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뜨자마자 물든 노을이었다
박장호
당신의 귀에 닿지 않는 내 마음이
입술은 내 마음이 물든 노을이에요
아침노을은 비를 부른다죠
나는 무거운 하늘 아래 우뚝 섰어요
내 목각의 다리가 흙에 묻혀 있네요
내려다보니 나는 나무인 거예요
누가 내게 이토록 기다란 다리를 주었을까요
의문을 품을수록 길어지는 하체
침묵만이 발기하는 내게 지친 당신이
나의 의족에 불을 붙여요
다리를 휘감은 구름의 나이테가
가시관처럼 머리 위를 맴돌아요
나를 사르는 당신의 마음에 비가 내리는군요
소리 없이 원한 것이 죄예요
노을 속으로 고통의 새들이 날아오겠죠
차가운 아침을 떠나 저녁노을 속으로 날아드는
비 맞은 새들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내 몸속에 아름다운 자연이 깃들어요
새들은 나의 직립이 얼마나 조용한 비명인지
알고 있어요, 오직 고통의 새들뿐이에요
새들이 내 입속에 둥지를 틀어요
말뚝을 타고 오르는 저 불빛은
어둠뿐인 내 얼굴을 밝히겠지요
하늘엔 의성운(擬聲雲)의 붉은 혈관이 터져요
새들은 독이 든 열매로 익고
나는 당신의 눈동자 속에서 불의 옷을 입어요
입술은 내 마음이 불타는 화염이에요
비에 젖든 피에 젖든
곧 꺼져버릴 화염이에요
—시집 『포유류의 사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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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
태양은 뜨자마자 물든 노을이었다 / 박장호
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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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0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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