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선교의 중요한 키워드는 첫째는 ‘다음세대’, 둘째는 ‘평화’ 셋째는 ‘생태’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선교의 중요한 키워드뿐만 아니라 시대적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첫째 키워드인 다음세대를 생각해보자합니다.
우리나라는 출산율 0.81%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출산율입니다. 한 국가가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2.1명은 돼야 하는데 우리는 0,81%입니다. 이 말은 여성 한명이 평생 동안 자녀를 한 명도 안 낳거나 출산을 하더라도 그 비율은 1명 미만이라는 뜻입니다. 2022년 약 5,160만 명인 한국의 인구는 45년 후 2067년이 되면 3,927만 명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출산율 못지않게 가파르게 떨어지는 것은 기독교 호감도입니다. 2022년 3월 31일 국민일보와 코디연구소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비 기독교인이 기독교를 신뢰하는 비율은 불과 8.8% 밖에 되지 않습니다. 천주교는 65.4%, 불교는 66.3%입니다. 사실 이정도면 한국교회는 곧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고객의 91%가 한 회사의 상품을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불량상품이라고 하면 그 회사는 곧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한 예수교 천일염” 회사가 소금 제품을 팔고 있는데 고객의 91%가 사먹고 난 후 소금에서 짠 맛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대한 예수교 LED” 회사가 전등을 팔고 있은데 전등을 구입한 고객이 집에 전등을 설치했는데도 불구하고 전등이 어두워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소금회사와 LED회사는 거의 회생 불가능 수준이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어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고 합니다. 등불을 켜서 그릇에 덮어 둘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등잔대 위에 올려놓아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게 해라고 합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고 합니다. 오 맙소사. 그런데 우리는 불량품 LED가 되어 아무리 높은데 올려놓아도 어둠이 그대로입니다. 전혀 앞을 볼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소금을 넣어도 간이 되지 않으면 그 소금은 아무 쓸모없어 사람에게 밟힐 뿐입니다.
최근 갤럽 조사에서 한국 개신교 인구를 15% 정도 예상을 하지만 실제 기독교 인구는 여기에 훨씬 못 미칠 것으로 추측을 합니다. 특히 대학생 기독교 인구는 4% 정도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미전도 종족에 해당되는 기독교 비율입니다. 기독교 호감도를 볼 때 당연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걱정되는 것은 다름 아닌 다음세대입니다. 출산율 최하위인 0,81%로 인구절벽 앞에 다음세대 기독교는 한국사회에 존재가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어야 할 기독교가 세상의 애물단지와 걱정거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희망은 다음세대입니다. 다음세대에 관심을 가지고 교육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다음세대를 생각하며 기성세대는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다음세대를 생각하고 오늘 우리가 사용하고 개발하고 쓸 것을 써야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고 합니다.
둘째 키워드는 평화입니다. 얼마 전 제주 강정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말만 들었지 한 번도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그곳에서 평화운동을 하고 계시는 송강호 박사를 잠시 만났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마음속에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 깨달음이란 지극히 작은 자와 늘 함께하고자 하는 삶이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것을 제대로 확인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공의(쩨다카)의 온전한 의미이기도 합니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는 것입니다. 중앙 일간지에 투고한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의 글 속에 성경의 정의와 공의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어서 갈무리를 했습니다.
성경은 세계가 정의와 공의의 토대 위에 세워졌다고 말한다. 정의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 ‘미슈파트’는 ‘사법적 정의’를 일컫는 말이다. 재판관이 법에 따라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정의는 힘이 있는 사람들을 편들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라 하여 불법을 묵인하거나 두남두지 않는다. 다수의 사람들이 연루되었다 하여 있는 죄를 없다고 하지 않는다. 없는 죄를 만들어 벌을 주지도 않는다. ‘세상이 다 그렇지!’ 하면서 톡탁치지 않는다. 사법적 정의가 바로 설 때 사람들은 공권력을 신뢰한다.
공의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 ‘쩨다카’는 ‘회복적 정의’를 일컫는 말로 자선 혹은 구제라는 뜻을 내포한다. 어떤 사회든 사람들의 공동생활에서 발생한 잉여를 분배하는 과정을 통해 어떤 이는 부유해지고 또 어떤 이는 가난에 빠진다. 성경은 형편이 좋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함으로써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자들의 의무라고 가르친다. 그것이 옳은 삶이다. 하지만 공의는 개인의 자선 행위에만 기댈 게 아니라 사회제도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정의와 공의는 일종의 사회적 자본이다.
특히 정치적으로든, 전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소외든 자와 그 공동체의 고통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는 삶이 성경적 쩨다카 공의를 이루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제주 4·3 이후 70년의 세월 속에 제주 내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교회는 70년 동안 고통 속에 있었던 제주 도민의 아픔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제주 도내 교회 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교회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4.3평화 공원을 방문하기 전에 그냥 이념 갈등 속에 있었던 희생된 사람정도로만 4.3을 이해하는 정도였지만 전시된 역사적 자료와 내용을 보면서 너무 충격적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왜 이런 역사적 고통과 아픔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는지 제가 참 한심했고, 그리고 그동안 교회는 어떻게 지금까지 침묵을 했는지, 그래서 제주도민 특히 할루방 할망 어르신들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제주도에 많은 교회가 세워졌겠지만, 제주 민중들의 마음을 보듬고 함께 한 교회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는 4.3으로 고통 받은 제주 도민과는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교회 숫자는 늘었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토착 교회로서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늘었다고 해도 육지에서 들어온 현재 제주 도민의 30% 사람들 일 것입니다. 원주민은 아마도 별로 기독교로 편입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정확한 확인이 필요한 부분 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동의가 되는 부분입니다.
4.3의 역사적 배경을 가진 제주 강정 마을 내에 해군기지 반대 운동 이전부터 있었던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군기지 반대 운동과 강정 마을 사람들의 입장과 보호 차원에서 교회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고, 완전히 분리된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진짜 안타까운 것은 강정 교회는 강정 마을을 지키고, 평화적 복음을 전하고, 온전한 복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너무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회자가 역사의식이 없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역사적 타이밍을 모를 수밖에 없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주를 생각하며 저는 킬링필드가 있었던 캄보디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적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며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개척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여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70년 동안 제주도에 많은 교회가 세워졌지만 제주 도민의 가장 큰 아픔, 갈등, 고통이었던 4.3에 대해 침묵, 방관 때로는 가해자가 되므로 교회가 교회로서 아무런 역할을 못 하고 빛도 짠맛도 잃어버린 역사적 교훈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럴 때 평화운동을 하는 개척자의 대표 송강호 박사의 삶을 보며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교가 과연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복음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을 통해 개척된 수많은 교회가 성장 이데올로기와 편협하고 왜곡된 교회론과 분열된 복음으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복음과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복음을 전하고 있다면 교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교지의 사회, 나라와 민족의 고통과 아픔에 대한 깊은 역사적 인식이 없거나, 함께 고통을 나누고자 하는 공의와 정의에 뿌리내린 공동체로 살아가는 삶이 없다면 기독교는 주변 종교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송강호 평화운동가의 삶을 보며 희망을 보았다. 제주 내 교회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제주 도민의 내적 치유가 작지만, 부분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바로 이런 것이야 라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복음적 삶은 평화를 만드는 삶이어야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민중의 깊은 두려움 속으로 같이 들어가는 것, 내 힘으로 할 수 없기에 성령을 의지하고, 공동체가 되어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겉만 번지러한 빈 깡통 같은 교회 건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겉은 빈 깡통 같지만 생명력을 가진 공동체로 남을 것인지 우리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캄보디아의 고통, 아픔, 깨어진 관계, 가난, 킬링필드의 상처, 정치권력의 두려움에 이삭 공동체가 캄보디아 민중들의 우산이 되어야겠다는 마음 또 그런 이삭 공동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 번째 키워드는 생태입니다. 2020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7차 생물 다양성 과학기구(IPBES)총회에서 채택한 “전 지구 생물 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 평가에 대해 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 안에 100만여 종의 동물이 지구상에서 영영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 1세기 동안 아프리카 사바나 사막, 남아메리카 열대우림 등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20%가 사라졌습니다. 그중 절반이 기후 변화로 인한 멸종입니다.
이런 현실 앞에 그리스도인의 길을 생각해봅니다. 선교사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이삭공동체에는 임신한 자매도 있고, 갓 태어난 아이도 있고, 아장아장 걷고 있는 아이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도 있습니다. 2030년까지는 8년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삭공동체 아이들이 청년이 되는 2040년과 2050의 지구는 안녕할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이미 사바나 사막과 열대우림의 동식물 20%가 사라졌고, 15분마다 생명의 한 종이 멸종하고 있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의 종이 사라질까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너무 좋았더라고 하셨던 창조세계가 인간의 탐욕으로 계속 사라지고 있습니다. 생태계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한 종의 멸종은 다른 종의 멸종을 초래하고 결국 코로나 팬데믹을 자초했고, 또 다른 팬데믹 위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생태적 경제와 생태적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와 다음 세대를 준비시켜가는 교육이 대안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혹독한 현실과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마가복음 16장 15절 말씀처럼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spel to all creation)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위기의 세계에 고작 할 일이 복음 전하는 것이냐 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달리 생각할 것입니다. 만민은 모든 민족이 아니라 사람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all creation)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을 비롯한 세상 모든 피조물에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한 복음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나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수준의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위임한 복음은 하나님 나라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이전에 살아왔었던 세상 나라의 질서와 생각과 가치와 삶을 완전히 버리고(회개) 하나님 나라 세계관으로 상하고 깨진 하나님의 형상과 질서를 다시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화해와 회복의 공동체를 만들고, 창조세계를 원형으로 회복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신음하고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도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구성된 회복적 공동체가 나타나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창조세계를 회복시켜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화해와 회복의 공동체가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 나라의 생태적 삶을 보여주고, 가르치면 이 복음을 보고 듣고 배운 또 다른 사람도 화해와 회복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태적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의 지상명령입니다. 화해와 회복의 공동체를 통해 복음이 증거 되는 나라와 지역마다 사람뿐만 아니라 신음하고 고통받고 있는 동식물, 미생물계 전체가 다시 회복되는 진정한 부흥 (Revival)이 일어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미래선교의 중요한 키워드는 다음세대, 평화, 생태입니다. 이 핵심가치를 이루기 위한 대안은 생태적 경제와 생태적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와 다음 세대를 준비시켜가는 교육이 대안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대상이 되어 듣고 응답할 수 있는 온전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적극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귀한 말씀 감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