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국어선생님께서 내 얼굴을 보더니 장가를 일찍 갈 것이라고 하였다.
선생님이 관상학에 대해 알고 계셨는지 내 이마떼기에 결혼을 일찍 할 녀석이라고 도장이라도 찍혀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내 나이 20살,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상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가 남들보다 2년 늦게
고등학교를 들어갔었는데 나는 학생신분인데도 불구하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도 있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이성에 눈을 일찍 떴던 나는 결혼을 빨리해서 가정을 갖고 싶었고
그때는 왜 그렇게 결혼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보다 2살 연하인 애인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거의 대학으로 진학을 하는 사회이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대학은 커녕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도 그렇게 많지 않았던 70년대이었기에 중학교만 졸업하고
일찌감치 산업전선에서 일하는 청소년들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때도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던 나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학비를 벌기위해
주간에는 워키토키를 만드는 전자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공고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생산라인의 수리기사나 아님 팀장으로 발탁이 되었는데
군대를 다녀와도 철부지 청소년티를 벗어나지 못하는 응석받이들이 많지만 그 시절에는 군대를 제대한
남자들은 사회에서 어엿하게 성인대우를 받았었다.
나는 일전에 전자회사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었던 관계로 아직 학생이었지만 회사에서 무전기 수리기사로 일할수 있었다.
수리기사와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여공들과는 일종의 상하 관계가 형성 되었는데 수리기사 직급이 좀 더 높았다.
나는 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S 양을 처음 알게 되었고,한평 남짓한 작고 네모 반듯한 검사실에서
생산라인 벨트에 얹혀져 들어오는 작은 워키토키 성능 검사를 하는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흰 얼굴에 하얀장갑을 끼고 검사장비 앞에서 빠르게 손을 놀려가며 제품들을 검사하는 S 양과
가끔 눈이 마주쳤지만 왠지 모르게 무척 냉냉하면서 도도해 보였기에 나는 일부러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내가 좋아했던 여자는 갸름한 얼굴에 충청도 말씨를 쓰는 P 양 이었지만 그녀는
한 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미인이었기에 나는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한체 혼자서만 짝사랑 하고 있었다.
그러다 P 양과 오빠 동생으로 친하게 지냈던 한 동료의 주선으로 박양과 그녀의 친구였던 검사실 S 양과
함께 창경궁에 놀러갔다가 S 양이 나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동료가 귓띰해 주었다.
그 동료의 말을 듣고 S 양을 다시 보았더니 P 양과는 다르게 또 다른 매력이 있어보였다.
회사에서 일 할때는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그녀가 나에게 관심을 표한 것은 전혀 뜻 밖이었지만
내가 좋아했던 P 양은 이미 오래 전 부터 동료와 서로 그런 사이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S 양과 사귀게 되었다.
그렇게 20살 청년과 18살의 내 여자친구는 쉬는 날이면 인근 유원지와 산으로 강으로 손 잡고 다니며 미래를 약속했었지만
그때 당시 어른들의 눈에 우리 두 사람은 한 낮 어린 것들이 불 장난 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0살이면 나도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고 여겼었지.
내 여자친구는 성격이 온화하면서 나를 세세하게 챙겨주었는데 산이나 들로 데이트를 하다가도 내 바지가
조금이라도 더러워지면 쪼그리고 앉아서 물로 깨끗이 닦아주기도 하였다.
중화동에 있었던 회사가 멀리 김포공항 근처의 방화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서 나는 퇴사하였지만 여자친구는
회사에서 마련한 기숙사에서 거주하며 근무하였기에 우리는 장거리 데이트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늦게까지 데이트를 하고 집에 올때면 여자친구는 택시를 타고 가라면서 적지 않은 차비까지 내게 챙겨주었는데
체면상 절대 받지는 않았지만 그런 여자친구의 마음 씀씀이에 나는 적잖이 행복감을 느끼곤 하였다.
나중에 결혼하면 내 여자친구는 아주 좋은 아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친구가 부모님의 요청대로 자신의 고향인 대전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고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듯이 그렇게 우리 둘은 편지만 몇 번 오가다가 차츰 희미하게 잊혀져 갔다.
그녀와 나는 결혼을 약속할 정도로 사랑을 하였지만 활활 타오르다가 쉽게 꺼지고마는 모닥불 사랑이었던 것이다.
만약 송양과의 사랑이 불발로 끝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나는 지금 이 나이에 우리 딸만한 손자,손녀들이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국어선생님의 예언은 빗나가고 말았다.
첫댓글 시리즈 시작이네요
다음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이번 글은 좀 길어 질 것 같습니다.
@[양주]피카소 길어진다니 더욱 기대됩니다.^^
앙코르 와트 결혼이야기 부탁해요~~^^
앙코르는 한 번도 못 가봤습니다.
오로지 프놈펜만 두번 갔다왔네요.
다음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간직 하고 계시는 군요
첫 사랑 아닌디요?
첫 사랑은 17살에 ㅋㅋ
@[양주]피카소 헐 겁내 성숙 하셨군요....ㅎ
@[수원] 깡통
요즘은 초등5학년만 되어도 야동 섭렵하는데
내는 한 참 늦었시요ㅋㅋ
다음이야기가 궁금해 집니다. 국어쌤~~ 어쩔겨?^^
그러게요?국어쌤 예언이 맞았어야 했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