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사의 재건축 계획
종로 대각사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법회로 출발한 불광은 날이 갈수록 신도가 늘어났다. 그러므로 본찰 없이 법당을 빌려서 법회를 유지하고 있었던 불광 신도들로서는 신앙생활이 불편이 따를 것은 불을 보듯(明若觀火) 뻔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신도들의 우리 절 짓자는 소원도 커가게 되었다. 사실 절을 지어야 된다는 소리가 점점 높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던 불광이 성장하는 구체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흔히 그동안 우리 한국불교에서 이루어져 온 종래의 불사를 보면 미리 절을 짓거나 법당을 지어놓고 그 용도에 따라 차츰 사용하게 되는데, 불광은 그 반대였다. 당장 시급한 신도들의 신앙생활에 대한 절대 요구에 의해서 당연히 불사를 일으켜야 했다. 어떤 특별한 인연으로 인해 미리 절을 짓거나 법당을 지어놓고 그 다음에 신도를 늘려 가거나 용도를 찾게 되는 경우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사람이 미리 모이고 그 모인 대중의 서원과 보살행에 의해 절을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불광이 자체 절을 갖는 것에 오히려 반대했다. 신도들이 절이 없어서 수행에 불편이 많으니 우리 절이 있어야 한다고 아우성을 쳐도 망설였다. 어떻게 하면 절을 짓지 않고 수행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절 짓자는 신도들의 요구를 잠재우고 오로지 수행전진만 잘하게 할 수 있을까, 스님은 절 지을 생각보다 절 안 지을 것만 밤낮으로 연구했으니 말이다. 스님에게는 절을 의지하지 않고도 불교운동을 해 나갈 수 있는 특단의 방법이 있었다. 그런 까닭에 스님은 자신의 방안으로 끝까지 불교운동을 펼쳐나가고 싶었던 것이 자꾸만 미루게 된 주요 원인이다.
그러나 대중의 뜻은 부처님의 뜻과 같다고 생각해서일까, 마침내 스님도 스스로의 방법을 접어놓고 대중의 뜻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아마 여러 가지 현실적인 부분은 숙고한 결과 절 짓는 일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했는지 절 짓기를 결심하고 드디어 잠실에 불광사 건립을 착수했다. 그 창건 이야기는 이미 다른 곳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기에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야 하겠다.
그때 스님은 절 짓기에 앞서서 몇 가지 방침을 미리 정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빚 없이 절을 짓는 것이었다. 사실 원칙이라고 하는 것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고, 특히 절 일은 모두 보시로 충당되는 일이기에 더욱이나 원칙이 지켜지기 어렵다. 하지만 스님은 끝까지 그 원칙을 바꾸지 않고 처음 신념대로 빚 없이 절을 지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건축 재료를 검약하게 쓰지 않을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도 생겼다. 빚 없이 절을 짓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의 비용을 아껴서 전체적인 건축비용을 줄여야 함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그런 까닭에 어떤 경우에는 뻔히 알면서도 좀 더 튼튼하게 짓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그렇지만 공사담당자들도 건축주인 스님의 뜻을 저버릴 수가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
그런 원칙 속에서 불광사 건축이 끝났지만 이런 저런 그때의 사정으로 인해 처음부터 집이 오래 가기는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건축비용은 부족한데 보시는 한계가 있고 빚은 얻을 수 없으니 도저히 더 어쩔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스님의 독특한 불사 방침 중에 또 하나는 어느 특정한 개인의 큰 보시를 받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동참(뜻의 모음과 선행의 기회부여)에 의해서만 불사를 한다는 원칙이다. 실제로 그랬다. 지금 불광사 보광명당 입구의 시주 동참록을 보면 무려 2만 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예외는 쌍용그룹 창업주의 부인, 불국생 보살 김미희 불자가 생전에 약속한 시멘트 시주다. 불국생 단월이 이승을 떠나기 전 스님의 불사를 도우라는 부탁(遺言)을 주변에 했던 것이다. 스님이 이 일만은 예외로 받아들였다.
아무튼 스님의 불사원칙과 방법, 즉 절 지으면서 빚을 얻지 않고 그 당시의 형편대로만 짓는다는 원칙에 의해 마음껏 재료를 쓰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었고, 그로 인해 불과 준공 10년도 못 되어서 건물 여기저기에 문제가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다시 서울 불광사로 들어갈 무렵인 1992년 가을에 스님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장차의 계획을 나에게 알려 미리 생각하고 연구하도록 했다.
“앞으로 15년 내지 20년 정도만 있으면 이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때 다시 절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절 주변의 가옥 몇 채를 더 사들여서 석촌동 160-1 블록을 완전히 확보해서 터를 넓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이유는 송암이 짐작하겠지만 우리는(절) 조심한다고 해도 이웃에서는 여러 가지 불편이 잇을 것이다. 우리 절이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자리를 잡았기에 이웃이 가능하면 양해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우리도 모르는 불편이 이웃들에게는 매우 많을지도 몰라. 그런 점을 잘 고려해서 멀리 앞을 내다보고 침착하게 하나하나 준비해야해. 그런 다음 현재 있는 건물을 모두 헐어내고 새로운 시대의 필요한 용도에 맞추어 설계하여 그때는 적어도 백 년 앞은 내다보고 집을 지어야 할 것이야. 십 년 후가 될지 이십년 후가 될지 모를 뒷날에 있을 불광사 재건축 계획을 지금부터 착실하게 하나하나 준비해 가면 신도들에게 큰 부담주지 않도고 무난하고 원만하게 이루어지리라고 본다. 지금까지 내가 다져온 기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재건축을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할 준비로는 물론 땅 구입이나 재원 마련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우선해야 할 것은 재가수행자들의 정진에 불편과 지장이 최소화되어야 하는 것이지. 절 짓는 일로 인해 전법이나 수행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 사전의 치밀한 준비로 지역법회(법등 가족모임)를 더욱 강화하고 거기 따르는 법사 인력을 미리 확보해야 해. 재건축 기간 중의 법회장소는 따로 구하지 말고 정기적으로 한 달에 한 번 꼴로 여러 개의 구법회를 묶어 교대로 돌아가면서 안성에서 법회를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 그러니까 각 구법회 별로 한 달에 한 번은 안성 도피안사에서 법회를 열면 이곳 불광사 공사가 한 1년쯤 걸린다고 해도 법우들의 수행에 커다란 공백이나 차질은 없을 거야. 아무튼 송암이 내가 죽기 전에 하루 빨리 착실하게 자리를 잡아서 모든 것을 내실 있게 차근차근 준비해 가면 될거야. 송암 눈에는 양이 차지 않겠지만 내가 이만큼이라도 자리를 잡아 놓았으니 터전은 되지 않겠어. 특히 송암은 신심도 있고 의욕도 있고 창의성과 논리적인 두뇌, 그리고 무엇보다 큰 재산인 젊음이 있으니 잘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는 믿어.“
그 후 스님과 나의 쓰라린 좌절과 함께 그동안 알뜰살뜰 모아두었던 거액의 불사금은 어디에 쓰였는지, 지금도 불상사의 재건축을 준비하기 위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때 스님과 내가 머리를 맞대고 세웠던 온갖 계획은 상황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니 역시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내가 신도들의 공양금을 모아 금융기관에 예탁하고 통장의 기록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예금 상황을 설명하면 아이처럼 좋아했던 소년 같은 스님의 모습도 이제 멀리 떠나 버렸다.
지금 밝히는 것이지만 그 당시 불광사 재건축을 거론하면서 사전 준비를 위한 도피안사 활용방안에 대해서도 여러 말씀이 있었다. 또 미타촌과 다른 수련시설을 마련하는 것도 스님과 의논이 되었다. 도피안사 요사채를 새로 짓기 위해 절 입구에 있던 논(지금 행적당 자리)을 사들이라고 땅값을 준 것은 그 일차적인 준비작업의 시작이었다.
이곳 도솔산 개산, 즉 도피안사 창건은 스님이 개산조이고 창건주이다. 그러하기에 지금도 나는 도피안사는 오직 개산조의 뜻과 사상을 펴기 위해 집을 짓고 땅을 사야 한다고 굳게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만의 일이 아니라 미래에도 역시 마찬가지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스님이 땅을 사라고 돈을 준 것이나 불광사 재건축시에 도피안사를 적절하게 이용한다는 생각은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었다.
광덕스님 시봉일기 3 구국구세의 횃불. 글 송암지원. 도서출판 도피안사
첫댓글 큰 스님의 불사 방법에서 중생을 생각하는 마음 가득함을 다시 새깁니다. 일을 시작하고 보자는 요즘과는 너무도 다른 방법, 오직 신도들을 배려하시는 마음 가득합니다. 재원을 위해 더 큰 범![종](https://t1.daumcdn.net/daumtop_deco/icon/deco.hanmail.net/contents/emoticon/things_34.gif)
을 만들고 더 큰 부처님을 조성하는 일로 신도들의 허리는 휘어지는 주변의 절을 보면서 오직 재가수행자들의 정진을 첫번째로 하시는 스님의 혜안![!](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4.gif)
정말 대![~](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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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십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큰스님의 불광 건립 방식은 우리가 꼭 배워야 할 가르침입니다. 바로 보문님이 노란 줄로 강조해 놓으셨듯, 큰스님의 그런 뜻을 알면, 제가 왜 우리 카페 일부 불자님들의 침묵에 상심했는지 아실 거에요.
불광은 큰스님 말씀대로 서울에 절이 부족해서 지은 도량이 아닙니다. 물량위주로 가는 시절, 잠실 허허벌판에 정말 조촐하게 절을 세우셨는데, 과연 불광사를 세운 그 깊은 뜻을 제자들이 얼마나 알고 계실지..
*사족:후미 부분은 아무리 아쉬워도 그런 말씀은 송암스님이 아니 하셔야 했슴. 이런 소릴 하니 그렇지 않아도 대립하시는 분들이 더 속이 상하셨겠지요...
절을 위한 불사가 아닌 신도들을 위한 불사, 부담이 가지 않는 불사, 많이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늘려가는 불사에 동참할 수 없는 마음이 미안키도 하면서 솔직한 마음을 표현 못해 개운치 않았는데...큰스님! 찬탄합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_()()()_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