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간이역] 은행나무- 박형권
사람 안 들기 시작한 방에 낙엽이 수북하다
나는 밥할 줄 모르고,
낙엽 한 줌 쥐여주면 햄버거 한 개 주는 세상은 왜 오지 않나
낙엽 한 잎 잘 말려서 그녀에게 보내면
없는 나에게 시집도 온다는데
낙엽 주고 밥 달라고 하면 왜 뺨 맞나
낙엽 쓸어 담아 은행 가서 낙엽통장 만들어 달라 해야겠다
내년에는 이자가 붙어 눈도 펑펑 내리겠지
그러니까 젠장,
이 깔깔한 돈 세상에는
처음부터 기웃거리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낙엽 주워 핸드백에 넣는 네 손 참 곱다
밥 사먹어라.
☞ 가을이다. 도로가에 가로수 은행나무 노랗게 물든다. 은행나무잎들이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뒹군다. “낙엽 한 줌 쥐여주면 햄버거 한 개 주는 세상은 왜 오지 않나” 너도나도 그런 세상이 왜 오지 않는지 궁금타.
“낙엽 주고 밥 달라고 하면 왜 뺨 맞나” 그래도 은행나문데. 그래도 이름이 같은 은행인데 어째 은행에서 취급해 주지 않나? 은행에서 받아주지 않는 은행나무 잎, 길가 수북하다. 차곡차곡 지갑에 넣어두고 싶다.
“이 깔깔한 돈 세상에는/ 처음부터 기웃거리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었”는데 이제 와서 탈출할 수도 없고 마음이 쓸쓸하게 낙엽처럼 뒹군다. 바람에 휩쓸린다. 그런데 “아직도 낙엽 주워 핸드백에 넣는 네 손 참 곱다”
- 성선경(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