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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도의 시사토론 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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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좌빨들의 소리 잡동사니 언론 통 제
유재덕 추천 0 조회 166 09.12.30 14:30 댓글 2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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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2.30 14:46

    첫댓글 <군부세력이 1980년5월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반민주적 언론검열에 맞서 검열 거부를 선언한 언론
    인들을 연행하여 구속하는 폭력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검열 거부를 선언한 날자를 물어봐 주세요.

  • 작성자 09.12.30 16:11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동아일보, 동아방송 등도 20일부터 제작 거부에 들어갔다. 동양통신이 5월19일 제작 거부를 결의한 데 이어 합동통신도 20일 제작 거부 돌입을 선언하고, 검열을 받기 위해 계엄사 검열단에 나가 있던 기자들을 철수시켜버렸다

  • 09.12.30 20:57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5월 17일자 포고령에 따르면 언론의 사전 검열은 1980년 5월17일 자정을 기해, 즉 5월 18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위의 검열거부 선언문은 5월 16일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물어야 할 질문은 5월 15일 유시민 시위대가 시민버스 탈취하여 순경들을 깔아죽인 것을 보도하지 않은 것은 운동권에 불리하였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검열 때문이었는지입니다. 좌빨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저 검열 거부 선언문은 김대중 일당이 작성한 것이고, "한국기자협회 운영위원·분회장·대의원연석회의"는 유령 명의라는 사실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제가 몇 개의 자료들을 공개했었지만

  • 09.12.30 21:01

    당시 간첩들이 광주사태 선동할 목적으로 제작한 삐라나 김대중 세력이 붙였던 대자보는 모두 동일한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결의〉〈행동지침〉혹은 <행동강령>의 패턴이 판에 박은 듯이 동일합니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6_1000.html 에 가보시면 밑에서 세번 째에 <언제까지 눈뜬 봉사처럼 소리 죽이고 참아야 하나/전남대 자유언론투쟁위원회 1980.5.16>가 있습니다. 전민봉기를 위해 운동권이 언론을 장악케 하려는 시도가 그때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 5.18측에서는 이 자료를 사이트에서 없앴습니다. 그러나 제가 인쇄된 그 문건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 09.12.30 21:10

    좌빨들에게 저 검열거부 선언문 작성자가 언론이었는지 김대중 일당이었는지 물어보세요. 작성자가 김대중 일당이었으며, 전민봉기 선동 명분을 쌓기 위해 유령 명의를 사용한 것이기에 좌빨들 편에서 몹시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6_1000.html 외에도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6_2000.html 에서 민주투쟁위원회 등의 명의를 조사해 보면 모두 실제로는 유령 명의입니다. 실제로 그토록 무수한 단체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간첩들과 김대중 일당이 작성하고 유령 명의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 09.12.30 21:18

    그리고 동아일보 등이 제작거부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광주사태 당시 신문들을 제가 캡쳐해서 보관하고 있어요. 사이트에도 몇 개 올려놓았습니다. 동아일보 광주 주재 김영택 기자는 보도할 것 다 했습니다. 김영택 기자는 시민군 편 기자였는데 도대체 무슨 제작 거부가? 오히려 검열은 시민군 편에서 했습니다. 기자 카메라를 빼앗아서 폭도들에게 불리한 사진 있으면 카메라와 필름을 시민군이 통째로 압수했습니다. 시민군이 그토록 심하게 검열했다는 사실은 시민군 대장 박남선씨의 증언록에도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언론의 자유가 기자들 카메라와 필름을 통째로 빼앗는 것인지 좌빨들에게 물어야지요.

  • 09.12.30 21:34

    <유신잔재 청산> <유신잔재 및 그 세력을 일소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한다.> 등의 표현이 는 것 언론인이 쓴 것이 아니라, 김대중 일당이 쓴 것이었습니다. 김대중 일당의 전민봉기 선동 논리가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총리는 유신잔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표현은 김대중 일당들만 쓰던 표현이었지 언론인들이 쓰는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유신잔재 청산>이란 말은 5월 22일을 기해 최규하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키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좌빨들에게 최규하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키겠다는 의미의 이 선언을 어디서 누가 했느냐고 물어 보세요. 그냥 김대중 일당이 장구치고 북치고 혼자 다 한 거였어요.

  • 09.12.30 21:33

    5.18측이 인터넷에서 없앤 자료들도 있지만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6_1083.html 에서 북치고 위의 검열 거부 선언문에서 장구친 것입니다. 실제 작성인은 동일인이었으니 혼자 북치고 장구친 것입니다.

  • 09.12.30 14:49

    <5월16일의 계엄사 검열지침이었던“학생구호 중‘김일성은 오판 말라’, ‘반공전선 이상없다’등은 불가”> 이거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도대체 '김일성은 오판 말라’라는 시위 구호가 5월 16일 혹은 그 이전에 등장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시면 됩니다.

  • 09.12.30 15:02

    <4월17일오전9시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열린 신문?방송?출판 등의 동아일보와 동아방송 기자총회는 <자유언
    론을 위한 선언문>을 통해 검열?사찰?압력?간섭의 거부> 이 선언문 수신자가 전두환이었느냐고 물어봐 주세요. 물론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1980년 4월의 시국에 대해 설명드려야 하겠습니다. 계엄령 하에서는 당연히 언론 검열이 있습니다. 계엄 정국이란 군정을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것이 불가능한 모순이 있었습니다. 10.26비상계엄은 최규하 권한대행이 선포한 것이기에 최규하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하지 않는 한 비상계엄은 유지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통치권자의 판단에 따른

  • 09.12.30 15:11

    권한이었기에 운동권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운동권이 그것을 부정하면 그 운동권 수가 많은 만큼 최규하 대통령의 지지기반은 허약해지고 맙니다. 그리고 군인들 편에서 비상계엄 하에서는 죽을 고생입니다. 장교들도 몇 달 동안 밤에 잘 때 군화를 벗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4월에 미군과 합동으로 팀 스프리트 훈련이 있었습니다. 팀 스프리트 작전 하나만으로도 갑자기 업무량이 폭주하여 무척 고되었습니다. 여기에 계엄사 업무의 모순점이 군 내부에서 자각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비상계엄 하에서는 당연히 계엄사가 행정, 입법, 사법의 주체가 되어 정치와 경제 정책까지 총지휘하여야

  • 09.12.30 15:20

    합니다. 그런데 왜 군사전문가들이 비전문적인 분야의 정책을 총괄해야 하는 것인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모순을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5월 중순 경에 최규하 대통령께 국보위 설치를 건의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보세요. 만약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었으면 미군정 시대처럼 다시 군정 시대가 열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6월에 국보위가 설치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국보위 위원이 되었으며, 군인들은 군사 분야에서만 위원이 되었습니다. 즉, 각 분야의 일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 손에 맡기자는 제안이었는데, 그 석달 기간의 국보위의 활동은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 09.12.30 15:28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 석 달 기간의 인수위 활동이 있었는데, 바로 그 모형을 국보위에서 따왔을 만큼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군정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 국보위였습니다. 최규하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언제까지 지속시킬지 아무도 몰랐고,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통치의 주체가 계엄사령관인지 최규하 대통령인지 잘 모르는 애매모호함이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물 계엄이었습니다. 물 계엄 하에서 무슨 언론 통제가 있었나요? 그리고 5월에 나온 국보위 안도 비상계엄 하에서의 군정을 더욱 축소시키자는 취지였고, 또 당시 비상계엄 해제로 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국보위가 빠르게 사회를 안정시킨

  • 09.12.30 15:40

    덕에 몇 달 만에 비상계엄 해제가 가능하였으니까요.

  • 09.12.30 15:44

    여기 나오는군요. <마침내 한국기자협회는 5월16일 신문회관 회의실에서 기자협회 회장단, 운영위원, 분회장, 보도자유분과위원회 연석회의를 열고 자유언론 실천대책을 협의한 뒤 언론검열 거부를 결의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제가 그 시점을 몇번 물어본 이유가 광주사태 도중에 언론거부를 하였다는 것인지, 김대중이 전민봉기를 선동하고 있던 때에 언론 거부를 하였다는 것인지 알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알았으니 분명하게 답변을 드릴 수 있는데요. 자, 그 당시 운동권 언론인들의 성명서를 제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언제고 공개하려던 자료들이었으니까요. 당시 운동권 언론은 최규하 정부를

  • 09.12.30 15:50

    전복시키려 했습니다. 여기 그들의 성명서들로 제가 그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 http://altair.chonnam.ac.kr/~cnu518/data/data6_1083.html 에 보시면 그 선동의 시작은 "언론인에게 보내는 메세지"입니다. <10.26사태가 부마민중봉기로 대표되는 민중투쟁의 결과> 이런 표현은 언론인이 사용해서는 아니되는 표현이었습니다. 왜 부마사태를 부마민중봉기라고 부릅니까? 탈북자 5.18증언록에 보면 북한군 특수부대로 구성된 간첩들이 부마에서 민중봉기를 일으킨 과정이 서술되어 있는데요. 언론이 부마사태를 부마민중봉기라고 부를 때 그것은 이미 좌익사관의 주장이지, 객관적 보도가 아닙니다.

  • 09.12.30 15:56

    <10.26과 그 이후 유신잔당이 서둘러 민주화를 운위하는 것도> 이 말은 최규하 대통령의 민주화 일정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일국의 대통령을 유신잔당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12.12재판 판결을 뒤집혀져야 합니다. 12.12-5.18 재판 판결은 전두환이 유신정권에 반기를 들자 광주 시민들이 유신정권을 수호하려 하였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당시 운동권이 최규하 대통령을 유신잔당이라 부르며 비하했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표현은 사용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는 우리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최규하 대톨령을 유신잔당으로 비하하는 것을

  • 09.12.30 16:02

    원하지 않았습니다. 자 이 성명서가 대학언론인일동 명의로 발표되었는데요. 이것은 명의 도용이었습니다. 실제 작성자는 김대중의 전민봉기 거사 준비를 하던 일당이었습니다. 당시 모든 운동권 성명서들은 김대중 세력이나 간첩들이 작성하였던 것이고, 여러 단체의 명의를 도용하여 발표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명의 도용을 민주 언론으로 이해하지 않지요. 제가 당시 운동권 성명서들은 모두 김대중 일당이 작성하였다는 증거들을 제시하다 시간 여건 때문에 뒤로 미루었는데요. 약간의 자료들이 http://www.bookstore21.net/korean/12-12/document/5-16.htm 과 http://www.bookstore21.net/korean/dajabo/pre-518/5-4.htm

  • 09.12.30 16:04

    등에 있습니다. 언제고 시간 여건이 될 때 제가 자료들을 공개할 것입니다. 그라고, 좌빨들이 언론통제 운운하면 저에게 크게 걸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김대중의 내란 음모의 증거물들로서 당시 운동권 언론인 섬영서들을 모두 보관하고 있으니까요.

  • 09.12.30 20:10

    좌빨들에게 이것 좀 물어봐 주시겠어요? 5월 16일 서울에서 유시민 시위대가 시민버스 탈취하여 순경들을 깔아죽인 것, 그리고 5월 19일 광주의 폭도들이 버스로 순경들을 깔아죽인 것 등을 그때 국민들은 모르고 있었는데, 운동권 기자들이 자기네에게 불리하여 신문에 안 실은 것이었는지 아니면 언론 통제 때문에 못 실은 것인지 답변을 해달라고 하세요.

  • 09.12.30 21:56

    참, 저 위의 언론반 반장 걸재 사진 말인데요. 5월 17일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각 장군들에게 반장직을 하나씩 떠맡겼습니다. 그리고 그날 늘어난 계엄사 업무별로 각 장군들이 자기에게 맡겨진 반 문건에 서명했습니다. 이것은 계엄사 상부로부터 하달된 새 임무를 준수하겠다는 표현, 즉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시키는 대로 따르겠다는 표현이었어요. 그간 좌빨들에는 전두환이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다고 사기치는 좌빨들이 있었는데, 그 서명 문건은 전두환은 계엄사 하급 부서 반장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줍니다. 그리고 좌빨들은 전두환이 5.17일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했는데

  • 09.12.30 22:04

    도대체 무슨 쿠데타가 상급 기관으로부터 하달된 문건에 서명이나 하는 쿠데타인가요? 포고령 각 항은 계엄사에서 정하고 언론반 등 하위기관 기관장은 상부 명령대로 움직입니다. 군인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쿠데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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