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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솜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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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고 싶따. 고즈넉하게... 스크랩 5박6일 백두산관광 셋째 날: 청명한 백두산(북파)천지를 가슴에 품다.
우동인 추천 0 조회 107 13.09.08 23: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3년 8월 4일 일요일

 

4시기상(콜은 4시 반에 직접 문을 두드려줌), 5시 식사, 6시 출발이라는 빡빡한 일정으로 부지런떨었다. 1층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호텔주변을 사진기에 담은 여유까지 누리면서도 제일먼저 버스에 탑승함으로 두 번째 좌석을 차지했다.

 

 

 

 

“호텔 룸 키를 모두 반납하셨지요?”

“네!”

8502호의 두 여자(초등학교교사)가 20분쯤 늦게 탑승하여 박수로 환영하니 홍당무가 되어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지금부터 5시간 반 이동하여 백두산아래 첫 마을이자 백두산의 도시인 이도백하(二道白河, Erdaobaihe)로 갑니다. 백두산을 가려면 무조건 거쳐야하는 이도백하란 백두산천지에서 두 갈래로 흘러내려오는 깨끗한 물이라는 뜻으로 원래 연변자치구(연변조선족자치주 안투현, 延邊朝鮮族自治州 安圖?)에 속해있었지만 동북공정 때문인지 2005년 백두산관리권이 길림성으로 이관된 이후 조선어(한글)간판이 많이 줄어드는 바람에 연변동포들의 수입원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이도백하란 지명도 장백산천지의 북쪽이란 뜻을 가진 지북(池北)으로 변경되었지요. 백두산북쪽비탈에 위치하여 백두산관광의 기점이 되는 마을인데 행정단위 중 현 아래분류인 진(鎭: 우리의 읍 정도)으로 二道와 白河 두 마을이 합쳐 생긴 작은 마을입니다. 좌표는 동경128도, 북위42도이며 백두산천지에서 발원한 송화강(松花江)상류의 이도백하강변에 있어 붙은 지명이죠. 시장은 유명한 소나무군락지인 ‘美人松 공원’옆의 도로에서 5일마다 열리는데 5일, 10일입니다. 최대명절인 설(春節, 춘지에)무렵에는 평소보다 사람도 많고, 규모도 큽니다. 워낙 추운 동네여서 겨울에는 멋 부리는 것은 둘째고, 모두들 속내의나 두꺼운 솜바지, 위는 두꺼운 잠바를, 머리에는 털모자를 씁니다. 진 정부소재지는 얼다오(二道)로 삼림이 전체면적의 94%에 달하여 자원이 풍부하며 특히 장백낙엽송을 비롯한 경제적 가치가 높은 30여종의 수목이 자랍니다. 광물자원으로는 화산의 용암이 갑자기 식어 생긴 구멍이 많고, 가벼운 돌인 부석(浮石)이 풍부합니다. 건축재료 등으로 쓰이며 홍콩, 대만을 비롯한 동남아지역으로 수출됩니다. 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하며 자동차로 약5분 거리(약1km)인 백하 마을과 함께 백두산관광기지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장거리버스와 열차가 오가고, 저렴한 가격의 숙소와 식당이 많아 여행자들의 쉼터역할을 합니다. 백두산으로 향하는 택시나 관광버스를 탈 수 있어서 백두산관광성수기인 6~9월에는 여행객들로 붐빕니다. 차도에 중앙선이나 건널목표시가 없는 것이 특이한데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많이 이용합니다. 마을곳곳에서 보이는 미인송(美人松)도 이도백하의 명물로 곁가지가 많지 않고 위로 시원하게 뻗은 소나무입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장백산(長白山· 창빠이산) 또는 그냥 백산(白山)이라고도 불러 이도백하는 백하(白河)라는 이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모두 백하라 하는데 하천이 너무 많다보니 순번을 부여해 투도(일도), 이도, 삼도.......십팔도, 이십 몇 도까지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백하는 이도백하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백두산의 모든 시내를 뜻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오늘 백두산 천지에 오르실 길은 가장 단거리인 북파코스입니다. 중국에서 백두산을 오르려면 서파, 북파, 남파코스 중 하나를 골라야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파(坡)는 중국말로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서파는 백두산금강대협곡과 고산화원을 지나 계단1,442개를 밟고 오르는데 청석봉과 백운봉을 직접 밟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개발된 남파는 압록강대협곡과 압록강발원지인 금강폭포를 지나는 코스로 아직 사람의 발길이 덜 묻어 백두산의 천연원시림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백두산종주는 서파와 북파코스의 일부를 연결한 14㎞짜리 트레킹코스를 말하는 겁니다. 서파인 5호경계비를 출발해 청석봉~백운봉~용문봉을 거쳐 북파의 소천지로 걸어 내려오는데 10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천지물가까지 내려갈 수 있고 7, 8월께 개방됩니다. 1박2일 프로그램에서 천지를 올랐던 길은 장백폭포 앞에서 동굴등산로를 거쳐 달문으로 올라 백두산천지를 오르는 코스를 다녀온 것입니다. 제가 나눠드리는 이 굵은 포도도 판매가 가능하니 구입할 뜻이 있으면 맛을 보시고 제게 부탁하세요.”

역시 맛이 좋아 우리 팀은 공동경비로 구입하여 나눠 먹었다.

이차선도로 가에 풍선과 꽃으로 화려하게 꾸민 자동차들이 여러 대 줄지어 서있었다.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신랑 측에서 신부를 모시러 온 행렬이란다. 부잣집신랑일수록 차량의 수가 많다고.

깨끗한 고층건물들이 즐비한 도시와 굽이굽이 강줄기, 검은 먼지가 흩날리는 농촌, 많은 주민들로 복잡한 장터 등을 지나며 가이드의 설명을 메모하거나 사진기의 셔터를 눌러 백두산천지를 보러가는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어젯밤에 받은 과일 드셨나요?”

“그렇지 않아도 망고를 먹어보려고.”

껍질을 손톱으로 벗긴 철우엄마와 남편이 망고 물을 줄줄 흘리며 먹는 모습을 사진기에 담았다.

 

 

 

 

 

 

 

 

“중국의 원가계, 장가계는 보는 이로 하여금 크고 웅장하다하여 ‘와!와!’관광 또는 다리가 아파 ‘아이고!’관광이라고도 하며 계림은 ‘눈’관광, 북경은 ‘발’관광, 서안은 역사도시이므로 ‘귀’관광, 백두산은 ‘마음’관광이라고 합니다. 제가 남한을 처음 알게 된 것은 88올림픽이 열린 일곱 살 때였는데 작년 10월 18일, 생일축하 해준다는 가이드들과 나이트에 갔었습니다. 거기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노래에 맞춰 말 춤을 신나게 추며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잠시 후면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휴게소에 도착하게 될 텐데 화장실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여자주인이 처음 이곳에 정착하였을 때는 많은 서러움과 고생을 당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자리를 잡아 마을주민들이 수확한 농산물 등을 맡기며 판매를 부탁한답니다. 자, 내리세요!”

화장실로 달려가니 두 개의 낮은 벽이 서있는 재래식으로 일을 본 후 받아놓은 물을 바가지로 퍼서 내려 보내야했다.

“중국에 처음 왔을 때 기둥도 없이 일렬로 쭉 나란히 앉았던 그 화장실보다는 양반이네요. 손 씻을 물도 준비되어 있으니. 후후훗.”

영근 옥수수, 달리아가 고개 숙이고 있는 정원, 갖가지 술, 장뇌삼과 인삼, 담배, 과자, 노랑버섯, 산수유, 보이차, 각종 액세서리, 손으로 뜬 아기신발과 어른슬리퍼, 구기자, 시식용인 도라지와 묵무침 등 가게의 이모저모를 사진기에 담은 후 말린 블루베리 다섯 개를 10,000원에 구입했다. 철우엄마아빠에게 한 봉지를 드렸다.

 

 

 

 

 

 

 

가이드가 자두 두 개씩과 말린 식용꽈리를 나눠주며 구입의사를 물었지만 어제 받은 복숭아와 망고 한 개가 있으므로 나중에 보자고 했다.

“어머나, 심안 행 버스인 것으로 보아 분명 한국관광객들이 타고 온 거 같은데? 어쩌지? 신고를 해야 하나?”

버스 한 대가 이차선 도로를 벗어나 옆으로 완전히 누워있는 광경을 발견했다. 일으켜 세워 해결을 위한 차량 한 대가 서있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제가 알아보는 대로 여러분께 알려드리겠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네 개 대를 졸업한 운전인재답게 빵빵대거나 잦은 추월을 일삼으며 잘도 달리더니 백두산으로 가는 도중 도로건설현장과 만나 갑자기 멈춰 섰다.

“앞에 도로공사를 하는데 아무 표시나 예고가 없어 뒤돌아갔다가 다른 길로 가야한답니다.”

“도로공사를 하려면 앞에서 미리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중국이야!”

“에잇, 이런 별일도 있나? 얼마나 뒤돌아가야 하는 거야?”

버스기사가 내려 이곳저곳,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묻고 오더니 앞서 달리는 자주색개인택시 뒤를 바짝 ?기 시작했다. 우리버스 뒤를 ?아오던 다른 차량들도 뒤돌려 계속 뒤따라 왔다.

“이런 경우, 개인택시기사에게 우리가 대표로 사례를 하고 ?아오는 다른 기사들로부터 얼마씩 분배하여 받습니다. 고속도로가 뚫리면 통화 시에서 4시간 이상 걸리던 백두산 길이 한 시간 반으로 줄어든다고 하네요.”

얼마간 달렸을까? 앞의 개인택시운전사가 내리더니 우리버스기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 저런 식으로 돈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도 있구나!’ 정당하지 못한 교통법도 동북공정의 일환일까? 지나친 상업적 개발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남자들은 참 편하네. 특히 중국관광 때 소변이 아무리 급해도 아무 데서나 해결할 수 있으니!' 잠바를 등에 걸치고 버스 뒤편에서 볼 일을 보고 올라온 철우엄마가 킥킥대며 올라왔다.

"뒤에서 갑자기 많은 차들이 오는 바람에 급한 것만 빼고 얼른 일어났네."      

“30분 정도 더 가면 점심식사 할 식당에 도착합니다. 지금 백두산의 북파관광을 위한 버스 세 대가 서로 경쟁하는데 우리기사님은 자작나무를 많이 볼 수 있는 숲 쪽으로 방향을 돌리셨어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쭉쭉 빵빵 곧게 자란 자작나무 숲을 지나 잠시 달리니 개고기라 쓰여 있는 큰 간판이 보였다. 이따금 보이는 한글간판이 매우 반가웠다.

“물론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입니다.”

다른 대형버스 두 대에서 내린 한국관광객들과 함께 중식당에 도착한 시각은 정각12시였다. 김치, 콩나물무침, 삶은 닭, 된장국, 두부, 상추, 쌈장, 생선 등의 평소 대하던 반찬들을 더 추가로 받으며 맛있게 먹었다. 3층 화장실로 올라가니 출입문은 하나에 별도 문이 없는 남자용과, 문이 있는 여자용, 딱 두 개뿐이었다. 룸마다 화장실이 있지만 워낙 많은 한국관광객들이 동시에 몰려 대만원이므로 줄을 지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화장지는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30분 만에 식사와 용변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좌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식당 앞 쓰레기통에서 무언가 열심히 찾는 두 남녀모습이 보였다. ‘식당에서 남긴 음식들을 모아준다면 얼마나 맛있게 잘 먹을까?’ 동정이 갔다.

드디어 세계적 명산인 백두산을 올라 천지를 구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백두산천지를 보기 위한 관광객들이 필히 지나가야할 이 도시와 도로를 중국인들은 왜 산뜻하게 개발시키지 않는 걸까?’ 궁금했지만 금방 풀렸다.

“한국관광객들만 온다는 점과 그것도 일 년 중 빨라야 5월서부터 9월까지이므로 타산적으로 남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쪽의 호텔사용료가 매우 비쌉니다. 5개월 정도 장사하여 일 년을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이지요. 이계옥씨와 세분의 여권을 주세요. 대표로 이 네 분만 검사하겠습니다. 네 분 중 한분이라도 이상이 있다면 여러분은 백두산천지관광이 불가능해요. 다행히 잘 하셨다면 이 네 분 덕분인 줄 아시고 천 원씩 거둬 나눠드리세요. 하하하.......”

“그렇다면 우리는 뽑힌 사람들이네요? 호호호.......”

“오늘 날씨가 매우 맑아서 아마 여러분은 백두산천지관광이 가능하실 것 같아요. 참으로 운이 좋으신 거죠. 열두 번을 왔었는데 또 못보고 간다며 매우 안타까워하신 어르신도 계셨거든요. 자, 지금부터 제 설명을 잘 들으세요. 중요한 여권과 카메라 등만 간단히 몸에 소지하시고 웬만한 물건들은 이 버스에 그냥 두세요. 주차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매우 복잡할 테니까 제 뒤를 잘 따라오시는데 매표소를 지나면 큰 버스와 짚차로 두 번 갈아타고 백두산주차장까지 가게 됩니다. 천지를 보신 후 짚차로 주차장까지, 다시 버스로 갈아탄 후 장백폭포로 가시게 되는데 차를 잘못 갈아타면 엉뚱한 곳으로 갈 수 있으니 반드시 저와 일행들과 함께 하셔야합니다.”

여름한철 장사인 이곳주민들의 일자리창출이자 ‘억’소리가 나는 인구를 먹여 살리려는 지혜가 아닌가 싶다.

“또 우리가 지니고 있는 사진기로는 천지의 양옆을 동시에 담을 수 없지만 전속사진사의 사진기로는 가능하답니다. 12컷을 찍어주고 40,000원을 받는데 비싸다싶으면 두 가족이 20,000원씩 내고 6컷씩만 찍으시면 되겠습니다.”

철우네와 우리는 같이 신청하여 3번 예매표를 받았다.

백두산아래 첫 번째 마을이라는 송강하가 가까워지자 도로주변에는 북부지방고산지대에서 자란다는 자작나무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1시쯤 도착한 주차장에는 백두산의 인기를 반영하듯 수많은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중국방문객이 연간4백만, 한국인이 12만 명 방문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타고 온 훼리호에 가장 많은 인원이 탑승했었다고 했다. ‘일정이 거의 비슷하거나 똑같으니 오늘이 백두산관광의 절정일이 될 수 있겠군.’ 가이드를 따라 줄을 지어 입구를 통과, 다른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42명만 탄 버스는 양옆으로 울창한 숲을 끼고 이차선 도로를 20여분 계속 달렸다.

삼문의 운동원선수촌 앞에서 일렬로 주차되어있는 짚차가 많이 보이기에 타는가 싶더니 11인승봉고를 타라고 했다. 철우아빠와 떨어져 남편과 철우엄마와 나란히 맨 뒷자리에 앉았다. 구불구불, 아슬아슬, 이차선 관광도로를 달려 해발고도2,670m인 천문봉을 오르는데 중간에 앉은 나는 남편과 철우엄마 쪽으로 번갈아 몸을 기울여 의지해야만 했다. 앞서 오르거나 부지런히 뒤따라 달려오는 다른 봉고차량들의 모습을 보아도 용경협과 마찬가지로 아슬아슬함이 보통이 아니었다. 폭설이나 얼음, 비로 인해 만약 도로가 미끄러울 때는 자칫 기나 긴 낭떠러지로 추락할 위험성이 다분했다. 철우엄마는 한쪽 발을 천정까지 높이 들며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손잡이를 잡았지만 워낙 지그재그로 난 길을 수없이 올라가야했으므로 나중엔 기운이 쏙 빠질 정도였다. 봉고기사는 우리 셋의 깔깔대는 웃음소리와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 모습이 신이 났는지 팁을 주지 않았는데도 더욱 열심이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사진기셔터를 눌러 점점 가까워져가는 천문봉의 창밖풍경을 담았다. 백두산초원에 핀 야생화와 깊이 패어진 계곡들을 향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20여분의 곡예 같은 봉고탑승 쇼를 마치고, 천지150m아래의 주차장에 발을 디디니 머리위로는 한층 가까워진 하늘의 뭉게구름이 손에 닿을 듯 풍성했고, 아래로는 파릇파릇 풀들만이 운명적인 양 너른 백두산대지 위를 끝없이 평화롭게 뒤덮고 있었다. ‘고목들로 풍성했던 백두산입구의 우람한 숲서부터 중턱의 쓰러져 자라는 자작나무들을 지나 나무 한 그루 없는 백두산봉우리를 대하기까지 왜 우리는 엉뚱한 중국이란 나라를 거쳐 먼 길로 돌아와야만 하는가!’ 분단의 슬픈 현실로 다시 한 번 가슴이 찢어졌다.

“주차장으로 3시 반까지 내려오세요!”

기념사진을 찍고 줄지어 걸어서 올라갔다. 누런 풀조차 없이 화산폭발잔해뿐인 돌과 흙 사이로 쌓은 계단을 밟으면서도 시야는 양옆과 위로 바삐 돌리며 셔터를 눌렀다. ‘기회는 바로 지금 이때뿐! 내 생애 다시 이 계단을 밟아볼 수 있으랴!’ 순간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며 일행보다 너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숨을 헉헉거리며 달리기도 강행했다. 천문봉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기침이 자주 나오면서 전신에는 땀이, 다리 힘이 점차 빠졌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백두산천지를 두 눈에 담아야겠다는 강한 의지로 한 걸음, 한 걸음씩 굳세게 전진했다.

 

 

 

 

 

 

 

 

 

 

아! 남색의 호수가 모든 산봉우리를 거꾸로 품고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와! 드디어 백두산천지가 내 눈앞에 펼쳐져있구나! 심봉사가 딸 청이를 만났을 때의 벅찬 심정이 이러했을까? 도대체 꿈이냐? 생시냐?’ 그토록 오고 싶었던 백두산봉우리에 내가 서있었다. ‘내 생애 과연 한번이라도 볼 수 있을까!’ 의아심으로 미련을 채웠던 백두산천지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애국가처음에 등장하는 백두산아!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장엄함의 극치요, 생명을 품은 어머니의 자궁 같은 신비로운 백두산아! 네가 서울의 북한산이나 강원도의 설악산보다 조금 더 웅장할 것이라 상상하지 않았지만 손에 손을 잡은 듯 둥글게 서로 마주보며 우람하게 제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씩씩하면서도 정겨운 모습이 한층 사랑스럽구나!’ 경이로움과 설렘이 혀를 굳게 만드는 순간 감격과 감동이 일렁이면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뭔가 마구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처음 얼마간은 넋을 잃고 아무 생각 없이 맑은 하늘, 뭉게구름아래서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는 백두산천지를 백의민족의 일원으로 눈이 아닌 가슴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말문이 막히면서 벙어리가 된 듯싶었다. 하지만 좌, 우, 뒤에서 떠드는 한국관광객들 속에서 다급하게 찾는 남편의 목소리에 눈길을 돌려야 했다.

“우리가 세 번째야. 순서대로 사진 찍으려면 이 남자사진사를 바짝 뒤따라야해.”

‘주어진 시간 안에 백두산과 천지를 한 컷이라도 더 담아가기 위해선 1분, 1초라도 아끼며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야한다. 혹시 금방이라도 검은 먹구름이 나타나 천지가 눈앞에서 사라질 수도 있잖아?’ 갑자기 불안과 초조함이 밀려와 마음이 급해졌다.

미끄러운 흙먼지비탈길을 조심조심, 인파를 뚫으며 잠시 걸으니 젊은 남자사진사가 남편에게 굵은 쇠고리를 넘어가라 했다. 유창한 한국어로 ‘앉아요, 서요, 다음은 여자앉아요, 서요....... 마지막으로 넷이 같이 앉아요!’ 철우엄마아빠와 우리부부는 능숙한 조련사로부터 길이 잘 들여진 동물들 신세가 되어 세계에서 최대로 짧은 시간 안에 평생 후회 안할 포즈를 취해야하는 톱모델이 되어야 했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시간 안에 계약된 12컷을 다 찍었다며 다음사진촬영예약자명단을 부르는 것이었다. ‘예능에는 만족과 100점이 없듯 경험 많은 모델들도 자신의 사진모습에서 완전100%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는데 하물며 가정주부로 거의 40년 가까이 집안에서만 활동하던 신인모델들인 우리들에게는? 가이드가 소개한 것처럼 천지의 좌우양쪽 끝이 다 나오도록 잘 찍었을까? 만들어준다는 CD의 질은 얼마나 좋을까? 속임수의 달인인 중국인들의 특성으로 엉터리는 아닐까? 그들만이 사진 촬영할 수 있도록 그 지역을 얼마간의 프리미엄을 주고 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민족의 명산인 백두산천지를 배경으로 재롱은 한국인들이 부리고 돈은 중국인들이 챙기는구나! 북한과의 왕래가 자유로워 동포들에게 아무리 비싼 대가를 지불한다면 조금도 아깝지 않을 텐데.’ 뭔가 큰 오점에 아쉬움과 의문, 불만, 억울함 등이 한데 뭉쳐 가슴만 답답해졌다. 하지만 오만가지 잡생각도 순간.

“뭐하고 있어? 빨리 찍고 내려가야지!”

독촉하는 남편과 사진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둘러 복종해야겠다는 의욕에 사로잡혔다. 그만큼 백두산천지와의 상면은 이 세상 모든 악으로부터 재빨리 벗어나도록 해주었다. 참으로 ‘세상에 이런 일이’TV프로에 나오고도 남을 마음의 변화였다.

전신의 요동을 가다듬으며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돌려 최대한 천지를 골고루 담으려 노력했다. 사진촬영계약이 없는 사람들, 있었어도 촬영 전이나 후인 사람들조차 쇠고리경계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철저히 막는 사진사들의 횡포 아닌 횡포에 맞서 인파가 없는 백두산천지의 모습만 담기 위해 애썼다.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타인에게는 손톱 끝의 때만큼이라도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남편의 일그러진 표정을 눈치 챘지만 ‘하느님이 우리를 보호하사 이 장엄한 광경을 열어주셨는데 어찌 그냥 외면할 수 있으리오? 한번 지나간 시각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이 순간만큼은 욕을 먹자!’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짬짬이 틈을 내어 민족과 나라의 통일을 염원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우리가족의 건강과 행복도 기도했다. 시집과 친정식구들, 두 아들과 딸 가족,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끝으로 우리부부 순으로 가정의 평안과 만복을 간절히, 또 애절하게 읊조려 빌었다. 백두대간의 출발점이며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위치한 백두산봉우리에서 올리는 기도는 무조건 이뤄질 것 같다는 아련한 기대에 부풀었기 때문이다. 가이드의 부탁대로 제사는 올리지 않았으므로 약속을 지키면서도 인간을 잉태하고,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짧지만 후세를 위한 진실 된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하나만으로 나 스스로 자위하면서 어쩔 수 없이 돌려야하는 발길을 가벼이 느끼고 싶었다. ‘다시는 못 볼 지도 모를 백두산천지를 어렵게 찾아온 내가 결국 부담만 주고 갈 수밖에 없구나!’ 한없는 무능력자로 나 자신을 위한 희망사항만을 욕심으로 채운 결과에 더없이 초라하게 느껴져 인간의 비애와 분단의 현실이 더욱 큰 슬픔으로 메아리 되어 돌아왔다.

다시 한 번 감상적분위기로 깊이 빠질 뻔 했을 때 옆에서 목멘 소리로 아들이름을 부르는 큰 외침에 번쩍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양철우! 꼭 잘 될 거야!”

매달생활비를 보내주면서도, 이번 관광을 위해 출발하기 전에 2,000,000원을 주었다는 철우엄마의 아들을 위한 모정의 발산인 것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관광객들의 기분까지 울컥하게 만들었을 울부짖음이었다. 대한민국엄마들만이 지닌 안타까우면서도 애절한 소원일 것이었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하나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이유를 묻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쉽게 동감하겠다는 표정으로 각자 자신들의 행동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왜 그래?”

남편의 조롱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눈가를 닦으며 다음의 천지구경을 위해 발걸음을 떼는 철우엄마 뒤를 바짝 ?아 울적한 기분을 빨리 잊어주기 위해 같이 사진을 찍자며 모델노릇을 했다.

백두산! 얘기만 들어도 가슴이 벅찬 곳이다.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끝없는 펼쳐진 밀림 숲에 야생화군락지를, 고산화원은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머금고 있는 곳이다. 한국인이라면 한번은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으로 중국동북3성을 여행하는 한국인이라면 다른 목적지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백두산천지만 보았으면 흡족해한다는 곳이다. 3대가 공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곳으로 살아생전에 많은 복을 쌓은 사람은 한 번에 볼 수 있고, 쌓지 못한 사람은 여러 번 찾아도 볼 수 없을 거라는, 믿거나 말거나 유행어 한 마디에 지금껏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며 여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자 다짐을 하게 하는 곳이다. 분단의 아픔과 안타까운 역사적 현실을 실감할 수 있는 곳으로 민족의식과 통일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대한민국국민이라면 꼭 한번쯤은 들려야할 곳이다. 천지를 본 그 자체만으로 여생을 만족으로, 괴로움도 편안하게, 매사를 감동으로, 매일을 감사하게 마무리 짓는데 충분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삼복더위중인 7월 하순에도 천지주변과 백두산계곡은 아직 녹지 않은 눈을 볼 수 있다고 하는 추워 외로움에 떨고 있는 곳이다. 고구려용사들이 말 달리던 광활한 만주벌판을 그리워하며 윤동주생가를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겨레, 동포, 형제들을 끔찍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그 누구보다도 열망하며 비록 거리를 두고 있어 직접 자유롭게 왕래는 못하지만 위대해진 조국의 발전현실과 애국심을 어느 무엇보다 자랑스럽고 뜨겁게 느끼는 곳이다. 아직도 자신들의 악랄한 만행을 뉘우치지 못하고 애매한 소리로 쓰디쓴 눈물을 토하게 만드는 요즘일본의 최신식간접침략에 새로운 원한과 비통을 쌓게 만드는 곳이다.

“이제 그만 내려가지. 시간이 거의 다 되었어.”

“아직 20분이나 남았잖아요? 저기 보이는 길 끝까지 갈래요.”

우기니 남편과 같은 생각을 했었다는 철우아빠도 마지못해 철우엄마와 같이 뒤따라 와주었다. 덕분에 많은 천지모습과 동영상, 거기에 지금까지 남기지 못했던, 눈으로 보지 못했던, 천지로 내려가는 백두산의 단면까지 두 개의 사진기에 확실히 담을 수 있었다.

“빨리 내려가자. 다른 일행들이나 가이드가 기다리지 않도록 해야지.”

서두르는 남편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져도 ‘남기고 싶은 건 남기고, 찍고 싶은 건 찍어야지! 힘이 없어 빼앗긴 백두산과 천지를 남겨두고 가는 마음이 짠하기 그지없는데.......’ 여유 속에서도 급하게 발길을 떼며 셔터 누르기를 반복했다.

“안녕, 백두산천지여, 안녕!!!”

 

 

 

 

 

 

 

 

 

 

 

 

 

 

 

 

 

 

 

 

 

 

 

 

 

 

 

 

 

 

 

 

 

 

 

 

 

 

 

 

 

 사진 13컷과 백두산천지동영상은 사진방에서 감상하세요!

 

주차장에 도착하니 일찍 도착한 일행들이 나보다 늦게 도착할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어 한숨부터 ‘휴!’ 내쉬었다.

“저 구름 좀 찍어봐! 마치 백두산천지에서 솟아오르는 것 같잖아?”

급히 동영상카메라를 꺼냈다. 참으로 보드랍기 그지없는 탐스런 뭉게구름들이 금방이라도 우리에게로 내려와 포근하게 감싸안아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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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남편만 떨어져 11인승봉고에 몸을 실었다. 꼬불꼬불 올라갈 때의 도로를 좌우로 전신이 흔들리며 내려갔다. 옆에 앉은 다른 관광버스회원과 부딪치지 않으려 손잡이를 꽉 잡았지만 수많은 관광객들이 참기름으로 길들여놓은 듯 이미 반질반질해진 좌석 위에서는 잠시도 얌전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한손에는 동영상셔터를, 다른 한손에는 손잡이를 잡으며 몸을 최대한 가누려 애썼다. ‘이 짓도 누가 시켜 할까? 내가 좋아 하지!’ 웃고 즐기는 가운데 어느새 주차장에 도착, 큰 버스로 다시 갈아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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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장백폭포로 가는데 백두산일부가 중국소유로 넘어가면서 붙여진 명칭이지요.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일 년 내내 아름답게 마치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 같다고 하여 비룡폭포라고도 합니다. 높이는 68m이며 90도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두 갈래의 물줄기 중 동쪽물줄기가 3분의2를 차지하며 송화강으로 흘러갑니다. 천지의 물이 북쪽에 형성된 결구를 통해 천 여 미터의 협곡을 흘러 폭포를 형성하는데 떨어지는 웅장한 소리는 200여 미터까지 들립니다. 용문봉과 철석봉이 양옆에 있어 같이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계곡좌우는 수직에 가까운 절벽으로 되어있는데 암석이 발달한 주상절리와 빙하의 영향으로 결성된 겁니다. 무수한 사람들의 발길로 훼손될까봐 출입금지가 되어있으니 그곳에서 뒤돌아 오시기 바랍니다. 올라가시다보면 계단오른쪽으로 땅속에서 솟는 온천수가 흐르는데 85도로 반숙계란을 판매하는 곳도 있습니다. 화산의 뜨거운 열이 지하수를 데워 지표면으로 흘러나오는데 바위 위를 자세히 보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분쯤 달렸을까? 백두산천지의 관광객들을 그대로 옮겨놓았는지 주차장은 많은 인파로 복잡했다. 장백폭포상단의 좌우를 둘러보니 깎아지른 절벽이 우람하게 버티고 있었다. ‘5시20분까지 도착하라는 가이드지시를 염두에 두고 걸음을 재촉했다. 백두산천지와 장백폭포의 사계절사진액자가 걸려있는 언덕을 오르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려니 앞서 구경만하는 남편보다 또 쳐질 수밖에 없었다. 급히 걸었다가 뛰면서 겨우 따르니 온천수로 삶은 달걀판매점이 나타났다.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복잡하여 내려올 때 찍기로 하고 그냥 지나쳤다. 온천수에 달걀이 가득한 소쿠리를 담가놓았다가 꺼내는 모습을 사진기에 담을 수 있었다. 뜨거운 온천물이 흘러내려 암석의 색깔이 총천연색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 참으로 황홀하면서도 신기했다.

“빛나 엄마, 나 도저히 더 걸을 수가 없어.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다녀와!”

철우아빠와 우리부부만 포크레인으로 공사 중인 개천을 따라 10여분 더 올라갔다.

드디어 굉음을 내는 장백폭포가 물안개를 피우며 전라를 드러냈다. 어렵게 접한 백두산주변봉우리들이 병풍처럼 아름답게 어우러진 틈에서 힘차게 내리쏟는 많은 양의 장엄한 폭포는 그야말로 장관 중의 장관이었다. 마침 그 장관을 감상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는 남자일행들을 만나 기념사진을 여러 컷 박아주었다. 나이가 비슷한 다른 팀의 여자에게 사진기를 맡기고 남편과 같이 비룡폭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욕심 같아서는 시간을 허락받아 폭포 옆으로 난 길을 올라 천지를 또 보고 싶었지만 시간적으로 부족하기도 하고, 혼자의 몸이 아니므로 단념하고 뒤돌아서야만 하는 발길이 매우 아쉬웠다.

약속장소인 주차장으로 내려오면서 삶은 달걀과 옥수수 등 판매하는 곳을 들러 셔터를 눌렀다.

석 줄로 서있는 일행들 중 남편 옆으로 다가가니 삶은 계란 하나를 내밀었다.

“자기나 다 드세요!”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아 달걀이 터질 염려가 있어. 제대로 잘 벗기는 방법이 분명 있을 텐데 우리가 몰라서....... 나중엔 흐르는 반숙국물을 들이마셔야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들을 기다리며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 많은 중국인들의 시끄러운 언어가 유난히 요란하게 들렸다. 중국인들에게도 백두산이 주는 의미가 꽤나 큰 듯했다.

버스를 타고 자작나무와 기념품판매소가 있는 주차장에서 내렸다. 전용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넓은 주차장으로 가기 전, 기념사진을 남겼다.

 

 

 

 

 

 

 

 

 

 

 

 

 

 

 

 

 

 

 

 

 

 

 

 

 

 

 

 

 동영상은 사진방에서 감상하세요!

 

“점식식사 하셨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실 겁니다. 예약된 테이블안쪽부터 순서대로 앉으시는 것, 잘 아시죠?”

6시 출발. 어느덧 서산마루를 향해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차선 없는 거리에는 흙먼지를 날리며 자동차와 자전거들이 서로 앞 다퉈 경쟁하는 듯 크락숀으로 소란스러웠다.

30분 걸려 도착한 식당에서 닭고기, 미역냉채, 토마토, 생선, 불린 양송이버섯, 김치 등의 반찬 외에 시장기까지 곁들여 맛있는 석식시간을 즐겼다. 무엇보다 첫 번째의 백두산관광으로 운 좋게 백두산천지를 보았다는 희열로 부족한 잠과 피로까지 말끔히 가실 수 있었다.

 

 

 

 

 

“오늘밤은 가까운 미인송 호텔에서 묵으실 겁니다.”

10여분 달려 규모가 크고 우아하게 꾸민 호텔에 도착했다. 받은 212호 룸 키를 받아 충전기부터 꽂고, 샤워실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남자목소리가 들렸다.

“마사지를 받으시겠습니까?”

“아니오!”

떨리는 가슴을 억제시키며 전화기를 얼른 내려놓았다.

“어머나, 가이드말대로 정말 이런 전화가 오네요?”

가이드로부터 미리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젊고 어여쁜 아가씨들이 룸마다 다니며 마사지를 권하는데 값은 아주 저렴한 5,000원이라고. 승낙하면 옷부터 벗고 시작하는데 마사지 받던 남자가 후에 흥분하여 옷을 같이 벗게 되면 오십 만원에서 오백 만원 아니 그 이상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돈 버는 방법도 가지가지, 참으로 눈뜨고 귀 베일 세상이다.

남편은 모임에 참석했다가 8시 반쯤 돌아왔다. 음악을 들으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느라 메모하지 못한 오늘의 관광코스를 정리했다.

내일은 5시 콜, 5시 50분까지 1층 식당 앞에 모여 6시부터 식사시작, 6시 반 출발한다고 했다. 11인승 버스를 타고 내려올 때 내일은 백두산정상에 비가 내릴 확률이 많다는데....... 제발!!!

 

HOTEL: 미인성 호텔 또는 동급(★★★호텔) 조: 호텔식. 중: 한식. 석: 한식

 

  

 

<참고사항>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2,750m)민족의 명산, 백두산(白頭山, 중국 명:창바이 산, 長白山)]

함경도(양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지린 성[吉林省] 안투 현(安圖縣) 얼다오바이허 진(二道白河鎭)에 걸쳐있는 산으로 산봉우리에는 칼데라 호(caldera湖)인 천지(天池)가 있으며 압록강, 두만강, 쑹화 강으로 흘러간다. 해방당시최고봉은 병사봉(2,744m)이었으나 현재는 장군봉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해발고도2,750m로 재 측량되었다. 북동에서 남서방향의 창바이산맥(長白山脈)과 북서에서 남동방향의 마천령산맥의 교차점에 위치하며 화산폭발에 의해 덮인 부석(경석)이 회백색을 나타내 꼭대기는 1년 중 8개월 이상 눈에 덮여 희게 보이기 때문에 백두산이라 부른다. 만주어로는 '귀러민산예아린'이라고 부르는데 '귀러민'은 길다(長), '산예'는 희다(白), '아린'은 산(山)을 의미한다. 문헌에 나타난 백두산최초이름은 산해경(山海經)에 ‘불함산(不咸山)’으로 기록되었으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단단대령(單單大嶺), 개마대산(蓋馬大山), 태백산(太白山), 장백산(長白山), 백산(白山)등으로 불렸다. 백두산은 2, 3백년을 주기로 분출했던 휴화산이라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는 성역으로 간주되었다. 삼국이 성립되기 전 읍루, 숙신, 동옥저가 백두산주변에 살았고 그들은 백두산을 성역으로 섬겼다. 한국문헌에서의 기록은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편에 ’태백산(太伯山)‘이란 이름으로 처음이며 ’고려사‘에도 ’압록강 밖의 여진족을 쫓아내어 백두산바깥쪽에서 살게 했다.’하여 명칭이 처음 기록되었다. 한민족이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본격적으로 숭상한 것은 고려시대태조왕건의 탄생설화부터라고 추정된다. 백두(白頭)라는 이름은 성해응(成海應)의 ‘동국명산기 東國名山記),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林下筆記)등 문헌에 의하면 백두산의 산정이 눈이나 백색의 부석(浮石)으로 4계절 희게 보여서 희다는 뜻의 '백(白)’자를 취하여 명한 것으로 보인다. 1677년(숙종3년)에는 궁정내무대신인 무목납 등 4인이 백두산에 파견되어 실황을 조사한 ‘장백정존록’을 기록하니 최초의 백두산기록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1712년(숙종38년)5월 청나라의 제의에 의해 '오라총관', '목극등'과 조선 군관 이의복, 조태상이 백두산의 분수령인 높이 2150m지점에 정계비를 세웠다. 그 당시는 백두산정상이 아니라 남동방4㎞, 높이2150m의 분수령이었으니 정계비라고 할 수도 없다. 백두산의 범위는 천지중심의 마그마활동에 따른 화산암의 분포지로 한정해 볼 때 현재 북한 측의 면적은 8,000㎢로 전라북도면적(8,052㎢)과 비슷하고 개마고원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중국 측의 백두산화산암의 분포 지까지 합하면 3만㎢에 이른다. 또한 해발고도1,800m까지는 완만한 경사(8~12°)를 나타내어 방패모양의 순상화산이나 1,800~2,500m는 급경사로 종 모양의 화산을 이룬다. 백두산의 중앙부에는 천지가 있으며 그 주변에는 2중 화산의 외륜산에 해당하는 해발고도2,500m이상의 봉우리 16개가 천지를 둘러싸고 있는데 모두 회백색의 부석으로 덮여 있다. 그중 6개 봉우리는 북한(최고봉: 2,750m의 장군봉), 7개는 중국(최고봉: 2,741m의 백암봉)에 속하며 3개의 봉우리는 국경에 걸쳐져 있다. 따라서 천지수면에서 장군봉꼭대기까지는 600m의 비고로, 백두산중앙부는 넓고 파란 호수주변에 비고 약500m의 회백색산봉우리들이 둥그렇게 둘러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백두산정상에 있는 자연호수, 백두산천지]

면적9.165㎢, 둘레14.4㎞, 평균너비1.975㎞, 동서최대너비3.550㎞, 평균수심213.3m, 최대수심384m, 남북길이4.5㎞, 천지지름2194m, 공유수면면적9.8km², 물의 양은 19억5천5백만 톤으로 흘러내려도 줄지 않으며 호수면 해발고도는 2190m로 세계화산호 중 가장 높다. 여름평균기온은 섭씨8.5도, 겨울엔 영하50도까지 내려가며 6월이 되어야 땅이 완전히 풀린다. 옛날에는 동쪽으로 흘러 두만강을 이루고, 서쪽으로 흘러 압록강을 이뤘다지만 조사에 의하면 장백폭포를 지나 송화강 상류로 흘러간다. 화산활동에 의해 백두산화구가 함몰된 후 융설수, 우수 등이 고여 생긴 칼데라 호로, 분화구전체면적 중 천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40.6%다.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2,750m)을 비롯해 망천후(2,712m), 백운봉(2,691m), 청석봉(2,662m)등 큰 봉우리6개, 작은 봉우리10개로 둘러싸여 있다. 예로부터 대택, 대지, 달문지라고도 했으며 99명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높이가 560m에 이르는 절벽으로 된 화구벽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호수 물은 화구벽이 터져서 생긴 북쪽의 달문을 통하여 흘러내려 비룡폭포(68m), 창바이폭포(長白瀑布, 70m)를 이루면서 쑹화강(松花江)의 상류인 만주의 얼다오바이허 강(二道白河)으로 흘러간다. 달문을 통해 유출되는 양은 1일 약36만㎥(7월)에 이른다. 표면수온은 7월에 9.4℃, 내부수온은 연중4℃이다. 물은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5월 중순까지 약3m의 두께로 어는데 그 위에 쌓이는 눈의 두께까지 합하면 6m이상 된다. 천지일대에는 구름과 안개가 자주 끼며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온다. 연강수량은 1,500㎜이며 바람이 강하게 불 때는 수면 위로 최대1~1.5m의 파고가 일기도 한다. 물이 맑고 푸른빛을 띠므로 가을에는 물속을 14m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한다. 호수는 수온이 낮아 어류가 서식하지 않고, 식물성부유생물5종(種), 작은 동물 및 곤충류 4종, 이끼류 등이 서식하고 있다. 혹독한 겨울추위를 이기고 살아남은 키 작은 식물들이 무리를 지어 7월 8월에는 꽃을 피워 꽃 바다를 이룬다. 호수주변에는 만병초, 좀참꽃을 비롯한 12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북쪽기슭에는 지름이 50㎝이상 되는 온천이 3개 있으며 그보다 규모가 작은 것도 수십 개 있는데 황화수소, 탄산가스 등이 함유되어 있다. 사계절경관이 뛰어나며, 백두산관광의 핵심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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