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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는 정말 순진하고 정이 많은 아이다. 착하고 불쌍한 애.
나는 성경이에게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었다.
죽는 날까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해분이와 2,3일을 지내면서 성경이가 너무 불쌍하고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다.
그때 성경이가 울면서 " 오빠 잠깐이라도 좋으니 얼굴 한 번만 보자
정말 죽고 싶어 " 라고 했다. 나는 성경이의 우는소리를 듣고 너무
괴로웠다. 성경이는 전에 사는 것이 괴로워 물 속에 뛰어든 적이 있
었다. 다행히 주위에 사람이 있어 인공호흡을 해서 다시 살아났지
만, 내가 성경이를 만나기 전이었지만 그일 때문에 너무 걱정이 되
어 해분이에게 성경이를 잠깐만 만나고 올테니 기다리라고 했는데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 일도 없고 잠깐만 얘기만 한다고 했는데
도 절대 안 된다고 했고 그 때문에 언성이 높아지고, 나는 성경이에
게 그냥 가버렸다.
잠을 자고 있는데 초인종소리가 울렸다.
집에 올 사람이라곤 성경이 친구밖에 없는데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
어 성경이에게 문을 열어 라고 하고는 주방에 가서 칼을 잡고 오이
를 썰고 있었다. 성경이가 누구냐고 하니 신문사에서 나왔다는 남자
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신문을 안 본다고 하면서 문을 열자
4,5명의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내가 칼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가
스총을 쐈는데 손바닥으로 눈을 보호하고 가까이 다가가니 총을 나
에게 던졌다 피하면서 저희들끼리 도망치다 넘어지곤 했다.
앞뒤 창문을 열어 밖을 보니 빌라 전체가 다 포위되어 있었다.
나는 집을 빠져나와 옥상으로 올라가 다른 계단으로 내려왔는데 그
때 총을 가지고 와서 두 번째로 집으로 들어가는 중에 내가 나왔다.
계단에서 나오면서 포위하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하니 물
어보니 위험하니까 빨리 들어가라고 했다.
그 사람은 나를 못 알아봤는데 그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 여기 있다 " 고 소리치자 금방 그 주위를 둘러쌌다. 나는 빨리 빠
져나가야 된다는 생각에 쇠파이프가 날아오는 것을 피하지 않고 손
으로 막고 뛰었다.
나는 그때 칼이 있었고 내가 만약 사람을 해치려고 했다면 팔도 부
러지지 않았고 더 쉽게 빠져 나왔을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검도에 자신 있다고 해도 칼만 있으면 열 명도 짧은
시간 안에 자신 있게 처리할 수 있다. 나에겐 힘과 스피드와 칼과 주
먹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 그 곳에서 나에게 쏜 총알이 몇
발인지 모른다. 총소리가 여러 번 났고 10여분을 추격전을 벌였지만
나는 그곳을 빠져 나와 곧바로 전주로 갔다.
수중에는 돈이 십 원도 없었고 때문에 나는 전에 훔친 수표를 바꿔
돈을 마련되고 3일 뒤 귀경 차량을 따라 대전으로 왔다.
팔이 부러진 것을 전주에서 깁스를 하고 대전에 왔는데 통증이 너무
심해서 10여일 뒤 대전 병원에 갔더니 다시 어긋났다고 해서 다시
깁스를 했고 그 다음날 성경이가 걱정이 되어 성경이에 대해서 알아
볼 마음으로 해분이에게 전화를 했다. 해분이와 할 얘기도 많았고,
내가 그 때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같았으면 절대 전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분이를 만나기로 약속하고 천안 인터체인지에서 해분이 차가 나
오는 것을 보고 뒤를 따랐는데 조금 이상했다.
뒤의 봉고차가 이상했는데 운전에 자신이 있어 내가 차에 타고 있는
한 잡히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에 계속 뒤를 따랐다. 뒷좌석에도 사
람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해분이를 믿었다. 차를 세우고 해분이 차있
는 데로 다리를 절며 가는데 뒷좌석에 엎드리고 있는 두명의 사내들
이 보였다. 그들을 보자마자 차있는 데로 뛰었는데 잘 뛸 수가 없었
다. 왼팔은 깁스상태였고 오른발은 금이 가 있었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나는 붙잡혔고 그때부터 몸싸움이 시작됐다.
둘다 총이 있었는데 공포탄이었다. 총을 쏘면서 겁을 주고 둘이서
붙잡고 총을 들고 머리를 찍고 그래도 내가 반항하니 깁스한 팔을
총으로 내리찍고 머리를 계속해서 내리찍었다. 그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오른팔뿐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맞고 있는데 멀리서 차들
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른 팔로 한 명을 쳤는데 다리에 힘
을 줄 수가 없어 체중을 얹지 못해서 위력이 없었다. 한사람이 한대
맞고 눈 주위를 감싸고 있을 때 오른 팔로 한사람을 잡아채 그가 바
닥에 쓰러졌을 때 총을 빼앗았다. 그것으로 그들을 겨냥하자 그들이
움찔 하면서 뒤로 물러섰고 나는 마치 내 차안에 누가 타고 있는 것
같이 " 야 모두 쏘아버려 얘들은 총알이 없어 " 하고 소리치자 모두 도망쳤다.
그 뒤로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정신이 들고나니 나는 산밑에 있었
고 머리에서는 싸이렌 소리와 경광등이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를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앗
다. 한 5분 여를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리는 일곱 군데가 찢겨
서 피가 나고 있었는데 한곳은 크게 벌어져서 선지피가 나왔다.
온몸은 피투성이였고 피 때문에 눈을 뜨기도 힘들었다. 다리는 땅에
댈 수도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고 손목은 제멋대로 돌아가 있었
다. 빨리 빠져나가야 된다는 생각에 그 몸을 이끌고 눈이 많이 왔기
때문에 개울을 따라서 계속 걸었고 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밤새도록 20여㎞를 걸어서 갔는데 어지러움과 추위를 견디
기가 너무 힘들었다. 통증은 저리 가고 몸이 꽁꽁 어는 추위를 견디
기 너무 힘들었다. 옷이 모두 젖어 얼었고 머리카락에 고드름이 었고 피가 얼어 겨울이 아니었고 여름이었다면 그때 죽었을지도 모른
다. 추위 때문에 피가 멈췄고 상처가 곪지 않아 그나마 시간은 좀 걸
렸지만 나을 수 있었다. 병원, 약국에도 갈 수 없어 손목 부러진 것
을 혼자서 맞추는데 손목이 3군데가 부러져 맞추기가 너무 힘들었
다. 병 신이 되지 않으려고 고통을 참고 뼈를 맞추면 혼자 깁스를 하
고 붕대를 감을 때 다시 어긋나고 팔이 퉁퉁 부어 뼈가 만져지지도
않지만 8,9차례를 반복해서 울면서 뼈를 맞췄다.
깁스를 하고 3주만에 풀었다. 깁스를 하고 다니면 눈에 빨리 띄게
되기 때문에 두 달을 추위 속에서 바람만 막을 수 있으면 잤다.
너무 추우면 단전호흡으로 몸을 덥히고, 하루에 한끼도 먹지 못할
때가 많았고 농가에 들어가 몰래 표가 안 나도록 밥통에서 밥을 조
금씩 먹고 할아버지가 하는 가게에서 비스켓을 사서 하루에 하나를
먹으며 견디었다. 팔을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되어 김제에 가기로 했
다. 집에 갈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곳은 내가 잘 알기에 되도록이면
잘 아는 곳, 지리를 잘 아는 곳이 나을 것 같았다. 청주에서 전주까
지 자전거로 갔다. 브레이크도 잡을 힘이 없어 그곳까지 가는데
6,7번 넘어졌고 넘어질 때마다 팔의 통증 때문에 바닥에 그냥 누워
있었다. 김제에 도착해서 낮에는 낚시 밤에는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잤다. 가게에 들어가 라면을 먹고 낚시 온 사람들과 함께 그들이 해
가지고 온 밥을 나누어 먹기도 했다.
며칠이 지나고 어스름 녘에 빵과 우유를 사려고 가게에 들렸다.
그 가게는 그때가 세 번째 가는 거였다. 가게에 들어갔는데 주인의
안색이 평소와는 다르게 당황하는 눈치였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
에 빨리 물건을 사고 나가자는 생각을 했는데 내 뒤에 사람이 서 있
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태연하게 앞을 보고 있었지만 만반의 준비
를 갖추고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그 사람이 내 앞으로 오더니
" 왜 그렇게 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냐 얼굴 좀 보자 " 하고 모자를 벗
겼다. 그때 나는 주먹을 날려서 기절을 시킬까 생각하다가 그냥 태
연하게 두고 보자는 마음에 가만히 있었다. 자기가 경찰이라며 나에
게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 동네에 살고 있다고 했다. 주민
등록증을 보자고 하기에 집에 두고 왔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저기
차에 가서 얘기 좀 하자고 했고 나라는 것을 짐작한 눈치였다.
지금은 나에겐 표정적인 것이 하나 있다. 전에 까스 총탄을 정면에
서 맞아 눈 밑에 큰 점이 문신처럼 되어 버렸다. 검은 점을 상징처럼
달고 다니는데 누가 못 알아 보겠는가. 그래서 그걸 감추려고 남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다녔다.
그가 그 검은 점을 봤기에 나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자기 혼자는
무리라고 생각하는지 어디에 연락을 하려고 했고 그때 내가 있는 쪽
으로 4,5명의 사내들이 빠른 걸음으로 왔는데 형사들이라는 게 확실
했다.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곧바로 그대로 행동했다.
옷을 두텁게 입었기에 그를 밀치고 뛰는데 스피드가 붙지 않았다.
뒤에서는 빨리 총을 쏘라는 소리가 들렸고 그때 거리가 20여 미터밖
에 나지 않았다. 나는 겨냥을 못하게 지그재그로 뛰는데 뒤에서 총
성이 나고 총알이 바로 내 옆으로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개울을 넘어 뛰는데 거리가 차츰 멀어지는데 총소리는 계속해서 들
렸다. 거기서 밤이 새도록 달려 아침이 될 때는 포위망에서 벗어났
다. 다른 사람을 나로 오인하고 신고한 덕을 톡톡히 봤다. 이곳 저곳
에서 나를 봤다는 제보들이 많았지만 나는 제보가 들어 갈만하게 행
동하지 않았고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 서 밝힐 수 없지만 몇 분, 정말 고마운 분들의 도움을
받았고 전주에서 벗어나 그분들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
내가 있는 곳은 짐작하기 힘들 것이다. 지금은 내가 한번 간 곳은 두
번 다시 가지 않는다. 어떤이들은 "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지 "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지금의 환경이 교도소보다는 백 배,
천 배 낫다고 생각한다. 얼마 있으면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나는 성공할 수 있으리
라 확신한다. 팔이 부러지고 온몸이 얼어붙은 채 잠을 자며 비스켓
하나로 하루를 버티며 살 때도 나는 교도소보다는 나았다.
왜 인줄 아는가? 지금은 그 가학성 변태 성욕자같은 자들의 노리개
감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남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 왜 그들은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가? 그들은 국가에서 그
렇게 하라는 허락을 받은 것인가? 죄를 지은 죄인이기에 그렇게 당
해도 싸다고 하면 할말이 없다. 사람이 잘못 행동을 하고 있을 당시
에는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지난날을 생각할 때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물론 나 같은 놈은 짐승취급해도 좋다. 그만큼 나는 나쁜 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도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밖에 있는
사람들 보다 순수함을 많이 볼 수 있다. 그게 한 번에 그치지 못하고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은 법무부에도 책임이 크다.
무조건 강압적으로 대한다고 사람의 성격이 바뀔 수 있는가 어떻게
보면 재소자들이 제일 불쌍하다. 올바른 가정환경 따뜻한 정을 받
아보지 못하고 정에 굶주리면서 살아온 재소자들이 80% 이상일 것
이다. 물론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지도 않은 재소자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저런 사람이 왜 이곳에 왔을까
하고 생각되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열심히 일하고 굳은 일 마
다하지 않고 자기가 나서서 하는 사람들. 그런 재소자들은 자기가
받을 형을 모두 살고 나가는데 돈이 있다고 빈둥거리고 사는 사람은
특사를 받고 나가는게 너무 많다. 너무 돈만을 바라는 교도관들이
많고 재소자들을 벌레 취급하는 교도관들이 많기에 또 나와 같은 전
철을 밟게되는 순진한 이들이 계속 될 것이다. 재소자에겐 강압적인
태도가 아니라 따뜻한 정, 포근한 말 한마디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
일 수 있을 것이다. 재소자들을 위해서 얼마 안 되는 봉급을 쪼개어
불쌍한 재소자를 돕고 진정으로 그들을 안타까워하며 그들의 삶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교도관들도 많다.
그분들께 고마움을 표하며 싸잡아 비난한 것 같아 미안하다.
나와서 복수를 할려고 내가 반 혼수상태에 있을 때 나를 짖밟던 그
를 찾아갔다. 부산에서 이들을 기다려 그가 나오는 것을 보고 평생
침대에서 살게 만들려고 차문을 열고 나왔다. 그때 어느 부부와 아
이들이 웃으면서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 가족을 보면서 느낀
점이 있기에 나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가 혼자라면 나는 몇
번이고 내 계획대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가정이 있고 그
때문에 괴로워할 생각을 하니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내 계획을 접고 편지를 썼고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 문틈에다 편지
를 꽂아놓고 나왔다. 내용은 재소자에게 인간대우를 해주라는 내용
이었다. 내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당사자는 잘 알 것이다. 또 한번 부
탁한다. 편지의 내용을 잊지 말길 나는 정말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
을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한번 사람을 해치면 두 번, 세 번, 계
속될 것 같고 나 자신이 살인마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
다. 나를 신고한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복수할 생각은 하나도 없다.
나를 알게되면 신고해라. 도피하는 생활을 해야 되기에 남을 속이고
돈을 훔치는 짖을 많이 했다. 피해자들께 용서를 빈다.
다시 교도소 얘기를 하겠다. 교도행정이 하루라도 빨리 고쳐져야 하
겠기에 쓰기 싫지만 적겠다. 재소자들이 아프면 무료로 치료를 받는
다. 면회를 오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은 몸이 아파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병을 키워서 출소하던지 아니면 그곳에서 치료다운 치
료를 받지 못한다. '교도소에서 무료로 치료를 해주는데' 하고 생각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말이 치료를 하는 것이지 형식적이다.
진찰을 교도관이 한다. 약 처방도 교도관이 하고 주사도 재소자가
놔준다. 의무과장이라고 사회 의사가 있는데 정말 많이 아픈 사람만
그에게 진료를 받는다. 80,90프로는 교도관이 한다. 교도관이 병에
대해서 뭐를 알겠는가. 의사도 각 교도소마다 다르겠지만 산부인과
정형외과 같은 전문의들이 많다. 내과 전문의는 손으로 꼽을 정도일
것이다. 약 처방을 할때 약명을 적는 것을 본다. 나는 영어공부를 오
래해서「잘은 모르지만」조금은 안다.
7,8가지의 약을 처방을 했는데 약봉지를 열면 2,3개정도 나머지
3,4알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의무과, 용도과, 작업과, 분류과 비
리가 수없이 많다. 잘 사는 사람거라면 모르지만 얼마 되지 않는 예
산이지만 재소자들을 위해 써야할 돈이 그들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
가고 있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행위가 아닌가. 나는 지금 거짓말도
과장도 하지 않는다. 사실 그대로 적고 있을 뿐이다.
교도소에서 오랫동안 살다 나온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봐라.
헌 담요를 몇 년째 사용하고 거의가 자신이 구입한 담요를 쓴다.
모든 물품을 공급해야 하는데도 거의 지급이 없다. 1년 예산에 포함
된 물품들, 그 물품을 지급해야 하는데 지급 받지 못했으니 그것들
은 다 어디로 갔는가. 교도관에게 얼굴이 멍들고 상처가 나도록 맞
아도 어디에 호소할 데도 없다. 그곳에서 맞아 죽어도 모를 것이다.
사실 그런 적도 청송에서 있었고 청송에서 함께 있던 재소자들은 거
의 다 알고 있다. 그들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법무부에서 교도관들
의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서 가끔 감사가 나온다. 교도소끼리 서로
직원들을 다른 교도소에 보내 상대 교도소를 감사를 하곤 하는데 모
두 형식적이다. 몇일전부터 감사가 나온다는 것을 연락받고 감사받
을 준비를 끝내놓고 기다리고 있다. 감사를 받는데 비리가 발견되겠
는가. 감사를 하는 사람들도 잠깐 시찰하는듯 마친 견학온 것처럼
둘러보고 그냥간다. 상부에서 아무리 좋은 지침을 내려보내도 교도
소안에서 재소자가 받는 것은 매 한가지다. 왜냐하면 그 지침이 재
소자에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도소도 개혁되고 변화되어야
한다. 재소자를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이 바뀌어야만 재범하는 사람
들이 줄어들 것이다. 마음을 고쳐먹고 착실하게 살아가는 전과자들
도 많이 있다. 그들에게도 하나같이 사랑으로 대해주는 교도관들이
있었다. 그들의 마음을 바꾼것은 매도 아니고 어느 누구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억누른다고 고쳐지겠는가.
가슴을 짖밟으면 밟을수록 적대감과 반항심이 커질 뿐이다.
진정한 것은 따뜻한 정이었다. 정에 굶주린 사람들 그들이 불쌍하지
않은가. 누가 정을 조금만 줘도 푹 빠져드는 그들. 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폐쇄된 공간, 치외법권 지역에서 계속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 자신을 방어할 수도 없고 어디에 호소도 할 곳이 없다.
그들이 죄인이기에 당해야 한다는건 너무하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
나 한번쯤은 잘못을 할 수 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
하면 환자고 교도관은 의사나 간호사가 아닌가. 그들의 잘못된 생각
을 치료해서 개끗히 해야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더욱더 악화시킨
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에게 고통을 가한 사람들을 처벌해 달라는
건 절대 아니다. 앞으로 내가 겪은 지옥 같은 생활을 다시 경험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 배움이 짧아 내가 쓰고 싶은 말
들을 다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들도 나뻤지만 지금 나는 몇 배 더 나쁜 놈이기에 나에 대한 변호
는 하지 않겠다. 내 형제들, 나 때문에 힘들게 살고 있을 동생들,
그리고 나와서 만난 두 여인에게 정말 미안하다. 특히 성경이 그 착
하고 정많고 순진한 아이.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지금이
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내가 해야할 일이 하나있다. 그것만 이루어지
면 나는 당장 죽어도 원이 없다. 첫사랑 선화를 잊는데 6,7년이 걸렸
다. 내가 처음 교도소에서 나와 찾아갈려고 했던 사람은 나를 밀고
한 사람이 아니고 그의 매형이었다. 내가 밀고로 잡히던날 그곳에서
밀고한 사람(친구의 선배였다)의 매형이 선화를 보면서 하던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그 매형이 청량리588에서 색시집을 한다고 들
었다). " 제 귀여운데 내 가게에 데려다 놓으면 장사 잘 되겠다 "
그 소리를 듣고 그에게 다가가려다 형사들에게 숨도 제대로 쉬지 못
하게 맞았다. 어디 그게 남자가 할 소리인가? 전에 신문에서 나에
대한 얘기를 쓴 걸 봤다. '청량리, 천호동 사창가에서 기행하면서'
라는 대목이었는데 그것 읽고 화가나서 편지를 보내려고 했는데 썼
다가 부치지 찮았다. 내가 천호동에서 살았고 청량리에서 잡혔기 때
문에 그렇게 짐작했던것 같다. 나는 돈을 주고 여자와 관계하는 것
을 싫어한다. 애정이 없는 s e x는 싫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여자를 이용하려고 했으면 교도소에 들어가지도 않았
고 부자가 됐을 것이다. 나에게 미쳐있던 돈 있는 여자들도 많았다.
그들에게 얹혀 살든지 아니면 그들을 이용해서 돈을 욹궈냈다면 부
자가 됐을 것이다. 선화에게 한번 물어봐라 내가 그 불쌍한 여자들
을 등쳐먹을 사람인지. 내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평생을 피해
다닐수는 없다. 언젠가는 총을 맞고 피를 뿌리며 끝나겠지만 항상
준비가 되있다. 그때가 오면 내 마지막을 담담히 맞겠다.
그러나 나는 모든 수완을 동원해서 피해 다닐 것이며(아무리 급한
상황이 오더라도 일반인은 절대 해치지 않겠다) 도저히 힘든 상황
이라고 판단되면 경찰도 나에게 당하게 될 것이다. 총이 무서운 무
기임에는 분명하지만 안전장치를 풀고 홀즈터에서 뽑아 겨냥을 했
을 때의 얘기지 그러기 전에는 쇠붙치에 불과하다.
아무리 빨라도 3초는 걸릴 것이고 3초면 내 주먹이 15번쯤 나갈 수
있고 칼이라면 그 보다는 느리겠지만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다.
내가 분명하다고 생각되면 내 머리를 먼저 쏘고 내 몸을 가져가라.
나를 사로잡으려고 하다간 평생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나는 복싱을
했지만 유도, 씨름, 격투기를 선수들 정도는 아니지만 2,3단짜리들
하고 해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내 말을 명심하길 바라고 더이
상 내 형제들과 아버님,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세 여인들을 힘들게
하지 말기 바란다. 만약 이들중 한명이라도 잘못됐다는 말이 내 귀
에 들어오면 그때는 엄청난 결과가 있을 것이다.
나는 절대 가족이나 그녀들에게 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든 일이
니까 나 하나면 되지않은가. 더이상 가족과 여인들에게 고통을 주지
말길 바란다. 이건 나의 부탁이고 경고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내 마
음을 내가 자제하고 남자가 해서는 안될 짓을 절대하지 않고
있다. 도피자금 때문에 돈을 훔치지만 지금 나의 처지로선 어쩔 수
없다. 부탁한다. 내가 만든 현실 나하고 끝내자! 나 하나만
나는 언제라도 죽을 자세가 되어있다. 절대 자수는 없을 것이며,
교도소에 살아서 들어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단 하루도 그들의
노리개감이 되어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1998년 7월 16일 19시 신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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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량은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에다가 탈옥해서 +22년6개월...
이 때는 절도로 무기징역 했던 시대인데 요즘엔 사람 죽여도 몇년 감방에서 살다가 나오지^^
범죄자 이긴 하지만 솔직히 배울점도 있는거 같다
신창원은 범죄자가 아니였다면 이 사람의 인생은 180도 바뀌었겠지...
아..이사람이 사람죽여서 감방에서 이렇게학대받는건줄알고 ㅉㅉ그니까사람을왜죽여 그래도싸네 이생각했는데 뭐야 사람죽인것도아니고 형량이왜이래?그리고 대우도왜그러지 지금은 사람죽여도 십년이면나오지않나
빨리 프로파일러가 되야겠다
음....그래도살인자라서좀그렇아
진짜 안타깝다..ㅜ옆에서 누군가 다정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줬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