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향수가 많이 남아 있는 홍천에는 생각만큼 단번에 떠오르는 여행지는 솔직히 많지 않다.
하지만 인위적인 여행지보다는 홍천에는 아름답고 맑은 자연을 맛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삼봉휴양림과 약수, 홍천강변의 팔봉산과 유원지, 칡소폭포와 용소폭포, 살둔마을 등.
예전에 홍천에 가려면 빙빙 에둘러 멀게 느껴졌지만 양평을 잇는 6번국도와 경춘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한시간 여면 닿을만큼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한결 가까워졌다.
개인적으로 홍천 하면 역시 드라이브와 홍천강의 낚시, 캠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친구와 함께 홍천강 밤벌부터 강을 따라 가다가 인적없는 남노일리의 합강 근처에서 물속에 의자를 놓고 낚시하던 일,
어스름한 저녁 길을 잘못들어 으시시히고 좁은 산길을 정상까지 헤매던 흉가의 기억.
수타사에서 눈에 파묻혀 하룻밤 스님에게 신세지면서 산사주로 선문답을 나누던 시간.
홍천에는 유명한 먹거리로 양지말화로구이가 있다.
물론 강원도에 가면 흔히 만날 수 있는 닭갈비와 막국수도 있고 홍천 한우를 내는 식당들도 꽤 된다.
홍천 지역에서 제일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남은 식당은 남노일리 강변의 돼지낭심두루치기,
살둔 지역의 다섯가지 약초로 만든 오초막걸리, 굴지리의 산채갈비전골이었다.
하지만 홍천 시내에서 여장을 풀 생각이었기에 어디가 좋을까 하고 시내를 두바퀴 정도 두리번 거리며 돌았다.
그리 넓지 않은 홍천 시내지만 골목을 휘감고 다니다보니 한시간 여가 금방 흐른다. 배는 점점 고파온다.
지나 가는 홍천 주민들에게 맛있고 괜찮은 식당들이 어디냐 물으니 선뜻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뭐, 닭갈비나 갈비집, 곱창 등을 추천해준다. 다 먹는게 거기서 거기지 암대나 괜찮어요..
닭갈비는 궁중닭갈비, 태화닭갈비, 곱창은 달구지막창과 만석양곱창, 회는 경포대횟집이 괜찮다는 평을 해준다.
역시 택시기사분이 제일 많이 알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좀 조용하고 저렴한 곳을 원했기에 생각과 맞지 않아,
힘없이 홍천 시내를 돌다가 발견한 곳이 바로 동양호텔 1층 옛 청해일식집이던 새벽시장횟집.
염소탕뚝배기집에 들어가서 염소탕 한그릇을 먹으려고 했는데, 밖에서 보는것과 달리 평일인데도 손님들로 만원이라,
기다리기 뭣해 내일 가기로 하고 일단 후퇴했다. 이 집은 영업한 지 5년정도 됐다는 횟집인데,
원래 일식집으로 운영하다가 두해전 저렴하고 잘 나오는 횟집을 모티브로 지금의 새벽시장을 열었다고 한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곁음식과 푸짐한 회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홍천에선 제법 이름이 있다고 한다.
홍천의 중심가에서 살짝 벗어난 조용한 골목길에 있는 새벽시장횟집으로 들어가는 길.
쌀쌀하고 바람부는 날이라 그런지 시내에 그리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옛 청해일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일식집의 분위기가 흐른다.
홍천최저가격으로 모시지만 분위기와 맛은 고급 일식집 수준으로 모신다는 프랭카드가 걸려 있다.
사실 맨처음 이 집 앞에서 기웃거리다가 다시 시내를 돌다가 결국 이곳으로 들어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가족이나 친구끼리 한 잔 할 수 있는 작은 방이 있다.
건너편에는 모임이나 회식, 많은 인원이 식사를 할 수 있는 넓은 방도 있다.
이날 작은 룸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방마다 술과 회를 즐기는 사람들이 꽤 들어있는 듯했다.
회식을 하는 군인, 친목회 하는 동네 주민,
그냥 술 한잔 즐기는 사람 등 소소한 민초들의 삶이 묻어나는 술자리가 있다.
일단 벽에 걸려있는 메뉴판을 보니, 분위기와 달리 가격대는 비교적 저렴하다.
사장님이 직접 주방장도 겸하고
전용 수조차가 있어 저렴하게 음식들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사장님께 이것 저것 물어보니, 어찌 처음 오셨데요 하고 물어본다.
요 동네가 아니라서요.. 가깝다면 자주 오고 싶구먼요~
일단 만만한 모듬회 소자를 주문하고 테이블에서 기다린다.
과연 모듬회가 어떻게 나올지 살짝 궁금해한다.
맘씨 좋아 보이는 아줌니가 빠른 속도로 찬들을 테이블에 바람처럼 올려 놓는다.
혼자 이방 저방을 담당하느라 손길 발길이 무척이나 바쁘게 보인다.
원래 두분이 홀을 담당했는데, 오늘은 혼자서 하고 있단다.
이슬이 한 잔을 먼저 주문하고 나니 곁들이 음식들이 차려진다.
다슬기, 꼬막, 새우, 생선까스, 과메기 등이 나와 이슬이를 홀짝 홀짝.
냄비에 콩나물을 넣고 삼삼하고 칼칼하게 끓여주고 따듯한 홍합국물도 나온다.
쌀쌀한 저녁에 차가워진 손과 몸이 뜨끈한 국물에 사르르 녹는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다시마, 양파와 함께 먹는 과메기는 카라멜처럼 쫀득하고 고소했다.
김과 미나리까지 올랐다면 완벽한 조화로움이 있겠지만 그런걸 따질 겨를이 없다.
겨울별미인 과메기 언제 한번 제대로 먹어야하는데.
메뉴판에도 과메기가 있어 주문할까 했지만 안하길 잘했다.
다른것 먹기도 힘들었으니깐. 과메기나 소라까지 주문했다면 다 먹지 못했을것 같다.
광어와 방어살을 발라 튀겨 준 생선까스.
처음엔 돈까스인줄 알았드만 먹어보니 잘 튀긴 생선살의 맛이 나는 생선까스.
이건 한번 더 달라고 해서 맛을 진하게 봤다.
홍합국과 콩나물국을 잘 끓여준 후 작은 그릇에 담아 내 이제 본격적으로 홍천의 밤을 달려준다.
먹다 보면 하나 하나 접시들이 시간을 두고 들어와준다.
삶은 낙지로 만든 낙지초무침.
매콤하고 부드러운 낙지와 야채가 초장과 만나 입을 즐겁게 해준다.
이슬이는 새벽에 있어야 하는데, 밤이슬은 눈도 풀리게 하고 기분도 업되게 만든다.
밤이슬이 목을 타고 아래로 술술 들어간다.
커다란 접시에 담겨 온 모듬회 소자. 일단 접시가 큼지막하고 무거웠다.
비주얼로 봐서는 점심에 수원 어느 횟집에서 먹은 대자와 맞먹는다.
수원 그 횟집은 다신 얼씬도 안할 것 같다.
광어와 방어회가 접시에 가지런히 빛나는 살을 자랑하며 겹겹이 쌓여 있다.
그리 두툼하지도 얇지도 않지만 칼맛이 잘 스며들었는지 참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이 좋았다.
근래에 먹어 본 회 가운데서 제일 입안에서 노는 느낌이 젤 괜찮았다.
3만원의 모듬회에 참 이것 저것 먹을만한 음식들이 잘 나와준다.
뭐, 받는 손님 입장에서야 잘 나오면 좋은것이고.
결국 둘이서 모든 음식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긴 했지만.
음식맛을 잘 모르기에 그냥 푸짐하고 먹을만한게 많으면 일단 좋아라한다.
방어를 몇 번 먹긴했지만 방어 뱃살은 역시나 고소하다.
역시 괴기보다는 회나 해산물이 속에서도 잘 받고 술 한잔 하기에 좋은듯싶다.
횟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꽁치구이.
평소에는 미리 튀겨 놓아 딱딱하고 굳어버려 별로 손이 가지 않는 꽁치였는데,
늘씬하고 고소했던 이집 꽁치는 일품이었다.
살이 팍팍하지 않고 고등어를 먹는 것처럼 부드럽고 윤기가 좔좔 흘렀다.
학꽁치회는 가끔 보는데, 왜 꽁치회는 없나 모르겠다.
아마 성질머리가 급해서 회로 먹기에 힘들어 바로 잡자마자 급사해버리기에 그런것 같다.
이슬이 두병을 비울때까지 쌩쌩하게 한여름 뙤약볕에서 몸을 비비꼬는 지렁이처럼
산낙지는 쌩쌩하게 움직였다.
자꾸 움직이는 통에 사진찍기가 좀 힘들다. 사진에 찍히는걸 아는지 자꾸 밖을 향해 몸을 피하시고.
하지만 그런다고 어디 젓가락질을 피할 수 있으랴. 젓가락을 대자마자 바로 달라붙지만 결국 입으로 쏙.
겨울밤 이슬이와 함께 즐기는 회 한상의 즐거운 술 친구들은 점점 줄어든다.
그만큼 배는 점점 불러오고 머리속은 점점 몽롱해져 간다.
술에 취하고 맛에 취하고 홍천의 겨울밤에 떠오른 달님에게 반하고. 초장도 회와 먹기에 괜찮지만,
홍천 동면의 깊숙한 마을에서 담은 집된장에 고추와 마늘을 섞어 만든 양념장과 함께 먹는 회의 맛이 좋았다.
된장의 향이 은은하게 나면서도 매운듯 개운한 맛의 고향표 집된장은 회의 맛을 한층 살려준다.
모듬회에 따로 매운탕은 나오지 않는가보다. 뭐, 이 정도까지 먹었을 때 이미 매운탕 생각은 사라졌지만.
모듬회가 아닌 일반 단품회를 주문하면 함께 매운탕이 나오는것 같았다.
물론 매운탕을 따로 주문하면 나오겠지.마지막 심심풀이로 입에 힘을 주어 싹 빨아들여
쏙 빼먹는 재미가 있는 다슬기로 남은 이슬이를 마무리하고 홍천의 밤을 따라 나선다
이런 횟집이 가까운 동네에 있다면 자주 방문할텐데, 먼것이 아쉽기만 하다.
사장님이 자주 오세요라고 인사를 한다.'좀 멀어요라고 했더니 다음에 홍천 오거나
지나갈 때 점심 회정식도 있어요' 라고 허허 웃으며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