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님 유품, 금반지를 보며..◈
시어머님이 떠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어머님 집으로 오라는 아주버님 연락을 받고
시댁 형제들이 다 모였다.
서랍을 열어 정리를 하다 보니, 어머님의 옷 주머니에
만 원짜리와 천 원짜리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몇 개의 통장과 10개 정도의 큰 돼지 저금통에서 나온
어마어마한 양의 동전들, 그리고 쓸 만한 수건들과 행주들,
그리고 지금 내가 끼고 있는 금반지!
(발견 당시 나온 세 개를 여자 셋이 나누어가졌다)
살면서 자주 감사한다.
내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존재가 나의 사랑이 될 줄 몰랐다.
분가후 어머님이 온유한 천사로 바뀌실 줄 알았다면
더 빨리 서둘렀어야 했을까? 신혼 초의 새댁에게 " 큰 메느리가
죽어도 날 못 모신다고 허니께, 니가 날 모시고 살아야 혀"
그 말씀에 걱정 마시라고, 평생 모시고 살겠다고 말하던 나였다.
하지만 어머님은 선한 마음을 품었던 막내며느리를 당연시하셨고,
함부로 하셨다.
어머님 고단한 삶에 갑자기 등장한 막내며느리를, 돌아가실 때까지
당신을 책임져 줄 붙박이 장롱처럼 여기셨다.
심지어는 동네 사람과 친척들에게 내 험담을 심심풀이 땅콩처럼 하고 다니셨다.
내 귀로 들려오던 그 소리에 내 울화는 점점 쌓여만 갔다.
학구에 살고 있던 선생님으로 살면서 자주 부끄럽다는 생각도 했었다.
자존심이 마구 짓밟혔고, 습관적인 거짓말에 자주 가슴에 피멍이 들었다.
참 힘든 나날이었다.
어머님 환갑잔치를 준비하던 그때에도 기가 막힌 일이 있었다.
"에미야, 난 부펜(뷔페)가 그런 데 싫다. 시골에서 노인네들 많이 올라올 텐데,
그냥 한정식으로 하면 좋을 틴디, 왜 그기로 계약을 했나몰라."
형님과 함께 둘러보고 계약을 하신 건데,
퇴근한 내게 계속 궁시렁궁시렁 말씀을 하셨다.
무심한 성격이 못 되는 나는 형님께 전화를 걸어 어머님 뜻을 전달했다.
그 다음날 형님이 퇴근 시간에 맞추어 전화를 하셨다.
동서, 동서가 뭐 착각한 거 아냐? 어머님께 전화드렸더니, 동서가 돈 아끼려고
한정식으로 하자고 했다던데?"
하... 일들이 이렇게 돌아갈 때가 많았다. 내 마음은 자주 울화가 쌓였고,
결혼 6년 차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사를 준비하고 있을 즈음 에는
아주 절정에 달했다.
단골 슈퍼마켓 주인 할머니께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려는 내게 이러셨다.
"애기 엄마, 사람 좋게 봤는데, 너무한 거 아냐?"
아니, 좋은 아파트 이사 가면서 시어머니를 버리고 간다며?"
오, 하나님! 난 너무나 깜짝 놀라서 아니라고,
당연히 모시고 갈 거라고 설명을 드리고 나오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걷기가 힘들었다.
어머님이 왜 늘 그런 행동을 반복하셨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아무리 삶이 힘드셨다 해도,
왜 평생 모시고 살겠다고 애쓰는 며느리에게 그리도 가혹하셨을까.
수업을 하지 못하고 책상 위에 널부러져 있던 나는,
대학병원에서 만성피로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고 병 휴직에 들어갔다.
내 담당의사는 내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조언을 하다
끝내는 말을 하던 도중에 눈물까지 보이셨다.
가정의학과 젊은 여자 교수님도 한 집안의 며느리여서 그랬을까?
본인을 사랑하고 사느냐는 첫 질문에 이어,
사람은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는데,
그걸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약을 지어 준다고 병이 낫겠느냐,
어머님과 과감하게 분가를 하라고 하셨다.
시댁의 모든 아픔을 왜 혼자 짊어지고 이렇게 힘겹게 사느냐고 하셨다.
그분 덕분에 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셋이 시작한 결혼 생활 17년 만의 일이었다.
분가 후에야 어머님의 진심 어린 '고맙다'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거짓말이 사라지고, 갑작스러운 호통 소리가 사라졌다.
불안함이 반가움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랬음에도 분가 이후,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잘 지내는 드라마 속의 고부 모습을 볼 때면
늘 아쉬움이 있었다.
' 저렇게 살고 싶었는데,
평생 어머님 모시고 알콩달콩 재미지게 살고 싶었는데...'
어쨌든 나를 가장 많이 울리셨던, 나를 가장 많이 잠 못 들게 했던,
내 심장을 가장 벌렁거리게 했던,
거짓말로 나를 가장 많이 화나게 했던 그분이,
나의 그리움 되어 있다는 건 너무나도 감사할 일이다.
내가 늘 끼고 있는 금반지를 보며 생각한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효자였던 막내아들,
제가 많이 사랑해 줄게요, 효자라 힘들었지만, 나이 들수록 제게 무척 잘하네요.
어머니 돌아가신 후에, 고맙다고 더 잘해줘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천국에서 그저 편히 쉬세요. 이 땅에서 너무나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머님 최고,라고 했던 제 말 잊지 마시고요"
~ by 채수아 ~
첫댓글
아픔이 있지만 진한 그리움이 느껴집니다.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