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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르 트리오(Beaux Arts Trio, 1955~ )
M. 프레슬러(피아노), 버나드 그린하우스(첼로), 다니엘 길레(바이올린)가 모여 만든 미국의 3중주단으로, 내한공연을 가진 적도 있어 한국에서 잘 알려진 트리오이다. 1954년 미국 탱글우드의 버크셔 음악제 콘서트에서 데뷔했고, 1960년 에든버러 음악제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 단체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지휘자 샤를 뮌시가 '티보-카잘스-코르도 트리오를 계승한 최고의 트리오'라 평할 만큼, 오늘날까지 소규모 실내합주단의 대표적 위치에 서 있다.
팀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프랑스 태생의 길레의 뒤를 이어 오늘날까지 이스도어 코헨이 바이올린을 맡고 있다. 코헨은 뉴욕 태생으로 줄리어드 스쿨을 나온 뒤 1947년 이래 '리틀 오케스트라'라는 합주단의 리더와 '부다페스트 4중주단'의 객원 멤버로 활동했던 수준급 연주자이다. 프레슬러는 독일 마크데부르크 태생으로 나치 치하 때 이스라엘로 망명한 독일 태생 피아니스트로, 17세 때 클로드 드뷔시 상을 받고 나서 세상에 알려졌다. 한편 첼로의 그린하우스는 파블로 카잘스의 제자로 미국 줄리어드 스쿨 출신이며, 1707년 제작된 스트라디바리 '파가니니'를 가지고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쇼팽의 피아노 삼중주곡이라고 하면 많은 애호가들이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쇼팽의 피아노 삼중주곡은 그의 얼마 되지 않는 실내악 레퍼토리 가운데서도 좀처럼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하는 레퍼토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고전, 낭만주의 거목들의 걸작품들에 대한 인기가 너무 높아서 상대적으로 좀 가려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쇼팽 음악은 약간의 약점을 지니고 있긴 하다. 사실 이 악곡에는 쇼팽이 자신의 악기인 피아노는 물론 자신이 특별히 좋아했던 첼로 파트까지도 훌륭하게 썼지만, 바이올린 작법에서는 고음역 악기의 장점을 충분히 잘 살리지 못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비평가들의 중론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쇼팽의 몇 작품 되지 않는 실내악곡 가운데서도 최초의 작품인 것을 감안하면 음악적 약점은 충분히 감수하며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어린 나이의 작품 치고는 훌륭한 편인데, 사실 쇼팽은 영감을 남발하여 아주 쉽게 작품을 쓰는 작곡가가 아니었다.
천재 쇼팽이 모차르트처럼 머리 속에서 이미 완성된 멜로디를 그저 편지 쓰듯이 옮겨 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별 준비 없이도 그 자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던 놀라운 재능을 타고난 쇼팽이었지만, 하나의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 그는 때때로 혹독한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그가 작품창작의 고통을 산고에 비유한 일은 설득의 차원을 넘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갑자기 떠오른 주제가 빈자리를 채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가....결국 전체가 마치 모자이크처럼 틀이 잡힌다. 이 정도로 다 된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내가 마침내 이 작품에서 완전히 손을 떼려면, 엄청난 노력과 고통은 물론 많은 눈물과 잠 못 이루는 밤을 겪어야만 한다. 내가 한 작품을 끝낸 후에 느끼는 기분은 아이를 낳은 후 기진맥진한 여인의 그것과 같을 것이다.“
피아노 삼중주곡에서도 산고의 고통 같은 힘겨운 노력의 흔적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쇼팽이 이 G단조 삼중주곡을 쓴 시기는 1828년과 1829년 사이였다. 아직 바르샤바에 있을 때였다. 그는 1820년대에 빈을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쓰게 된 몇몇 작품들 가운데 하나였다. 비록 초기 실내악곡이지만 만년 작품 첼로 소나타처럼 규모가 크다.
쇼팽은 이 작품을 포츠난의 라지비유 대공에게 헌정했는데, 대공은 바르샤바와 포츠난에서 쇼팽을 자주 초대했던 사람이었다. 대공이 첼로를 잘 연주했던 사람인데다 쇼팽 자신도 그 악기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이 삼중주곡에서 첼로 파트는 특히 빛난다. 가장 빛나는 부분은 역시 자신의 악기였던 피아노의 파트다. 피아노의 눈부신 표현력은 그의 다른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것 그대로다. 하지만, 대담한 형식과 화려한 연주효과를 노린 이 작품에서도 세 악기의 균형에는 세심한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피아노 삼중주에서 세 악기의 균형은 현악 사중주에서의 그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쇼팽은 이미 젊은시절부터 잘 깨닫고 있었다.
쇼팽은 평소 바흐 음악의 균형미를 철저하게 신봉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바흐의 음악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균형을 이룬 기하학적 조형물처럼 생각했다. 그에게 바흐의 음악은 인류가 창조한 음악 가운데 가장 이상적으로 고안된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항상 바흐의 음악을 존경과 경외의 대상으로 숭배했으며, 음악가인 자신에게 항상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하는 ‘일용할 양식‘으로 생각했다. 제자들에게도 꾸준히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를 연습시켰다. 심지어 자신의 작품연주회를 앞두고도 자신의 작품을 연습하기 보다는 바흐의 작품을 연주하면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 쇼팽이었다. 그가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반드시 숙지해야 할 최고의 교본으로 꼽은 것은 바흐의 ‘평균율’이었는데, 이 사실은 그가 얼마나 균형과 절제의 미덕을 중시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얘기는 그의 실내악곡 군데군데 찾아볼 수 있는 균형감각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1악장 알레그로 콘 푸오코는 독창적인 조성의 변화가 눈에 띄는 소나타 악곡이다. 막중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리졸루토의 패시지가 나오면 바이올린이 선율을 이끌고 피아노가 그것을 다시 이어 받아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상당히 화려하게 느껴지는 마지막의 코다는 g단조 악곡이다.
2악장은 스케르초 악곡으로, 다섯째 마디에서 주제 선율이 바이올린에 의해 등장한다. 주부가 폴리포니 스타일로 전개되고 있고, 트리오 부분은 겸허하면서도 화사한 C장조 선율로 이어진다.
3악장은 벽두의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이 순서대로 날카로운 동기를 이어붙이며 시작하는데, 꽤 인상적이다. 그 동기들은 이 아다지오 악곡 전체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중간에 주제가 피아노에 부여될 때는 표정이 약간 바뀌면서 진행되는 데 절묘하다. 중반 이후에는 전혀 새로운 멜로디가 출몰하지만, 이전에 나왔던 예각적인 동기가 그 진행을 이내 막아선다. 악곡의 마무리는 피아니시모로 사라지는 형태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의 잔잔하고 끈끈한 속도는 내면적 성찰을 깊게 하는데 크게 일조한다. 느린 악장에서는 쇼팽 특유의 우아하고 달콤한 악상이 들어설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지만, 쇼팽은 음악을 매우 심각하게 끌고 간다. 전체 악장 중에서 가장 깊은 사색이 있는 명상 악곡이라고 할 수 있다.
4악장 피날레는 g단조의 알레그레토 악곡이지만, 민속춤 주제에 의한 경쾌한 론도다. 리드미컬한 주제가 피아노로 사뿐사뿐 제시된 후에는 나머지 두 악기가 함께 어우러진다. 부 주제는 첼로의 d단조 패시지로 시작한다. 하지만 역시 악곡의 이미지는 여전히 경쾌하며 세 악기가 격정적으로 경쟁하며 힘차게 절정으로 치닫다가 힘차게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