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6년 7월 12일 화요일, 우리절
한국불교대학대관음사에서는 백중 3재를 맞아
스님들의 지극정성 염불과 천도의식에 따라
오롯이 하나된 마음으로 선망조상 및 유주무주고혼
일체 인연영가의 극락왕생을 다함께 발원하였으며
화요일과 목요일 수업을 맡고 계신 인호법사스님께서
금강경의 수행과 공덕에 대한 감로법문으로
백중3재에 동참하신 분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셨습니다. 총동문신도회를 비롯 처처에서 봉사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신도님들 가정마다에
복덕과 부처님 가피가 늘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 인호스님 법문 ♣
관세음보살 _()_ 오늘 많이들 오셨네요.
2주 만에 다시 뵙습니다.
오늘은 백중 삼재입니다. 천도재는 잘 지내셨습니까?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그래서 오늘은
중요한 법문을 할 생각입니다. 물론 다른 재 때에도
법사 스님께서 좋은 법문을 해주시지만 오늘은 제가
경전과 관련해서 법문을 할 생각입니다.
여러분들 방금 백중 천도재하면서 독송했던 경전이
뭐죠? 금강경이죠? 오늘 이 금강경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말씀드릴까 합니다.
여러분들이 독송을 가장 많이 하시고 사경도 많이
하시는데 이 금강경에 대한 의미와 또 읽으면 어떤
공덕이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법문 제목 <금강경의 수행과 공덕>이라는
내용으로 법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수행이다 그러면 수지가 있죠.
받아서 지니는 건데 받아서 지닌다 이 말은 우리가
공부한다 이렇게 보시면 되요. 항상 들고 다니면서
이 금강경을 수지한다 이러면 공부한다 이런 뜻이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독송이 있죠.
방금 스님들과 함께 독송을 했는데 그리고 서사,
서사는 이제 사경하고 베껴 쓰는 게 있고 마지막에 해설,
여러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금강경에 대해서
다른 사람 타인에게 설명도 해주고 해설도 하는
이런 것이 수지 독송 서사 해설이라 해서 금강경의 수행인데
그러한 수행에 대한 내용이 있고 또 하나는 이렇게
수지 독송 서사 해설 하고나면 도대체 무슨 공덕이 있느냐?
뭐 공덕을 좀 알아야지 금강경을 독송하든 사경하든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금강경은 아시다시피
금강반야바라밀경의 줄임말입니다.
보통 줄여서 금강경이다 이렇게 하는데 우리
관음사뿐만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사찰에 다니시는
불자들은 금강경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그만큼 금강경이 불자들 사이에서 많이 독송되는
그러한 경전입니다.
뭐 오히려 화엄경이나 법화경보다 금강경을
독송을 더 많이 합니다. 참 신기한 게 있어요.
이렇게 화엄경, 법화경 또는 아미타경 이런 경전보다
독송을 많이 하는데 이 금강경이 뭐냐 이렇게
물어보면 또 몰라요. 참 신기하죠.
많이 독송을 하면서 공부도 제일 많이 하는데
막상 금강경이 무엇이냐 이렇게 물어보면 다들
참선을 하는지 조용하거든요.
그게 이제 한국 불자님들의 특징이기도 해요.
금강경은 불자들에게 가장 많이 읽혀지는
경전이지만은 그와 동시에 가장 또 어려워하는
경전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보통 이제 삼대대승경전이라 해가지고
우리가 뭐 삼대대승경전 사경도 했었지 않습니까?
뭐가 있나요? 첫 번째 화엄경이 있고 그다음에
법화경이 있고 그다음에 마지막 금강경이 있거든요.
이 화엄경하고 법화경은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가 않습니다. 끄덕끄덕 하시는 분도
있는 거 보니까 공부를 좀 하신분도 있는 거 같아요.
화엄경이나 법화경은 내용자체는 어렵지 않거든요.
근데 그 안에 있는 그 내용을 실천하기가 어려운거지
그 내용자체는 크게 어렵지가 않습니다.
뭐 쉬우니까 내용도 쉽게 받아들이고 하는데
근데 금강경은 내용이 좀 어렵거든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내용이 어려운데 독송을
많이 한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기도 합니다.
근데 왜 그럼 이렇게 내용적으로 어려운데도 금강경
독송을 많이 하고 좋아할까요? 이 금강경이 예전부터
세 가지가 있기 때문에 불자님들이 독송을 많이 해요.
수행이라고 하면 독송도 들어가고 서사도 들어가고
그다음에 해설도 들어가고 수지도 들어갑니다.
예전부터 금강경을 왜 좋아하냐 그리고 왜 중요시
여겼느냐 그랬느냐 하면 금강경은 마음 공부하는데
그 어떤 경전보다 좋습니다.
첫 번째가 이 마음 수행하는데 마음공부 하는 데는
이 금강경만한 게 없어요. 실제 우리가 마음 닦는다 그러면
이 금강경을 수행하면 됩니다. 이 네 가지를 수행하면 되요.
그 조계종에서도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두지 않습니까?
그러한 데는 이유가 다 있거든요.
그리고 또 조계종은 선종하고 또 이렇게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 선종 선불교에서도 이 금강경을
수행지침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금강경은 마음 수행
공부하는 수행방편이 되기 때문에 많이 독송한다 그게
하나가 있고 또 하나는 뭐가 있냐면 이 금강경을
독송하게 되면 공덕이 있습니다. 공덕의 방편이 되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2부 때 말씀드릴 텐데
금강경을 읽으면 공덕이 됩니다. 뭐 금강경의 내용에도
나오죠. 전체가 아니고 사구게만이라도 독송을 하면
영혼과 효험이 굉장히 무한, 한량없다 이렇게 나오거든요.
그래서 금강경은 두 번째 공덕의 방편이 되기 때문에
많이 독송을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천도재 뿐만 아니라 재를 지낼 때
의식독송으로도 많이 이용 됩니다.
방금 백중도 지냈지만은 영가님들 극락왕생을 바랄 때
뭘 합니까? 염불을 하잖아요. 염불 어떤 염불이냐면
대표적인 게 나무아미타불을 했는데 그 나무아미타불을 하고
독송을 할 때는 또 금강경을 읽어요.
아미타경을 읽을 때도 있지만 이 금강경을 독송을 합니다.
그래서 금강경은 이 천도 영가님들의 극락왕생을
바라는 천도의식에도 이 금강경이 사용이 되요.
그래서 금강경 독송하는 이유나 많이 수행을 하는 이유가
이 세 가진데 이 금강경을 독송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우리 이 산사람들의 업장도 소멸되고 그리고 업장이
소멸되면 당연히 마음은 청정해집니다.
청정해지면서 그거는 이제 자기 공덕이 되는 거고
또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공덕이 계속 쌓여요.
바라는 소원도 성취가 되고 왜냐면 공덕이 무한하니까
나의 소원뿐만 아니라 내 가족 타인의 소원도 성취
되는 게 금강경이고 그리고 영가의 왕생극락을 위한
이 천도의식에도 독송되는 경전이기 때문에
금강경 독송을 많이 합니다.
금강경을 왜 이렇게 독송을 많이 하는지 이제
아시겠죠? 큰스님께서도 이 백중기간만이라도
독송을 해라 칠독 또는 사경을 해라 하는
그 이유가 이 세 가지가 한번 할 때마다 다
여러분들이 가져가고 또 영가님들한테 전해지기
때문에 그만큼 중요한 경전입니다. 그래서 많이
독송해라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세 가지의 공덕과 수행지침서
그리고 극락왕생을 바라는 천도의식에 사용되는데도
불구하고 금강경이 뭡니까? 하고 물어보면 다들 고개를
숙이거든요. 금강경의 내용 중에 이런 게 있어서 그래요.
예를 들면 어떤 것이냐 하면 그런 거죠.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이라고 말한 것은
즉비반야바라밀이오 시명반야바라밀이다 이런 거예요.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다
또 여래가 말한 세계는 즉비 세계고 시명세계다 이런 거
있잖아요. 한번 보셨죠. 그 인제 00가 00라고 말한 것은
즉비 00가 아니다 00가 이름이 00다 이렇게 나오니까
이 일반적인 상식에서는 부처님이 반야바라밀이라고
말했으면 반야바라밀인거지 왜 아니라고 했을까 또
아니라고 하고 또 왜 그거를 이름이 그거라고 했을까
이렇게 꼬여지니까 보통 어렵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금강경을 딱 이거다 라고
이렇게 꼭 짚어서 얘기할 수는 없지만은
여러분들이 앞으로 살아가시면서 금강경을 많이
수지 독송 해설 서사를 하실 건데 적어도
이 금강경은 아 이러한거구나 이러한 경전이구나
그런 것을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금강경에서 이 금강은 이 반야를 비유하는 건데요.
뭐 금강은 다 아시죠? 다이아몬드 즉 반야인데
어떤 반야냐하면 다이아몬드와 같은 반야,
금강반야다. 금강경은 전부다 반야바라밀을
설하고 있는 거거든요.
거기에 이 금강과 같은 반야를 가지고
바라밀을 행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말이냐 하면
반야는 여기서 지혜를 말하는데 반야바라밀
반야는 지혜고 반야바라밀은 뭐냐 하면
여러분들이 지혜를 가지고 있는데 단지 못미덥고
못 볼 뿐이에요. 지금은 지혜를 다 가지고 있어요.
부처님 불지를 다 가지고 있는데 그 지혜를
드러내는 삶, 드러내서 생활하는 그러한 경을
말하는 게 금강반야바라밀경이거든요.
쉽게 말해 반야바라밀은 지혜로서 살아가는
삶이다, 지혜로서 살아가는 삶이 무엇이다라고
이렇게 설명해놓은 게 금강경이다 이렇게 보시면
되요. 그래서 우리가 보통 지혜를 이뤘다 그러면
깨달음을 이뤘다 얻었다 이러는데 그 깨달음을
금강경에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금강경에 제일 많이 나오는 말이 이 말입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즉 훌륭한 깨달음을 이뤘다 뭐로?
반야로. 이렇게 되거든요.
그래서 사람은 이 본래부터 이 지혜 즉 반야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 반야를 깨닫고 보니까
보리가 되는 거죠. 그래서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
그거를 지혜를 그대로 드러내는 게 반야바라밀이다
그거를 설해놓은 게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런데 이 금강경에서는 그 삶을 이제 드러내는 게
설명해놓은 게 경이라고 했는데 그럼 우리는
그 본래 가지고 있던 반야를 왜 못 보느냐 왜
못 보겠습니까? 이 번뇌 망상 불교적인 용어가
나오긴 해도 이 번뇌 또는 망상 때문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못 보는 거거든요.
비유적으로 얘기하면 허공에 해가 있는데
이 구름이 해를 딱 가리면 해는 본래 있지만
구름 때문에 못 보는 거와 똑같다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이 구름을 구름이 싹 걷혀지면 해가
드러나듯이 우리의 원래 보리 원래 반야는
그대로 있는데 이 번뇌 망상 때문에 보지 못 할
뿐이다 그래서 이 금강경에서의 번뇌 망상을 뭐라고 했냐?
그것도 상세하게 설명을 해놨어요.
왜냐면 이제 반야를 드러내서 삶을 사는 삶이기
때문에 그 반야를 가려고 있는 번뇌 망상도
이렇고 이렇다 설명을 해놓은 게 금강경이거든요.
금강경에서는 이 번뇌 망상을 뭐라고 했냐 하면
기심이다 그랬어요. 그래서 그 번뇌 망상을 없애는
방편으로 그 번뇌 망상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면
항복기심해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부처님께서 항복기심해라 그랬거든요.
여기서 기심은 중생심인데 뭐 번뇌 망상입니다.
이 번뇌 망상이고 그리고 또 금강경에서는
이 번뇌 망상을 이 사상이다 그랬어요.
첫 번째가 뭡니까? 아상 두 번째가 인상
세 번째가 중생상 수자상 이게 중생심인데
이 중생심 때문에 이 반야가 드러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그 중생심 수자상 중생상 인상 아상을 없애는
방법이 뭐다 항복기심 하라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항복기심 하라. 이 중생의 가장 큰 번뇌가 이제 아상이거든요.
이 나라는 생각이 결국에는 이제 탐욕에 가장 원천이
되는데 중생은 이렇게 여러분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뭐 약간의 정도의 차이만 있지 이 탐욕은 다 가지고
있거든요. 또 이 탐욕이 유한하냐하면 그렇지 않아요.
무한합니다. 아주 무한한 탐욕을 가지고 있어요.
뭐 소유하고 싶고 또는 인정받고 싶고 또는
사랑받고 싶고 이런 게 다 탐욕이거든요.
좋은 말로 사랑이다 그러는데 불교에서는
이런 것들이 다 탐욕이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거를 번뇌 또는 망상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그래서 이 번뇌 망상 중에 첫 번째가 아상인데
아상은 탐욕이에요. 사실 생각해보면 이 탐욕은
결국 나라는 그것 때문에 일어나거든요.
내가 중요하니까 나 때문에 이렇게 해서 여기에
모든 탐욕이 시작이 되는 것이거든요.
근데 나만 없으면 그런 탐욕은 일어나지가 않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나와 관련되지 않으면
크게 신경을 안 씁니다.
뭐 여러분들이 뭐 스님이 어떻게 사나 별로
신경 안 쓰잖아요. 근데 막상 이제 나와 관련되면 뭐
그때부터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이 탐욕은 어디서부터 오느냐하면 결국
전부 나로부터 오는데 그게 이제 금강경에서는
아상이다 그랬어요. 그리고 중생심의 두 번째는
인상인데 인상은 뭐 남에 대한 생각, 이렇게 보통
얘기를 하는데 쉽게 말해서 이 화내는 마음입니다.
자기는 남으로부터 오는 그런 마음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화내는 거 진심인데 자기는 잘못을 했어도
우리 중생들을 봤을 때 여러분도 그렇죠.
여러분들 아무리 잘못했어도 나는 잘했다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근데 자기는 자기가 한 것은 모두 옳고 남이 한 것은 마음에
들면 잘했다 그러고 마음에 안 들면 못했다라고 하거든요.
대표적인 얘가 그거죠. 여러분들 집에 가시면 거사님 계시잖아요.
거사님을 언제 서방님이라고 부릅니까?
서방님이라고 부른 적 있나요? 말 잘 듣고 돈 많이
벌어오고 그러면 서방님이라고 부르잖아요.
우리 서방님 이러잖아요.
그런데 마음에 안 들면 어떻습니까? 뭐라뭐라 해요.
웬수 같은놈 막 그러잖아요. 그런게 다 인상이거든요.
내 마음에 들면 님자를 붙이는데 똑같은 사람한테
이 마음에 안 들면 님자가 어딨습니까?
에이 뭐뭐 같은놈 이렇게 하거든요.
그래서 인상이 있는 이유는 인상으로 인해서
나에게는 관대하지만은 남에게는 굉장히 이렇게
마음이 좁아진다 그게 이제 인상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제 중생상인데
중생상은 뭡니까? 기준이 달라요. 이 잣대라 그러죠.
나에 대한 기준 잣대와 남에 대한 잣대가 틀립니다.
똑같이 보는데 똑같은 행동을 하는데 나는 조금
관대하게 열어주고 남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뭐 뉴스에서 많이 보는데 어떤 잘못을 했을 때
본인한테는 굉장히 관대해집니다.
기준이 다른 거죠. 이렇게 다르게 생각하는 마음
그거를 이제 중생상이다 말합니다.
마지막 수자상은 좋은 것을 계속 오래하려고 하고
또 하려고하는 그러한 마음이에요.
좋은 말도 하다보면 한번 두 번은 좋지만 계속 하다보면
이게 짜증나는 말이 되거든요.
그리고 좋은 일도 딱 한번하고 마치면 되는데
뭐 좋은 일을 하고 그걸 계속 말하고 다닌다든지
이렇게 내세우고 다닌다면 그것만큼 또 꼴불견이 없거든요.
가끔 보면 스님들도 그렇습니다. 큰 사찰 있죠?
거기에 이제 주지 소임을 하려고 하면 이제
4년이든 8년이든 임기동안 깨끗하게 모든
권력을 다 쏟아 부어서 하면 좋은데 끝나고도 그 주지자리를
더하려고 막 안 좋은 소식도 나고 그러거든요.
그러한 것들이 다 수자상이에요.
그런 거는 이제 다 수자상 때문에 잘 모르는거죠.
그래서 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이게 탐진치 애착
이런 건데 이게 아주 고약합니다.
이게 우리 중생을 떠나지가 않아요.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걸 어떻게 항복시켜야
하느냐하면 결국에는 이 수행밖에 없거든요.
그런 내용이 이제 금강경에 나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수행을 하라고 하느냐 하면 뭐
거창한 게 아니에요. 항복기심하라 그래요.
부처님께서 항복기심하라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수보리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응운하주 어디에 마음을 머물러야 합니까? 하니까
부처님께서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거죠. 항복기심하라.
아까 수행을 해야한다 그랬잖아요.
이 중생심을 없애려면 수행을 해야 됩니다.
이 반야바라밀 즉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하는데 우리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그 마음을 금강경에서는 발자를 씁니다.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야 된다 그래서 먼저
발심을 해야되고 여기서 발아뇩다라삼약삼보리라는 말은
내가 이 중생 번뇌망상으로 찌들어 있던 그러한
마음을 지혜로운 마음으로 자애로운 마음으로
공덕의 마음으로 돌려야 되겠다 그렇게 마음을
일으키는게 발이에요. 그래서 줄여서 발보리심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이 보리심의 반대가 중생심이죠.
중생심은 이제 아까말한 탐진치인데
그 보리심을 일으키는 사람, 내가 깨닫고자 하는 사람,
깨닫겠다 아니면 지혜로운 삶을 살겠다 그렇게
마음을 낸 사람은 그 생각이 어디에 머물러 있느냐
또 어떻게 닦아야 되느냐 그 얘기를 금강경에서
선현기청분에서 얘기를 하고 있거든요.
한마디로 얘기하면 항복기심해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탐욕, 탐진치 또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항복시켜라 없애라 그러거든요.
그러며 스님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 마음을 없앱니까? 어떻게 항복시킵니까?
이렇게 물을수가 있거든요.
네가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어떻게 없앨 것입니까?
여기 금강경에서는 항복시켜라 이렇게 했는데
어떻게 항복시키겠습니까? 굉장히 쉽습니다.
그 기심을 항복시켜라 그랫잖아요.
무찌를수도 없고 마음이 보이면 잡아서 버리겠는데
이 그 네가지 마음이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아요.
근데 계속 일어나요. 그걸로 인해서 힘들어하거든요.
이 항복이라는 말이 굉장히 의미있는 말인데
부처님이 그 항복을 휴라 그랬어요. 쉴휴, 쉬어라
그게 이제 항복시키는 거거든요.
생각을 일으키지 마라 때려부수고 무찌르고
이런게 아니라 그냥 쉬어라 이렇게 그게 항복기심이에요.
그 마음을 항복시켜라 쉽죠?
그래서 이 불교가 어려운거 같으면서도 굉장히 쉬워요.
이 금강경을 공부하다 보면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된다 어떻게 항복시킬 것인가 그냥 쉬어라
맘을 쉬어라 그러는데 그게 또 잘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또 중생심이 있죠.
잘되면 다 반야심으로 사는건데 쉬어라 그러면
또 우리 중생들은 무슨 마음이 일어나요 맞잖아요.
그게 왜그러냐 하면은 중생의 업 때문에 그래요.
업습, 습관이라 그러죠. 이 습관 때문에 이 업 때문에
아무리 내가 안일으켜야지 쉬어야지 해도
그때 뿐이지 또 일어나요.
여기서 이제 문제가 발생하는 건데 참선하시는
스님들도 똑같은 경우를 겪습니다.
이뭣고 화두를 잡고 참선을 하다보면 순간 망상이
일어나거든요. 근데 이거를 끊임없이 계속 따라가다
보면 천리 만리 멀어지는 거고 그 일어나는 순간
딱 끊고 다시 화두로 돌아오면 되는데 처음 불교를
입문했다든가 아니면 공부가 진행중이라든가 그러면
그러한 업 때문에 본인의 업습 때문에 잘 안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어렵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게 또 이제 금강경에 또 나와요. 그래서
금강경에 아주 오묘한 매력이 있는 거에요.
오늘 이렇게 뭐 단순하게 여러분들이 독송을 했지만
이 공부를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이렇게
하나하나씩 물어가는거죠.
항복시켜라 항복시키는게 쉬는거다 그런데
쉬려고하니까 잘 안쉬어집니다.
그러면 그거는 업 때문에 그런데 어떻게하면
그렇게 됩니까? 이제 여기서 부처님께서 뭐라고
했냐하면 일으켜라 그랬어요. 쉬
는게 어렵다면 일으켜라 그랬어요.
발보리심을 일으켜라 그랬어요. 내가 깨닫겠다라는
마음을 일으키고 또 내가 자애로운 삶을 살겠다라는
마음을 일으키고 반대로 이렇게 좋은 마음을
일으키라 그랬어요.
뭐 일으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음은 두가지를 동시에 못하거든요.
아까 말했던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그런 탁한 안좋은 마음들을 못쉴거같으면
오히려 보리심을 일으켜라 이렇게 또 가르쳐요.
생각해보세요. 번뇌가 계속 일어나는데
그거를 쉴려고 계속 누르고 누르면 계속
일어나는데 그걸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뒤집어서 다른 생각, 좋은마음을
일으키면 되는거에요.
열심히 중생 제도해야 되겠다던가 오늘같은 날은
뭐 영가를천도해야 되겠다 아니면 이거 마치고
내가 한번 이 법당정리나 청소를 한번 하고
가야되겠다 기도도 열심히 수행해야 되겠다
오늘 인호스님 법문듣고 앞으로 열심히 정진해야
되겠다 이러한 마음을 계속 일으키는 거죠.
그래서 금강경에서 이 수행을 어떻게 하라고 했냐면
네가지 마음을 일으키고 또는 네가지 마음에
머무르고 또 여섯가지를 실행해라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런 내용이 정확하게 딱 나와있는 건 아니지만
금강경 전체를 보면 네가지 마음을 일으키고
발하고 그리고 여섯가지 행을 해라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면 금강경에서 말한 이 네 가지 마음은
한문으로 얘기하면 여러분들이 조금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아서 제가 조금 의역을 했는데
첫 번째가 중생심을 쉬지 못할것 같으면
넓고 큰 마음을 내라. 이걸을 광대심이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대승정종분에 나옵니다.
불고수보리야 제보살마하살은 응여시항복기심
모든 보살마하살은 응당히 그마음을
항복시켜야 하느니라. 이렇게 얘기가 나오고
모든 소유일체중생 약난 태난습화
유색무색유상무상비무상 모든 악의 열반까지
모든 중생들을 다 열반에 이르도록 하겠나이다
그런 마음을 내라고 금강경에 나옵니다.
그것을 의역을 하면 넓고 큰 마음을 가져라
금강경에서 말하는 마음수행 첫 번째가
넓고 큰마음을 가져라 뭐 어떤 종류의 중생이든
보이든 보이지 않든 또는 색을 가지고 있든
색을 가지고 있지않든 그 어떤 것이든 내가
다 열반에 들게 할 것이다 뭐 영가님도
우리가 뭐 보이진 않죠? 이 무색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무색도 내가 금강경을 통해서
열반에 들게 하리라 이러한 마음을 내는 겁니다.
그게 첫 번째 광대심이고 두 번째는 무여열반에
모든 중생들을 다 열반에 들게하겠다 그런 마음을
내게 되면 좀 세세하게 우리가 좀 정성껏 한다고
그러죠? 일심으로 내가 다 한분 한분 해탈케 하겠다 하면
뭉퉁거려서 내가 다 열반에 들게 했다라고 하면
그 다음에는 이 분 이분 이렇게 가까운 가족분부터
그 다음 유튜브 포교 신도분들부터 이렇게 한 분 한분을
다 또 열반에 들게 하겠다 이게 바로
두 번째 한마음을 가져라 일심입니다.
세 번째는 항심인데 항심은 똑같은 마음을 가져라,
똑같은 마음을 내라. 이게 뭐냐하면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하기 전 또는 열반에 들게했다 하기 전이나
하고 난 후나 마음이 똑같아야 된다는 거죠.
뭐 내가 이만큼 백명을 포교했으니까 나는 이만큼
백명이나 포교했어 이렇게 변화된 마음이 아니라
항상 똑같은 마음을 가져라 이게 세 번째 마음입니다.
그런데 중생은 이게 잘 안되죠?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랑 틀리거든요. 들어가기 전에는 급하지만
나올 때는 여유로워지잖아요. 똑같은 상황인데
그 마음이 들어가고 나올 때 차이가 나거든요.
그런데 금강경에서는 똑같은 마음을 가져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도 연애할 때랑 결혼했을 때가
틀리거든요. 그리고 또 자리에 따라서도 사람이 변해요.
소임을 맡기 전에는 아주 하심하고 양보하고 하다가
본인이 자리하나를 맡으면 뭐나 된 것처럼 으스대고
다니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건 항심이 안생겨서 그래요.
항상 똑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한문으로하면 부전도심인데
마음을 바꾸지 마라는 겁니다. 바뀐 마음으로 살지 마라.
금강경에서 그랬거든요. 이렇게 열반을 들게 하는데
열반에 들게 한 중생이 한 중생도 없다 그렇게 마음을
가져야하는데 만약에 내가 열반에 들게했다라고 하면
그거는 보살마하살이 아니다 그랬거든요.
왜냐하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보살은 보살이 아니다 라고 이렇게
얘기가 나와요 그래서 본인이 했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바뀌면 안 됩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이 네 가지 첫 번째가 뭐라고 했습니까?
넓고 큰마음을 가져라 두 번째가 일심,
그리고 세 번째가 항심, 네 번째가 마음 바뀌지 마라.
이러한 마음을 내는 거예요. 본인이 그러한 휴,
망상을 쉬는 못할 거 같으면 이러한 네 가지 마음을
발, 일으켜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본인이 망상을 쉴 수 있으면 이러한 마음을
일으킬 필요는 없죠. 그냥 그대로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이러한 마음을 내어서 여섯 가지를
수행을 해야 하는데 그 여섯 가지가 무엇이냐 하면
대승불교에서는 육바라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금강경에서는 무주상보시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육바라밀을 한 단어로 줄이면 보시에요.
그래서 금강경 묘행무주분에 보면 보살은
법에 있어서 응무소주 행어보시해라 해요.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고 또 색보시,
색의 보시에도 머물지 말고 또 성향미촉법 보시에도
머물지마라 이런 얘기가 나오거든요.
금강경에서는 보시가 곧 육바라밀인데
이 육바라밀은 다 아시죠?
첫 번째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이 여섯 가지인데
이 여섯 가지 바라밀을 하나로 얘길 한다면
보시 바라밀입니다. 이 보시바라밀 앞에 중요한 단어가 붙죠.
무주상, 무주상보시를 행하는 게 금강경의 여섯 가지 행입니다.
그러면 하나하나 살펴보자면 보시는 뭐가 있겠습니까?
첫 번째 재물 보시가 있죠.
여러분들의 재산이나 물건이라든지 하는
재물로 하는 보시가 있고
두 번째가 무애보시라 해서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거죠, 두려움에 떨고 있거나
어려운 사람에게 보시를 행함으로써 그 사람이
편안해지는 그러한 무애보시가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법으로써 공양을 올리는
법보시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재물 보시를 많이 하고 스님들은
재물보시 보다는 무애보시와 법보시를 많이 해요.
스님이라고 보시를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매일 살아가면서 무애보시 즉 여러분들이
스님 보면 편안해 지잖아요, 말 안 해도 만나면 편안하고
한마디라도 해주면 또 굉장히 힘을 받거든요.
그런 게 다 무애보시이고 또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법을 알려주는 것과 또 같이 참선을 하면서 지도해
주는 거 이런 게 다 법보시거든요.
스님들은 매일 여러분들에게 보시를 해요.
재보시는 알죠? 아까 말한 대로 재물로
보시하는 거 무애보시는 육바라밀로 따지면
인욕하고 지계에요. 여러분들도 계를 잘 지키고
참으면 그 사람 굉장히 편안하다 안정되어 있다
그러잖아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백 번 싸워가지고 이기는 거 보다 한 번 참는 게
더 낫다고 그러거든요. 싸우는 거보다 참는 게
낫다는 거죠. 석가모니 부처님도
인욕바라밀을 했어요. 할절신체 당했잖아요.
그런대도 인욕을 했단 말이에요.
그것이 부처님이 택한 인욕바라밀이다 그래서
지계와 인욕은 무애보시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법보시는 예를 들어 이렇게 법문을
하더라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또 개인적으로
수행도 해야 되고 또 지혜가 있어야 설법도 하니까
준비가 만만치가 않아요.
선정 지혜 정진이 다 법보시 입니다.
그래서 이 여섯 가지 바라밀이 결국은 다
보시인데 이 보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응무소주 행어보시해라 그랬거든요.
머무는 바 없이 보시해라.
집착 없는 마음으로 보시를 해라.
집착 없는 마음으로 이 육바라밀을 행하고
집착 없는 마음으로 재보시 무애보시 법보시를
행하라 이렇게 얘기가 나와요.
공덕에 대해서 얘기를 할 텐데 보시 자체가
공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금강경에서는 이 보시 자체를 하되 머무느냐
머물지 않느냐가 또 중요하거든요.
머물지 말고 보시를 해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엄청난 보시를 합니다.
재보시뿐만 아니라 무애보시 법보시도 하죠.
요즘은 선생님 불러다가 하나하나 다 가르치거든요.
그렇게 한다고 다 극락에 가느냐하면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무주상이 안되고 뭔가 바라는 마음으로
했기 때문에 물론 좋은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고
잘 살겠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이라든지 해탈에
이르지는 못한다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보시를 할 때는 무주상보시를 해야 한다 그
렇게 얘기를 합니다. 베푸는 행동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마음을 가지고 보시를 하느냐가 핵심이라는 거죠.
금강경에서 말하는 수행이 무엇인가 간략하게
요약을 하면 중생이 가지고 있는 아인중생수자상을
다 없애야 하는데 없애려면 쉬라고 했잖아요.
쉬는 게 안 되면 네 가지 마음을 일으키고
그 일으킨 마음을 가지고 여섯 가지 보시를 해라
그게 이제 금강경에서 말하는 수행이고 무주상
보시입니다. 금강경에서의 수행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금강경에서 말한 수행, 아까 말한 서사
해설 수지 독송을 하면 어떤 공덕이 있을까 여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금강경을 우리가 구분하면
일분에서 십사분 그리고 십오분에서 삼십이분
이렇게 인위적으로 나눌 수 있지만은
이게 한 권짜리거든요.
이 금강경을 공부 많이 하신 스님이 내용적으로
세 부분으로 나눴어요.
일분에서 칠분까지를 대체분이라 해서 금강경의
몸통과 같다합니다. 몸통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핵심이라는 말이지요. 그리고 팔분에서
십육분까지를 교량분이라고 합니다.
비교할 교자에 헤아릴 량자를 써서 교랑분이다 이렇게
말했는데 재보시와 법보시를 비교를 합니다.
여러분들 오늘 재물공양과 법공양도 올렸는데
그 두 가지를 비교를 해 놓은 게 여기
팔분에서 십육분까지입니다.
그리고 십칠분에서 삼십이분까지는 중생들이
의심할 만한 내용들 예를 들어서
삼천대천세계칠보로 보시를 했는데
그 복덕이 많겠습니까 하는데 아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그리고 부처님을 32상 80종호로
볼 수 있습니까 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라고
중생들이 의심할 만한 부분들에서 끊어주기 때문에
단의분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내용적으로는 이 세부분으로 나뉩니다.
그러면 오늘 제가 다 할 수는 없고 오늘 핵심인
재물공양을 올린 공덕과 금강경을 독송하고 사경한
법공양의 공덕 이 두 가지를 비교한 게 금강경에
나오거든요. 제팔분 의법출생분에 보면 그런 얘기가 나와요.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 가득한 칠보로 보시를 하면
이 삼천대천세계라 하면 소천 중천 대천인데
그걸 다 묶어서 삼천대천세계라 하는데
쉽게 말해서 여기 법당 안에 돈과 보물로 꽉
채웠다고 합시다 이렇게 꽉 채운 게 저기 해운대
모래알처럼 많고 그 해운대가 그 많은 모래알처럼
많다고 하면 그 해운대가 꽉 찬 것 만큼 보시를
한다면 복이 많겠습니까? 그렇게 묻거든요. 그
러니까 많다고 했어요. 부처님께서 중생 생각으로
복이 많다 이렇게 얘기를 한 겁니다.
그런데 그 아래 부처님이 이어 말씀하시는데
그 복덕도 많지만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이 만약에 어차경중, 전체가 아니고
사구게 만이라도 예를 들어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이러한 사구게 만이라도 독송하고 사경하고
남에게 알려주는 것으로도 그 공덕이 아까 앞에서
말한 해운대에 가득 찬 칠보로 보시한 공덕보다
훨씬 수승하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럼 왜 그러할까? 왜 꽉 찬 재물로 보시한 공덕보다
단순히 사구게를 베껴 쓰고 또는 입으로 말을 하고
남에게 해설해주고 또 책을 보고 공부를 하면 이 짧은
사구게가 그 앞의 많은 재물보시보다 큰가 하면
부처님께서는 일체제불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이 경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부처님과 부처님의 깨달음이 경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 공덕이 훨씬 수승하다 얘기를 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재물을 보시하고 바라밀을 행하면
선근종자가 심어지는데 이생이 다 되어 끝났다 하면
과보를 받게 됩니다. 어떤 과보냐 하면 인천,
인간과 천상의 수복, 인간에 태어나거나 천상에
태어날 수 있는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인천 수복 가지고는 절대로 해탈이
안 됩니다. 성불할 수 없다는 말이죠.
그럼 성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 법공양을 해야 합니다. 보시를 하면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지만은 한량없는 복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 복이 다한다,
한량없는 복을 받기 위해서는 이 법공양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법공양이라 하면
경전을 베껴 쓰고 독송하고 해설하고 이런 게
다 법공양이거든요. 이걸 하면 일체제불,
모든 부처님과 일체제불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즉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한량없는 공덕이기 때문에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예요.
하나는 복을 다 쓰게 되면 언젠가는 없어지지만
이 경에서 나오는 복은 무한이기 때문에 비교가
안 되는 거죠. 그러면 왜 금강경에서 부처님하고
부처님의 깨달음이 나오느냐 궁금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아까 다들 독송을 했는데 부처님이 나왔습니까?
안 나왔죠? 그러면 왜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느냐 하면
이런 겁니다. 여러분들이 금강경을 정성껏
독송을 하면 점점 식이 맑아져요.
그러면 뭘 보게 되느냐하면 컵이라든지
내 몸이 불생불멸이라는 걸 보게 돼요.
처음에는 안 보이다가도 계속 하다보면
본인의 생각이 맑아져서 여러분들 생각에
영가님들은 예전에 기억에 있던 영가님들인데
그 영가님들이 불생불멸이라는 걸 알게 되고
또 내 몸이 불생불멸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그걸 관조한다고 합니다. 문자를 계속 봄으로써
관을 하게 되는 거예요. 관조, 관조를 계속
하다 보면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 본래의 반야를
알게 됩니다. 그 반야가 부처님이거든요,
부처님의 깨달음이거든요.
반야를 드러내서 행동하는 삶이 부처라고 하고
사람을 우리는 부처님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경에서 나오는 이유가 다 있는 거예요.
경전을 통해서 문자를 통해서 계속 읽게 되면
관조를 하게 되고 내 몸이 불생불멸이다 거기서
점점 더 깊어지면 불생불멸 그 안에 본래의 내가 있구나
그게 부처님이고 그걸 아는게 깨달음이거든요.
그래서 그 공덕은 앞에 재물 보시한 거 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재물을
보시하면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천상에 태어나는 공덕은
분명히 있지만 아까 말한 법을 공양 올리면
부처님과 그러한 깨달음을 알기 때문에 1이나 2로
비교할 수가 없는 거죠. 본래 그대로의 모습을
실상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딱 보는 게 바로 부처님
아닙니까? 그만큼 법공양이 수승하다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방금 독송했던 순간이 그렇게 소중하다
그거예요. 그런데 한 번으로 끝나면 안 되고
계속 꾸준하게 해야 되는 겁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공덕이고 이 금강경을 믿고 믿는 마음으로
모든 제불과 제불의 깨달음이 이 경에서 나온다는 걸
믿고 기복심피 심신불역 거기에 믿음을 거스르지
않으면 그 복은 수승하다 이렇게 얘기가 나와요.
또 하나는 무엇이냐 하면 십오분에 나오는데
거기 보면 아침 점심 저녁으로 이 한량없는 몸으로
보시를 해요. 재물만이 아니라 본인의 몸을 가지고도
보시를 합니다. 어느 겁 동안 삼천대천세계
이 모든 무량백천만억겁동안 일겁이 엄청나게
긴 시간인데 무량한 겁 동안 본인의 몸을 가지고
아침에도 보시를 하고 점심에도 보시를 하고
저녁에도 보시를 해요.
그런데 그러한 것보다 여기에서 말한 부처님을
믿고 그 믿음에 거스르지 않고 수행을 하면
그 복은 훨씬 수승하다고 얘기가 나와요.
그래서 이 공덕이 엄청난 거죠.
금강경에서 말한 이러한 공덕이 무얼 말하는
거냐 하면 여러분들도 금강경을 독송하는 이유가
베껴 쓰는 이유가 물론 오늘 같은 백중날은
영가 천도를 위해서 독송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본래의 나를 찾는 게 목적이거든요.
아까 말한 마음 수행, 본래의 나를 찾는 게
금강경의 독송인데 어디에서 나를 찾느냐 하면
여러분들과 제가 알고 있는 힘들어하고
걱정하고 슬퍼하고 아프고 병들고
그러한 나라고 생각하는 거기에서 본래의 나를
찾는 방편이 금강경이 되는 겁니다.
본래의 나를 찾으면 내가 생로병사 우비고뇌에서
불생불멸의 불구부정 부증불감한 그러한 나를 찾는 거죠.
그게 또 하나의 금강경의 공덕이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래의 나를 찾으면
어떻게 되느냐? 여러분들 안에 있는
첫 번째 청정심, 청정법신이라고 하는데
청정한 부처님을 여러분들이 알게 되고
이제 본래의 나를 알게 되면
두 번째가 원만부심 모든 공덕을 다 받들어 낼 수 있는,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그러한 원만보신
이 보신불을 구족하게 되고
마지막 신통원력 부처님이라고 하는데
천백억 화신불이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이러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또 이런 사람에게는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러한 화신불을 여러분들이 구족하게 된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본래의 나를 찾으면..
그러한 삼신불을 청정하고 원만하고 신통원력한
부처님을 찾게 되고 또 하나는 부처님도
이걸 가지고 있는데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이 찾으면
첫 번째가 육안을 얻어요.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으면 눈 있죠?
육안을 얻고 두 번째 천안을 얻어요.
눈앞만 보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어떤 걱정을 하고
이 사람은 어떤 고통이 있고 이러한 멀리 볼 수 있는
천안을 가지게 되고 그 다음 혜안을 가지게 됩니다.
혜안이 뭐냐 하면 이 사대원이 불생불멸이고
무아라는 것을 아는 겁니다.
그 다음은 법안을 가지게 됩니다.
법안은 보살이 가지고 있는 눈인데 그렇게 되면
한 분 한분을 다 도와주는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는
그러한 눈을 가지게 되고 마지막이 불안인데
부처님의 눈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금강경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청정법신 원만보신
천백억 화신 이러한 삼불을 만나게 되고
또한 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을 알게 되어
얻게 된다 이 말이죠.
금강경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정리를 한다면 여러분들이 오늘 이렇게
소중한 날 금강경을 수지 독송 해설 서사를 했잖아요.
그래서 이 공덕으로 여러분들 내면에
본래 가지고 있던 삼신과 오안을 구족하시고
또 그러한 금강경의 공덕을 통해서
영가님들한테 불생불멸의 몸을 알려주는 것이
오늘 백중 3재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백중 기간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내용을 아셨으니까 금강경을 꾸준하게
독송을 하시고 독송한 공덕으로 많은 복덕을
얻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마치겠습니다.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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