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儒城)에 살아보니.......
신 강 남
저는 유성에서 태어난 토박이가 아닙니다. 동구에서 중구를 거쳐 서구에 살다가 충남대학교가 문화동시대를 마감하고 유성으로 이전할 즈음(1980년)에 대덕군 유성읍으로 이사하였답니다. 충남대학교와 함께 유성으로 옮겼다니까 혹자는 제가 자녀교육에 열심이어서 맹모삼천(孟母三遷)의 거창한 자녀교육계획을 가지고 “대전의 八學群 儒城”으로 먼저 입성하지않았나 생각하실런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구요, 제가 말단 공무원으로서 제 앞길도 추리지 못하는 칠칠치못한 꼴을 보다못한 집안어르신께서 대학교옆에 붙어살면 굶어 죽지않는다. 충대옆에 가서 학생하숙이라도치면 먹고 산다.는 귀중한 정보(?)를 주셔서 이사를 오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꽤어야 보배이듯 귀중한 정보가 있으면 무엇합니까. 집지을 돈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귀중한 정보는 사장되었고 30년이 지난 지금은 한밭대학교부근에서 양현재(養賢齋, 현인을 키워내는 집)을 운영해요. 양현재가 무엇을 하는 데냐구요? 궁굼하시면 언제 덕명동 127번지로 놀러와 보세요.
어느 유명한 도시공학자가 말했다지요. “모든 도시는 동쪽에서 시작하여 서쪽방향으로 발전해 나간다”고. 그학자의 주장이 맞는것도 같아요. 대전을 예로 들어 봅시다. 누가 무엇이라고해도 대전발전의 시발점은 대전역 부근이겠지요. 대전역을 중심으로 남쪽의 원동시장, 신흥동부근과 북쪽의 삼성동, 정동을 중심으로 확장되던 추세가 대전천을 넘어서 중구 은행동, 선화동, 문화동을 형성하더니만 초창기엔 이름도 생소하던 변동, 괴정동, 삼천동, 월평동, 둔산동등이 발전추세를 이어갔고 이제는 서구의 발전추세가 주춤하고 그 여세가 유성구쪽으로 빠르게 전이되는 현상을 우리들은 지금 목격하고 있습니다. 벌써 노은동, 지족동, 반석동일원과 송강동일대는 도시의 형태를 갖추었고 학하동일원도 개발의 가속도가 붙은 상태입니다. 자, 조금 숨좀돌리고 다시 이야기합시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과 같이 빠르게 도시화되는것에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구연한이 고작 30년 밖에 되지않는 박스형 아파트로 도시가 채워진다면 얼마나 삭막한 환경으로 변할까요. 편의성, 효율성만 추구하다가 더 많은것을 잃지는 않을런지 심히 우려가 됩니다.
유성구의 토지는 제한되어있고 영구불변일진대 앞으로 이곳에서 태어나서 살아가야할 후손들도 그들의 취향에 따라 도시를 설계하고 살 수 있는 여백은 조금 남겨두어야하지 않을 가요.
또한 대전시 전체가 생산도시라기보다는 소비도시인데 특히 유성은 변변한 공장조차 없는것 같아요. 송강동의 테크노밸리를 제외하곤. 얼마전 까지만해도 50-60대 성인들에게 유성하면 무엇이 생각나느냐고 물으면 십중팔구가 “목욕탕”, “고급술집”이었지요. 연구단지가 자리하고 있지만 그곳은 서민이나 중산층이 접근하기어려웠고 이름조차도 유성연구단지가 아니라 대덕연구단지입니다. 얼마전 부산의 군수사령부가 유성으로 이전하였으나 지역경제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못하고 있는것이 현실이고....
젊은이들이 많이, 그리고 안심하며 정착할 수 있도록 목민관(牧民官)님은 고민하셔야할 거예요. 다행스럽게도 제가 30여년 살아본 유성지역은 큰비나 바람으로 인한 피해가 별로 없었습니다. 축복받은 땅이지요.
얼마전 까지만해도 학하리의 고구마, 금성농장의 배는 어느곳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명품들이었지요. 그런대 지금은? 고구마밭은 아파트단지로, 배밭들은 도시화에 초토화되어 유성의 상표를 자랑할 품목이 없어진것이 아쉬워요. 10여년전 강릉에서 택시기사에게 강릉의 자랑거리가 무엇인가 질문을 하였더니 주저없이 대답하였습니다. 첫째는 적송(赤松), 둘째는 강릉고등학교, 셋째는 맑은 공기라고하면서 신나게 자랑하는것을 들었슴니다. 그분의 자랑에 수긍이 가요. 강릉지방에는 우리민족이 제일좋아하는 적송이 많고 시민들이 적송보호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것이 눈에 띄게 나타나요. 또한 대관령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도시전체가 맑은 공기의 혜택을 만끽하고 있고, 강원도전역에서 강릉고등학교입학전형에 합격만하여도 사법고시에 합격한양 마을입구에 현수막을 부착한답니다. 그러면 유성의 자랑거리는 무엇인가요. 다행이 유성고등학교가 빛을 내주고 있어서 무척 자랑스럽고 그 외에는 선뜻 떠오르지 않네요.제가 문외한인가요, 정말 자랑거리가 없는가요 저도 헸갈리네요. 혹자는 온천을 이야기하실지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에서 온천을 자랑거리로 선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고 남들이 수긍하려하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동네 목민관님께 부탁드림니다. 어느시대나 어느지역을 막론하고 명암(明暗)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부자와 가난한자가 공존하기는 필연이기는 하나 목민관님은 관내의 사궁민(四窮民, 늙은 홀아비. 젊어서 남편을 잃은 홀어머니. 어린고아. 자식없는 늙은 노인)이 외롭지 않고 더 궁핍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주세요. 지금까지도 잘해오셨지만 더욱 좋아진다면 진짜, 진짜 멋진 진청장님이 되실거예요. 오죽했으면 태조대왕이 즉위교서에서 사궁민은 왕정(王政)으로써 먼저할바라고 천명하고 조선개국이념의 하나로 여겼을까요.
유성구 개청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러나 20세의 성년은 책임과 의무가 부여되듯 구민들은 더욱 성숙된 모습의 유성구의 변화를 기대할것입니다.
진짜, 진짜 자주 보고싶은 진청장님이 되시고 자꾸 자꾸 찾아가고 싶은 유성구청이 되세요. 성년을 축하해요 !
첫댓글 유성에서 30년을 사셨군요...저도 금산을 배경으로 수필을 써야할 것 같습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62.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