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월드컵 경기가 2006년에는 독일에서 개최된다.
한국에서 경기가 열렸던 2년 전과는 달리, 생방송으로 경기를 보려면 한밤중에 잠을 설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다른 가족이 잠들어 있거나 집안에 수험생이 있다면, TV의 오디오를 한껏 낮추거나 헤드폰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런 방법으로는 관중의 환호와 아나운서의 해설이 흥을 돋우는 축구 경기의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TV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고 내게만 들리게 하는 그런 방법은
없을까?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고의 American Technology Corporation사(www.atcsd.com)는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바로 레이저빔처럼 소리를 원하는 방향으로 집중시킴으로써 소리의 가청
영역을 제한시킬 수 있는 지향성 사운드(directional sound) 기술이다. 스피커의 개념이 처음으로
소개된 1925년 이후 오디오 기술 발전에 있어 가장 혁신적인 기술로 평가되고 있는 이 기술은 소리가
퍼지는 방향을 조종함으로써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라도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소리가 들릴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어서, 박물관이나 무역 박람회, 극장, 대형 상점 등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ATC가 하이퍼소닉사운드(Hyper Sonic Sound : HSS)로 이름붙인 이 기술은 미국 정부와 그
적용에 관심 있는 많은 기업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헤테로다인 원리가 비밀 HSS 기술은 파장이 짧아 방향성을 가지는 초음파의 성질과 공기의 비선형 성질, 그리고 두 신호가
비선형 믹서에 입력되면 두 개의 새로운 부가 신호들이 생긴다는 헤테로다인 원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 귀가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은 그 파장이 길기 때문에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데 반해, 파장이 짧은 초음파는 레이저 광선처럼 단일 방향으로만 퍼져 나가도록 조종할 수 있다. 한편, 진폭이 충분히 큰 두 초음파 주파수가 공기와 접촉하면, 공기의 비선형 성질 때문에 원래의 두 주파수에 더해, 두 주파수를 합한 합주파수와 감한 차주파수가 생긴다. 예를 들어, 48kHz와 49kHz의 두 초음파 주파수를 사용한다면, 이들이 공기 중에서 혼합되어 97kHz와 1kHz의 새로운 주파수를 만들고, 이들 중 가청주파수 범위(20Hz~20kHz)에 드는 차주파수, 1kHz톤을 들을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HSS 기술은 원하는 오디오가 변조된 초음파 주파수와 원하는 차주파수를 생성할 다른 초음파 주파수를 함께 공기 중으로 보내어 그 상호작용에 의해 공기가 초음파 신호를 가청주파수 범위로 끌어내리게 함으로써 공기 중에서 원래의 오디오를 재생하는 기술이다. 이 때, 공기가 주파수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계산하여 원하는 차주파수를 생성하게끔 출력 초음파 주파수를 정하고, 원하는 오디오를 충분한 음량의 초음파로 전환시키며, 원치 않는 고조파들 때문에 생기는 일그러짐(distortion)을 감소시키는 기술적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ATC가 개발한 길이 28cm, 두께 8.8cm의 HSS 스피커는 압전효과를 일으키는 폴리머 필름으로 만들어졌고, 원하는 오디오를 초음파로 변조, 전환시키는 오디오 입력 프로세서와 파워 증폭 기능, 초음파 출력 이미터가 내장되어 있어, AC 전원과 CD 플레이어나 마이크와 같은 음원만 제공하면 작동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종이 콘의 진동으로 공기를 움직여 소리를 내게 되어 있는 기존의 스피커와는 달리, HSS 스피커는 스피커 전면에서 최대 137m까지 길게 뻗쳐 나오는 초음파 터널 내 어디서나 원래의 오디오가 음량의 손실 없이 선명하게 재생된다. 초음파 터널 내에서만 오디오가 생성되므로, 스피커를 바로 앞에 놓고도, 초음파 터널 내에 있는 사람은 들을 수 있는 데 반해, 몇 발자국 떨어져 서 있는 사람은 전혀 들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이 초음파 터널은 벽에 부딪치면 반사되어 돌아오기 때문에 반사된 초음파 터널 내에 있는 사람은 마치 오디오가 벽 쪽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따라서 HSS 스피커를 이용한다면 서라운드 시스템의 후면 스피커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진다.
다양한 서라운드 음향, 비즈니스 모델로도 각광 이 기술은 기존의 스피커를 이용하는 많은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술관에서는 전시된 작품들 바로 위에 지향성 사운드 스피커를 설치하여 주위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각 그림 앞에 선 사람들에게만 작품 설명을 들려 줄 수 있고, 자동차나 비행기 내의 각 좌석에서는 헤드폰 없이 각자 취향에 맞는 방송을 듣게 할 수 있다. 극장에서는 지향성 사운드 스피커들로 화면에서 소리가 나는 지점을 모방하여 마치 관객이 실제로 영화 장면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고, 해수욕장이나 대중집회와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130m 이상의 거리에 미칠 수 있는 장거리용 메가폰으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주의를 줄 수 있다. 이 기술의 장점을 인식한 미 해군도 최근 ATC사에서 장거리용 음향 확성기(Long Range Acoustic Device)를 공급받기로 계약을 맺었는데, 이 제품은 해상에서는 457m, 지상에서는 274m까지 소리를 전달할 수 있어서 전함에 접근하는 수상한 배나 검문소에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거리를 두고 경계신호를 보내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이러한 분야 외에 지향성 사운드 기술이 가장 큰 환영을 받고 있는 분야는 매장 내에서 고객을 대상으로 판촉 효과를 노리는 소매상점들이다. 이미 미국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Safeway(www.safeway.com)가 ABC 방송사(www.abc.com) 등과 손잡고, ATC사의 HSS 스피커를 장착한 플라스마 TV를 이용해 계산대를 통과하는 고객들이 판촉방송을 시청하게 하는 방법을 시험하고 있다. 상품 진열대에도 HSS 스피커를 설치하여 그 근처를 지나가는 고객들에게 해당 상품에 대한 광고를 내보낸다. 맥도날드사도 시험적으로 몇몇 매장 내의 음료수 기계에 HSS 스피커를 장착하여, 자사의 다른 제품을 맛보도록 유혹하고, 펩시와 코카콜라사는 음료수 자판기에 HSS 스피커를 설치, 음료수 캔을 따는 소리와 함께 광고를 내보내어 행인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한편, 유럽에서는 일본의 소니사(www.sony.com)가 은행이나 백화점, 박물관에서 안내나 전시를 위해 사용되는 자사의 플라스마 TV에 ATC사의 HSS 스피커를 도입하고 있다. 이미 이러한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지향성 사운드 스피커들은 기존의 스피커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수 년 내에 수십 억 달러 대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현재 지향성 사운드 기술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 제품의 생산성과 신뢰성을 개선하여 6백 달러에서 2천 달러에 이르는 높은 가격을 인하함과 동시에 음질에 있어 상대적으로 약한 저음을 강화하는 문제 등의 해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소니사의 관계자는 지향성 사운드 스피커의 가격이 1백 달러 아래로 떨어져야 기존의 스피커에 대해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내게만 들리는 소리, 이젠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오디오 스포트라이트
Holosonic Research Lab사(www.holosonics.com)의 오디오 스포트라이트(Audio Spotlight™) 제품을 전시하고 있는 보스턴의 과학박물관(Boston Museum of Science: www.mos.org )을 찾았다. 오디오 스포트라이트는 ATC사의 HSS 기술과 경쟁하고 있는 지향성 사운드 기술로, 수 년 전 MIT 미디어랩(www.media.mit.edu) 에서 탄생하였다. 이 곳 과학박물관의 오디오 스포트라이트 전시장에는 중앙 전방 위쪽에 지름 50 cm 정도의 스피커 세 개가 아래를 향해 약간씩 다른 각도로 설치되어 있고, 각각의 스피커는 같은 재즈 음악을 연주하는 바이올린, 가수의 음성, 트럼펫 소리를 따로 들려준다. 이들이 보통의 스피커라면 이 모든 소리들이 어디서나 한꺼번에 들리겠지만, 여기서는 청취자가 어디에 서는지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오른쪽 스피커를 정면으로 향하도록 중앙에서 왼쪽에 서면 트럼펫 소리가, 두 발자국 옆으로 옮겨 중앙에 서면 트럼펫 소리가 사라지고 가수의 음성만 들리며, 다시 두 발자국 옆으로 벗어나면, 가수의 목소리가 사라지면서 바이올린 소리만 들린다. 음질은 모노 사운드에 중고음이 강해 썩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오디오 스포트라이트는 수년 전 DaimlerChrysler사(www.daimlerchrysler.com)의 새 트럭에 각 좌석에서 다른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실험적으로 설치되었었으나 소리가 곳곳에서 반사되는 문제와 높은 비용 때문에 취소되었다. 오디오 스포트라이트와 HSS 기술을 비교한 DaimlerChrysler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 HSS 기술이 비용, 성능, 생산 면에서 상대적으로 낫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과연 앞으로 이 두 업체가 어떻게 경쟁해 나갈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오디오 스포트라이트는 이 외에도 보스톤의 Symphony Hall,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에도 설치되어 있다. |
고병희 | 미국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