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황한 여행기이며 평어체로 씁니다. 이번 편은 바닥난 체력과의 전쟁 ㅡ_ㅡ;; 입니다. 그리고 다른 편보다 분량이 많아요;;;
* 이 날의 루트 (괄호 안은 환승역)
신오쿠보 ⇒ (신주쿠) ⇒ 도쿄 [ 코인락커 ] ⇒ 우에노 ⇒ 오카치마치 ⇒ (간다) ⇒ 신주쿠 ⇒ (도쿄) ⇒ 하마마쓰쵸 ⇒ 심바시 ⇒ 도쿄
* 이 날의 삽질 -_-
1. 체력적으로 제일 피곤했던 날이라, 열심히 다니지 못했습니다.
2. 동선이 별로 효율적이지 못했습니다. 가고 싶은 곳에 간 건 좋았지만요.
3. 아이스크림과 쇼핑에 발목을 잡혀서 시간 소모가 있었습니다. (위기 원인 1)
4. 손목시계가 없어서인지 시간 관념이 둔해졌습니다. (위기 원인 2)
* 숙소
JR 야간버스 드림 교토 - 2층 중앙 자리 (★★★☆)
갈 때 탔던 것 보다는 훨씬 좋은 자리였습니다. 1 + 1 + 1 좌석이었고 비치되어 있는 푸른색 모포의 촉감도 부드러워서 좋았습니다.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와서 조금 추운 정도였구요. 가운데의 형광등 조명이 좀 문제지만 숙박비 생각하면 ^^;;; 방송을 들어 보니 요즘 야간버스에서 도난사건(?)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 같아서 가방을 꼭 안고 잤습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운행시간도 갈 때보다 훨씬 덜 걸렸습니다. 22:50 출발 버스가 다음날 06:10 정도에 도착했으니 7시간 20분 걸린 셈이에요. 같은 구간일 텐데도 시간차이가 꽤 나더군요. 야간버스는 되도록
평일에 이용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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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6일 화요일. 흐리고 잠깐 비 오다가 갬~
우우웅- 베개 아래에서 진동알람이 울렸다. 07:30 이라…, 일어나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했다.
햇빛도 안 들어오는데, 더 잘테닷 ㅡ_ㅡ!!! 이라 생각하며 여행 도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8시 넘어서 일어났다. 그래도 졸렸지만 언니를
좀 깨우고, 씻고, 짐을 싸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어제 못 먹었던 민박집의 아침식사는 꽤 맛있었다 ^-^ 화려한 반찬이나 그런 건 아니지만, 조촐하고 정갈한 느낌이고, 게다가 한식이라 반가웠다 (김치야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 ㅠ0ㅠ). 게눈 감추듯이 두다다다다 식사를 해치우고 아주머니께 인사~ 이번 여행 중 유일하게 2박한 숙소를 뒤로 하고, 신오쿠보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데, 왠지 힘이 없었다.
체력이 딸려서 힘겨웠던 날들이 그전에도 꽤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했다.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이랑 가방을 이끌고 가려니 평소보다 배는 힘들었다. 게다가 오늘따라 주오센에는 사람이 참 많았다 -_- . 일본의 최대 러쉬 통근시간은 7~8시가 아니라 9시경인 것 같았다.
출입문 위에 붙어 있는 JR 동일본의 도쿄&근교 노선도를 보고 있노라니(복잡하다;;) 어느샌가 도쿄역 도착~ 배낭에 치이다시피 하면서 열차에서 내렸다. 도쿄역은 이번 여행 중 가장 많이 들른 역 중 하나인데, 대부분은 주오센으로 이동한지라 정작 역 자체의 모습은 뒤에서밖에 못 봤다 ^-^;;; 상대적으로 구경을 제일 잘한 교토역은 다음 편에 쓸 예정이다.
버스가 출발하는 야에스 남쪽 출구로 가서 가장 가까운 코인락커를 찾아 보았다. 바로 앞에 명당자리가 있긴 한데 사용시간이 제한되어 있었다. 이런이런. 좀 걸은 후에 계단을 내려가니 락커 밀집 지역(?)이 있었고, 눈에 바로 보이는 곳에 배낭을 집어넣고 아까의 길을 외웠다. 방향치인데 괜찮을까 몰라; 왠지 불안했다.
짐이 줄었는데도 머리는 여전히 띵했다. 역시 체력이 딸리니 힘들었다. 그래도 일단 갈 곳은 가야지 ㅡ_ㅡ 하는 마음에 우에노 방향의 승차장으로 올라갔다. 한 쪽은 연두색 야마노테센, 다른 한 쪽은 하늘색 게이힌도호쿠센이 지나고 있었다. 열차는 거의 동시에 왔는데, 게이힌도호쿠센 쪽이 사람이 더 적어 보여서 +_+ 그냥 그쪽에 탔다. 비록 5분이지만, 우리 나라 지하철 6호선이랑 닮은 좌석에 앉아서~
우에노역은 꽤 큰 역이었다. 예전에는 도호쿠쪽 신칸센 종점이 여기였다니까 그럴 만 했다. 그런데 길이 어렵다. 오랜만에(?) 개찰구와 출구에서 좀 헷갈리다가 시노바즈 출구로 나와 버렸다. 원래는 공원 출구로 나오려고 했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일본의 역들은 승하차를 할 수 있는 개찰구 내부와, 출구나 백화점과의 연결 등이 가능한 개찰구 외부가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 큰 역의 경우 각각의 출구 사이의 거리가 길 뿐더러, 개찰구 내부를 거치지 않고서는 역 건물 내에서 다른 출구로 나갈 수 없는 것 같았다. 떠나는 이를 배웅하는 사람이나 열차 구경하는 사람들을 위해 개찰구 내부로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티켓도 있다던데…. 내 경우는 JR패스로 여행했으니 해당사항이 없지만 일일이 표 끊는 분들은 주의하시길.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줄을 섰는데 아메야요코쵸가 눈에 딱 들어왔다. 하지만 우에노 공원이 먼저였으므로 지금은 일단 패스-. 오른쪽으로 매끈한 돌계단을 오르니 커다란 나무들이 나를 반겼다. 산책을 좋아하지만 발걸음이 다른 날보다 느렸다. 벤치에 앉아서 쉬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 넓은 중앙로 양편으로 보이는 노숙자들을 뒤로 한 채 목표인 도쿄국립박물관까지 걸어갔다.
도쿄국립박물관은 공원 안에서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서 들어가는, 조금은 특이한 곳이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대학생도 가능한 학생할인! 130엔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입장료를 생각하며 기분 좋게 입장권 파는 곳에 갔건만, 으에에에에- 1000엔이 넘는다! 왜 그렇지? 하며 주위를 둘러보자 바로 답이 보였다.
커다랗게 프린트된 특별전 홍보에서 빛나는 저것은!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에 있어야 할 에메랄드 박힌 단검이 아닌가! (가장 여행하고 싶은 나라가 터키 ㅡ_ㅡ;;) 게다가 표 파는 곳의 위쪽을 보니, 알렉산더 (Alexander, 영어도 써져 있었다) 대왕과 관련된 특별전도 열리는 것 같았다. 입장료가 비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잘 모르지만 저 단검은 톱카프 궁전 보물의 간판스타이므로.
하지만 여기는 일본이고, 내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본관이나 잘 보면 다행이겠다 싶어서 특별전을 제외한 130엔 학생표를 자판기에서 뽑고 학생증을 지갑에서 꺼냈는데…, 갑자기 걱정스러워졌다. 만 19세에 대학생이지만, 우리 학교 학생증은 별로 대학교스럽지 않다 ㅠ_ㅠ 연구원 분들이 걸고 다니는 목걸이 이름표같이 생긴 데다가 한자도 적혀 있지 않았다.
들어가는 곳의 아저씨께 표를 내미니 역시나 학생증을 보여달라고 하신다. 뒷면에 자그마하게 써져 있는 University 를 철썩같이 믿으면서 학생증을 냈는데, 아저씨는 한참 보시다가 통과하게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불안했던 게 좀 억울하다 ㅡ_ㅡ;
입구로 들어가서 바로 오른쪽의 인포에서 한국어 팜플렛과 영어 본관 팜플렛을 받은 후 팜플렛의 루트대로 1층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1층에는 각 유물들이 테마별(도자기, 무기 등)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우키요에(일본 전통 회화? 판화?)와 전통복식이었다. 아무래도 공예나 조각보다는 그림이나 수 등이 관심분야니까 그런 것 같았다.
루트대로 돌다 보면 12시 방향에 정원을 조망할 수 있는 라운지도 있고, 10시 방향에는 기념품 샵이 있다. 평성관과 연결된 통로 부근. 이곳에서 일본화가 그려진 편지지를 샀는데 세금 포함 399엔. 국립박물관답게 고급스런 물건이 많아서 그런지 전반적인 기념품도 고가였다. 참고로 기념품 샵은 1층과 지하에 있으며 지하 1층이 물건의 종류가 훨씬 많고 규모가 컸다.
이제는 2층으로 올라갈 차례. 여기에는 각 시대별로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다도나 국보를 중심으로 한 곳도 있었고…. 이 때는 눈이 아플 만큼 지쳐 있어서 제대로 된 관람은 못했다. 유물 관련된 걸 영어로 읽는 건 너무 빙 둘러쳐 가는 느낌이라 영 별로였으니 더 그랬다. 이번에도 생각나는 건 그림들 ㅡ_ㅡ; 먹을 즐겨 쓰는 우리 나라 전통회화와는 대조적으로, 색채가 돋보이는 그림들이 많았다. 특별전시된 후지산 그림 시리즈(?)도 마찬가지.
도쿄국립박물관 관람은 본관만으로 마감하기로 했다. 평성관이야 뭐 특별전시관이니 뺐지만, 동양관이나 호류지 보물관을 못 본 것은 좀 아쉬웠다. 뭐, 동양관에서 우리 나라 유물들 보면 기분이 별로였을 것 같다. 저게 왜 여기 있어 ㅠ_ㅠ 하면서;;
이번에는 다른 방향으로 나가야지~ 박물관을 나와 걷다가 왼쪽으로 빠져서 이번에는 역을 따라 걸어갔다. 동선이 좀 안 맞지만; 같은 경로라도 공원 길로 걷는 것과 차가 다니는 도로로 걷는 것은 기분이 달랐다. 문제는 역시 체력 ㅡ_ㅡ;; 냉방이 확실한 박물관에서도 비틀거렸으니 밖에서 걷는 것은 무리였다. 아메야요코쵸를 한 번 가로지르기는 했는데 가게에 들어가서 뭔가를 사기도 좀 그래서, 그냥 재래시장 분위기를 느끼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야마노테센에 올라 다음 목적지를 고르느라
상당히 고민했다. 원래는 동선에 맞추어 아사쿠사나 긴자에 들르려고
했다. 아키하바라는…, 내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파산하기 딱 좋은
곳이라 빼 버렸다. 하지만 몸이 이러니 여행신경도 좀 마비된 듯한 느낌이었다 ㅠ_ㅠ 결국 선택한 곳은 뜬금없이도 ㅡ_ㅡ; 신주쿠.
신주쿠 관광은 도청 야경으로 만족하려고 했었다. 가부키쵸는 혼자
가기 왠지 무서웠고 밤거리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일본 최대 서점인 기노쿠니아에 안 가는 건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또다시 주오센으로 갈아탔다 (이번에는 간다역에서).
신주쿠역 동구로 나오니 사진으로 익숙해진 스튜디오 알타가 보였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이런저런 건물들이 보였는데 기노쿠니아서점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일단은 뭘 먹어야 했다. 첫 날 잃어버린 여행팁에 이 근처의 맛있는 튀김집 정보를 프린트했건만…, 그게 없으니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 와서 규동을 한 번도 안 먹어 봤네? 기노쿠니아 뒤쪽으로 통해 있는 큰길에서 마쯔야를 발견하고 그리로 갔다.
보통 세트 <규동 + 야채샐러드 + 계란노른자 + 미소시루, 440엔> 쿠폰을 자판기에서 뽑아다 점원 언니에게 주니 꽤 빨리 음식이 나왔다. 규동이 입맛에 안 맞는다는 분들도 계시던데…, 워낙에 배고파서인지, 무지 맛있었다 ㅠ_ㅠ!
그릇을 싹싹 비우고 마쯔야를 나서는 중,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헉 -ㅁ- 우산 안 갖고 왔는데 어제 센다이에서처럼 되면 어떻게 하지? 실내관광을 할 수 있는 곳은 많지만 오늘도 야경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하지만 일단은 비를 피해야겠다 싶어서 근처에 보이던 돈키호테 매장에 들어갔다. 기념품 쇼핑만 해서 그런지 특별히 싸다는 느낌은 별로 안 들었다. 하지만 독특한 물건이 꽤 많았고, 공간을 300% 활용해서 물건을 진열한 내부가 꽤 인상깊었다.
다시 기노쿠니아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서점 투어를 시작했다. 원래는 종로에서 즐겨 하던 건데, 신주쿠에서도 하게 될 줄이야. 기노쿠니아는 지하에 한 층을 넓게 차지한 교보문고와는 달리, 지상 건물이었고 좀더 좁지만 7층이라는 높이를 자랑하고 있었다. 테마 컬러는 푸른색.
비교적 아래층에서는 에스컬레이터를 쉽게 찾을 수 있어서 구경을 한 후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위층으로 갈수록 계단만 있는 것이었다. 한 층 올라가겠다고 엘리베이터를 탈 수는 없는 노릇.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가며 결국은 다 올라갔다 ㅡ_ㅡ;
각양각색의 책들이 줄지어 서 있는 서점의 분위기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중 하나. 글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즐거웠다. 자그마한 문고판형이 참 많은 것이 일본 책의 특성인 듯 했다. 미술이나 일러스트 작법 쪽의 책을 살까 생각했는데, 읽지도 못하는 걸 사기도 그렇고, 가방이 배낭이었기 때문에 책이 손상되는 것도 싫어서 관뒀다.
6층이었나. 비교적 위층에서 재미있는 책자들을 발견했다. 일본에서 발간한 `한국 여행 가이드북` 들이 바로 그것. 수도권 지하철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노선도, 종로, 명동, 이대, 압구정 등 서울 번화가들에 대한 안내 등등.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면, 지금 가지고 다니는 일본 여행 가이드북을 일본 사람들이 보면 웃을 것 같다 ;;;;; JR과 사철, 각종 원데이 프리패스 등이 명시되어 있고 관광스팟에 별점 매긴 것 등등. 어떻게 보면 가이드북의 구조는 거의 다 비슷하니까. 다만 일본에서 나온 가이드북들은 공략본(?)이라고 해야 하나? 얇고 큰 판형의 책에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를 한껏 담아 놓은 것들이 꽤 많았다.
그 책들을 읽으며 좀 아쉬웠던 점은, 여행지가 서울, 부산, 제주도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나라에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이것뿐인가 ㅡ_ㅡ;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한국관광공사에서 좀더 확실하게 홍보해야 할 것 같다.
시간은 그새 3시를 넘고 있었다. 비가 그쳐서 아까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여행지로 go! 이틀 간의 도쿄 여행을 마무리할 곳은 바로 임해부도심이다~
도쿄 일정에서 제일 기대하던 곳이 바로 여기 ^-^ (비록 연인과 함께는 아니지만) 신주쿠역에서 주오센(정말 많이도 탔다 ㅡ_ㅡ), 도쿄역에서 다시 야마노테센으로 하마마쓰쵸역까지 수상버스를 타러 갔다. 하마마쓰쵸역에서 히노데 선착장까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먼 거리라서 조금 당혹스러웠다.
선착장에 도착해서 900엔짜리 공통 1일 승차권을 구입했다. 수상버스는 일본어로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서 "유리카모메와 버스의 1일 티켓을 주세요" 라고 했지만 ㅡ_ㅡ 다행히 직원언니가 다 알아들었다. 어제의 센다이 루푸루 승차권처럼 얇은 카드 1일권. 개인적으로 깜찍한 캐릭터가 그려진 것을 원했지만;; 그냥 열차와 배 사진과 노선이 그려져 있었다. 어라라? 그런데 이 티켓으로 린카이센도 탈 수 있었나? ㅡ_ㅡ? 티켓에 인쇄된 걸로 봐서는 린카이센 탑승도 가능한 것 같아서 신기했다.
수상버스를 타고 오다이바로 가는 길은…, 그렇게 기대만큼 멋지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수상버스는 밤에 타는 것을 추천한다. 시간도 꽤 많이 걸리고, 날이 흐려서 레인보우브릿지는 회색이 되어 버렸으니;; 유리카모메를 타고 갔다면 뭔가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다이바역, 후지 TV, 그리고 아쿠아시티를 바라보며 다다른 오다이바의 첫 인상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큰 건물이 적으니 많은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온달까. 특히 연인들이 정말정말 많아서, 이 동네가 확실한 데이트코스라는 것을 머릿속에 각인시켜 주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히 기대를 하고 왔는데, 갑자기 우울해졌다.
사람들이 가득한 건물 안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도쿄의 번화가나 쇼핑가 등에서는 다른 곳에서보다 외로움을 많이 느꼈지만…, 지금은 좀 심했다. 심신이 다 지친 건가? 건물들의 외관만 잠시 본 후 유리카모메에 올랐다.
이윽고 내린 곳은 아오미역. 파레트 타운과 바로 연결된 곳이다. 비너스포트와 메가웹 사이의 파레트 플라자에서는 아이들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놀이기구를 타고 있었는데 꽤 재밌어 보였다. 그런데 역시 기분이 별로였다. 결국 걸어서 유메노오하시를 건넌 후 물의 과학관에 가기로 결정했다.
물의 과학관까지 가는 길은 아까까지와는 대조적으로 무척이나 조용했다. 넓지만 텅 빈 길,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흐린 날씨까지 더해지니 더 우울해졌다. 그 많던 사람들은 이쪽으로는 오지 않네. 미래형 신도심, 레인보우 타운 등으로 불리는 오다이바에 이런 모습도 있었구나…. 신교통 유리카모메가 다니고, 화려한 쇼핑몰과 전시장이 있고, 하루를 즐기는 곳이라는 이미지 뒤편에는 쓸쓸한 풍경이라. 왠지 모순적이면서도 어울렸다.
그렇게 묘한 기분을 느끼며 유메노오하시를 건넜다. 우리말로 `꿈의 다리`라는 뜻의 이 다리는 혼자 생각하며 건너기에 딱이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철학의 길 in 오다이바`?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밤이 아니기에 빛나지 않는 다리. 오다이바의 중심인데도 너무나 고요한 곳,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걸을 때는, 정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짧지 않은 다리이건만, 걸어가며 만난 사람들은 매우 적었다. 그 대부분이 아이와 엄마인 걸로 봐서 물의 과학관에 다녀오는 길인 듯 했다. 이런, 폐관시간이 다가오네. 아쿠아 플라넷은 체험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 잠깐 들르자는 생각에 걸음을 빨리 했다. 그리하여 힘겹게 도착한 물의 과학관. 1층 의자에 앉아 차가운 커피 한 잔(80엔)을 마시고 있으려니 폐관음악이 흘러나왔다 ㅡ_ㅡ; 잘 해 놨네~ 라는 1층 감상평만 남긴 채 문을 나섰다.
다시금 보이는 텅 빈 거리를 보니 일산신도시가 생각났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오다이바 도보유람이 점점 재밌게 느껴졌다. 복잡한 도쿄 도내에서 이렇게 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적어도 이번에 들른 곳 중에서는 여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 같았다. 힘을 내어, 이번에는 국제전시장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래도 아까는 사람들이 좀 있었는데 이쪽 길에서는 단 한 명의 행인도 발견할 수 없었다. 깔끔하지만 왠지 적막스럽기까지 한 보도를 걷고 있노라니, 그간 머릿속에 있었던 오다이바의 이미지가 더 많이 바뀌었다. 도쿄 빅사이트 근처에 정박된 화물선들, 거래 물품을 싣고 빠르게 달리는 트럭들, 그리고 인적 없는 거리까지 더했다.
꿈과 미래를 상징하는 유리카모메 노선 주위의 모습. 그와 명확히 대조를 이루는 현실의 길의 풍경.
오다이바. 여기는 정말 신기한 곳이었다.
도보유람을 마치고, 국제전시장정문역에서 유리카모메에 올라 종점인 아리아케까지 갔다. 맨 앞자리에 한 번 앉아 보려고 했지만 실패 ㅡ_ㅡ 아리아케에서 아오미로 돌아오는 길은 어떻게 되겠지 싶었는데 아까 탔던 사람들도 나와 같은 루트를 노렸는지, 이번에도 실패했다.
돌아온 아오미역, 이제는 본격적으로 파레트 타운 공략에 나섰다. 오다이바의 테마인 무지개를 가장 잘 살린 테마 시티~, 화사한 색감을 좋아하는 내게 잘 맞는 곳이었다.
빨강 : 비너스포트 (여성을 위한 쇼핑 센터)
주황 : 메가웹 (자동차 테마 파크)
노랑 : 푸드코트
연두 : 파레트 플라자 (이벤트 광장)
초록 : 선워크 (가족 쇼핑몰)
청록 : 대관람차
파랑 : 레져랜드
보라 : Zepp Tyoko (라이브홀)
고유의 색이 각각의 스팟들을 상징하기 때문에 안내팜플렛이나 각 층별 지도를 보기에도 무척 편리했다. 그럼 메가웹부터 공략해 볼까?
…도요타의 옛날 차종은 전시하지 않나 보다. `이니셜 D`의 AE86 팬더 트레노를 아주 약간이지만 기대했는데 ㅠ_ㅠ 번쩍번쩍 새 차들만 주류를 이루었다. 마음대로 만질 수 있고, 승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꽤 맘에 들었지만. 그나저나 차가 많기는 정말 많았다. 시판용 차량뿐만 아니라 F1 레이스용 차량도 전시되어 있어서 신기신기~ `사이버 포뮬러`의 아스라다를 떠올리며 혼자 속으로 웃었다 (이건 픽션이니까 당연히 없다;).
메가웹에는 여러 어트랙션이 있었지만 아는 것도, 면허도 없고 해서 그냥 E-com RIDE(자동으로 운전하는 깜찍한 차량에 탑승해서 파레트 타운을 도는 어트랙션, 200엔)를 타려고 했다. 그런데 4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직원 오빠가 말했다. 으어어- 그렇게 오래? 어쩔까 하다가 선워크로 발길을 돌렸다.
일직선의 길을 걸어가며 아기자기한 숍들을 구경했는데, 이 길의 끝은 `히스토리 개라지`와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E-com RIDE 도 있었다~! 팜플렛을 후다닥 펼쳐 보니 실제로 메가웹에는 4개의 E-com RIDE가 있었던 것이다 ㅡ_ㅡ;
선워크 쪽의 E-com RIDE는 무척 한산해서, 금방 탑승할 수 있었다. 직원 언니가 코팅된 영문 안내문을 짚어 주면서 설명해 주는데 이런 것에 익숙해 보였다. 파레트 타운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오나 보다. 그 다음에 직원 오빠의 간단한 지시를 받고 차에 탑승했다. 스테어링이 알아서 돌아가고 기어(?)도 알아서 움직이고~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꼬마차다. 직접 운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운전석에 앉으니 자꾸 이니셜 D 생각이 났다 (드리프트 +_+).
오다이바의 풍경은 역시 밤이 되어야 진가를 발휘하려는지, 차내에서 바라본 경치는 화려하지는 않았다. 건물 주위를 도는 것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그래도 자동 운전 차를 타는 건 재미난 경험이었다.
E-com RIDE 타는 곳을 빠져나온 뒤 2층으로 올라가자 바로 색다른 쇼핑가가 펼쳐졌다. 여성을 위한 쇼핑몰 비너스포트! 색이 변하는 하늘 천정과 유럽풍의 화려한 인테리어, 그리고 세세한 이정표까지 여자들의 취향에 딱 맞춘 곳이었다. 눈이 즐거워지니 기분도 좋아졌다.
그런데 어디가 어디쯤이지? 워낙 길치라 그런지 2층만 도는데도 헷갈렸다. 옷가게와 액세서리점, 잡화점, 미용 케어 전문점, 그리고 여러 레스토랑까지…, 다양한 종류의 매장들이 입점해 있어서 더 그랬다. 그러다가 우연히 도우미 언니들을 만나서 영어 안내문을 받았는데, 아까의 파레트 타운 것과 마찬가지로 매장의 종류마다 색으로 구분해 놓아서 꽤 편리했다.
시부야 109와 달리, 이곳은 유명 브랜드의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 많았다. 그런데 느무 이쁜 인테리어 때문일까? 자꾸 뭘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JR패스 덕에 교통비가 어느 정도 굳었기 때문에, 쇼핑비와 비상금 포함해서 총 44,000엔을 가져왔었다. 그래서 예산이 좀 빡빡하지만…, 이쁘게 전시된 물건들이 자꾸 유혹했다 ㅠ_ㅠ 여행 5일째인 지금까지 산 물건은 모두 지역 기념품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옷을 사 볼까? "Pinky & Dianne SUPER STORE" 의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그 매장에 한번 가 보기로 했다. 중앙 분수 근처라서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8월 말이라 그런지 이미 가을풍 색조의 옷이 많았다. >_< 이쁘다~
그러나 가격이 너무 셌다 ㅠ_ㅠ 우리 나라 메이커의 정장풍 옷과 큰 차이는 안 난다만…, 돈이 없었다. 게다가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가 기억났다. 배낭 메고 야간훼리 타고 야간버스에서 자고…, 기타 등등의 남은 여정을 거칠 때 이렇게 이쁜 옷을 과연 입을까 싶었다. 여행 중에 입을 게 아니라면 짐 ㅡ_ㅡ !!! 으로 간주해 버리자 옷을 살 생각이 많이 사라졌다. 솔직히 옷걸이도 별로니까 ;;;
하지만 옷 사는 것만이 쇼핑은 아닌 법. 부피를 작게 차지하는 액세서리나 잡화 쪽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돌아갔다. 결국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 새 4000엔 상당의 물건을 산 후였다;;; 언제 2층에서 3층으로 올라왔는지도 모른 채;;; 내가 이래서 안된다니까 ㅠ_ㅠ
(3층에 있는 Stone Market 이라는 매장이 꽤 괜찮았다 ^^ 액세서리 전문점인데, 물건 종류가 무척 많고 1000엔 이하의 가격이면서 예쁜 것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쇼핑을 할 때는 즐거웠는데 현실(예산)을 자각하고 나니 왠지 불안해졌다. 원래 오늘은 가장 지출이 큰 날이었다. 기본적으로 오오에도온센 2000엔, 유리카모메 + 수상버스 티켓 900엔, 대관람차 900엔. 도합 3800엔이건만 ㅡ_ㅡ;; 쇼핑까지 신나게 해 버렸으니 이젠 비상금이 얼마 안 남았다 (넉넉하게 가져 가는 것이 좋지만, 내 경우는 있는 만큼 써 버리기 때문에…).
건물 밖으로 나서니 벌써 한밤중이었다. 아직 7시 10분인데~ 해가 정말 순식간에 져 버린 듯한 느낌이다. 어쩔 수 없지만 노을은 놓쳤고, 이제 야경을 감상하는 일만 남았다. 겨울에 다녀온 선배가 강추한 오다이바 대관람차를 타야지 ^-^
자판기에서 티켓을 뽑고 줄을 섰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같이 줄을 선 사람들은 한결같이 연인들이라 부러웠다 ㅠ_- 친구로 보이는 사람도 거의 눈에 안 띄었는데 나 혼자라;;; 왠지 처량해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줄 서는 건 지루했지만 사람들 보는 건 안 지루했다. 워낙에 독특한 패션들이라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잘 갔다. 특히 노오란 유카타 차림으로 줄 서있던 아가씨가 인상적이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 데이트할 때 한복을 입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 그래서인지 더 신기했다.
거의 30분 가까이 기다리자 차례가 왔다. 막상 오르려니 고소공포증이 떠올라서 순건 멈칫했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것, 안 탈수는 없지~ 하는 생각으로 탔다. 막상 타고 보니 걱정했던 것보다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 고베에서 탔던 로프웨이처럼 많이 흔들리지도 않았고, 꽤 안정감있게 올라가서 신나게 야경을 감상했다.
야경…, 찍기 어려워서 시간과 배터리는 많이 잡아먹었는데 정작 올릴 만한 사진은 진짜 없다 ㅠ_ㅠ
어제의 신주쿠 도청과는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아득히 보이는 도쿄타워와 레인보우브릿지, 낮에 건넜던 유메노오하시, 그리고 갖가지 건물과 차들의 불빛과 조명이 오다이바의 밤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최고점에 도달한 후 내려가는 대관람차. 10분 남짓한 탑승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정말 내리기 싫었다 ㅠ_ㅠ 꿈은 끝나고 이제는 현실로 돌아갈 시간인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아직 오늘의 일정이 한 곳 더 기다리고 있으니~ 그 이름은 바로 `오오에도 온센 모노가타리`, 에도 시대 풍의 온천 테마파크였다.
텔레콤센터역에 내려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금방 눈에 띄었다. 건물부터 오다이바답지 않게(?) 고전적으로 생겨서 독특했다. 가자 가자~ 하면서 자신만만하게 들어가서 카운터로 갔는데 이런. 처음부터 실수연발이다. 이 부분도 팁 종이에 적혀 있었단 말이다 ㅠ_ㅠ;;; 신발을 벗어다가 신발장에 넣고 그 키를 직원에게 가져다 주는 것이 시작인데, 무슨 냉면 먹으러 간 것도 아니고 신발을 그냥 놓고 오는 삽질을 해 버렸다 ㅡ_ㅡ;;;;;;;;;;;;;;
힘겹게 직원 언니의 말을 알아듣고, 제대로 신발을 놓고 오자 목걸이, 얇은 주머니, 그리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오르게 하는 나무패를 받았다. 물론 한국어 메뉴얼도~. 그 후에 유카타를 고르러 갈 수 있었다. 유카타들은 목욕용이라 그런지 전반적으로 옅은 색이었는데, 보라색이 일어로 뭔지 몰라서 고를 때 필사적으로 손가락을 사용했다. 그 다음엔 보색의 오비를 선택한 후 갱의실로 go!
우선 카메라와 100엔짜리 동전을 따로 빼서 주머니에 넣은 후, 옷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유카타 허리에 달려 있는 끈-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게야 ㅇ_ㅇ 하다 하다 안되서 근처의 일본 아주머니께 여쭤 봤더니 입혀 주셨다 ^-^ (옷 자체에 구멍이 뚫려 있을 줄이야;;;;;)
족탕에 먼저 들르려고 안내도를 열심히 봤는데, 그 때는 왜 그렇게 지도를 알아볼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가는 길이 좀 좁아서 그런가? 결국 이번에도 길 가는 분께 여쭤서 간신히 간신히;;; 들어갔다. 탕 내부는 굉장히 어두웠다. 입구 쪽에는 일본풍의 우산(?)이 있어서 아가씨들이 꺄아꺄아거리며 서로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들고 들어갈까 했지만 그냥 다리 위에서 기념사진 찍는 용도인 듯 싶어 포기했다. 아가씨들이 사진을 다 찍은 후 다리를 건너니 족탕의 전반적인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손목에 주머니 끈을 끼우고, 유카타 자락을 걷어 올린 채(젖으면 안됨) 족탕에 들어갔는데에;
아아아아악! 저절로 비명이 나왔다. 예전에 어느 분의 여행기에서 족탕에서 비명 지른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대략 어떤 기분이었을지 알았다 ㅠ_- 5일 동안 누적된 피로가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다리는 후들후들, 발바닥은 따끔따끔. 뭉툭한 바닥이 계속되어 안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습격해 오는 뾰족 돌바닥은 정말 무서웠다 ㅠ_ㅠ 그 후로는 아야야야- 비틀. 아야야- 비틀. 의 연속이었다. 마주 오던 사람들이 딱하다는 눈으로 보고 지나갈 지경;; 진정한 지옥온천은 벳부가 아닌 여기였다. 비싼 돈 내고 들어온지라 걷는 코스는 다 걸어다녔으니 더 그랬나 보다. 안내도를 보니 모래나 바위 사우나도 있었는데 가격이 상당해서 빼고, 네모 지붕에 탕이 있어서 탕 난간(?)에 앉아 발만 담글 수 있는 곳에 가 보았다. 분위기는 연인천하였지만 안 갈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마지막으로 거기 앉아서 나른하게 있다가 족탕을 빠져나왔다.
좁은 통로와 식당가를 지나-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탈의실로 향했다. 우선 나무패를 내고 수건이 든 가방을 받은 뒤, 유카타를 벗고 작은 수건만 든 채 들어갔다..
탕은 꽤 컸는데 일단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몸에 물을 끼얹고, 한 사람씩 들어가는 자리에서 좀 씻는 것으로 시작했다. 탕 종류가 많아서 어디부터 들어가야 할지 막막했는데 그냥 자리 나는 대로 다 가 보자는 생각에 열심히 들어갔다. 들어가는 탕마다 꾸며진 건 조금씩 달랐지만 각각의 물이 어떻게 다른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따뜻한 물에 들어가니 기분 좋고 께느른했다. 긴장이 좌악 풀리는 느낌이랄까.
탕 입구에서 오른쪽편에 사우나가 있어서 두 곳에 들어가 봤다. 처음 들어갔던 곳은 밍숭밍숭(?)한 붙박이 좌석(?)이었는데, 많이 뜨겁지는 않고 그런대로 편했다. 나갈 때는 문가의 샤워기로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물을 뿌려 주고 나가는 것이 신기해서 그거 해 보려고 조금 일찍 나갔다 ㅡ_ㅡ;; 반면에 두 번째로 들어간 곳은 온도가 무척 높았다. 계단식 나무 바닥으로, 뜨거운 공기 속에서 알딸딸하게 버티다가 나오니 밖이 참 시원했다 ㅡ_ㅡ;;;
다음에는 노천탕으로 이동. 어둡지만 밖의 풍경이 보이니 신기했다. 낮에 왔으면 더 재밌었을려나. 바위에 기대서 몸을 담그기도 해 보고, 맘에 들었던 동그란 나무통 욕조에서는 꽤 오래 있었다. 유후~ 천국이 따로 없네~. 아까 족탕이 지옥온천 -_- 이었으니 지옥에서 천국으로 온 걸까? ^-^
탕을 나와서 좀 말린 후 다시 유카타를 입고 식당과 매점이 있는 곳을 돌아다녔다. 여기서 또 기념품점에 휘말려 버렸다 ㅠ_ㅠ ONLY SALE FOR JAPAN 이라는 단어는 결국 바코드를 찍게 했고, 가뜩이나 지출이 많은 상황에서 남은 예산을 야금야금 먹어갔다;; 더불어 시간도;;
다른 사람들이 그릇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사 가는 것을 이 때 발견해서, 쇼핑이 끝난 후 그 아이스크림점을 찾았는데 아무리 돌아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없는 것은 알았지만 꼭 그걸 먹고 싶어서;;;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결국 다섯 바퀴를 돈 후 포기하고 그냥 딸기빙수를 주문했다. 이 때 빙수 사진을 찍으려고 오랜만에 카메라를 꺼낸 순간, 시간이 눈에 들어왔다.
9시 57분?! 어째 좀 위험한데? 손목시계 약이 어제 끝장났던 터라, 진동알람을 크로스백에 넣고 다녔는데 여기에 안 들고 온 것이 불찰이었다. 그러나 삽질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시내 관광에 온천까지 하느라 시간 감각이 꽤 무뎌졌던 나는, 10시 10분에 여기를 떠나면 야간버스를 쉽게 탈 수 있을 거라는 최대의 착각을 하고 말았다!
일단은 이 빙수부터 빨리 먹자! 하면서 죽어라고 먹어댔는데, 찬 걸 너무 빨리 먹다 보니 입안이 마비되는 듯했다. 결국 2/3 정도밖에 못 먹은 채, 이제 빨리 나가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출구는 어디?? 빙수를 식당에 반납할 때는 당연히도 이미 10시가 넘었다.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 분명히 버스는 22:50 도쿄 출발이었지……?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으아아아아아악!!!
절규는 그 다음이었다.
허둥지둥, 식당 아가씨에게 출구를 가르쳐 달라고 하자 길 찾는게 어렵다며 같이 가며 안내해 주었다. 이때부터가 진정한 난관의 시작이었다. 유카타라서 보폭도 잘 안 나오니 마음은 급하고 몸은 안 따르는…. 초스피드로 옷을 갈아입고 유카타를 내고, 카운터로 가서 기념품 산 거랑 빙수 계산하고, 마지막으로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들고 죽어라 뛰어나가서 신고 온천을 나와서, 횡단보도의 깜박이는 신호가 끝나기 전에 사력을 다해 텔레콤센터역으로 질주했다.
1일권을 집어넣고 재빨리 승차장으로 올라갔는데, 제일 빨리 오는 차가 22:16 출발이었다. 여기서 신바시역까지 얼마 걸리지?! 대략 18분이라 치면 신바시역 도착은 22:34. 여기서 또 JR신바시로 가야 하는데! 아까 수상버스 승차장처럼 역에서 멀면 끝장이었다. 가깝다고 가정해도 갈아타는 데 5분, 도쿄역까지 가는 데 4분, 승차장에서 역 구내로 진입한 뒤 코인락커에서 배낭을 찾아다가 야에스 남쪽 출구에서 버스를 타는 데 7분…이라는 엽기적인 시간이 나왔다.
뭘까, 도대체 나란 사람은. 갑자기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워졌다. 준비 많이 했다고 자신만만하게 간 주제에 어이없는 실수만 연발하고, 자기 제어도 잘 못하고, 시간 감각도 없고…. 하지만 내가 이런다고 해서 유리카모메가 총알택시처럼 빨라질 리는 없으니, 눈물이 나오려는 걸 애써 억누르며 눈에 보이는 야경을 감상하기로 했다. 웬일로 맨 앞자리가 비어서 앉아 가면서….
이제 오다이바를 떠나는구나. 가이힌코엔에서의 야경을 놓친 것이 아쉬웠다. 하염없이 멀어져 가는 레인보우 브릿지…, 너랑은 어째 낮에도 밤에도 인연이 없었냐. 하지만 지금 닥친 문제는 그것보다 백만스물한 배 더 심각했다.
만에 하나 야간버스를 놓치면?! 가뜩이나 돈 없는데 숙박비 날리고, 교토 보기도 바쁜데 시간 버리고, 결정적으로 우리 나라 이미지 망치고 (자리를 비운 채 떠나는 야간버스를 상상해 보라 -_-). 그런 쓰리콤보의 압박은 절대로! 사절이라고 생각하는 사이 종점인 신바시역이 가까워 왔다. 가방에서 JR패스를 꺼내들고 문 쪽으로 가서 이정표를 따라 뛸 준비를 했다. 드디어 열차 문이 열리고, 죽기 살기로 가자!!!
다행히 JR신바시역은 유리카모메역과 상당히 가까웠다. 게다가 갈아타려고 뛰어가는 비즈니스맨들이 상당히 많아서, 그 사람들을 따라 뛰어가니 어렵잖게 도착할 수 있었다. 다시 야마노테센 승차장으로 뛰어올라가서 좀 기다린 후(불안 up) 열차에 올랐다. 이 차는 분명 4분 후에 도쿄역에 도착하겠지. 그럼 이제 내가 할 일만 남았구나. 도쿄역 도착. 사력을 다해 승차장을 내려온 후 야에스 남쪽 출구 방향으로 달렸다. 그런데 코인락커가 어디 있었지?? 기억이 도무지 나지 않았다. 아침에 분명히 눈에 익힌 길이었지만 방향이 반대인데다가 패닉상태라 그런지 찾을 수가 없었다. 거기엔 특별히 이정표도 없었으니…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시간은 계속 22:50을 향해 흐르고 있었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일단 내달려서 버스 승차장으로 나갔다. 내가 탈 버스의 표를 받는 아저씨께 지정석권을 드리고, 가방이 역 안에 있으니 아주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ㅠ_ㅠ 사정을 한 후 다시 배낭을 찾으러 갔다. 솔직히 기대는 안 했다. 1분만 기다려 주시면 많이 봐 주신 것이리라. 버스는 제 시간에 떠나야 하니까-. 다만 지난번에 탔던 버스가 1분 늦게 출발했으므로 거기에 실낱같은 희망을 건 것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사이, 갑자기 내려가는 계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로는 `여기가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생각했지만 몸은 저절로 그쪽을 향했다. 발을 헛디딜 듯이 뛰어내려가니 정면에 코인락커가 보였다! 엄청난 속도로 배낭을 꺼낸 후, 다시 숨이 턱에 차도록 승차장으로 내달렸다.
앗- 맨 앞에 있던 차 한 대가 시동을 걸고 떠나려 하고 있었다. 저게 내가 탈 차라는 이유 모를 확신이 들어서 죽기살기로 뛰었다. 버스가 멈췄고, 도착해 보니 아까 그 아저씨가 계속 서 계셨다. 너무 죄송해서 스이마셍을 연발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고멘나사이가 좀더 강한 사과였는데 그걸로 했어야 했다 ㅠ_ㅠ). 아저씨는 "버스는 제 시간에 출발해야 한다" 고 말씀하시며 지정석권에 도장을 찍어 주셨다. 그리고 짐칸 문도 열어 주셔서 난 배낭을 거기 밀어넣고 작은 가방을 멘 채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ㅠ_ㅠ!!
2층 자리에 가서 모포를 펴고 대략 숨을 고르던 중 버스가 출발했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은 22:52. 온천 하고 좀 시원해졌나 싶었더니 다시 땀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아하하하하-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땀에 좀 절면 어때, 결국 야간버스를 타는 건 성공했잖아? 후훗. 나라망신 -_- 은 좀 시켰지만; 지정석 비우고 가는 것보다야 덜하겠고, 시간 벌고, 돈도 굳었고.
게다가 이 일은 평생 잊지 않을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실은 여행 떠나기 전에 "여행에 치명적이지는 않을 정도의 사건이 하나 터지기를 바란다" 라고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게 지금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 치명적이 될 `뻔` 한 위기였지만.
외로움, 피로, 아쉬움 등 우울한 감정으로 복잡했던 머릿속이, 오늘의 마지막을 장식한 좋은 느낌 덕에 가벼워지고 있었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즐거운 기대를 하며 잠이 들었다.
파란만장한 도쿄에서의 사흘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다양한 느낌의
사람들, 재개발된 테마 시티, 그리고 환상같았던 아경을 각인시킨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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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는 여행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숙제랑 퀴즈가 꽤 많아서 자꾸 여행기가 늦어지네요 ㅠ_ㅠ 이 다음 날에는 일본 최대의 호수 비와코, 그리고 천년수도 교토에 올인합니다. 성과 사찰과 정원과 옛 거리에서 펼쳐지는 삽질 에피소드를 기대해 주세요.
아래엔 매번 적는 팁(?) 두 가지에요.
1. 야간버스나 기차 시간을 잘 맞춰야 합니다.
이동이 많은 일정에서 가장 밸런스를 맞추기 힘든 부분 중 하나입니다. 아주 여유 있게 가자니 역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아슬아슬하게 가자니 기차 놓치면 다음 일정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시간 관념이 느슨하신 분이라면 하드코어 일정은 추천해 드리고 싶지 않아요. 특히 지정석 발권 받고 승차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죠.
저는 산노미야 ⇒ 교토 구간의 슈퍼 하쿠토와 도쿄 ⇒ 센다이 구간의 하야테를 못 탔는데요. 첫번째 열차는 역무원 아저씨들이 말씀하신 승차장으로 갔는데 못 탄 것이고, 사람들이 특급으로 잘 이용하지 않는 구간이라 큰 문제는 없었을 거에요. 하지만 알람을 꺼 놓고 자서 타지 못했던 하야테는 참 찔리더군요 ㅡ_ㅡ;;;
2. 우에노 지역,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도쿄 일정에 항상 들어가는 곳, 하지만 `재미없었다`는 평이 주류를 이루는 곳이 우에노인데요. 번화가의 화려함을 즐기시는 분이라면 확실히 별로 인상깊지는 않을 거에요. 하지만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도쿄국립박물관만 제대로 봐도 시간 많이 걸릴 것 같아요. 학생할인도 톡톡히 되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이니 학생분들은 학생증 꼭 갖고 가세요.
첫댓글 한국학생 학생증도 되나요? -_-;;
일본은 우리 나라 학생증으로도 됩니다. 오하라 미술관도 그렇게 할인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