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행> 장강삼협 3 /심붕래
5. 무협(巫俠)
무산(巫山)은 구태여 중국책을 뒤질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판소리 <춘향가>나 <심청가> 같은 곳에 빠짐없이 나오는 장소가 무산 무협(巫山巫俠), 무산 12봉입니다.
주목왕(周穆王)이 팔준마(八駿馬)를 타고 서왕모(西王母) 만난 장소도 여기 어디쯤일 것입니다.
하긴 서왕모의 고향은 곤륜산이라고 했으니 예서도 훨씬 먼 곤륜산 어디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인의 허리처럼 잘록하게 패어 강이 산을 뚫고 지나는 듯,
양안의 기이한 절벽은 고개를 꺾고 쳐다봐야 하는 비경입니다.
‘삼리 일만, 오리 일탄(三里一灣, 五里一灘)’이라는 표현 그대로 뱃길은 산으로 막힌 듯 열리고,
잔잔하던 강폭을 조금 지나면 요동치듯 뒤 흔들리는 격랑을 만나게 됩니다
. ‘灣’은 물이 굽어 흐르는 곳이고 ‘灘’은 물살이 급한 곳이란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협 근처에서는 유람선을 세 번이나 바꿔 타면서
상류(소삼협, 소소삼협(小小三峽))를 거슬러 그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했습니다.
먹고 자면서 베이스캠프 격으로 운행하던 3천 톤급 모선에서 내려
200여명이 타는 쾌속선으로 소삼협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강안(江岸)으로 재주를 부리며 배를 쫓아오는 원숭이도 보였고,
옛날에 절벽 중턱 바위를 뚫고 장례(葬禮)를 치렀다는 현관(縣棺)의 흔적도 가이드가 손짓했습니다.
소삼협이 끝나면 다시 소소삼협(小小三峽)이 나오는데 여기서 다시 20여 인이 타는 더 작은 배로 갈아탑니다.
띠로 지붕을 엮은 것이 두보가 ‘늘그막에 외로운 배 한척뿐(老去有孤舟)’이라 했던 그런 배의 냄새가 납니다.
목청 좋은 사공이 뱃노래를 부르며 흥을 부추겼는데
중경(重慶) 상류에서 보았던 흙탕물이 이제는 옥구슬같이 맑은 색이 되어 양안의 산 그림자를 물 위에 수놓습니다.
이 근처 어디쯤에서 두보는 그 유명한 <추흥(秋興)> 8수를 짓습니다.
옥 같은 이슬에 단풍나무 숲 시들고 / 무산 무협에는 가을 기운 쓸쓸하다
물결은 하늘에 닿을 듯 솟구치고 / 변방의 바람과 먹구름은 땅 위에 깔려 음산하다
국화 떨기 피어나 또 한해를 보내니 지난날 눈물겹고 / 외로운 배는 고향 생각에 묶여있다
겨울옷 준비에 가위질과 자질 요란하니 / 백제성 높이 저물녘 다듬이질 소리 바쁘구나
- 두보 <秋興1>
두보의 시를 가리켜 시사(詩史)라 합니다.
‘언제, 국화 피는 계절, 어디, 무산무협’ 이런 것이 일목요연하게 잘 보입니다.
호북성 경계에 이르러 구원계(九畹溪)라는 계곡에서는 여남은 명이 타는 좁은 요트로 갈아타고
손에 잡힐 듯한 강안을 지나며 속도와 경치를 즐겼습니다.
용선(龍船) 경기하듯 북소리에 맞추어 직접 노를 젓기도 하고,
재주꾼들이이쪽 봉과 저쪽 봉을 줄로 연결하여 그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묘기 연출도 보여 주는 것을 보면
이제 중국도 서비스 문화에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가히 사람의 솜씨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벽 위에 세워진 잔도(棧道)도 이곳이 아니면 보기 어려웠습니다.
친절하게도 하선하는 우리들에게 이곳 기념품이라고 삼협석(三峽石)이 든 복주머니를 한 개씩 목에 걸어주기도 했습니다.
작은 배려에도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여행의 묘미입니다.
찔끔거리던 날씨가 환히 개어가며 걷힌 구름 틈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감동이란 얼마나 커다란 재산이고,
동심을 잃지 않는 다는 것은 대단한 삶의 지혜인 것을 실감합니다.
6. 서릉협(西陵峽)과 삼협댐(三峽壩)
구당협을 지나며 유비, 장비를 이야기 하고, 무협을 지나며 무산 신녀(神女)를 이야기 한다면,
서릉협에서는 굴원과 왕소군(王昭君)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삼협댐 위의 마을이 자귀시(秭歸市), 굴원(屈原)의 고향입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겠다.’는
<어부사(漁父詞)>의 독백은 굴원 자신의 양심의 표현일 것입니다.
굴원사(屈原祠)를 지나 향계(香溪)를 거슬러 그 상류에 '왕소군(王昭君) 고리(故里)'가 있습니다.
중국 4대 미인 반열에 들지만 그녀만큼 불행한 여인도 더는 없을 것입니다.
한나라 원제(元帝)의 후궁이었다가, 흉노 왕에게 시집을 가야했습니다.
그 흉노(匈奴) 왕이 죽자 그들의 풍습에 따라 다시 그 아들을 섬겨야 하는 비극의 여인,
‘오랑캐 땅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아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란 유명한 시구가
이 비극을 잘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여행길이란 좀 지루하다가도 차를 내리는 순간은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법입니다.
배에서 세 밤을 자고 아침 10시가 되어 삼협댐을 보러 여객선을 떠나면서도 정들었던 안락의자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삼협댐의 규모는 어마어마해서 버스를 타고 요소요소를 다니며
안내원들의 설명을 들었습니다(물론 저에게야 우이독경(牛耳讀經)이었지만).
보안 경비도 대단했습니다. 댐 입구에 이르자, 비행기 타는 것처럼 엑스레이 검사도 하고,
몸도 전자 감흥기로 훑어봅니다.
술을 즐기는 이 교수님의 가방 속에 몇 모금 남지 않은 위스키가 엑스레이에 잡히는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지만,
대만과 중국 간에 싸움이 벌어지면 대만의 첫 번째 공격 목표가 이 삼협댐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노아의 홍수의 재판이 될 끔찍한 물난리겠지요.
사천성(四川省) 근처에서 지진이 잦아지는 이유를
삼협댐에 갇힌 물이 주는 중압에 의한 것이라는 유언비어성 이야기도 있습니다.
세계 제일이라는 삼협댐은 높이 185m, 길이 약 2500m, 총 저수량 300억 톤입니다.
통계 자료에는 삼협댐 보다 높은 댐도, 길이가 9km나 되는 긴 댐도 있지만
저수 용량 300억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소양강댐 높이가 123m, 길이 530m, 저수량은 약 29억 톤이니 삼협댐의 규모를 짐작할 만합니다.
1973년 공사를 시작, 2009년에 준공되어 175m 만수위를 채워 안전성도 검증되었다고 합니다.
수몰 면적이 45만 묘(畝, 1묘가 100㎡), 이재민이 113만 명이라 합니다.
7, 에필로그
중국의 국경절 연휴는 3일간입니다. 그런데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저는 5박 6일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중국의 융통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0월 1, 2일이 토, 일요일이니 공식적 휴일은 월, 화, 수요일(10월5일)까지 연장됩니다.
그리고 목, 금요일(10월 6, 7일)을 또 쉽니다. 그 대신 10월 8. 9일은 토, 일요일이지만 대신 근무를 합니다.
정리를 하면 이번 국경절 연휴는 7일 동안 쉴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된 셈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파격은 꿈도 꿀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산동성 연대시에서 사천 중경(重慶)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을 날아갔습니다
(서울서 제주도가 한 시간이 안 되지요?)
그 중경서 호북성 의창(宜昌市)까지 700여 km를 3박 4일 일정으로 배를 타고 유람하며 주변을 훑어보고,
호북성 무한(武漢市)에서 연대까지 꼬박 24시간을 기차 침대칸에서 이 교수님과 여정의 추억담을 나누었습니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마음의 여유고 그 마음을 텅 비울 수 있는 매력도 있습니다.
저 같은 범인이 마음을 비운들 그 속에 신통한 시심(詩心)이 깃들기야 하겠습니까만
허공을 바라보노라면 그것이 허공이 아니라는 것은 알게 됩니다.
24시간 기차에서 사발면을 먹으며 하품을 하다가도
이런 축복의 시간이 어디 다시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나면 기쁨이 가득해 집니다.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고, 돌아갈 거처가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제 잔은 넘치겠지요.
차창으로 밖을 바라보노라니 살아온 나날들이 다 고마워 졌습니다.
오늘 이 추억은 언제쯤은 또 잊혀지겠지요?
잊어 가며 잊혀 지며 살아온 한 평생이 차창으로 획획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또 잠깐 졸면서 긴 꿈도 꾸었습니다. 여행은 풍성한 추억을 안겨줍니다.
첫댓글 양자강은 청해성에서 발원하여 운남성 호도협을 지나고, 동정호 파양호를 거쳐 남경을 지나 황해에 도달합니다.
양자강이라는 이름은 남경 근처 '양주'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 주변을 흐르는 강물 이름이 장강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외국에 알려졌습니다.
좋은 여행을 하셨습니다.떠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고, 돌아갈 거처가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제 잔은 넘치고
차창으로 밖을 바라보노라니 살아온 나날들이 다 고맙다는 말씀에 부러움과 경의를 보냅니다
중국역사의 옛 단면을 보여주심에 고맙습니다.^^*
중국이란 나라, 큰 땅덩어리 만큼이나 가 볼 곳도 화제거리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수백년 전부터의 기
록들이 존재한다고하니, 캐어도 캐어도 그 방대함과 신비스로움은 바닥을 내 놓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올려
주시는 한시들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의문(질문) 한 가지가 늘 있었습니다. 한글로 번역된 한시들은, 한글의 다양
하면서도 적절한 단어나 표현으로 인해, 독자들에게 명쾌하고 공통적인 feel로 다가올수 있겠습니다만, 뜻글자인 한
자로 짧게 쓰여진 한시들이, 물론 여러 장점들이 있겠습니다만, 독자들에게, 우리 한글 번역글에서처럼 그 뜻과 느낌
이 명쾌하게 다가갈른지? 많이 궁금해지네요^^.
다뉴브님, 제가 6년 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즐거웠던 것이 그들에게 한시를 함께 읽히는 것입니다.
어느 음악보다도 뛰어난 화음이 살아 납니다. 이백 두보는 시인이기 이전에 위대한 작곡가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월의 산유화나, 목월의 나그네가 주는 그 묘한 천국의 음성이 한시 속에는 담겨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못 느끼고 뜻만 접하게 됩니다.
그래서 번역이란 창작이라고도 하고 <反逆>이라고도 합니다. 제 번역 또한 이백이나 두보에게는 반역일 것 같습니다.
늘 새로운 호기심으로 함께 해 주셔서 참 즐겁습니다.
@김붕래 선생님 답글을 읽다보니, 앞서도 한번 말씀드렸었던, tv에서 본 장강 유람 장면이 다시 떠 오릅니다. 유람을 안내하시던 그
(漢?)시인께서 곳곳에서 읊으시던 한시들이, 정말, 리듬과 화음이 잘 갖춰진 웅장하고 아름다운 옛 노래로 들렸었고 또 한시를 읊
으시던 그 분의 즐거워하시던 표정이, 선생님의 글 속으로 들어와, 잠시 선생님의 모습으로 오버랩되는 듯 합니다^^. 아마도 한시
들은 , 듣는이들에게 한글처럼 공통적으로 세밀한 전달은 어려운 듯 하지만, 듣는이들에게 음악적인 운율 등을 더하여, 더 깊은 감
동으로 다가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비록 개개인들이 느끼는 감흥이나 인식의 차이는 조금씩 있더라도요^^.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고/ 돌아갈 거처가 있으니/그것만으로도 제 잔은 넘치겠지요"
이만한 시가 어디있겠습니까.
장강삼협 연재기행문을 읽으며 갈만한 지인들과 짝지어 꼭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그때는 반드시 김선배님 이 글을 복사해 가지고 가서 제대로 된 여행 해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중국의 휴일정책을 보면 사회주의 속에 인간본위라는 측면이 보입니다.
제 기억이 맞을지 모르겠는데 손문의 삼민주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다른 시각인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 차기 지도자를 뽑아 놓고 10년이 지나면 정권을 잡고 10년 집권하고 물러납니다.
다소 안정감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부정부패는 제도보다는 아직 국민소득의 불균형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중국 여행 하실때 말씀해 주시면 소장한 자료 다 보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