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부양의무자 제도의 위헌성을 검토하는 자리가 지난 21일 이른 10시 국회의원회관 신관 2층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
헌법에서는 모든 국민이 행복할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34조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가치를 구체화하는 법률 중 하나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있다. 이 법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국가가 보장하고자 한다는 법의 목적을 제1조에서 설명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1조(목적) 이 법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이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상의 엄격한 부양의무자 기준 적용으로 많은 이들이 사실상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헌법에서는 국가가 국민의 행복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하위법인 기초법상의 엄격한 적용으로 현실에서는 덜 가난한 가족이 더 가난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등 빈곤의 사각지대에 빠져 가난한 이들의 삶은 더 곤궁해지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이 조항은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 기초법상 부양의무자 기준의 위헌성을 검토하는 토론회가 지난 21일 국회의원회관 신관 2층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이날 부양의무자 제도의 위헌 여부에 대한 발제를 맡은 법무법인 한결 이지선 변호사는 헌법상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주목하며 현행 부양의무제 기준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는 수급권자 범위를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받을 수 없는 경우’란 어떠한 경우일까? 현행법에서는 이러한 구체적 부양의무자 판단 기준을 하위법규인 대통령령에서 정하고 있다.
이 조항을 보면 부양의무자는 ‘수급권자를 부양할 책임이 있는 자로서 수급권자의 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이며, ‘부양의무자 소득이 부양의무자 가구 최저생계비의 130% 이상이고 재산의 소득환산액이 수급권자 및 부양의무자 가구 각각 최저생계비 합의 42% 이상인 경우' 부양능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수급권자 선정에서는 사적부양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사적부양이란 민법에서 정하고 있는 부양으로 1차 부양과 2차 부양으로 나뉘는데,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1차 부양, 성년자의 직계존속에 대한 부양의무를 2차 부양으로 해석한다.
1차 부양이란 부양의무자의 생활 수준과 동일한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생활유지 부양이며, 2차 부양은 부양의무자의 생활 수준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생활에 필요한 부양의무만을 다하는 생활부조의 형태를 가리킨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지선 변호사는 2차 부양의무자의 경우, 가계수지 측면에서 볼 때 다른 가구의 요부양자(부양이 필요한 사람)에게 최소한의 부양의무를 하기 위해서는 중간 정도의 소득이 필요하며, 완전한 부양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최소 상위 40% 이상의 소득계층에 속해야 할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한결 이지선 변호사 (오른쪽) |
이 변호사는 “200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기준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에서는 ‘사회의 다수가 인정할 수 있는 부양능력 판정 소득 기준의 목표선’은 최소 기준의 경우 현 최저생계비의 250%(4인 가구 중위소득), 최대기준은 350% 내외로 설정하고 있다”라며 “(현행법상 기준인) 소득이 최저생계비 130% 이상이며 최저생계비 250% 이하 또는 350%인 자들 대부분은 실질적으로 제2차 부양의무를 다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는 자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변호사는 “실질적 부양능력이 없는 민법상 부양의무자에게 공적부양에 관한 국가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라면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임에도 현행법 기준에 따른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법에서 보장하는 수급권을 받지 못하거나 박탈당하는 자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규모는 10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13%를 차지한다.
중하위계층 부양의무자가 무리하게 부양의무를 이행하게 되면 자신의 가구 생활 수준이 떨어져 오히려 자신의 가구가 차상위계층 또는 빈곤층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그리고 부양능력 판정기준을 약간 초과하는 소득과 재산을 가진 가구의 경우, 부양의무를 이행함으로써 소득역전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즉,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오히려 차상위계층, 빈곤층이 양산되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설정해 수급권자가 될 수 없는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라며 “국가는 국민의 법익보호를 위해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기본권보호조치를 취했다고 보기 어려워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위반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또한 수급권자와 신청탈락자들, 차상위계층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고 있으며, 부양의무자 판단에 관한 중요한 기준을 하위법규에 위임해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날 참가한 토론자들 또한 부양의무자의 엄격하고 비현실적인 기준에 대해 동의하며 이에 대한 개선 혹은 폐지를 촉구했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 김윤영 집행위원은 “현재 사회복지 통합전산망 ‘행복이음’에 전적으로 의존해 수급탈락 및 수급비 삭감을 결정하고 있다”라며 “수급자의 일용소득 및 노동소득, 부양의무자의 소득 내역을 전산망에 근거해 수급자격을 정하고, 선조정 후통보의 문제로 이에 대한 이의 신청 등 까다로운 절차를 겪을 때까지 수급자는 무권리의 상태에 내몰린다”라고 비판했다.
김 집행위원은 “내년 수급자 수는 147만 명을 예상하는데 이는 10년 전으로 회귀한 수준”이라면서 “가난한 이들의 기초생활 권리가 강력하게 보호받기 위해 현재 행정에 과도하게 위임된 수급자 선정과정은 부양의무자 기준 조항 삭제 등 법의 정비를 통해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 완화조치가 이뤄진다 해도 예산에 맞춘 수급자 수 조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부양의무자 기준에 대한 위헌 여부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종철 교수는 “법리적으로 보면 쉽지 않은 심사기준을 통과해야 한다”라며 “위헌을 이끌어내긴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하던 2002년 당시 비장애인은 버스 타는데 장애인들은 왜 버스를 타지 못하는가, 평등성에 어긋난다며 헌법 소원을 낸 적이 있으나 저상버스 도입 불이행 판결이 나와서 패소했다”라며 “헌법소원은 운동 과정상의 하나로 권력자들을 압박하기 위해 이용할 수는 있겠으나 과연 이것이 효율적인가, 국민이 이에 관심이 있을까 물음이 든다”라고 전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부양의무제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는 이미 폐지에 맞춰져 있다”라면서 “부양의무제폐지로 방향을 잡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갈 것인가에 대해 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통합당 이언주 의원은 “이 문제는 국가의 의무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서 헌법적 논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라며 “헌법소원 제기를 운동의 절차로 제기하는 방법은 별도로 검토해봐야겠으나, 헌법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해석할 때 부양의무자 기준이 헌법적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폐지에 대해 당장 예산의 한계는 있겠으나 모순과 불합리성을 해결해나가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법무법인 한결 이지선 변호사,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 공동행동 김윤영 집행위원, 순천향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허선 교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미곤 박사,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종철 교수 등이 참여했으며, 약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