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이가 이글을 퍼온 이유가 뭘까?
hyatt의 휴고에는 남편 덕에 여러번 가보았어
삼성 사대부고 선후배 부부 모임이 가끔있었지
근사한 그릇,웨이터의 지극한 접대,감칠맛 나는 프랑스 요리들
라틴계 보컬 그룹의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며
어떤땐 현악사중주의화음을 들으며
빨간 장미 꽃도 한송이씩 받았지
내 식사 매너는 어땠을까?
분명 어색했을 것 같다
우리식의 식사는 중국집이나 고기집에서 소주를 돌리면서 떠들썩했으니까
그런데 그 휴고가 파리스 그릴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좋은일 있을때 가보고 싶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가 쓴 ‘식사법의 문명에 대하여’라는 에세이가 있다.
시오노는 한 의류회사의 인터뷰 조건으로 알랭 들롱을 출연시킨 8년치 광고필름을 보여달라고 했다. 필름 속의 들롱은 유럽의 매력을 온 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시오노가 바로 유럽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을 정도로.
그러나 단 한 편 시오노가 만족하지 못하는 들롱의 모습이 있었으니 식사장면이었다. 광고제작자는 시오노의 지적에 공감한다. “그 장면은 몇 번이나 다시 찍었어요. 그러나 결국 잘 되지 않았어요.”
상류층 대저택의 식사장면. 들롱의 테이블 매너는 틀린 것이 없었다. 등은 곧게 폈으며, 식탁에 팔꿈치를 올려놓지도 않았다. 나이프, 포크, 스푼의 사용법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딸그락거리지도, 쩝쩝거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시오노의 눈에 들롱은 어색했다.
곰곰히 생각한 시오노가 도달한 결론은, 들롱이 테이블 매너에 너무 충실했다는 것이다. ‘어딘가 갑자기 배운 것을 금방 충실하게 실행하고 있는 듯한 점이 그의 매너에 나타났다. 벼락부자가 교과서대로 열심히 실행하려는 듯해 보이는 쪽이 힘들어진 것이다.’
들롱이 미남이긴 하지만 상류층의 식사장면에 어울릴만한, 어릴적부터 몸에 배어든 식사법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시오노의 평가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나는 들롱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한 외모를 지니고 있지만, 테이블 매너에 있어서는 그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테이블 매너의 최소한 8할은 하얏트호텔 ‘파리스그릴(Paris Grill)’에서 길러졌다고 말할 수 있다.
파리스그릴은 언제나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시간과 공간을 의미했다. 돈보다 삶의 여유와 풍류의 부자였던 아버지는 특별한 날이면 파리스그릴의 전신 ‘휴고(Hugo’s)’로 우리를 데려갔다. “엄마를 만난 것이 평생 가장 잘 한 일”이라는 아버지에게 가족의 가장 특별한 날은 결혼기념일과 엄마의 생일이었다.
어린 나에게 휴고는 축제였고 일탈이었다. 덥고 눅눅하고 지저분한 일상과 대비되는, 쾌적하고 산뜻하고 완벽한 이상향이었다. 짙고 풍요로운 나무색으로 마감된 실내. 은은한 조명과 테이블마다 놓인 촛불이 가볍게 일렁였다. 은밀하면서도 행복한 웅성거림이 레스토랑 가득 술렁거렸다. 절도있는 웨이터들의 능숙한 몸짓에 따라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앉으면 장미가 여성들에게 선사됐다. 초등학생이던 내 동생도 여성에 포함됐다.
눈부시게 하얏고 기분좋게 빳빳한 식탁보 위로 갓 구운 따스한 빵과 버터의 가운데 부분만으로 엄선해 만든 아이보리빛 버터가 나온다. 아버지가 주문한 식전음료 키르 르와얄(Kir Royale. 샴페인에 리쿼의 일종인 '카시'를 섞은 식전주)의 황금빛 액체 속에서 거품방울들이 바글바글 즐겁게 솟구쳤다.
3인조 필리핀 밴드는 아버지가 청한 ‘필링(Feelings)’을 화음으로 합창했고, 테이블 옆에서 디저트 ‘크레프 수제트(crepe suzette. 오렌지, 그랑마니에(Grand Marnier) 리쿼 등으로 만든 소스에 적신 크레프)’를 만드는 박자에 맞춰 라틴음악을 연주했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에게 늘씬한 웨이트리스 누나가 시가를 은쟁반에 받쳐왔다. 끝을 자르고 브랜디에 적셔 불을 붙인다. 웨이트리스 누나는 능숙한 솜씨로 춤추듯 시가를 돌린다. 아버지의 손에 건네는 시가는 어느새 타들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대개 풀코스보다 수프와 전채요리 등 간단하게 주문하곤 했는데, 당신이 내세운 부실한 잇몸보다는 가계부와 너무나 적대적인 식사영수증 때문이었으리라는 혐의를 지금도 버릴 수 없다. 척척 써버리는 남편과, 아무것도 모르고 먹어대는 아이들이 엄마는 얼마나 미웠을까.
휴고가 파리스그릴로 바뀌었을 때, 전통 프랑스요리에서 누벨퀴진으로 바뀌었을 때의 실망감이란. 전통 영국 신사가 유행의 흐름을 좇아 이탈리아식 양복으로 갈아입은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걱정은 그러나 기우였다. 더 밝아지고 가벼워졌지만 진중함을 잃지 않았다. ‘미디엄 레어’로 구워달라면 정확히 미디엄 레어로 구워 나오는 양고기 구이는 여전히 환상적이다. 바삭하게 익은 표면을 나이프로 가르면 진홍색 피와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배어 나온다. 과연 육향(肉香)으로는 양고기 따라 올 고기가 없다고 다시 확인한다. 한번 맛들이면 헤어나올 수 없는 양고기의 매력은 이 원초적 향기가 아닐까. 당나라 현종을 현혹한 서역미인 양귀비의 가장 큰 무기는 동양인에게서 맡기 힘든 강한 체취였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양고기에 곁들여 나오는 매시포테이토(Mashed Potato)는 파리스그릴의 장기 중 장기다. 삶은 감자를 곱게 부숴 우유, 버터 등과 섞는 매시포테이토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서민적인 음식. 파리스그릴은 그러나 매시포테이토마저도 요리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이곳 매시포테이토는 살찔 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중독성을 지녔다.
그렇지만 여기서 신적인 절제력을 스스로에게 부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파리스그릴의 다양하고 거부할 수 없는 디저트 테이블이 레스토랑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스그릴: 02-799-8161
/구름에 김성윤 기자
*이 글은 월간지 '행복이가득한집' 7월호에 게재한 글의 원문입니다. 지면 제약상 '행복...'에 게재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