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31일 (목) 촬영.
한강역사탐방 2코스 송파나루길을 걷기 위해 잠실나루역 3번출입구에서 김우현 해설사를 만났습니다.
이곳에서 17명(우리회원 15명과 개인적으로 참가한 2명)이 모여 잠실지역에 대한 설명을 듣고 출발 했지요.
잠실동은 조선 초에 이곳에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 뽕나무를 심고 잠실을 두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서울 동쪽에 있어 동잠실 또는 잠실리,부리도 등으로 부르기도 했고요.
3번 출입구 좌측의 계단을 올라,
고가도로를 통해 전철을 횡단 했습니다.
그리고 전철 옆으로 걸어 한강변으로 내려 갔습니다.
한강변으로 내려가는 계단입니다. 멀리 보이는 롯데타워는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늘 따라다니더라구요.
보이는 다리는 잠실대교입니다. 강변 길을 따라 저 다리까지 갔습니다.
날씨 탓인지 롯데타워가 실루엣처럼 보였습니다.
옛 강변 지도를 보여 주는 해설사.
강 건너편 모습.
물고기 형상의 조형물이 있는 이 곳은 어도(漁道)가 있는 곳 입니다.
잠실대교와 어도입니다.
어도는 1986년 한강종합개발로 만들어진 수중보로 인해 도약력이 약한 물고기들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돕기 위해 만든 물고기 길입니다.
이 곳에서도 해설사의 설명이 있었네요.
어도에 역동적으로 흐르는 물.
어도 뒤로 잠실철교(2호선)와 올림픽대교의 조형물이 보입니다.
어도를 통과하는 물고기들을 잡아 먹기 위해 대기 중인 왜가리(하얀색의 왜가리는 백로라고 부름)
잠실대교
아래에 만든 나무계단 길을 통해 대교를 가로 질러 수중보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잠실보는 한강의 수위 및 유량 조절, 퇴사 및 퇴적오염토 제거, 홍수예방을 위하여
잠실대교 하류 10m 지점에 설치된 총길이 873m의 수중보입니다. 가동보와 고정보로 구성된 혼합보 형태로
1986년 10월에 설치 되었습니다. 물고기의 소통을 위해 보 중앙과 남쪽에 어도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작은 물고기들을 위한 남쪽의 어도.
잠실지구 아파트입니다 제일 뒤로 잠실운동장이 있습니다.
잠실교로 올라 가는 길입니다.
철교에 새가 앉아 오염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삼지창을 만들어 놓아 새의 접근을 차단한 시설입니다.
새가 도저히 앉지 못 하겠죠.
잠실대교로 올라 왔습니다.
삼전도비(대청황제공덕비)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입니다.
롯데타워 바로 옆으로 지나 갔습니다.
지하도 통과
참, 바쁘게 걸었습니다.
삼전도비(대청황제공덕비)입니다.
삼전도비는 병자호란 때 몽골군에게 패한 인조가 청태종의 요구로 세운 비입니다.
삼전도비는 사실상 청태종이 세운 것이지요. 그럼에도 굴욕적인 삼전도비를 무슨 치욕의 역사도 역사이니
만큼 길이 보존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 놓으며 세상에 없는 철제 비각까지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네요.
삼전도비가 아니라도 치욕의 역사를 되새김질 할 수 있는 유물들은 전국 곳곳에 많습니다.
국보인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비롯하여, 독립문, 궁궐들, 서울시 청사까지, 들여다 보면 다 치욕이 없는
유적들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중앙청처럼 다 부숴버려도 치욕의 역사가 지워지는 것이 아닐진데 삼전도비도 부술 수 없다면 박물관
수장고에 두던가 아니면 비각이라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을미사변 때 목숨을 바친 충신 열사를 기리는 장충단비는 엉뚱한 곳에서 눈,비를 맞게 방치해 두면서도
삼전도비는 제자리를 찾아 다시 세우겠다고 몇번씩이나 옮겨 세우는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영광의 역사가 있을 터인데
전국 곳곳에 피해의 상징물이 아닌 영광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유적을 복원 해 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호화로운 현대식 비각 속에 보존되고 있는 비는 우리나라 안에는 또 없습니다.
옛 송파나루터에 세운 정자입니다. 바로 옆에는 송파나루터 였다는 표석도 있습니다.
오늘의 공식 탐방은 이 곳에서 끝내고.
기념사진 남기고 간식 먹고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석촌동 고분군과 방이동 고분군을 돌아 봤습니다.
석촌동 백제초기 적석총이 있는 곳 입니다.
서울 석촌동 고분군 / 사적 제243호.
석촌동 고분군은 백제 초기에 만들어진 돌무지무덤이다.
1916년에는 90여 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되었으며,
"석촌"이라는 마을 이름도 돌무지무덤이 많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덤은 없어지고 현재는 4기만 남아 있다.
이 곳의 돌무지무덤은 외형에서는 고구려의 발달된 기단식 돌무지무덤과 같지만 내부 구조에서는 다르다.
3호 돌무지무덤은 무덤의 안팍을 모두 돌로 쌓은 고구려식이며,
2호와 4호 돌무지무덤은 기단과 계단 외부를 돌로 쌓았지만 내부를 흙으로 채웠다는 점에서 백제식이다.
기단부만 남은 1호 돌무지무덤은 두 기의 무덤이 남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남쪽 무덤은 고구려 식이고
북쪽 무덤은 백제식이다.
3호 돌무지무덤은 밑변 50m, 높이 4.5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4세기 후반경의 왕릉으로 추정되고 있다
(안내문 내용)
석촌동 제3호분 / 사적 제243호.
이 무덤은 동서 방향의 길이가 50.8m, 남북 방향의 길이가 48.4m로 추정되는 사각형의 계단식 돌무지무덤
이다.
산에서 가져온 큰 돌을 깨서 3단 이상 쌓았는데, 1980년대 중반까지 여러 채의 민가가 무덤 위에 있었기
때문에 무덤의 높이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최소 4.5m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무덤은 땅을 잘 고른 후 40~50cm 두께로 진흙을 깔아 다지고 그 위에 자갈돌과 지댓돌을 차례로 깔았다.
이후 대체로 40cm가 넘는 크기의 깬돌과 작은 판자돌을 가로 누여서 층층이 쌓아 올렸다.
무덤이 훼손된 뒤에 발굴 조사를 했기 때문에 주검이 묻힌 곳은 찾지 못하였으나, 무덤 주위에서 중국 동진
시대의 도자기 조각, 금으로 만든 얇은 장식 조각인 달개, 백제 토기 조각들을 수습하였다.
제 3호분은 4~5세기의 백제 왕릉으로 보이며, 학계에서는 근초고왕(346~375)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까이 본 석축의 형태
고분군 뒤로 보이는 롯데타워가 구름을 뚫고 들어갈것 같아 보이는군요.
석촌동 제2호분 / 사적 제243호.
제2호분은 1985년 석촌동 백제 고분군 정비 계획에 따라 복원되었다.
그 전에는 돌로 덮힌 봉우리 모습으로 주변에 민가와 돌담장이 세워져 있었다.
겉모습은 돌무지무덤이고 내부는 흙으로 채운 백제식 돌무지무덤이다.
원래 흙무지무덤이던 것을 나중에 돌무지무덤으로 겉모습을 바꾼
제4호분과 달리. 처음부터 내부를 흙으로 채우고 겉에만 돌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1987년 발굴 조사 당시에 돌무지는 기단부의 1m 정도가, 내부의 흙무지는 높이 3.8m 정도가 남아 있었다.
이를 토대로 3단의 계단식 돌무지를 복원하였다.
서북쪽 모서리 지점에서
나무널 1기가 발견되었는데, 움을 파지 않고 널을 놓은 뒤 작은 봉분을 만든 것이었다.
이를 통해 흙무지 널무덤을 먼저 만들고 나중에 확장 했음을 알 수 있다.
널무덤과 서남쪽 봉분 안에서는 3세기 말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굽다리 접시와 곧은입 항아리가 출토되었다.
(안내문 내용)
발굴 당시 사진도 안내문에 있었습니다.
2호분과 롯데타워.
석촌동 고분군을 나와 방이동 고분군으로 가는 길입니다.
송파1동 자치회관 옆,
작은 공원에 을축대홍수(1925년) 기념비와 암행어사 이건창의 영세불망비가 있답니다.
이건창(1852~1898)은 강화사람으로 5세에 문장을 구사할 만큼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였는데 이는 조선의 최연소 급제자였습니다.
거리는 선거가 시작되어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 있네요.
방이동 고분군으로 들어 섯습니다.
서울 방이동 고분군.
방이동 일대의 낮은 능선을 따라 즐비하게 있던 무덤 일부를 1975년에 발굴 조사한 뒤 1983년에 정비했다.
현재 남아 있는 무덤은 8기로 서쪽 높은 지대의 4기와 동쪽 낮은 지대의 4기이다.
제1호분과 제4호분 그리고 6호분 등은 깬돌로 쌓은 궁륭식 천장 (천장 한 가운데는 높고 주변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아치형 곡면 구조의 천장)의 굴식돌방무덤으로 백제 전기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제5호분은 구덩식 돌덧널무덤으로 조사되었다.
도시 개발로 사라진 제4,5호분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조사된 것은 10기 중에 4기(1,4,5,6호분)뿐이므로
나머지무덤들(2,3,7~10호분)의 구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이 고분군은 발굴 조사하기 전에 이미 도굴되어 유물이 많이 출토되지는 않았으며,
제6호분에서 회청색 굽다리 접시를 비롯한 전형적인 신라 토기들이 출토되어 신라 시대의 무덤으로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성백제지역 이었던 서울 우면동, 하남 광암동, 성남 판교 등지에서 백제의 굴식돌방무덤이
잇따라 발견됨에 따라 이곳 고분군이 백제시대의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안내문 내용)
동족 낮은 지대에 있는 고분군입니다.
동족에 있는 4기의 고분.
이 곳에서도 보이는 롯데타워.
동쪽에 있는 고분군으로 올라갑니다.
두 곳은 현재 보수 중이라 볼 수 없었고 내부를 공개중인 고분도 잠겨 있어 보지 못하고 내려 왔습니다.
방이동 고분군에서 나와 메타세콰이아 길을 걸어 방이역으로....
좋은 길을 안내해준 솔바람님께 감사드립니다.
메타세콰이아(Metasequoia) 길.
방이역.
첫댓글 2017-년이 아니옵구 ,,2018년이라 아뢰여 ,~~~~~~~ㅎㅎ
바쁘신가봐여 ,,,?? 첫 ,사진,에서,,
다시 ,욜심히 ,감사히 ,,잘 봤읍니다 ,,,수고 많으셨읍니다 ,,,
사진 편집과 글까지 몽땅 수고하셨습니다
탐방길 사진을 따라 복습하니 정리가 됩니다
또 까먹을망정 기억세포의 자극을 위해,
조선 과거 최연소 합격자 이건창은 청백리로 칭송을 받았지만 강직한 성품으로 비리를 캐다 모함을 받아 유배도 갔을만큼 벼슬길이 순탄치는 않았군요
조선 과거시험 최고령 합격자 나이 85세 83세
83세에 합격한 박문규라는 사람은 장사로 큰 돈을 벌고 흥청망청 쓰다 망했으나 40세부터 학문에 전념하여 주변에 명성이 널리 알려졌고 83세 과거 합격하여 병조참지로 임명되고 이듬해 승진하였으나 그만 세상을 떴다
요즘 같으면 83세에 사법고시 합격인데 그 집념이 좀 특별한 경우네요
시험도 안보는데 열공할수 있게 해주시는
바위솔님의 사진을 곁들인 재미있는 역사강의
감사드립니다
탐방후 또 복습하게 되니 조금은 기억에 남아있을 것 같아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