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세 언 약(2)
-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모세, 그리고 십계명 -
1.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인 출애굽기
아브라함 때로부터 다루어지고 있는 족장 시대는 이스라엘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불려지게 된 야곱의 애굽 이주로 인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섭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다루는 역사가 그 모습을 서서히 갖추어져가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그 연대가 B.C. 1445-1440년 경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아멘호텝2세(B.C. 1450-1425) 치하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보다 늦은 시기로 연대를 잡는 학설도 있습니다. 라암세스2세(B.C. 1299-1232) 치하에서 B.C. 1290년 경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둘 중에서 보다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 것은 전자의 학설입니다. 성경의 기록 또한 이 초기설을 뒷받침합니다. 이렇게 보는 것은 열왕기상 6장 1절에서 솔로몬의 성전 건축이 출애굽 사건이 있은 후 480년이 지난 솔로몬 재위 4년에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라면 B.C. 960년경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480년을 더하면 출애굽 시기는 1440년이 됩니다. 출애굽의 초기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기록이 있습니다. 사사기 11장 26절을 보면, 1100년경에 활동했던 사사 입다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여 헤스본과 그 향촌들과 아로엘과 그 향촌들과 아르논 연안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한 지 어언 300년이 되었다고 말한 것이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1400년 경이 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B.C. 1445-1400년경에 있었지만, 이 대사건이 있을 것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는 그때로부터 아주 오랜 옛날로 더 거슬러 올라가 있었습니다. 출애굽이 있기 전의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을 보냈는데 이에 대한 성경 구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창 15:13-21). 여기서는 400년으로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만, 이는 대략적인 연대 계산법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7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정하신 언약을 430년이라고 밝힙니다. 그런데 이 언약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을 보내기 전인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주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의 연대는 B.C. 2160년경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거주하게 된 때가 B.C. 1870년경이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 하란을 떠난 때가 75세이므로 이 연대를 계산하면 대략 215년 정도가 더 올라갑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있기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에게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왕국을 세울 땅을 주실 것과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이 될 그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룰 것과 그를 통하여 그의 모든 후손에게 복을 주실 것을 언약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언약으로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애굽에 있게 된 430년 후에 일으키실 이 출애굽 언약과 함께 할례 언약(창 17:10-14)을 주셨습니다.
2. 이스라엘의 출애굽 징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연대는 B.C. 1445-1440년경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먼저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성취해 나가시는 방식으로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방 땅에서 객이 될 것과 그 이방 나라를 하나님께서 징치하시고 그곳으로부터 아브라함의 후손을 이끌어 내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계시 언약이 있었고, 그 성취로 출애굽의 서막인 입애굽이 있었던 바, 출애굽 시기가 임박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 나가시기 위한 징조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의 정책에 따라 애굽인으로부터 당하는 혹독한 학대에 두어서 그들이 하나님을 찾아 구원의 은혜를 바라보도록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에 의해서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고 살펴보시는 것에서 였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기록을 출애굽기 1장 1절 - 2장 25절에서 봅니다. “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인이었더라.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을 인하여 근심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 고역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역사가 다 엄하였더라…여러 해 후에 애굽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여기서 마지막 절의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의 ‘권념하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좇아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아 구원을 호소하여 부르짖게 하신데 따라서 그들을 ‘용납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한 것은 그들이 애굽에 객이 되어 들어간 후 그곳에서 400년간을 종살이를 한 후 그 고통을 못이겨서 비로소 갖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있는 기간인 400년 동안에서 종살이를 하는 내내 있어온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역을 인하여 겪는 그 고통 속에서 자신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세운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묻혀 있는 땅이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약속 받은 땅인 가나안으로 돌아갈 날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부터 압제를 당하고 그 견디지 못함을 인하여 하나님께 구원을 청하여 그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 것은,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성취시켜 나가기 위해서 일으키신 것이었으며, 또한 이제 마침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4대만에 이방 땅에서 나오게 되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모세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는 데는 모세라는 사람이 사용되었습니다. 모세의 출생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압제 정책에 의한 고역으로 인해서 그 고통을 하나님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시는 것과 맞물려서 등장합니다. 그것은 모세의 출생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하여 하게 되는 출애굽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3-1. 모세의 출생과 성장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출생이 레위 지파 사람인 히브리인에게서 있게 하시지만 그의 양육을 애굽 왕궁에서 받게 하기 위하여 그의 출생이 있기 전에 애굽 왕이 히브리 여인이 낳은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게 하는 정책을 쓰게 합니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인 십브라와 부아에게 히브리 여인이 아이 낳는 것을 도와 줄 때 남자 아이를 낳으면 죽이고 여자 아이를 낳으면 살려주도록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산파들을 하나님의 경외 속에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산파들은 애굽 왕의 명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았기 때문에 남자 아이들을 살려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산파들을 보호 속에 두심으로 애굽 왕의 유아 학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번성하였습니다.
그러자 애굽 왕 바로는 또 다시 모든 백성들에게 히브리 여인에게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강물에 집어 던져 죽이라고 하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세의 출생은 바로 이즈음에 있었습니다. 레위 지파 사람 중 한 남자가 레위 지파 여자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이 히브리 부부는 아들을 낳았으나 애굽 왕 바로의 명령을 어기고 그 아이를 석 달 동안아니 숨겨서 키웠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점점 자라 크므로 인해서 더 이상 숨겨 기를 수 없게 되자 갈 상자(왕골 상자)에 역청과 송진을 칠하여 방수 처리를 한 후 아이를 거기에 담아 강가 갈대수풀 사이에 놓아두고는 그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그의 누이가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게 하였습니다. 갈 상자에 담긴 아이는 마침 목욕하러 강가에 내려온 애굽 왕 바로의 공주 눈에 띄었습니다. 공주는 아이를 보고는 히브리 사내아이인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누이가 다가가서는 히브리 유모를 데려다가 공주를 대신해서 젖을 물리게 하겠다고 재치 있게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공주는 그렇게 할 것을 지시하였고, 아이의 누이는 얼른 집으로 달려가서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고하여 데려왔습니다. 공주는 아이의 어머니를 보고서는 자신을 대신해서 아이에게 젖을 먹일 것을 지시하며 그 삯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생모는 아이를 데리고 가 더 이상 숨기지 않고도 마음껏 젖을 먹여 키울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자라자 공주는 그를 왕궁으로 데려다가 자기의 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이름을 물에서 건져내었다고 해서 ‘모세’(Moses)라고 지어 불렀습니다. 이렇게 해서 히브리 사람인 모세는 애굽 왕 바로의 왕궁에 들어가 공주의 아들로 성장하였습니다.
3-2.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召命)이 갖는 본의
히브리 사람, 곧 이스라엘 사람인 모세가 애굽 왕 바로의 왕궁에 들어가 공주의 아들로 성장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갈 모세는 애굽 왕 바로 앞에 서야 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에게 나아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내보낼 것을 말씀하신다는 것을 전하여야 할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자유로울 수 있는 신분의 상태인 애굽 왕의 공주의 아들에 있게 하시는 섭리를 행하셨습니다.
모세가 애굽 왕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에 있으면서 왕궁에서 생활을 한 것은 그의 나이 40세 때까지였습니다. 모세는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는데, 하루는 그가 밖에 나갔다가 자기 동족들이 말할 수 없이 고생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침 어떤 애굽 사람이 자기 동족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는 주위를 살펴 아무도 없다고 여긴 그는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는 시체를 모래 속에 감추었습니다.
모세가 이처럼 자기 동족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불쌍히 여기며, 자기 동족이 애굽 사람에게 부당하게 맞는 것을 보고는 애굽 사람을 쳐 죽이는 일까지 하였던 것은 그의 유모로 있었던 생모를 통해서 양육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히브리인의 의식(意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데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알아간 데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생모에 의한 히브리 교육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히브리인의 민족성 의식의 고취와 함께 애굽의 왕자 신분으로서 당대의 지식과 무예와 학문에 통달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자신의 존재 목적을 당시의 이스라엘이 처한 처지 속에서 연결하여서 생각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그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해 내는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으로 생각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애굽 사람에게서 학대 받는 동족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는 모세의 행동과 관련해서 대체적으로는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고 그들을 애굽의 손으로부터 구원해 내고자 하는 뜻을 품었다는 것으로 이해해 나갑니다. 그래서 그가 일찍이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역사적인 사명을 띠고 있음을 인식하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려 한 인물이었으나, 이스라엘 민족의식을 되찾는 운동에 실패하고 미디안에서 40년을 목자로서 생활하며 보내게 되었다고 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도행전 7장 23-25절 중에서 25절의 말씀을 인해서 입니다.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 여기에서의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는 모세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들의 지도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인정해 주기를 바랐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래서 모세는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이 때려 못살게 구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의 편을 들어 애굽 사람을 쳐 죽인 광경을 본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여서 그의 손을 빌어 동족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신 것이라는 이해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정작 동족들은 그러한 모세의 마음을 전혀 알아주지 않았으며, 따라서 모세가 가진 생각과 같은 이해도 갖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존재를 이스라엘이 당하고 있는 처지에서의 구원과 관련해서 자기 한 개인의 소명 및 사명 의식 속에서 가져나갔으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예비하신 것은 모세 한 개인과 관련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에 의해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실 것인데, 이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영원토록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이 되어 이 이름을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대대로 불러 기리게 하실 것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하나님이신 여호와께 희생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출 3:15-18). 그러니까 모세는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는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을 자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등장하여서 해결하고자 하는 민족 해방자의 생각에서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두는 것이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모세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모세의 존재에 의미를 두고서 그를 소명하시는 일을 하셨던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에 있었으며, 이스라엘을 언약하신 대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대대로 거할 땅으로 들어가게 하여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영원토록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이 되게 하고자 하시는 것에서 이스라엘을 불러내시는 ‘이스라엘의 소명’에서 모세를 예비해 오시고 또한 그를 소명(召命)하는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모세가 애굽 사람을 쳐 죽인 것이 발각되어서 애굽 왕 바로를 피해 도망하여 오랜 세월을 미디안 땅에서 지내다가 40년만에야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인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에서도 보게 됩니다. 흔히, 모세가 미디안 땅으로 도망하여서 그곳에서 40년을 보낸 세월을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수 있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훈련 받은 기간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서도 그 때의 기간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훈련 기간에 있은 때로 말해주고 있는 곳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때의 기간에 모세가 한 일은 미디안 땅으로 도망한 중에 마침 그 땅의 제사장인 르우엘(이드로)의 일곱 딸들이 자기 아버지 소유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려고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는 일을 하고 있을 때 다른 목자들이 와서 그 딸들을 쫓아버리는 부당한 해를 입는 것을 보고 불의를 참지 못하여 그 딸들 편을 들어 보호하고 양 떼들이 물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 준 일로 인해서 대접을 받고 그의 집에 같이 지내게 되어 그 집의 딸인 십보라와 결혼하고 아들 ‘게르솜’을 낳았다는 것이 전부입니다(출 2:16-22). 모세가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은 것에는 미디안 땅에 있는 그의 인생 여정을 잘 설명해 줍니다. 그것은 그 이름의 뜻이 ‘내가 타국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보낸 40년의 세월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이 기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나타나기 위하여 그가 어떤 훈련의 과정을 겪은 내용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혹자는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훈련을 ‘자기 부정’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모세의 교만한 마음을 바짝 낮춰 겸손케 하는 훈련으로 그를 미디안 땅으로 몰아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라프(S. G. De Graff)는 “시내 반도에서 사는 동안 모세는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그의 백성들의 신원을 담당해야 한다는 충동은 아주 강하게 남아 있었지만 그들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는 처지였다. 그는 거기서 향수병을 감내하였다. 이는 그가 첫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Gershom)이라 이름 지은 사실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이것은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라고 하는 의미의 이름이다. 그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체 기다리고 또 기다렸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지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모세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이것이 그가 자기 백성을 위한 중보자가 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만일에 모세가 미디안 땅으로 도망하여서 그곳에서의 망명 생활을 가진 것이 하나님께서 그를 장차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훈련의 과정으로 삼으신 것이었다면 과연 그라프가 말한 대로 그가 하나님께 복종하는 법을 배움으로 자신의 교만한 마음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선 것이라면 이것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준비되고 있는 그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자신이 어리석게도 교만하였던 것에 대한 자기 반성과 함께 수련을 통하여 자기 마음을 낮춰 비우면서 이제는 자기가 직접 나서서 무엇을 해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언제고 들어 쓰고자 하시면 기꺼이 쓰임을 받겠다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겸손의 마음을 그의 미디안 땅에서의 40년에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세를 보여주는 내용의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니 모세의 미디안 땅에서의 40년의 생활을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훈련받는 과정의 기간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한 것이 됩니다.
모세가 미디안 땅에 거한 기간에 해나간 것은 단지 제사장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여 아들 게르솜을 본 것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도망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쳐 산 이 기간에 모세는 애굽 왕자로 있으면서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위하여 희생할 마음을 품었던 것도 더 이상 있지 않았습니다. 이는 후에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것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만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으며 극구 사양하여 거부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애굽 왕 바로 앞에 서는 것을 원치 않은 것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서 미디안 땅에서의 목자로 살아가는 삶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목자 생활을 하며 가정을 잘 꾸려갈 뿐이었습니다. 이런 모세에게서 보게 되는 것은 육의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40년의 세월을 목자로 살아가면서 보내고 있는 것에서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후손을 돌아보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서 해 나가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일하심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불러내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실 때가 이르자 모세의 출생에서부터 마침내 모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애굽 왕 앞에 서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요구하게 하는 모든 과정에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목자로 살아가는 세월이 오래 되었고, 그 사이에 애굽 왕이 죽고 새로운 왕이 등극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고역(苦役)에 시달려 신음하며 울부짖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원을 들으시고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맺은 언약을 생각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을 돌아보셨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미디안의 제사장인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어 양 떼를 이끌고 빈들 서쪽으로 이동하여 하나님의 산인 호렙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사자를 떨기나무에 붙는 불꽃으로 모세에게 나타나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모세와 만나 그를 부르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떨기나무에 타오르는 불꽃 - 그러나 떨기나무는 불타 없어지지 않았다 - 을 보고 신기해하며 그 광경을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서려고 하는 모세에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심을 알리시면서 이제 자신이 내려가 자신의 백성을 압제자 애굽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인 가나안 사람, 헷 사람, 아모리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이 사는 땅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하면서 그 일을 위하여 모세를 애굽 왕 바로에게 보내니 하나님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낼 것을 말씀하심으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떨기나무에 불붙는 불꽃으로 나타나 그를 부르시는 이유를 밝히셨습니다.
3-3.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맡기신 사명의 본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시는 것으로서의 소명에서 모세의 소명을 다루시는데, 이 소명은 곧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맡기신 사명(使命)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호렙산에서 떨기나무에 타오르는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자신이 하실 일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해 나갈 일을 애굽 왕 바로에게 전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게 하기 위하여서, 그래서 하나님이 하실 그 일을 해 나가도록 하기 위하여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맡기시는 것입니다.
모세의 사명은 그 자신의 생각과 계획과 품은 바 뜻의 성취를 위해서 그 자신 마음에서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사명은 그 자신 개인의 일로서 갖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해 나가시는 일인 하나님의 일을 모세에게 맡기심으로 모세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사명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맡은 일에서 그 성격과 목적을 말하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의 직분이나 어떤 일을 맡음을 어떤 한 개인에게 주어진 소명과 그에 따른 사명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나, 또는 소명과 사명을 받았다고 하는 자들도 자신의 마음의 원함을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사명을 맡기신 것에서 가져진 것으로 알고 있는 형편인데, 이는 소명과 사명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런 이들의 소명과 사명은 지극히 인위적이며 주관적인 것으로 그들의 마음의 원함의 상태에 의해서 바로 행해지기도 하는가 하면 계획되어지고 준비 속에 행해지기도 하고 전혀 행해지지 않기도 하고 늦춰지기도 하고 하는 도중에 후회하고서 그만 두기도 하고 또 다시 후회하고서 다시 하기도 하고....이러한 것은 그 소명과 사명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하심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하는 자기 일로서 갖는 자기가 대상인 소명과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맡기신 일에 의한 사명은 출애굽기 3장 15-18과 4장 21-23절에 의해서 자세히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 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 하소서 하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오 이삭의 하나님이시오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그 후손들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서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영원히 기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과 언약으로 맺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이스라엘을 ‘장자’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장자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섬길 자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길 맏아들로 선택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하나님을 섬길 장자이기에, 그 장자를 애굽이 노예로 삼고 속박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아버지가 되는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실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하나님이신 여호와가 내신 장자로 하나님의 소유된 자이지, 애굽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인이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고 자기들의 소유인양 여기고서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애굽인은 이스라엘은 그들을 내신 본래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신 여호와께로 돌려보내 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장자 이스라엘을 풀어 주어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섬길 수 있게 할 것을 애굽 왕 바로에게 전하게 할 것이며, 장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게 할 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계시는 것으로 미디안 땅에서 목자 생활을 하고 있는 모세를 부르시고 그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하지만 애굽인은 모세를 통해서 전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이스라엘을 붙잡아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애굽을 심판하여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이는 징벌을 내리실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애굽을 심판하여 장자들을 죽이는 징벌을 내리실 것을 말씀하신 것은 애굽 왕 바로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여 하나님의 장자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막을지라도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은 불가항력임을 나타내어 알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모세는 길을 나서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게 됩니다.
3-4.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피의 할례
모세가 길을 나서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게 되는데, 이와 관련해서 세 가지의 중요한 사건이 있게 됩니다. 하나는 모세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애굽왕 바로에게 나아가 전하는 것과 관련하여 모세의 아들 게르솜이 ‘피의 할례’를 받는 일이 있게 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모세가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 앞에 세워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모세가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 모세가 전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로 아론을 세우는 일입니다.
(1) 모세의 아들 게르솜의 ‘피의 할례’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출 4:24-26)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를 찾던 자가 다 죽었으니 애굽으로 돌아가라고 하면서, 애굽왕 바로에게 나아가 그 앞에 행할 하나님의 이적을 나타내 보이고 하나님의 장자인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보내 하나님을 섬기게 할 것이나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바로 왕의 장자를 하나님께서 죽이실 것임을 이르셨습니다(출 4:19-23).
이에 모세는 애굽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 곳에 이르러 하룻밤을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피 남편‘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는 사건은 원시복음으로 불려지는 '약속의 자손'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과 여기에서 나오게 된 할례에서부터 이해를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한 사건은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받는 것으로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심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낳게 하신 것에서, 그리고 이삭은 조상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을 또한 이을 자로 있는 것에서 증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수다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그의 후손으로 오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고 아브라함이 가진 언약의 믿음 안에서 할례를 받는 모든 이방인들도, 그래서 땅의 모든 족속들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지닌 언약적인 믿음 안에서 베푸는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할례는 '피의 의식(儀式)'입니다. 난지 8일된 사내아이의 고추 살을 베는 것이기에 거기에는 피가 흐르고 또한 고통이 따릅니다. 이제 태어난지 겨우 8일된 아이이기에 살을 베는 고통을 모르겠습니까? 과연 그렇겠습니까? 아이가 철철 흘리는 피는 아름다운 광경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모세의 부인인 십보라가 아들인 게르솜에게 할례를 행할 때는 차돌이 사용되었습니다. 날카로운 차돌을 칼처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주 예리한 칼만큼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그것으로 아들의 살을 베어서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그때 십보라가 한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의 남편이로다"(출 4:26). 이 말은 십보라가 '피로 맺어진 남편'이라는 뜻인데 할례를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십보라는 아들에게 피를 흘리는 표징을 갖는 것을 통해서 남편이 사실은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안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모세가 애굽에서 도망하여 미디안 땅에 있을 때 제사장 르우엘이 딸 십보라와 짝을 맺어 주었고, 그 둘 사이에서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다'는 뜻의 이름인 게르솜을 낳았는데(출 2:11-22), 모세가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동족에게로 돌아갈 때 바로에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이니 그 아들을 풀어 주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할 것이며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는 하나님께서 애굽 왕 바로의 장자를 죽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길을 가다가 어떤 곳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그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서 그를 죽이려고 하였고, 이에 놀란 십보라가 얼른 날카로운 차돌을 취해서 그것으로 게르솜의 할례를 행하고서는 그 피 묻은 돌을 모세의 발에 갖다 대고서 '당신은 참으로 나와 피로 맺어진 남편이다'라고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었는가 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그의 후손들인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수립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는 일을 하고 계신데 그 사자로 선택된 모세에게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게르솜에게 할례의 언약을 행하지 않고 있음으로 해서 할례를 무시한 자는 "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다"라고 하신 지경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있는 모세를 죽이려고 위협하신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제사장의 딸로 있으면서 잘 알고 있는 십보라이기에 그녀는 즉시 돌이켜 할례를 행하여 남편 모세를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십보라는 이 사건을 통해서 아들의 피를 흘림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음으로해서 죽음에 처해진 남편을 다시금 새로이 남편으로 얻었다고 하는 신앙적인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모세에게서 피의 의식인 할례는 그를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여 새 생명을 얻게 한 사건으로 등장합니다. 따라서 할례를 행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있게 하신 피 흘림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죽음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죽음에 처하게 하신 상징적인 의미를 할례를 통해서 나타내신 것이며, 그리고 이 죽음에서 그를 살려 생명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그와 함께 하실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후 이 피에 의한 표징은 제사 제도에서도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의 피 흘림에 의한 죄 사함의 구원을 생명을 주시는 새언약으로 맺어주실 때까지 말입니다.
(2) 모세가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 앞에 세움을 받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 하시매 그가 가서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그에게 입맞추니,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부탁하여 보내신 모든 말씀과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이적을 아론에게 고하니라. 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보시고 그 고난을 감찰하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출 4:27-31)
모세의 아들인 게르솜이 할례를 받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피 흘림’의 약정 속에 두신 후, 아론에게 호렙산에 가서 모세를 맞이하도록 했습니다. 모세의 형 아론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호렙산에서 모세를 만납니다. 모세는 아론을 만나서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말씀과 명하신 모든 이적을 자세히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 후 모세는 아론과 함께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두 불러모았습니다. 아론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을 그대로 전하며 백성 앞에서 이적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돌아보시고 그들이 당하는 고난을 감찰하셨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머리를 숙여 경배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아론을 불러 모세와 함께 하게 한 것은 아론이 선지자 모세를 위해 선지자 같은 역할을 맡게 하시는 것으로서 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조상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출 3:16) 라고 하면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을 말하게 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이 말이 어눌하여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즉 말 주변이 없다고 하므로, 그에게 아론을 붙여서 그를 대신하여 그가 입이 되어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게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출 4:11-17). 그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모세와 만나게 하신 것이며, 아론은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모세의 선지자로 세우셨다는 말을 듣고는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서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말씀을 그가 대언하므로 모세의 선지자 역할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럼으로써 사실상 모세는 선지자로서의 하나님의 일을 공식적으로 첫 수행을 하였습니다.
(3) 모세와 아론이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가로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온역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를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 또 가로되 이제 나라에 이 백성이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역사를 쉬게 하는도다 하고.“(출 5:1-5)
모세는 아론과 함께 이스라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전한 후, 애굽 왕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출 5:1) 그러나 바로는 자신은 여호와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며, 여호와가 누구인데 알지도 못하는 그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줄 수 있겠느냐며 그럴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을 합니다. 바로의 이러한 말과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지시하신 명령을 거부하는 행위에 있은 것은 그가 여호와이신 하나님이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그 신이 누구이며 어떤 신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가 아닙니다. 바로가 말한 바인 “여호와가 누구관대…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는 모세가 전하는 말인 여호와께서 지시하신 명령을 자신이 무엇 때문에 듣고 그것을 따라야 하는지 자신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는 모세가 전하는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애굽 왕인 자신이 순종해야 할 신(神)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로가 요셉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지 못하는 왕으로서(출 1:8)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애굽을 큰 재앙으로부터 어떻게 구원했는지를 알지 못하여 여호와만이 참된 신이심을 모르는 까닭입니다. 즉,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능력과 그 위대하심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하나님이 지시하신 명령을 무시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으로써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이러한 행동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앞서 애굽으로 돌아가는 모세에게 미디안에서 만나셔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출 4:21-23) 라고 말씀하시는 것에서 모세가 바로 앞에서 온갖 이적을 다 나타내 보일지라도 그것에서 그가 결코 그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들로 말하며 내보낼 것을 이야기해도 그가 결코 그 말에 귀를 기울여서 내보내는 일을 하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이기 때문이며, 이런 그의 강퍅함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장자를 죽일 때까지 계속될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 서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명령을 전했지만, 바로는 모세, 그리고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며 자신의 장자의 죽음으로 경고함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큰 노동력이 되는 이스라엘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거듭 말함으로써 하나님에게 결코 복종하지 않겠다는 강퍅함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럼으로써 애굽 왕 바로는 여호와께서 일으키신 여호와의 전쟁에 대적하는 행위를 보였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하나님과 애굽 왕 바로 간에는 갈등 구조가 전개됩니다. 그것으로 바로는 그날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역(苦役)을 통하여 압제하며 모세와 아론이 전하는 말에 귀 기울일 틈도 갖지 못하도록 하여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합니다.
바로가 그러한 강퍅함을 보이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 삼으심으로써 그들을 바로와 애굽 사람들로부터 구원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주겠다고 한 땅으로 인도하여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에 모세와 아론은 애굽 왕 바로 앞에 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을 나타내 보입니다. 이 이적은 10가지 재앙으로 점진적으로 주어지는데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며 유월절 희생양의 피를 이스라엘이 의지하는 가운데서 애굽 전역에는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 재앙이 내려집니다. 이 재앙을 끝으로 바로는 그날 밤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애굽에서 떠날 것을 요구합니다.
4.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민족으로 삼으시고 십계명을 주심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따라 출애굽하여 하나님께서 맹세로 주신 땅을 향하여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지 석 달이 된 시점에서 시내 광야에 이르러 시내산 부근에 진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불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임을 일러주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오늘과 내일 이틀은 성결하게 하고 옷가지를 빨아 셋째 날을 준비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셋째 날 아침 시내산 위 불 가운데서 내려오셔서 그곳으로 모세를 불러 하나님 가까이에 서 있게 하였으며, 그 아래쪽에는 아론과 제사장들을, 산 아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 있게 하였습니다. 산 위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은 천둥과 번개 치며 나팔이 크게 울려 퍼지는 것처럼 지극히 크고 위엄이 있어 산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장에라도 죽음을 당할 듯한 심정에서 큰 두려움으로 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큰 위엄으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것은 ‘십계명’(또는 언약의 말씀, 언약의 돌판. 출 34:28; 신 9:9, 11)으로 불려지는 열 가지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먼저 자신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노예로부터 해방시킨 신(神)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시며, 온 세계가 다 그 하나님의 것으로 열국 중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여 그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며 거룩한 민족이 될 것임을 이스라엘에게 전하여 알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출 19:4-6)
모세에게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전해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자신들은 모두 다 행할 것이라고 응답합니다. 그러자 모세는 이 사실을 하나님께 다시 고하였습니다.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회보하매”(출 19:8)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전하는 말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을 응답하므로 이제 그들을 상대로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상대로 언약을 체결하시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구체적으로 성취되고 있는 것에서입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 체결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더욱 확대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 곧 이스라엘로 불려지는 자들을 상대로 그들과도 직접 언약을 체결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아브라함을 언약의 대상으로 인정하시고 그 언약을 잇는 후사들을 상대하셨습니다만, 이제는 하나님 자신이 아브라함 언약 안에서 이스라엘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있게 하실 것을 약속한 후손의 성취에 따라 등장하게 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직접 언약의 대상으로 상대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까지는 아브라함의 언약에 속한 언약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아 왔으나, 이제부터는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하는 언약의 대상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의 후손으로 온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게 되는데, 먼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관계의 정체성에 있는지를 확인시키며 하나님이 전하는 말씀을 따름에 있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응답하므로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상대로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 외에 다른 참 신이 없으니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 것을 명령하시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출 20:1-2)
이 첫 번째 계명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출 6:7)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다스리는 하나님이 되셔서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신 신(神)이 하나님이신 사실을 알게 하실 것(출 6:7)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지배에 있는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주시는 첫 번째 계명에서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를 분명히 하십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참 신으로 섬길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으니, 그래서 하나님만이 그들의 주(主)가 되시며 다른 신이 그들에게 주가 될 수가 없으니 하나님만을 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는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에 의해서도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되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인 한에는, 이스라엘 백성은 계명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이 명령을 따라 하나님만을 주로 섬기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들은 섬길 대상이 아니므로 그것들에 그들의 마음과 몸을 두고 힘을 다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재물<맘몬>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그것에 마음과 몸을 빼앗겨 사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즉, 재물을 위해서 살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까닭을 이스라엘의 출애굽에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만 하나님만을 섬기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실현으로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 부르신 자들에게 그들의 마음과 몸을 지배하며 마치 그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으로 여겨왔던 재물에 대한 죄의 지배를 받는 악한 생각에서 구원하여 그들의 주가 되심으로 이제는 그들의 마음과 몸이 주님께 있게 하며 주님에 대한 사랑에 그들의 온 힘이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에서 첫 번째로 주신 명령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그리고 하나님에게 이스라엘이 어떤 자로 있어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 이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다만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거기에 그들의 마음과 몸을 두어야 하며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처럼 다만 하나님을 주로 섬겨 사랑할 것에서, 다른 어떤 형상으로 하나님을 대신하지 말 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경휼히 여겨 함부로 부르지 말 것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킬 것을, 부모를 공경할 것을, 사람을 죽이지 말 것을, 간음하지 말 것을, 도적질 하지 말 것을, 이웃에게 해를 가하는 거짓 증언을 하지 말 것을, 이웃의 재산을 탐내지 말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계명에서 자신을 공경<사랑>하는 것과 함께 부모와 이웃을 공경<사랑>할 것을 명령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섬김에 있으며 사랑하는 부모와 이웃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부모이며 이웃인 것입니다. 그러니 경휼히 여길 수 없으며, 공경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명령을 하시는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부모와 이웃을 섬기는 그 모두에서도 하나님을 주로 섬겨 온 마음과 몸을 다해 사랑하며 충성할 것을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가는 삶의 모든 현장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있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주가 되셔서 그들을 다스려 가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민족으로 삼으시며 십계명을 주신 것은 그러한 뜻에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십계명에 담은 뜻을 언약식을 통하여 주신 ‘언약서’(출 24:7)에서 이스라엘 전체에게 선포하여 알리심으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공적 관계를 성립시키십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불려지는 ‘모세 언약’은 그렇게 해서 등장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