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나만의 장점과 남다른 개성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요즘은 재능과 장점을 스스로 표현하고 보여줄 때 오히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 즐거움과 만족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시니어들에게는 그러는 게 자신감으로 이어져서 삶의 활력소가 된다.
한때 이런 유행어가 있었다. ‘피할 건 피하고, 일릴 건 알려라’. ‘홍보’를 영어 약자로 피알(PR)이라고 하는데, 이를 즐겁게 해석한 말이다. 요즘은 국가와 기업은 물론이고, 개인도 자기 자신을 홍보할 때 만족과 자신감이 높아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시니어들을 보면, 남 앞에서 나를 자신있게 보여주는 것에 좀 약한 편이다. 자기 자신이나 가족들을 자랑하면 소위 ‘팔불출’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과거 우리의 보수적인 문화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감추기보다는 자신 있게 드러내고 알려야만, 경쟁력도 생기고 즐거움도 더 커지는 시대다.
부산에는 ‘부산 남포동 꽃할배’로 불리면서, 시니어 패셔니스타로 널리 알려진 주인공이 있다. 올해 65세의 양복재단사, ‘마스터테일러’ 여용기 씨다. 2년 전부터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시니어는 물론이고, 젊은층에게 아주 잘 알려진, 멋쟁이 노신사다. 그는 모델 못지않게 유명한 패션 디렉터인 ‘닉 우스터’처럼 옷을 잘 입는다고 해서 ‘한국의 닉 우스터’라고 불릴 정도다.
인터넷에 부산 꽃할배, 여용기, 마스터 테일러, 이런 검색어만 치면 그와 관련된 블로그, 카페, 언론기사가 셀 수 없이 많이 나타난다. 모델만큼이나 양복이 정말 잘 어울리는데다 과감한 컬러의 선택과 다양한 소재가 그야말로 시선을 빼앗는다. 특히 운동화의 일종인 스니커즈를 양복차림에 조화시키는 등 젊은이들의 패션 아이템을 아주 잘 소화한다. 또 일명 ‘백바지’로 불리는 흰팬츠, 청바지, 반바지도 그가 입으면 아주 멋스러운 옷이 된다. 그의 패션 감각을 더욱 살려주는 것은 이분의 깔끔한 백발의 헤어스타일과 흰 수염이다. 정말 누가 봐도 “와 멋지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다.
젊은이들에게도 인기가 좋은 패션 감각이 남다른 여용기 씨, 그는 부산 남구 남포동에 있는 남성 패션숍 ‘에르디토’에서 마스터테일러, 재봉사로 일한다. 이 양복점은 요즘 부산 일대의 패션에 관심 있는 남성들이 특히 주목하는 곳으로, 맞춤양복 전문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여용기 씨는 3년 전 예전의 직업으로 다시 돌아왔다. 과거 재단사로서의 직업적 재능을, 인생 2막이 시작되는 시기에 다시 부활시킨 그런 경우다.
본래 거제도가 고향인 그는 열일곱 살 때, 그러니까 1969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부산으로 왔다. 하지만 자립으로 고교에 진학하기 어려웠고, 마침 친척 누님의 소개로 양복점에 취직을 했다. 이때부터 재봉, 재단, 패턴, 이런 기능을 다 배워서 5년만에 재단사가 됐고, 스물아홉 살 때는 남포동에서 양복점을 직접 운영했다. 80년대 들어 맞춤보다는 기성복이 패션시장을 주도하면서, 양복점 운영이 어려워지자 마흔 살 즈음, 23년 간 쌓여진 노하우를 뒤로 하고 일을 접었다. 그 후로 식당도 운영해 보고, 건축현장에 나가 막일도 했다. 그런데 3년 전인 61세 때 우연한 계기로, 다시 자신의 전문노하우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우연히 국제시장에 들렀다가 패션회사에서 재단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재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게 된 것도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여씨는 본래 옷을 감각있게 잘 입는데다, 외모도 중후함이 드러나는 시니어스타일이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사진을 찍어서 블로그에 올리라고 권유도 하고, 컴퓨터 활용방법에 도움을 줬다고 한다. 자신 또한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스터테일러 인생인 만큼, 자신있게 일하면서 얻는 만족감을 패션사진으로 표현하기 위해 SNS 활동에서도 젊은층들의 분위기나 감각에 잘 맞춰나가는 스타일이다. 여용기 씨는 말한다.
“젊은이들과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의 전문 분야 철학도 중요하겠지만, 예전의 내 방식만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변화하는 시대흐름에 맞춰 젊은이들의 의견이나 트렌드를 적극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해오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직원들이 제안할 때, 그것을 수용하고 실행으로 옮긴다고 한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정석이 아닌 일이라고 여겼지만, 해보니까 좋은 결과가 나타나서, 역시 자기 고집만 피우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단다. 그는 마스터테일러이기에 맞춤슈트 고객들을 주로 만나게 되는데, 의외로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들과 이삼십대 젊은층이란다. 그러다 보니 젊은층과의 대화는 물론이고, 자신의 패션까지 젊은 분위기에 잘 맞추어가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직업에 맞게 SNS를 통해 홍보할 줄도 알고, 젊은 직원과 젊은 고객들과도 소통도 잘 하고 있는 양복재단사, 마스터테일러 여용기 씨는 그야말로 정말 멋진 시니어다. 게다가 과거 자신이 갖고 있던 경력과 재능를 되살려 61세에 재도전한 것도 많은 시니어들의 귀감이 될 것 같다. < ‘살아있는 동안에 한 번은 꼭 해야 할 것들(박창수, 새론북스, 2017.)’에서 옮겨 적음. (2019.0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