 지금껏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할 정도로 감독님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 선수들의 단합력과 조직력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밝혔다.
장감독은 그때 상황에 대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고민을 했다. 선수들은 이런 상황에선 감독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뻔히 예상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분명히 화내며 큰소리 치고, 심지어는 매를 가하는 감독도 보았을 것이다. 그것이 여태껏 우리 선수들이 배운 상식이다. 그러나 난 거꾸로 하고 싶었다. 그런 방법이 오히려 선수들에게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평상시 거의 화를 내지 않고 자율을 중시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그의 지도자 철학은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한국의 학원 축구문화와 세계 많은 지도자들과의 생활에서 깨달은 축구철학 사이에서 형성된 값진 부산물이었다.
스코틀랜드 레인저스와 스페인의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활약한 바 있는 인천의 세르비아 대표선수 드라간은 “K리그에서 활약했던 친구들로부터 한국은 훈련량이 많고, 하루에 2시간씩 러닝을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장감독은 내가 들었던 스타일이 아니었다. 훈련 방식도 유럽 감독들과 거의 유사하고, 스타일도 완전 유럽식 감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의 미드필더 김치우는 “강압적인 한국 지도자와는 다른 감독이다. 자율 속에 보이지 않는 엄한 규칙이 숨어 있다. 자기가 알아서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프로의식을 갖도록 많은 이야기를 하는 스타일이다”라고 장감독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전재호는 “너무 자율적인 것도 한국선수들에게는 약간 문제가 될 수 있다. 내가 감독이라면 절대 저렇게 못할 것 같다. 한번 분위기를 잡아야 할 때는 액션도 필요한 것 아니냐”며 장감독의 단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SPORTS2.0 제 18호(발행일 9월 25일) 기사
장지현 기자 |
첫댓글 무릎꿀은 감독님... 멋지네요..ㅎㅎ
모든 운동종목을 통틀어서 한국의 감독님들 중에 장외룡감독님같으신 분이 과연 몇분이나 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