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24.04.04 00:29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서양에서도 풍수지리학(Geomancy)은 플라톤<사진> 이후에 중요한 인문지리학으로 이어오고 있다. 그의 이론은 『법률학』(The Laws, Book 5)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의 궁극적 관심은 도성(都城) 건설이다. 도성은 접근이 편리하도록 국토의 중앙에 위치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신라의 경주와 백제의 한성, 그리고 워싱턴과 모스크바는 입지가 잘못됐다.
플라톤이 첫 번째로 강조한 것은 물이다. 도성 안으로 물이 흐르든가, 물을 끼고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삶은 결국 물이다. 그것이 식수든, 운송이든, 기후든, 방어진(防禦陣)이든 인간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서울·평양·부여·파리가 매우 이상적 도성이다.
통일 이후의 도읍지로 거론되는 경기도 파주도 길지(吉地)다. 플라톤이 두 번째로 강조한 도읍 입지는 바람이다. 그 시대에 이미 공기 오염을 생각하기야 했을까마는 현대 도시에서도 통풍은 산업혁명 이후 최대 관심사다. 플라톤의 도읍 입지 이론에 가장 배치되는 도시가 분지로 이뤄진 대구와 베이징이다. 베이징 시민의 평균 수명이 다른 지역에 견주어 낮다는 것은 이제 공론이 됐다.
세 번째로 플라톤은 지열(地熱)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아마도 남향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면 도읍은 산도 들도 아닌, 비산비야(非山非野)가 좋다. 이런 조건을 갖췄을 때 인구는 5040명이 가장 이상적이라는데, 현대 사회과학은 아직도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있다. 아마 노자가 도덕경(道德經)에서 말한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규모’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지금 한국에는 ‘메가시티’라는 유령이 전국을 떠돌고 있다. 나름의 이론이 있겠지만, 김포를 회랑으로 연결해 서울에 합치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 표만 얻을 수 있다면 마구 내지르는 정책이 나라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건국대 졸업(정치학박사),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교수, 건국대 대학원장을 역임. 건국대학교 석좌교수로 퇴직, 『한국분단사 연구:1943∼1953』(2001, 한국정치학회 저술상 수상), 『한국정치사상사』(2011, 한국정치학회 윤천주상 수상), 『해방정국의 풍경』(2017), 『전봉준평전』(2019), 『잘못배운한국사』(2022),『군주론』(1980),『삼국지』(2021), 『플루타르코스영웅전』(2021), 『신구약성경』(2023)이있다.>
《내나무》는
"나와 숙명을 같이하고 죽을 때도 더불어 묻힐 나무."
손옥철
손옥철 새 셰이핑사진.png
존경하는 방장님,
안녕하십니까?
나무 이야기 마지막 회 보내드립니다.
작년 4월 11일에 1회를 보내드렸으니,
만 1년 52주 동안 매주 한 편씩 보낸 셈입니다.
그동안 제 부족한 글을 글방에 올려주신 방장님과 참을성 있게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저도 글을 쓰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다시 한번 글방을 운영하시는 방장님께 존경을 표하며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손옥철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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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이야기 52: 《내나무》
전원생활, 번잡한 서울을 떠나 산이나 강 근처에 집을 짓고 사는 일,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 은퇴하면 꼭 하고 싶었던 일이다. 그러나 은퇴한 지 어언 십 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아파트의 편리함을 떠나지 못하고 전원생활을 시작해보지도 못했다. 우선 주변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전원생활을 실천한 많은 사람이 처음 얼마 동안은 만족감을 즐기다가 이내 그 불편함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는 말을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 가까이 살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지금 있는 친구들과도 만나는 기회가 줄어들 텐데 이제 새삼스럽게 사람을 사귀는 일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나 개인적으로 말하면 무엇보다도 농사를 짓거나 최소한 정원을 가꾸는 일에 자신이 없다. 그런 일에 취미와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다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어릴 적에 어쩌다 농사일을 거들면 시원찮은 몸짓에 금방 퇴짜를 맞곤 했다. 막내라서 그렇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솜씨가 없어 가족에게서 믿음을 받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이점은 아내도 비슷해서 열 평짜리 주말농장 밭뙈기도 두 사람에게 버거웠던 경험이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나와 함께 전원생활의 낭만을 꿈꾸는 아내가 뱀, 쥐, 벌레까지도 무서워 벌벌 떠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도둑에 대한 걱정도 태산이니, 성이라도 쌓아 귀족처럼 살지 않는다면 어떻게 전원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주변에서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전원생활을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존경심까지 든다. 티브이에서 하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알 것 같다. 나처럼 전원생활을 원하고 있으나 실천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대리만족하는 것 아니겠는가? 결국, 꿈을 실행할 용기가 없는 사람은 아파트에 살면서 자주 산에 오르고 숲을 걷는 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전원생활만큼은 아니겠지만, 늙어가는 몸을 단련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즐거움이 있다. 다행히 요즈음에는 가는 곳마다 둘레길, 자락길, 옛길 등 정겨운 이름이 붙은 산책길이 많아 두어 시간 호젓한 산길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웬만한 산에는 휴양림이 있어 가끔은 하룻밤 숲속에서 자고 오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나무와 가까워졌다. 나무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어도 그냥 나무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다. 무심코 지나치던 나무가 인간에게 주는 혜택이 그렇게나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무는 공기를 맑게 하고, 홍수를 막아주고, 쉼터를 마련하고, 각종 삶의 보금자리가 된다. 꿀과 먹이와 과일을 주고, 각종 가구가 되고, 악기가 되고, 종이가 되고, 요람이 되고, 관이 되고, 숯이 되고, 거름이 된다. 어디 그뿐인가. 나무는 아름다운 꽃을 피워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꿈을 주고, 안식을 주고, 지혜를 준다. 수많은 사람이 나무와 교감하며 나무로부터 삶의 참 의미를 찾아낸다. 일찍부터 나무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나무가 이처럼 아낌없이 베푸는 것에 감사하며 나무를 소재로 노래하고 시를 지어 찬양해 왔다. 우리는 그 시를 읽으며 다시 나무의 의미, 삶의 의미를 반추한다.
다음은 조병화의 시 「나무의 철학」이다. 온갖 시련에도 나무는 뿌리로 버티면서 의연하게 살아간다. 때로는 비바람에 부러지고 때로는 쌓인 눈을 온몸으로 지탱하면서도 높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 쉼 없이 자란다. 사람 사는 일도 시련의 연속이 아닌가? 시인은 사람도 나무의 철학을 배워 나무처럼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살아가노라면
가슴 아픈 일 한두 가지겠는가
깊은 곳에 뿌리를 감추고
흔들리지 않는 자기를 사는 나무처럼
그걸 사는 거다.
봄, 여름, 가을, 긴 겨울을
높은 곳으로
보다 높은 곳으로
쉼없이, 한결같이
사노라면
가슴 상하는 일 한두 가지겠는가
다음은 시인 박목월의 시 「나무」다. 여행 중인 시인은 유성-조치원-공주-온양-서울로 이어지는 공간의 이동에 따라서 수도승, 과객, 파수병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묵중하고, 춥고 외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다.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는 외부의 모습으로만 보았던 나무가 자신의 내부에 자라고 있음을 깨닫는다. ‘나무’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발견한 것이다.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시인이 자신과 나무가 공유하는 그것, 바로 삶의 본질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다.
다음 날은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귀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 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와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다음은 시인 정지용의 시 「나무」다. 시인은 나무를 통하여 신의 섭리를 읽고 그 안에 있는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확인한다. 시인 자신의 몸을 나무와 동일시함으로써 자신도 나무처럼 바르고 정직하고 욕되지 않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다. 자신의 작은 존재를 기독교에 귀의하는 후반부의 표현에는 고난을 인내하며 존재의 유한성을 묵묵히 받아들여 무한한 존재와의 만남을 이루려는 시인의 소망이 담겨있는 듯하다.
얼굴이 바로 푸른 하늘을 우러렀기에
발이 항시 검은 흙을 향하기 욕되지 않도다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반듯이 위로!
어느 모양으로 심기어졌더뇨? 이상스런 나무 나의 몸이여!
오오 알맞은 위치! 좋은 위아래
아담의 슬픈 유산도 그대로 받았노라
나의 적은 연륜으로 이스라엘의 이천 년을 헤였노라
나의 존재는 우주의 한낱 초조한 오점이었도다
목마른 사슴이 샘을 찾아 입을 잠그듯이
이제 그리스도의 못 박히신 발의 성혈에 이마를 적시며....
오오! 신약(新約)의 태양을 한아름 안다
다음은 전라도 민요시 ‘나무 타령’이다. 각종 나무 이름에 운율을 붙여 재미있게 노래함으로써 한국인의 인간적인 수목관(樹木觀)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민요를 인용한 이규태(1933~2006)의 글 '내나무'가 한때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이 노래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청명 한식에 나무 심으러 가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거짓 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 편 내 편 양편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양반 골에 상나무,
너하고 나하고 살구나무
이 나무 저 나무 내 밭두렁에 내나무
이규태는 이 노래에서 말한 ‘내나무’가 식물도감에도 없는 나무로, 사실은 우리 조상들이 딸을 낳고 심었던 오동나무나, 아들을 낳았을 때 심는 소나무, 잣나무라고 설명했다. 오동나무는 딸이 시집갈 때 농짝이나 반닫이가 되고 소나무, 잣나무는 아들이 죽었을 때 관을 짜는 데 쓰라고 심는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내나무는 나의 탄생과 더불어 나와 숙명을 같이하고 죽을 때는 더불어 묻히는 나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글을 통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자연과 밀접한 동반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지금도 전원생활에 대한 아쉬움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자연과 밀접한 동반 관계를 맺고 싶기 때문이다. 나무의 철학을 배워 나무처럼 살며 나와 숙명을 함께 할 내 나무를 갖고 싶기 때문이다. 나무가 내 안에 자리 잡아, 발은 항상 검은 흙을 향하고 얼굴은 푸른 하늘을 우러르는 그런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자연에 들어가 농사를 짓거나 나무를 가꾸며 살지는 못하더래도, 조금이라도 더 자연과 가까이하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쭉 나무의 친구가 되고 싶다.
<현대중공업 입사, 현대엔지니어링 부사장 역임/남성고~ 서울대 공대 기계과(65학번)졸, 방송통신대학
영문학과 졸/정읍産>
이번 선거로 세상은 정말 뒤집어 질까요?
임종건
임종건.png
승웅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