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불교신문 4월29일자에 게재된 안심정사/백상선원 소개기사입니다.
현대불교_2009_04_29_729_32.pdf
모두에게 복이 가득한 도량 , 안심정사 백상선원
복을 나누는 방법으로 현실에서 인간정토 건설
논산 연무읍에 자리한 약사정토도량 안심정사(安心精舍). 안심정사는 논산에서 ‘기도가 통하는 절’로 통한다.
1991년 창건된 안심정사는 당시 신도 한 세대로 시작했지만, 18년이 지난 지금 논산에서 관촉사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신도들이 찾는 사찰로 평가받고 있다. 뿐만이 아니라 영남과 호남, 서울 등지에서 기도를 하기 위해 모여드는 신도들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논산 매표소에 근무하던 천주교 신자가 매표소에서 하도 많은 사람들이 안심정사를 물어봐 안심정사를 찾아, 그 인연으로 신도가 된 일화도 있을 정도다.
지역사회의 사랑을 받는 안심정사가 있기까지는 법안 스님의 원력과 노력이 있었다. 10년 동안 연무중앙초교 월 5명에게 무료급식 지원하고, 8년간 매년 경로잔치 등을 열었다. 공주교도소에서 재소자를 위한 독경대회, 찬불가대회 등으로 법무부 장관상 및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또 논산 육군훈련소와 육군부사관학교 등 지역 군부대 법당 등에 법회지원 및 경전 및 찬불가 만개 등 군포교에도 적극 나섰다.
안심정사는 사경당과 선방 등 수행시설을 비롯해, 도서관과 다실 등 다양한 문화공간을 갖추고 지역 신행활동을 이끌고 있다. 특히 도서관에는 각종 대장경과 불교전문도서 및 관련서적이 5천여 권 이상이 비치되어 있고, 청소년과 젊은 신자들을 위한 지장경 강독 및 해설 강좌 및 DVD 등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상담과 교육도 진행돼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안심정사의 5m 높이의 관음보살상은 93년 조성된 후 소원성취 뿐만 아니라, 허리디스크를 비롯한 질병치료에 영험을 보여 많은 신도들이 찾고 있다.
최근 경제난으로 어려움에 고통 받는 신도들이 늘어남에 따라 주지 법안 스님은 교육부장을 끝으로 종단업무 일선에서 물러나 신행증진과 상담치료 등에 나서고 있다. 논산뿐만 아니라 서울지역 신도들을 위해 강서구 등촌동에 <백상선원>을 마련해 신도들과 기도객들이 마음 편히 정진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 놓았다.
만약 중생이 눈멀고 귀먹고 벙어리이거나 또는 문둥병, 간질병 같은 온갖 병에 시달리다가도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나의 이름을 부른다면, 그 힘으로 말미암아 모든 감관(感官)이 온전하고 모든 병이 소멸하여 마침내 보리 성취하기를 원한 것이요. 만약 중생이 갖가지 불구가 되어 추악하고 어리석고 눈멀고 말 못하거나 또는 앉은뱅이, 곱사등이, 문둥이, 미치광이 같은 갖은 병고에 시달리다가도 나의 이름을 듣고 진실한 마음으로 부르고 생각한다면, 누구나 단정한 몸을 얻고 모든 병이 소멸하여 마침내 보리 성취하기를 원한 것이요. -약사여래본원공덕경-
법안 스님 약력 : 한국불교태고종 안심정사 주지 법안 스님
20년을 약사여래기도에 매진. 철학박사(원광대, ‘한국 약사정토사상에 관한 연구’ 논문). 고려대 정경대학 경제학과 졸. 동방불교대학 교수 역임. 태고종 총무원 기획부장, 교무부장, 교육부장 역임. 현 BBS 불교방송 자문위원. 현 고려대학교 불자교우회 지도법사. 현 보문고등학교 불자교우회 지도법사. 현 안심정사, 백상선원, 다음까페 ‘藥師山 안심정사’ 주석.
“기복(祈福), 복을 빌어야 합니다”
안심정사 주지 법안스님, 기도로 병마극복 길 제시
약사신앙 연구로 박사학위·상담전문가로 ‘명성’
누구든지 좋아하여 구하는 것을 다 이루나니-隨所樂求
건강하기를 구하면 건강을 얻게 되고-求長壽得長壽
부귀와 풍요를 구하면 부귀와 풍요를 얻게 되고-求富饒得富饒
인덕과 관운을 구하면 인덕과 관운을 얻게 되고-求官位得官位
자녀를 얻고자 하면 자녀를 얻게 된다.-求子女得子女 <약사경>
“복을 빌어야 합니다. 복이란 ‘좋은 인연’이며 복권당첨과 같이 일확천금을 바라는 ‘요행’과는 다릅니다. 좋은 인연은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오래 갈 수 있고, 직접적인 원인과 간접적인 원인이 다 갖춰져야 하므로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소중히 여겨, 잘 빌고, 잘 아끼고, 잘 나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법안스님은 약사경의 “구하면 다 얻는다.”는 구절을 근거로 실용적 불교를 주장하고, 신도들은 이같은 가르침에 따라 기도와 함께 현실에서의 복을 비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그결과 신도들 하나하나가 가정이 화목해지고 자녀들이 한결같이 잘되고 관운이 창성하게 되었다. 이 또한 현실에서 인간정토를 건설하는 것이 아닐까?
약사여래 부처님의 가피로 불치병 난치병 신유(神癒)
법안 스님은 7년 동안 앓아오던 자신의 폐결핵을 약사 기도로 완쾌 한 이후 약사사상 철학박사학위를 취득 하는 등 학문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기도정진을 수 십년 간 해왔다.그 결과 스님은 중생 모든 병을 고치는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Medicine Master Buddha) 신유(神癒)능력을 얻게 됐다.
스님의 신유 능력은 주변 사람들의 체험담에서 드러난다. 안심정사 신도회 부회장은 2003년 2월 초 부천 순천향병원 중환자실에서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사경을 헤메는 자신의 동생을 스님이 안수하자 21~24회를 오가던 심장박동이 다시 빨라져 살아났다고 한다.
또 한 신도는 소변을 누지 못해 배가 부풀러 오르는 증상으로 스님에게 전화상담한 후, 스님의 “소금양치질을 하라”는 처방을 따르자 통증이 사라지고 완쾌됐다고 한다.
더나가 2008년 귀신이 들려 목이 돌아가고, 헛소리를 하던 논산 모 초교 어린이가 스님을 친견한 뒤 치유된 퇴마일화는 논산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일이다.
불ㆍ난치병 치유하는 약사신유(藥師神癒) 능력에도 스님의 겉모습은 평범하다. 온화한 미소 속에 범상함을 감춘 스님은 “소원은 간절한 사람만이 이룰 수 있다”며 “구하지 않고서 얻어지는 것 없으니,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 또렷이 답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오랜 병을 앓아온 사람에게 “기도하라”는 상담은 범부도 할 수 있지만, 법안 스님의 처방은 독특하고 정곡을 찌른다. ‘한 생각의 차이’는 생과 사를 가르기도 하기 때문에 그 ‘한 생각’을 돌리기 위해 법안 스님은 상세하게, 또는 무심하게, 때로는 불호령 등 상담자에 맞춰 대기설법(對機說法)을 핀다.
현실문제 상담을 중생교화의 방편으로 활용
“현실적 성취를 통해 마침내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약사신앙의 특징처럼 법안스님은 중생들의 현실문제 해결 상담을 통해 마침내 그들을 부처님께 이끌 수 있었다. 특히 신도중에는 개종한 분이 절반가량인데 이들은 모두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가 스님의 교화로 불교로 개종한 것이다.
스님은 부처님의 대기설법(對機說法)과 같이 교화 대상의 능력, 소질, 수준, 관심사항에 맞게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상담을 한다. 그리고 상담에 어린 시절 한학자(漢學者)인 부친께 배운 사주·기문둔갑과 대학에서 공부한 상담심리학, 그리고 수년간의 은행원 근무 등 사회생활 경험도 활용한다. 특히 청소년에게는 사주·기문둔갑으로 각자의 특기와 적성에 맞는 진로를 제시해, 마음을 안정시키고 공부 등 목표에 전념토록 도와 진학·취업에 성공한 사례가 많다.
상담과정에서 늘 자신을 낮추는 스님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상담분야 ‘전문가’다. 스님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약사신앙과 사상으로 석ㆍ박사과정을 마쳤다. 또 동방불교대학에서 정토사상과 실전상담심리 등의 강의를 통해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고, 각종 학회 등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학승으로서의 진가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런 전문지식에 오랜 포교 경험과 불법을 현실에 적용해 널리 펴는 고민이 함께 어우려 적시 적소에 어우러져 발현되는 것이다.
1년여 전 국내 주요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했던 30대 뇌종양 환자가 스님을 찾아왔다. 병을 낫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법안스님은 “당신의 병을 고쳐줄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어리석은 질문 같지만 많은 뜻이 포함돼 있었다. 그 환자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을 하면서 “제가 어리석었습니다”라며 울먹였다. 살아야 한다는 절박감 말고 무엇이 필요했을까. 정말 필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였던 것이다. 스님은 그 환자에게 이것을 깨닫게 해주었던 것이다. 자신의 병을 고쳐줄 누군가를 찾아다니기만 했던 그 환자는 정작 스스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의지는 상실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부터 마음을 모아 약사기도와 방생기도를 하던 그 환자는 마침내 병을 완치할 수 있었다.
“우리 도량은 약사여래 부처님의 가르침이 충만한 곳입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의 병을 얻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요. 모두 약사여래 부처님의 공덕일 뿐 제가 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연초에는 새해인사도 드리고 한해계획에 대한 조언을 들으려는 신도들로 안심정사·백상선원은 항상 붐빈다. 미국에서 불교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제자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이모 거사는 2008년 “올해는 시운이 없으니 주식투자 같은 것은 하지마라.”는 스님말씀을 따랐다. 처음에는 그가 근무하는 철도청 모 연구소에서 ‘바보’ 취급을 받았으나 몇 달 후 주가가 폭락하자 주변에서 그를 무척 부러워했다는 후문이다. 그 후 ‘경북 청도군 개발사업’에 투자하라는 지인의 권유에도 “특히 지금은 절대 하지마라!”는 스님말씀을 따랐는데, 2008년9월 군수는 구속되고 개발사업은 백지화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님은 “사주가 맞기는 합니다. 그러나 저는 보다 큰 부처님법을 믿습니다.”라며 목적과 방편의 주객전도를 경계하고, “상담 후 일회성 천도재보다는 꾸준한 기도와 수행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당부한다.
☎041)742-4557 02)2659-0460
“제가 복이 계속 되는 것은 부처님과 스님 덕분입니다”
아주자동차대학 김근식 교수는 국방과학연구소와 자동차부품연구원 등 국책 연구기관에 재직하던 중 안심정사의 신도가 되었다. 그리고 1996년에는 아주자동차대학 교수로 임용되었는데, 산학협력처장 등의 중책을 맡는 등 바쁜 업무 중에서도 토요철야기도에 꾸준히 참여하고 일승보살회에서 고익진 교수님께 사사받은 근본불교를 온·오프라인으로 강의하는 등 기도와 복 짓는 일에 소홀함이 없었다고 한다.
“2007년 제 처가 자가용을 폐차시킬 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몸은 전혀 다치지 았았어요. 유리를 가득 실은 화물차가 추돌했는데 기적이죠.”라며 말문을 연 김교수는 작년에는 딸이 원하는 대학에 2곳이나 합격했다며 활짝 웃었다.
“다른 신도들도 복이 끊이지 않아요. 군장성이 5명이나 승진한 해도 있었고, 옆에 김거사도 얼마 전 100억대의 공사를 수주했고...” 김정재 거사는 부처님께 귀의한 지는 20년이 넘었는데 2007년이 되어서야 법안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기도와 복 짓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건설업에 종사하는데 최근 5년 이상 별다른 성과가 없다가 기존 수주도 취소되는 불경기에 이러한 쾌거를 올린 것이다.
김거사가 빙그레 웃으며 귀뜸하는데 김교수가 몇 달 전에는 영국 케임브리지大, IBC로부터 ‘100대 과학자’로 선정되었으며 세계 3대 인명사전 모두에 등재되는 복을 받았다고 한다.
“제가 죽을 화를 면한 것은 부처님과 스님 덕분입니다”
2009년2월20일 새벽, 금은방을 운영하는 최모 거사의 전 재산인 6억여원의 금을 노리고 칼을 든 강도들이 들어왔다. “살기가 넘치는게 꼭 저승사자 같았어요. 옷을 벗고 무릎을 꿇으라는데 눈앞이 캄캄해져서 저항은 엄두도 못내고 부처님만 불렀어요.”라며 최거사는 그때의 두려움이 떠오르는 듯 손사래를 친다. 그때 강도 중 한명이 최거사가 간절히 염불을 하는 것을 보다가 안심정사 달력이 왜 이집에 걸려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최거사는 안심정사 신도라고 대답하자 법안스님에 대해서 아는대로 말해보라고 해서 교도소 재소자 포교를 하는 스님이라고 대답했더니 잠시 후 그 한명이 나머지 일행을 설득해서 묶었던 것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최거사가 금고 밖의 현금 2,300만원이라도 가져가라고 해도 “너를 살린 분은 법안스님이니 스님께 시주해라.”고 말하고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그날 오후 강도 중 그 한명이 법안스님은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참회를 했다. 그는 교도소에서 스님과 수차례 상담하고 수계식도 했었는데 그 절박한 상황에서 염불을 하는 최거사를 보고 스님의 가르침이 떠오르며 제정신이 들었다고 한다.
최거사 가족은 집에 강도가 들어왔지만 부처님과 스님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겼고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