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시인을 찾아서
.
![](https://t1.daumcdn.net/cfile/cafe/155C943A50A9D4E835)
하늘에 쓰네 / 고정희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하늘에 쓰네
내 먼저 그대를 사랑함은
더 나중의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내 나중까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보다 더 먼저 즐거움의 싹을 땄기 때문이리니
가슴속 천봉에 눈물 젖는 사람이여
억조창생 물굽이에 달뜨는 사람이여
끝남이 없으니 시작도 없는 곳
시작이 없으니 멈춤 또한 없는 곳
수련꽃만 희게 희게 흔들리는 연못가에
오늘은 봉래산 학수레 날아와
하늘 난간에 적상포 걸어놓고
달나라 광한전 죽지사 열두 대의 비파에 실으니
천산의 매화향이 이와 같으랴
수묵색 그리움 만리를 적시도다
만리에 서린 사랑 오악을 감싸도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동트는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해지는 하늘에 쓰네
- 시집 <아름다운 사람하나>(푸른숲, 1997)
사랑의 기쁨만을 온전히 노래하고 있는 한 편의 시에 담긴 혼신의 사랑과 믿음 맹세 아!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가?
사랑의 기쁨에 유통기한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픈 마음이 쓸쓸해질 수 있는 이 겨울날을 아련하게 달궈주고 있으니 ....
내심 그럴싸하고 반듯한 건물에 잘 꾸며진 곳을 상상했던 내게 시인의 생가는 내 상상에 반전을 주었다.
의도적으로 꾸며놓지 않는 시인의 생가는 평범한 농가주택이라 문 앞에 고정희 생가라는 표지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 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736913D50AB322A24)
1991년 6월9일 43세의 한창 나이에 지리산 등반 도중 급류에 휩쓸려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시인으로서
여성운동가로 31세에 등단하여 12년 동안 시인의 실천적 삶을 10권의 시집은 말해주고 있다 .
사십대 / 고정희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끄러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쭉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녘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 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 고정희 遺稿詩集(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 중에-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니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56]
(『이 시대의 아벨』. 문학과지성사. 1983)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4편 수록 중 1편. 2007)
이 시는 갈대를 통해 질긴 생명력과 시련과 고통을 희망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시련을 극복하면 더욱더 견고해지는 삶이 펼쳐 질 수 있다는 시인은 고통은 외면이 아니라 수용하는 자세로 시혼에 힘을 불어넣었다. 질곡 속의 삶을 긍정적인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하는 시인의 시집으로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눈물꽃(1986)》 《지리산의 봄(1987)》 《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 등이 있다. 어떤 시련에도 절망하지 않는 의지로 사랑을 노래한 시인은 83년 대한민국문학상을 받았다.
유고시집으로《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1992)창작과비평사》가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1D513C50AB381E1F)
첫댓글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를
큰아이가 국어시간에 배운 시라며 스마트폰 네이버에 검색해
가족 모두 차안에서 몇 번이나 읊으며 눈물로 감동하며 들은 시..
큰아이도 감성이 풍부하군요...."상한 영혼을 위하여" 애절한 시구절 찡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