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 SBS배 전국검도왕대회 결승전에서 맞붙은 서상진 선수와 백상기 선수는 공통점이 많다. 두 선수는 대구대학교 검도부 선후배이며, 대학교 일학년 때 전국 대회에서 개인전 우승기록이 있다. 그리고 대학생으로서 국가대표 후보를 하였으며, SBS 대학부 검도왕을 한 번씩 거친 선수들이다.
결국 결승전에서 서상진 선수가 승리하여 일반부 검도왕이 되었다. 역시 형만 한 아우 없다더니 선배의 기세에 후배는 무너지고 말았다.
서상진 선수는 국내 실업팀 중 가장 대우가 좋기로 유명한 노키아티엠씨 팀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가 오전에는 회사의 전문기술파트에서 일을 하고, 오후에 훈련하는 것만으로 전국 최고의 실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또한 실력있는 검도선수들도 한번 해보기가 쉽지 않다는 SBS 검도왕을 그가 두 번씩이나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지 그를 만나 자세히 들어보았다.
검도에 입문하여
서상진 선수는 아버지가 건축일을 하고 있는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단란한 가정에서 맏으로 태어났다. 그의 밑으로 두 명의 여동생이 있으며, 그는 항상 부모님의 기대와 사랑을 동시에 받으며 성장하였다.
1989년 배정중학교에 입학한 서상진 선수는 뭔가 특별한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학교에는 육상부와 검도부가 있었다. 그 당시 배정중학교의 검도부를 맡고 있던 이종옥 사범은 서상진 선수의 학급 부담임을 겸하고 있었음으로 항상 서상진 선수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당시 충북에서 부산으로 부임해 온 이종옥 사범이은 처음 검도부를 맡게 되면서 검도 선수가 될 만한 재목을 물색하던 중 새로 입학한 신입생들을 유심히 지켜 보고 있었다. 이종옥 사범은 매일 자주 접하는 서상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래 아이들 중에서 순발력이 뛰어나며 운동신경이 좋았던 서상진을 검도 선수로 뽑았다. 서상진은 동기생 5명과 함께 선수가 되어 검도기초부터 착실히 배워나갔다. 검도를 처음 시작한 서상진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이종옥 사범 역시 타지로 부임해와 낯선 땅에서 처음 검도를 가르치면서 그 아이들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두 사람은 검도라는 하나의 매개체로 만나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첫 시발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서상진은 이종옥 사범의 지도를 받으며 착실히 검도의 기초를 밟아 나갔다. 당시 이종옥 사범이 어린 선수들에게 베풀어 준 검도지도는 그야말로 헌신적이었다고 한다. 그는 항상 성실하고 참된 지도자의 모습으로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 검도만큼은 확실하게 익힐 수 있도록 세심한 부분까지 정성을 기울였다.
서상진이 1, 2학년 때는 검도의 기본을 익히며 경기에 대한 실전연습 위주의 훈련을 착실히 쌓아나갔다. 그가 3학년이 되던 해 서울 홍익대에서 열렸던 8.15학생검도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부산이나 경남 내에서 열린 경기에는 몇 번 출전한 적이 있었지만 전국대회에는 첫 출전이었다. 그 대회에서 배정중학교가 단체전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전국대회에 처음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성적을 올려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초 예선에서 떨어지면 바로 짐을 챙겨 내려갈 계획이었는데, 당시 연승가도를 달리던 충북의 주성중학교를 2회전에서 만나 주장전까지 2:2로 비겼지만 본수에서 앞서 승리를 하게 되었다. 이종옥 사범에게는 전에 충북에서 가르쳤던 주성중학교를 현재 지도하고 있는 배정중학교가 승리함에 따라서 그의 감회도 남달랐을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배정중학교 팀이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 경기 결승전에서 주장으로 뛰었던 서상진 선수가 아깝게 패하여 우승을 놓쳤지만 준우승이라는 예상외의 성과를 얻었으므로 이종옥 사범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였다.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종옥 사범의 고향 청주의 부친 댁에 들려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다.
검도가 무엇인지 깨달으며
중학교를 졸업한 서상진 선수와 동기들은(이영석, 이효창, 최영진, 김도형) 그대로 배정고등학교에 검도선수로 진학하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보니 중학교에서 했던 훈련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배들의 훈련은 만만치 않았다.
당시 배정고등학교 검도부는 체육교사였던 권현철 사범이 지도하고 있었다. 권현철 사범은 선수들에게 강압적인 훈련보다는 스스로 자신이 느껴서 할 수 있도록 이끄는 스타일이었다. 좋은 스승을 만나기 위해 몇 년을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서상진 선수는 배정중·고등학교에서 연이어 훌륭한 스승 두 분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권현철 사범은 고(故) 도호문 선생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자세가 반듯하고 큰 검도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것보다는 머리치기, 손목치기 하나라도 검리에 맞게 바른 자세를 어린학생들이 익힐 수 있도록 늘 신경을 써서 일깨워주었다.
서상진 선수의 배정고등학교 시절 생활을 들어보기 위해 지금도 배정고등학교의 검도부를 맡고 있는 권현철 사범을 찾아 그 당시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서상진 선수가 배정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였기 때문에 본인이 늘 서상진 선수를 지켜볼 기회가 많았는데 항상 성실하고 머리가 좋은 선수였습니다. 아마 그가 공부를 했어도 대성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라고 회상하며 권 사범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당시 권현철 사범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잔기술을 쓰지 못하도록 하였다. 속여서 치는 검도는 사기검도라며 절대로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 검도는 몇 번은 이길지 모르지만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검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평생을 해야 하는데 요즘 실업선수들을 보면 그런 검도를 추구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선수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 지도자들이 먼저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또한 그는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중단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였다.
“중단이 잘되어야 모든 칼이 바르게 나오게 됩니다. 마치 육상에서 스타트 자세와도 같은 것이 중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타트 자세가 완벽해야지 출발이 빠르게 되듯이 중단세가 바르지 않으면 절대로 바른 칼이 나올 수 없습니다. 타격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즉시 중심을 잡아 다시 바른 중단이 나와야 재차 공격할 수 있음으로 중단은 모든 검도의 시작이며 끝입니다.”라고 중단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가르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기술을 선수들에게 요구하게 되면 검도의 바른 자세를 배우기도 전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연적으로 검도가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고 무엇보다도 검도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키는 것이 지도자의 중요한 역할입니다.”라고 권현철 사범은 힘주어 말했다.
권현철 사범은 그 당시 서상진 선수를 가르치면서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유는 서상진 선수는 스스로 자신이 알아서 수련을 하고, 또한 주장으로서 후배들을 잘 다독여 팀을 잘 이끌어 리더쉽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또한 고등학교시절 내내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많은 입상을 하여 배정고등학교 검도부의 위상을 높이는데 공헌하였다.
서상진 선수는 1학년 때부터 단체전의 맴버로 활약하였다. 제34회 춘계중고연맹전 단체전 우승, 제21회 문화체육부장관배전국학생검도대회 단체전 준우승, 제73회 전국체전에서는 3위를 하였다. 2학년 때는 제2회 회장기전국고등학교검도대회 개인전 우승, 제33회 회장기전국단별선수권대회 초단부 우승을 하였다. 3학년 때는 제36회 춘계전국중고등학교검도대회에서 배정고등학교가 단체전 우승을 하는데 주장이었던 그는 대단한 활약을 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몸에 맞는 검도를 개발해야 합니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해봐야지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체형에 맞는, 자신의 능력에 맞는 검도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가운데 남들보다도 한 단계 위를 지향하며 나아가야 세계적인 선수가 될 것입니다. 이제 서상진 선수는 국내의 웬만한 대회에서 우승을 다해보았으니 앞으로는 세계대회에 나가서 활약해보기를 기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점들을 조금 더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상진 선수는 몸의 유연성은 대단히 뛰어납니다. 그러나 칼의 강도나 순발력에서 아직도 조금 떨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검도를 음악과 비교하여 생각해보면 부드러운 음악 속에 강함이 있듯이 유연한 몸놀림 속에서 강한 칼을 담고 있어야만 큰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체계적인 체력훈련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서상진 선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선수이니 우리가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으면 아마 반드시 이루어 내리라 생각합니다.”라고 권현철 사범이 말하는 사이 그의 사무실에는 은은한 클래식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대구대학교에 진학
배정고등학교 시절부터 전국의 여러 대학교로 전지훈련을 많이 다녔으므로 대학교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당시 대구대학교에는 기라성 같은 유명한 선배선수들이 많았고, 검도선수들에 대한 전액 장학금 혜택과 선수들의 복지 면에서 전국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서상진 선수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대구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열심히 하면 반드시 기회가 오리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여 성적을 올렸다. 그리하여 결국 그가 생각했던 대로 대구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서상진 선수는 대구대 1학년 때부터 단체전의 주전으로 뛰었다. 제37회 춘계전국대학검도연맹전 단체전에서 대구대가 우승을 하였는데 그 때의 우승이 대구대가 춘계대학연맹전에서 6연패의 신화를 달성할 때였다. 서상진 선수가 학년이 올라가며 그 연패의 기록을 이어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다. 또한 그 대회 개인전에서 1학년이 우승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1부 개인전에 저학년, 고학년이 따로 없던 시절이다. 다음해부터 개인전 저, 고학년이 분리되었다. 그래서 아마 이 기록은 앞으로도 깨어질 수 없는 기록이 되었다. 그해 가을 제26회 추계전국대학검도연맹전 단체전 우승, 3학년 때 제39회 춘계대학연맹전 1부 고학년부 개인전 준우승, 1부 단체전 준우승, 제26회 문화체육부장관배 전국학생검도대회 단체전 준우승, 제78회 전국체전 대학부 단체전에서 대구대가 우승을 하는데 서상진 선수는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해 겨울에 열린 제37회 회장기 전국단별검도선수권대회 3단부에서도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듬해 봄 4학년이 되어 열린 제6회 SBS전국검도왕대회 대학부 개인전에 출전하여 당당하게 검도왕이 되었다. 그 후 제27회 문화관광부장관배전국학생검도대회 단체전 준우승, 제29회 추계전국대학검도연맹전 1부 단체전 우승에 이르기까지 검도선수로서 화려한 대학생활을 마무리하였다.
대학시절의 동기로는 송기운(달성구청), 최영진(청도수련관) 선수이며, 1년 선배는 박종진(청주시청), 김수환, 김남수 선수, 2년 선배는 김경화(수영구청) 선수, 3년 선배로는 노만우(구미시청), 김두환(구미시청), 정태선(안동), 성호선(수영구청) 선수 등이었다.
가장 잊혀지지 않는 대회는 4학년 때 출전한 전국체전이었다. 서상진 선수가 패하는 바람에 대구대가 3위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 무렵 몸의 컨디션도 안 좋고 몸이 쉬 피로해져서 훈련에도 제대로 참가하지 못하였다. 전국체전을 대비하여 실업팀 선수들도 전지훈련을 다니고 있었는데 노키아티엠씨팀이 대구대로 전지훈련을 오게 되었다. 서상진 선수는 몸이 아파서 병원에 다니고 있었음으로 전혀 훈련에 참가할 수가 없었다. 노키아티엠씨에서도 단순한 전지훈련의 목적뿐만이 아니라 내년에 스카웃할 선수를 물색하기 위해서 찾아왔었는데 스카웃 대상자였던 서상진 선수가 없었음으로 헛수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후 추계 대학연맹전에서 대구대가 우승을 하게 되고 서상진 선수는 그해 대학졸업생 중 전국 랭킹 1위로 노키아티엠씨에 입단하게 되었다.
전문직에서 일하는 실업선수
서상진 선수는 1999년 대구대를 졸업하고 노키아티엠씨에 실업선수로 입사하였다. 그는 모든 것을 처음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들떠 있었고 이제는 아마추어 선수가 아니라 프로검도선수로서 돈을 버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 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생활해야만 했다. 자신의 영예보다는 팀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했고, 이제는 운동뿐만이 아니라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야하는 사원의 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동안 중·고·대학선수생활 동안 줄곧 검도만 해왔기 때문에 다른 일을 익히기에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이 일도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또 다른 경험이라 생각하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였다.
노키아티엠씨처럼 검도선수들이 현업에 종사하면서 선수생활을 하는 팀은 국내에는 없을 것이다. 그는 노키아티엠씨의 공정기술팀 스페어파트에서 일한다. 휴대폰을 생산하는 작업에는 수많은 장비들이 필요하다. 그 장비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기술을 지원하는 매주 중요하면서도 고난위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부서에서 그는 일한다.
“운동선수들과 함께 생활을 해보니 그들이 운동뿐만 아니라 일에도 성심 성의껏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됩니다. 역시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일도 잘한다고 느껴집니다. 단지 좀 더 전문적인 분야에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서상진 선수는 그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회사의 업무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서에서는 일과 운동을 병행하는 서상진 선수를 다들 부러워합니다. 서상진 선수가 앞으로 더 좋은 경기를 많이 펼치길 기대합니다.” 서상진 선수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말이다.
“서상진 선수는 저희 노키아티엠씨 팀의 에이스로서 그동안 수많은 대회에서 팀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해왔습니다. 서 선수의 특징은 중심이 좋으므로 웬만해서는 상대에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끝까지 상대를 볼 수 있으므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때로는 이런 점이 약점이 되기도 하여 경기에서 어이없이 실점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적극적인 자세도 때에 따라서는 필요할 때가 있다고 봅니다. 결국 이런 모든 점들을 앞으로 본인이 스스로 풀어야 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노키아티엠씨팀의 김진옥 감독이 서상진 선수의 장단점을 지적해주었다.
실업팀에 들어와서 서상진 선수가 거둔 실적을 보면 입단한 그해 열린 제3회 실업검도대회 단체전에서 준우승을 하였다. 이듬해 제4회 실업검도대회에서는 개인전 우승을 하여 실업선수가 되어 첫 번째 개인전 성적을 올렸다. 다음해에 열린 제5회 실업검도대회에서도 단체전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그해 새로 신설된 제1회 봉림기전국실업검도대회 1부 단체전에서 우승을 하였다. 2002년 제6회 실업검도대회 단체전 준우승, 제24회 대통령기전국일반검도선수권대회 단체전 준우승, 2003년 제25회 대통령기전국일반검도선수권대회 단체전 준우승, 2004년 제12회 SBS배 전국검도왕대회 일반부 검도왕이 되기까지 우리나라 국내에서 열린 여러 가지 검도대회에서 꾸준히 상위권 입상을 하였다.
국가대표훈련의 추억
검도선수라면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보고 싶은 꿈은 누구든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서상진 선수가 대학4학년 때 국가대표후보선수로 선발되어 2년 여 동안 피나는 훈련과정을 거쳤지만 최종 선발전에서 탈락하여 제11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대표선수훈련과정과 특히 극기훈련으로 UDT훈련까지 받아가며 최선을 다했지만 탈락한 것에 대해서 아쉬움보다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했다고 스스로 자성하였다.
2001년 9월 26일 제12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는 1-1차 평가전에서 1위인 박상섭 선수 다음으로 서상진 선수가 2위를 차지하였다. 10월 19일 치러진 1-2차 평가전에서 10위를 하여 종합순위 5위로 국가대표선수후보가 되어 1년 남짓하게 국가대표훈련을 충실히 받았다. 2002년 10월 1일 최종선발전에서 아깝게 탈락하여 다시 그는 세계대회출전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차기 13WKC에는 반드시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해 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저는 국가대표 후보로서 두 번이나 훈련을 받았습니다. 물론 세계대회에 출전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 훈련과정만으로도 검도선수로서 제 인생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안주할 생각은 없습니다. 계속 나아가야죠.”
서상진 선수가 지향하는 검도
근래에 접어들어 많은 선수들이 불필요한 동작으로 난해하게 막으며 경기를 하는 모습을 접하게 되어 선수인 자신으로서도 챙피한 생각이 많이 든다. 어떻게 생각하면 성적을 내고 싶은 욕심에 자연스럽게 그런 동작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검도가 흘러간다면 검도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한다.
“본인이 늘 생각하는 검도는 지저분하지 않은 경기를 펼치자 중단 싸움에서 기세로 상대를 제압하여 깨끗하게 승부를 걸자는 것입니다. 자신의 중심이 살아야지 그 다음 몸이 들어가면서 완전한 타격이 되어 한판이 됩니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유효격자에 의한 한판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본인이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이 중단이 강한 검도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첫 칼, 처음에 쓰는 한칼이 승부수라고 생각하고 써야지 충분한 강도가 나오는데 그냥 한번 던져보고 두 번 세 번 치다가 승부를 걸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한 선수의 마음가짐이 아닙니다. 저도 그런 점이 잘 안 되는 부분이지만 점점 고쳐나가도록 애를 쓰고 있습니다.”
서상진 선수는 경기에 임하여 승패에 연연하기 보다는 스스로 어떤 칼을 쓸 것인지, 그 칼이 검리에 맞게 쓰고 있는지, 또는 칼이 나가기 전에 자신이 먼저 무너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인다.
그동안 그는 국내의 여러 대회에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이제 그의 무대를 세계로 넓혀서 우리들에게 멋진 경기를 보여주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서상진(5단) 전적
1992 제34회 춘계 전국 중·고등학교검도대회 단체전(배정고) 우승
1993 제2회 회장기 전국 고등학교검도대회 개인전 우승
1993 제33회 회장기 전국 단별검도선수권대회 초단부 우승
1994 제36회 춘계 전국 중·고등학교검도대회 단체전(배정고) 우승
1995 제37회 전국 대학검도연맹전 1부 개인전 우승
1995 제37회 춘계 대학검도연맹전 1부 단체전(대구대) 우승
1995 제26회 추계 대학검도연맹전 1부 단체전(대구대) 우승
1997 제39회 춘계 대학검도연맹전 1부 고학년부 개인전 준우승
1997 제78회 전국체육대회 단체전(대구대) 우승
1997 제37회 회장기 전국 단별검도선수권대회 3단부 개인전 우승
1998 제6회 SBS배 전국검도왕대회 개인전(대학부) 우승
1998 제29회 추계 전국대학검도연맹전 1부 단체전(대구대) 우승
2000 제4회 전국실업검도대회 개인전 우승
2001 제5회 전국실업검도대회 단체전(노키아티엠씨) 우승
2001 제1회 봉림기 전국실업검도대회 1부 단체전(노키아티엠씨) 우승
2004 제12회 SBS배 전국검도왕대회 개인전(일반부) 우승
첫댓글 시합에 임하는 마음이 곧고 바르기 그지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