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평해전과 전사자 영결식 불참한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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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일본 사이타마 출국 월드컵 결승전 경기 웃으며 관람![](https://t1.daumcdn.net/cfile/cafe/2211783B5570C7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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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일본 사이타마 출국 월드컵 결승전 경기 웃으며 관람
영화 연평해전과 전사자 영결식 불참한 김대중
연평해전 전사자 영결식 불참한 김대중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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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 배급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연평해전’은 한일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던 2002년 6월, 서해 연평도 NLL 인근에서 북한 경비정이 대한민국 참수리호 고속정을 기습 공격하며 50여 명의 사상자를 낸 해상전을 극화한 영화다.
이 교전으로 남한 해군 6명이 전사했고 1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보복 응징당한 북한 역시 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평해전’은 등장인물의 가족과 성장 배경에 다소 픽션이 가미됐지만 교전 발생 경위와 참혹했던 해상 전투를 시간대별로 리얼하게 그려 다큐 성격의 휴먼 실화극으로 빚어져 개봉(10일)을 앞두고 있다. 왜곡하기 힘든 실화 소재인 만큼 시사 직후 긴장감과 처절했던 격전 모습이 생생히 묘사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감독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당시 정치권을 도마에 올린 대목은 바로 전사한 병사들의 영결식 장면이 나온 후반부였다. 영결식장에서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실제 모습을 교차 편집하며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주요 정치인들이 이곳을 찾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극중 뉴스 앵커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결식 당일 2002 한일 월드컵 폐막식이 열린 일본 요코하마로 출국했다는 점을 상기시키기도 했는데 이를 놓고 여러 뒷말이 나올 전망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공은 크지만 당시 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김대중 정권에 대한 문제제기로 의미 있게 그려진 대목이었다”고 말한 배급 관계자도 있었다.
한 영화 관계자는 3일 “북한을 주적으로 묘사하는 건 너무 당연하지만 휴먼 감동극을 표방한 상업 영화라면 좀 더 극적이고 개연성 있는 영리한 접근법이 필요했다. 진부한 반공 이데올로기만 내세운 것 같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김무열 진구 이현우 주연 ‘연평해전’은 130분 분량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극화한 영화 ‘변호인’에 이어 NEW가 투자 배급을 맡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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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6월 29일 대한민국 서해 연평도부근 NLL(북방한계선) 일대에서 북한 해군의 도발로 일어난 교전. 발발시 언론사에서 '서해교전'이라고 보도했으나 국방부의 발표에 따라 제2연평해전으로 정정되었다.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 357호는 교전 후 예인 중 침몰하고, 승무원 중 6명이 사망, 19명이 부상하였다. 북한군의 등산곶 684호도 예인되었고,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통령 김대중은 제2연평해전 전사자의 영결식에 불참했으며 같은 시각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2002년 FIFA 월드컵 결승전 브라질 대 독일의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의 영결식에 직접 방문해서 조문했다.
당시 김대중은 북한의 무력 도발로 제2연평해전이 발발하여 국군 6명이 전사하였음에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4시간 35분만에 여는 등의 늦장 대응을 했다.
군통수권자인 김대중의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우발적 충돌로 결론지었고, 같은 내용의 북한 통지문이 오자 그대로 수용했다. 김대중은 교전 다음날 예정된 금강산 관광선을 출항시켰다.
제2연평해전 발발 다음날인 30일 김대중은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일본 사이타마로 출국하여 결승전 경기를 웃으며 관람했다. 교전 이틀 후 국군수도병원에서 해군장으로 거행된 합동영결식이 열렸을 때조차 김대중은 참석하지 않았으며 국무총리,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 등 내각과 군의 핵심 인사들마저 참석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군 장례식은 장례위원장 이하만 참석하는것이 관례라고 해명하였지만 해군장이었던 천안함 침몰 사건 희생자의 영결식에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영 국방장관은 참석했다.
이후 제2연평해전 전사자 추모식에도 김대중은 참석하지 않았고 이명박은 2012년 추모식에 참석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제2연평해전을 ‘잊혀진 전쟁’으로 부르며 당시 김대중 정권의 처우에 분노하고 있다.
고(故) 박동혁 병장의 아버지 박남준 씨는 “부상당한 아들의 면회를 기다리며 TV를 보니 대통령이 일본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며 “(출국한) 성남비행장에서 국군수도병원까지 몇 분도 걸리지 않는데…”라고 말했다.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 씨는 “서해에 전투가 벌어진 이후에 대통령이 출국한 것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전쟁이 나면 대통령은 밖에 있다가도 들어와야 합니다. 그게 정상적인 국가예요.”라고 김대중을 비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