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양반 문화는 겉으로 완벽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실수나 패배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풍토에서는 보신주의와 관료주의가 제일 지혜로운 처세술이다. 거기서는 창의력이 나올 수 없고 신기술이 나올 수 없다. 우리의 기업가들이 흔히 도덕적인 비난을 많이 받지만, 우리는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들이 시대에 앞서 실수와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보신주의와 관료주의, 사농공상의 뿌리깊은 봉건 사상을 알에서 깨어나듯이 이들을 과감히 떨치고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달러를 벌어들일 때,
우리 나라는 과연 그들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법을 만들어 주었으며 박수를 쳐주며 이전에 가졌던 고루한 사고를 버리고 그들을 따라 배우려고 했던가.
낡은 도덕과 법을 들이밀며 꼬투리를 잡아 돈을 뜯어낼 생각이나 하지 않았던가.
돈을 뜯어내지는 않더라도 농업 시대의 잣대로 산업 시대를 재단하거나 산업 시대의 잣대로 정보화 시대를 단죄하지나 않았던가.
만약 그들이 기존의 도덕과 법과 문화에 얽매어 새로운 것을 과감히 추구하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나라에 중소 기업이라도 몇 개나 생겨났을까.
흔히 대만을 들먹이며 우리 나라에 대기업이 없었으면 세계적인 중소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을 거라고 조금이라도 먹물이 든 사람은 다들 한 마디씩 한다만, 요사이는 애들이 워낙 똑똑해서 초등학교 3학년 학급회의에서도 이런 말을 한다고 하더라마는,
내가 보기엔 천만의 말씀, 만만의 말씀이다.
우리 나라는 누구나 공부 열심히 해서 고급 공무원되고 은행원되고 선생님되고 교수님되고 변호사되려고 하지 땀을 뻘뻘 흘리는 돈벌이는 절대 안 하려고 했다. 그건 상놈이나 하는 일인 것이다. 어찌 된 셈인지 조선 총독부가 조사한 바로는 양반이 인구의 1.9%밖에 안 되었는데, 98.1%가 양반 행세를 하는 나라가 우리 나라다. 기름 묻히고 먼지 묻히는 일은 최후의 수단으로 죽지 못해 할 뿐이다. 그러니 기회만 닿으면 언제든지 튈 생각을 한다.
"내가 누군데 이 따위 일을 해?"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경제 개발 전에는 먹고 살 만하고 머리 좋은 아이가 공대나 공고 간다면 온 식구가 펄펄 뛰었다. 온 동네 사람뿐만 아니라 사돈에 팔촌까지 나서서 극구 말렸다.
그런 풍토에서 어떻게 온 식구가 매달려야 하는 중소기업을 할 수 있었을까?
온 식구가 손바닥만한 땅을 갈아 죽을 끓여 먹더라도 차라리 농사를 지으면 지었지. 아니면 친척집에서 얻어먹었으면 얻어먹었지, 공돌이는 안 하고 장돌뱅이는 안 되려고 했다.
나는 포철회장 유상부님을 시대를 앞서 간 사람으로 존경한다. 거창 고등학교 3학년 때 법대 가려고 했는데, 전영창 교장 선생님이 공대 가라고 해서 공대에 갔다고 했다.
지금도 서울 법대 합격하면 동네 잔치를 하고
학교에서는 모든 교사에게 식사를 거하게 대접하고 담임에게는 작은 성의를 표하는 나라가 우리 나라인데,
공업 시설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하나도 없는 그 원시 시대에 (그분은 60학번이다)
그것도 늑대와 여우, 멧돼지가 수시로 출몰하는 지리산 산골짜기에서 능히 서울대 법대 갈 실력이 된 학생이 서울 공대에 간 것이다.
정말 좋은 학교였고 정말 좋은 학생이었다.
포철이 그냥 세계 최고 철강 기업이 된 게 아니다. 박태준이 있었고 유상부가 있었다.
포항 제철은 물론 전세계 제철 공장을 머리 속에 넣고 다닌다는 그분이 서울 법대 가서 고시 합격했다고 해 보자.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면서 폼 잡는 것밖에 더 했겠는가.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해도 백수건달 국회의원이나, 기업 발목이나 잡는 장관 한 자리 차지했을 것이다.
--사회 정의?
우리 나라의 최고 인재들이 싹쓸이하듯 고시에 턱턱턱 붙었는데, 어찌하여 우리 나라는 눈을 씻고 봐도 사회 정의가 보이지 않는가. 군사 독재 30년 때문인가. 그렇다면 두 민주 투사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왜 검찰과 법원이 제 구실을 못하는가.
우리 나라의 법조계가 살아 나려면, 아무 힘없는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황제보다 알통이 큰 현직 대통령도 비리가 있으면 구속할 수 있으려면, 절대 무균질의 1등 짜리가 고시를 보지 말아야 한다.
학교 다닐 때 담배도 몰래 피워 보고 부모한테 거짓말해서 용돈도 더 울궈 내 보기도 하고, 여자 꽁무니도 좀 따라다녀 보고, 사랑 앓이도 해 보고, 종교에 대해, 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도 해 보고,
시험도 몇 번 망쳐 보고, 자살할 생각도 몇 번 해 보고, 학생부에 끌려가서 얼얼하게 얻어 터져도 보고, 독서실에 책만 두고 당구장에 가 보기도 하고, 선생 욕도 좀 해 보고, 야한 사진도 좀 보고, 오락에 빠져 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책도 많이 읽어 보고, 만화도 보고, 무협지도 보고, 환타지 소설도 보고, 세계 명작도 보고 과학 서적도 읽어 보고, 고고학 서적도 읽어 보고, 못 알아 들어도 음악회도 가 보고, 무슨 뜻인지 몰라도 전람회도 가 보고,
여행도 떠나 보고, 죽자고 공부도 해 보고, 멋으로 타임지도 끼고 다녀보고, 외국인 보면 인사라도 한 번 해 보고, 그래서 성적이 겨우 중상 정도를 유지한 그런 학생이 고시를 봐야 한다.
판결이야 법전과 판례를 보면 되는 거고 소장도 사무장한테 배워서 몇 번 써 보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정도야 중상 정도의 머리와 학력에 성실성만 갖추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학생 때 인간이 자라면서 겪는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해 본 사람만이 법을 위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법을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사람이 가야 법조계는 비로소 맑아지고 유쾌해진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차가운 머리만 있을 뿐 뜨거운 가슴이 없는 법조인에게 사회 정의라는 중책을 맡기는 자체가 무리다.
식당이 아무리 잘 되어 봐라. 잘 될수록 아들딸은 근접도 못하게 한다.
"너는 공부 열심히 해서 남들이 알아 주고 돈이 저절로 생기는 직업을 가져야 하느니. 고문진보에도 주자(朱子)께서 책에 재물이 있다고 했느니라. 교수, 판검사, 장관,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느니라.
대통령인들 왜 못 될꼬. 아비가 천한 식당 일을 한다고 아들이 대통령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느니라.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나라가 아니더냐. 산지기 아들도 대통령 되고 움막 집 아들도 대통령 되고 멸치나 잡던 어부의 아들도 대통령이 되었지 않느냐. 자고로 부모 말씀 잘 들어 실패한 자식이 없느니라."
대만이나 이태리, 일본, 독일에서 중소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는 이유는 딴 데 있는 게 아니다.
정부가 도와 주어서 그런 게 절대 아니다.
그들의 문화 때문이다.
어떤 직업도 절대 천시하지 않고 온 식구가 매달려 돈 버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도 대만에는 여름 방학만 되면 귀국 학생으로 대북 시내가 시끌버끌한다. 하나같이 자기 부모가 경영하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러 온 학생들이다. 거기서 방학 동안 일해서 학비 벌기 위해서 귀국한 것이다. 우리 나라 유학생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우리 나라는 멋진 대기업이 척척 성공하는 것을 보고 거기에 납품이라도 해서 한 번 떵떵거리면서 살아 보자고 기업들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똑똑하거나 잘 사는 사람은 안 했다. 가진 거라곤 몸뚱이밖에 없어서 더 이상 손해 볼 것이 없는 사람들이 중소기업을 했다.
우리 나라 중소기업한 사람들 붙잡고 물어 보라. 모두 대하 소설을 머리에 담고 있다. 온갖 천시와 멸시를 받아가면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공장에 간 사람도 마찬가지다. 못 먹고 못 배워 손가락이나 빨던 어린 딸들과 무능력한 남편 때문에 체면 차리다가는 새끼들 굶어 죽여야 할 처지의 아줌마나 중학도 못 간 어린 소녀들이 공장에 갔다.
우리 나라는 기술도 자본도 없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이들 악바리 여공들 때문에 자본을 축적했던 것이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농업 사회가 산업 사회로 바뀌면서 급격히 장돌뱅이와 공돌이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고향 가서 재는 것이 우리 나라의 최고 꿈인데, 아 땅 한 뙈기 없이 나간, 공부도 참 지지리도 못하던 상놈이 공장 사장이라고 쫙 빼 입고 운전 기사까지 대동하고 멋진 자가용을 타고 부릉부릉 마을 앞에 나타나는 걸 보니, 배도 아프고 부럽기도 하고 미치겠더란 말이다.
그렇게 꾀죄죄하던 놈이 인물은 어찌 저리 좋아졌나.
대구 자갈치 시장에서 리어카로 배추나 팔던 놈이 언제 시장에 점방까지 사서 돈을 긁는다고 하니, 내가 학교 다닐 때 공부 1등하고서도 부모님 모신다고 논 열 마지기 농사 지은 것이 다 헛 거여. 헛 거. 동네 어른들한테 세배하러 가서 저 놈들이 용돈하라고 돈 만 원을 척 내놓는 걸 보니, 인생 헛살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구만.
"그래도 공부 잘하는 우리 아들 고시 되거든 봐라. 이놈들아."
그런데 그 아들이 고시가 되어도 별 볼 일 없는 일이 곧 생겼다. 고시 되어도 도와줄 이 없으니까 10년이 되어 겨우 아파트 25평 짜리 샀는데, 아 저 빌어 먹을 놈을 자식의 아들은 종업원 1,000명을 거느린 사장이 되어서 부동산은 또 얼마나 사 놓았는지.
이젠 고시된 우리 아들도 만나기 힘들게 되었지 않아.
"세상 말세야, 말세."
우수한 두뇌들이 비로소 대기업으로 중소기업으로 가게 되었다. 그나마 명문대 출신이 중소기업으로 간 것은 90년대 들어와서다. 산업화를 시작한 지, 30년 곧 한 세대가 되어서 비로소 대기업에 취직이 안 되니까.
가슴에 한 자락 한을 품고 그 전날 술을 잔뜩 퍼마시고 양반이 동장군 지고 가는 기분으로 중소기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런 풍토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전식구와 더불어 아무 눈치도 안 보고 중소기업을 해? 어림도 없는 소리다.
우리 문화에 대해서 지극히 무지한 사람들이 외국 가서 독하게 공부하고 와서는 갖은 폼을 다 잡고
TV에 나와서 연기를 하고
신문에다가 소설을 쓰는 걸 보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실실 나온다. -저건 틀림없이 1등만 하고 100점만 맞고 A만 맞던 맹꽁이다. 베끼고 외는 데는 천재라니까.
기업가를 지나치게 옹호한다고 할지 모른다. 기업가 중에는 분명 더럽고 치사하고 못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지난 40년 동안 그들보다 큰 일을 한 사람이 없다고 본다. 특히 사농공상의 사(士)자 어른들, 곧 지식인들은 상공(商工)자를 쓰는 종놈들,
곧 기업가에게 우월감과 열등감이 뒤섞인 콤플렉스 때문에 기업인들의 비리를 침소봉대하여 입에 거품을 품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대기업은 악마와 동일시했다. 교수와 언론인들이 가장 선두에 서서 진심으로 사명감을 갖고 이들을 성토했다.
그나마 객관적 자료에 바탕을 두는 경우가 드물었고 억측과 과장으로 그들의 논리를 정당화했다. 아니면 상황이 전혀 다른 선진국과 일일이 비교해서 자기가 하는 말이 객관적이고 보편하고도 타당하다고 확신을 하면서
엄청난 권위를 갖고 학생들 머리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세계의 최신 이론을 가득 퍼 넣고는 잽싸게 단단히 꿰매고
무지몽매한 일반 국민은 어렵고 고상한 말로 우아하게 계몽했다.
-- 나, 똑똑하지?
지식인이 다 그런 건 아니었다. 법대에 가서 고시를 하지 않고 상대나 공대에 가서 상공업자의 밑으로 들어간 사람은 말없이 일을 했다.
이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정부를 상대로 한 손비빔이나 은행을 상대로 한 아양떨기는 사장한테 맡기거나 입사 동기로 법대나 인문대 나온 똑똑하고 직급이 높은 사람한테 맡기고, 밤낮없이 가족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
말을 잘 못하는 이들은 가끔 고개를 갸웃거렸다. 투박한 말로 한두 마디 똑똑한 사람들에게 반론을 제기하다가 무차별로 공격받았다.
대기업의 하수인이요, 무식한 장돌뱅이나 공돌이라는 것이었다.
외국 경험도 많고 현장 기술이 풍부하고 새로운 공정이나 제품 부품에 대해 특허권도 많이 가진 그들 눈에 똑똑해서 지당하신 말씀만 골라서 하는 사람들의 말에 차츰 회의가 생겼다.
법대나 인문대 나온 사람도 상공업자 밑으로 들어간 사람은 고시 출신 영감이나 박사 출신 교수와는 달랐다. 권력을 한 손에 쥔 정치인이나 민심을 좌지우지하는 언론인과도 달랐다.
손비빔과 아양떨기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탄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아니꼽고 치사해도 그들은 회사를 위해 악역(惡役)을 기꺼이 담당했다. 회사의 비리를 다 알면서도
정치인과 공무원과 금융인과 언론인과 법조인과 교수의 비리를 더 많이 알기에 그들은 자기야말로 애국자라고 믿었다.
"우리가 안 벌면 너그들 다 밥 굶어. 60년대에 교수라고 해 봐야 신문 기자라고 해 봐야 고위 공직자라고 해 봐야 판검사라고 해 봐야, 몇 푼 받았냐. 거둘 세금이 있어야 월급 올려 주지.
우리가 갖은 수모를 다 받으며 달러를 벌어 온 덕분에 세금이 늘어서 느그들 월급이 올라간 걸 알아야지."
"선진국이란 게 별 거냐. 기업하기 좋은 나라여. 기업가를 가장 높은 신분에 올려 주고 법을 기업하기 좋게 만들어 놓고 공무원이 간섭을 최소한으로 하고 기업이라면 외국 기업이라도 그 업무를 원 스톱으로 처리해 주는 나라가 선진국이라구, 이 양반들아. 양반들만이 잘 먹고 잘 살던 조선시대가 그리운 양반들아."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그들은 기업하기가 천국인 나라의 기업들과 이를 악물고 싸웠다.
"법과 제도만 기업하기 좋게 만들어지면 ...... 법과 제도만 기업하기 좋게 만들어지면.... 제발 저것들이 손 좀 안 벌렸으면 ..."
어느 날 보니, 대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지식이든 의식이든 매너든 가장 앞선 사람이 되었다. 우리 나라 식자층이오매불망 인용하는 선진국에서는 이들을 잘 알아 모신다. 그러나 국내만 들어오면 왜 그렇게 작아지는지.
1년 365일 백수건달인 국회의원의 전화 한 통화만 와도 사장이든 회장이든 꼼짝을 못한다.
이름 앞에 "실세"자가 붙은 사람들이 비서를 시켜서 전화 한 통화 넣으면 아무리 중요한 외국 기업과의 약속도 즉시 취소하고 찾아뵈어야 한다.
안 그러면 대한민국의 고유한 범죄인 괘씸 죄에 걸려 득달같이 세무 조사를 받고 신문과 방송에 크게 이름 날리고 하루 이틀만에 두툼한 한복을 입게 된다.
외국 어떤 경제학자와 토론을 해도 지지 않는 경제 이론도 대기업 연구소, 전경련 연구위원이라는 명패만 붙으면 언론인이나 경제 교수나 경제 장관한테 물매를 맞는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인 송병락님도, 유한수님도, 공병호님도 다 소용없다.
(IMF 체제에서 환율이 급등한 상황에서도 세계 13위 경제 강국인 한국의 경제에 대해 이들보다 잘 아는 경제학자가 전세계에서 몇 명이나 될까. 돈부시, 크루그만, 삭스, 오마에? 어림도 없다. "아시아의 다음 거인"을 쓴 앰스덴이 비견될 만할 뿐이다. 핫 머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자고 주장한 노벨 경제학 수상자 토빈이 가장 솔직했다. 그는 한국이 IMF 구제 금융을 요청한 원인에 대해서 묻자, 화를 내면서 말했다. "나는 한국 경제가 전공이 아닙니다." )
--대기업의 주구(走狗)라는 데야.
이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다. "갈릴레오가 말하길,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답니다."
의식주 해결이라는 생존이든 그 생존을 넘어 삶을 윤택하고 의미 있게 하는 문화든 경제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기아로 죽어 가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온통 먹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추위로 죽어 가는 사람에게는 36.5도의 체온을 유지할 옷과 집이 가장 그립다. 누더기 옷을 걸친 거지가 밤이 되면 가장 그리운 것은 짐승과 날씨로부터, 또는 강도와 도둑으로부터 보호받을 보금자리이다. 가난한 흥부의 아들딸이 이불 속에서 언제까지나 오글오글 헝겊쪼가리를 몸에 걸친 채 서로 끌어안고 체온을 유지할 수는 없다. 기지개를 켜고 밖에 나가서 놀아야 한다. 그러자면 공작새만큼 아름다운 옷은 아닐지라도 참새처럼 수수한 옷은 걸치고 나가야 애들 말로 쪽이 안 팔린다.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면 인간은 반드시 문화 쪽으로 관심을 기울인다. 인생을 논하고 자연과 대화하고 신을 찾고 윤리를 따지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고 축제를 준비하고 오락에 빠진다.
[전쟁이 약탈 경제행위라면 평화는 생산 경제행위]
인류는 의식주와 문화를 뒷받침하는 물적 기반인 경제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과 평화를 거듭했다. 전쟁은 약탈하는 경제 행위였고 평화는 생산하는 경제 행위였다. 처음에는 다른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다. 그 때는 죽음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먹이사슬에서 중상 정도에 머문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그 숫자가 급격히 늘어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특이하게 머리와 손이 발달했다.
[유목민의 약탈 경제와 농경민의 생산 경제]
대략 지금부터 만 년 전부터 인간은 머리와 손을 이용하여 자연의 먹이사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농업이 시작된 것이다. 농업은 두 방향으로 발달했다. 하나는 이전의 수렵채취 시대와 비슷했다. 그 이유는 물의 부족이었다. 광대한 초지를 이동하면서 짐승을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물이 풍부한 곳에서는 땅을 갈아서 식물과 동물을 길렀다. 거기서 열매와 뿌리와 잎을 거둬들이고 고기를 얻었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서 자연재해로 부족해진 식량을 다른 자로부터 빼앗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오로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뻔뻔하게 나무막대기와 돌을 들고 이웃 마을에 쳐들어갔다.
[유목민의 약탈 경제]
생존을 위해서 전쟁을 일으켜 약탈 경제 행위를 한 무리는 대체로 유목민이었다. 아무래도 거기는 땅은 광활했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늘 힘겨웠다. 자연환경이 인간의 숫자가 늘어나는 걸 지탱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들끼리도 치열하게 싸웠다. 일정 숫자 이상으로 늘어나면 안 되었던 것이다. 호랑이나 사자가 암놈을 새로 차지하면 자기와 유전자가 다른 새끼들을 다 죽여서 일정한 숫자를 유지하여 자연에 순응하듯이, 자연에 보다 가까웠던 이들 유목민은 전쟁에서 이기면 상대방을 몰살시키곤 했다. 유목민이 서로 죽고 죽이지 않는 방법은 농경민을 약탈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이것이 연례 행사처럼 되었다. 우리가 유목민을 호전적인 족속으로 보는 이유는 바로 이런 사정에 연유하는 바가 크다.
[약탈 경제와 공정한 분배--공산주의의 원형]
유목민의 장점도 많다. 그 중의 대표적인 것이 공평한 분배였다. 이들은 공동 생산, 또는 공동 약탈, 공동 분배가 원칙이었다. 이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재산을 축적해 둘 필요가 없었다. 검소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랫동안 약탈경제를 계속한 족속이 자연환경이 제일 열악한 바이킹족인데, 이들의 후손인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분배가 잘 이루어지는 사회보장제도를 갖춘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것이 그들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사실 마르크스 이론이란 것도 알고 보면 이 유목민의 약탈 경제에 바탕을 둔 공평한 분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단지 그 약탈이 다른 종족이나 국가가 아니라 제 나라의 가진 자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고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투쟁의 대상을 같은 종족으로 정하는 측면에서 공산주의는 정말 악질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옛 유목민보다 훨씬 비도덕적이다.
[농경민의 생산 경제와 부의 편중]
농경민이라고 착하기만 한 게 절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이들이 더욱 잔인했다. 가뭄이나 홍수, 지진, 해일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이웃나라와 전쟁을 한 경우도 있지만, 생산이 산만큼 높아지면 탐욕은 하늘만큼 높아졌다. 어느 순간부터 끝없는 전쟁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강력한 집단이 나타나 평정을 하고 비슷한 국가가 대립하여 평화가 유지되면, 자비로운 군주가 나와서 법과 윤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어 일반 서민들도 배를 두드리며 살 수 있게 했던 것이다. 봉건 시대라고 하여 꼭 사는 게 짐승같이 살았다고 생각하면 그건 전혀 역사를 공부하지 않았거나 공부하고도 자기 패거리를 자화자찬하려고 남을 무조건 욕하는 못된 심사 탓이다. 마르크스는 인격적으로 참으로 문제가 많은 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다가 다시 탐욕이 넘친 자들이 슬슬 나타나고. 권력을 남용하는 군주나 관료, 또는 봉건 영주들이 나오고.
조선은 중기 이후 생산이 날로 줄어들고 왕과 관료, 양반의 약탈이 심해졌다. 이를 착취라고 할 수도 있다. 일제 시대는 그 도가 더 심했다. 생산을 하는 척하고 약탈해서 섬으로 실어 나르고 노골적으로 착취해서 반도 안에서 호의호식했다.
[북한의 약탈 경제는 부의 축소와 부의 편중을 가져오다]
북한은 처음에는 생산이 좀 있었지만, 곧 약탈과 착취 체제로 변했다. 어느 사회든 생산이 줄어들면 분배에 더욱 매달리게 되고 그 분배는 갈수록 왜곡되게 되어 있다. 북한은 70년대 중반부터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어 버렸다. 국토 면적에 대한 인구비율이나 과학기술 발달 수준이나 기후로 보나 근면한 국민성으로 보나 북한이 굶주릴 이유는 전혀 없다. 그것은 오로지 약탈 경제, 착취 경제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그러하다. 동족을 침략하여 대대적으로 약탈할 기회를 상실한 이래로 또다시 오로지 전쟁에만 대비하다가 전인민이 곯게 되었다. 옛날의 유목민은 전쟁 준비를 하면 반드시 이웃 종족이나 나라에 쳐들어가서 지든 이기든 끝장을 보았다. 그러나 겁 많은 북한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옛날 식으로 말하면 만주로 쳐들어가서 약탈하면 그게 제일 좋은데, 그런 건 꿈도 못 꾼다.
개혁개방이란 게 결국 생산 경제체제를 구축한다는 말인데, 북한은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 약탈 경제체제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극소수만 호의호식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생산 경제는 부의 확대와 부의 공정한 분배를 촉진하다]
한국은 1961년까지만 해도 국가 예산의 약 반 이상을 미국 원조에 의지한 정말 한심한 나라였다. 생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대대적으로 생산 경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선 전기(서기 1500년 무렵) 이래 무려 460년만의 대전환이었다. 다행히 세계 시장이 열려 있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수출과 수입을 해서 나라 전체의 부가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늘어났다. 불과 18년만에 세계 72위에서 세계 17위로 껑충 뛰어올랐던 것이다. 분배의 왜곡을 많이 언급하는데, 그것은 숲 대신 나무를 보는 것도 아니고 겨우 썩은 나뭇잎이나 보는 수준이다.
임금 수준을 비교해 보면, 노조가 처음으로 합법화되던 1987년 기준으로 해도 1인당 GDP 대비 1.49로 이것은 한국 노동자들이 1인당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임금을 받던 일본의 1.30보다 앞선 임금 수준이었다. 1999년 기준으로는 한국이 1.72, 일본이 1.22, 대만이 1.07, 싱가포르가 0.84, 미국이 0.90이다.
쉽게 말해서 외국은 맞벌이 않고는 도저히 먹고살지 못하지만, 한국은 한 사람이 벌어도 가족을 그럭저럭 부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지로 한국은 경제개발 이후 여자는 가정 살림, 남자는 직장 생활이 원칙이었다. 남편은 생산과장, 아내는 소비사장이었다. IMF 이후 살림이 빡빡해지면서 여자들이 취업하려고 비로소 팔을 걷어붙이는 상황이다. 그만큼 그 동안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말이다.
[민주화 이후 생산 경제에서 약탈 경제로 관심이 이동]
안타까운 일은 이른바 민주화 쟁취 이후 생산 경제에서 약탈 경제 내지 착취 경제 쪽으로 좋게 말해서 분배 내지 복지 경제 쪽으로 지나치게 신경을 많이 쓴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생산이 거의 늘지 않고 있다. 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 10년은 그런 대로 버텼는데, 이제 거의 한계에 이른 듯하다. 생산을 양적 성장 위주에서 질적 성장도 함께 중시하는 체제로 바꾸고, 분배도 생산성을 높인 만큼 가져가야 하는데, 오히려 생산성보다 분배율이 갈수록 더 높아진다. 아직은 그런 대로 견딜 만하지만, 이대로 10년만 지나면 나라 전체가 아수라장이 될 공산이 크다. 먹을 게 없으면 싸움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조선 중기 이후와 북한을 보라. 말 한 마디로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살벌한 사회다.
이대로 가면, 우리 후손까지 갈 것 없이 우리 당대에 그런 살벌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제로 섬"의 저자로 유명한 레스터 써로는 미국 경제를 소비자 경제, 일본 경제를 생산자 경제라고 했다. 굳이 분류하자면 한국은 일본형에 가깝다고 송병락 교수는 말한다.
"생산 경제와 약탈 경제"란 글에서 나는 생산 경제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면 생산 경제 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경제가 90년대에 장기 침체가 빠져서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현상을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이 글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경제란 무엇인가]
경제학에 대한 정의는 무수히 많지만, 폴 사무엘슨의 경제원론에 나오는 말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나 한다. 좀 복잡하지만, 이를 간추려 표현하면, "제한된 자원을 활용하여 더 나은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만드는 생산과 그 생산품의 분배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Economics is the study of how people and society end up choosing, with or without the use of money, to employ scarce productive resources that could have alternative uses-to produce various commodities and distribute them for consumption, now or in the future, among various persons and groups in society.
이렇게 하면 경제행위에서 빠지는 것이 너무 많다. 자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수많은 서비스 산업이나 기술 개발, 인터넷 경제 행위도 애매하다. 새로운 자원을 만들어 내거나 무한한 태양열을 사용하는 것도 이에 맞지 않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강도나 도둑의 활동도 경제행위라고 할 수 있다. 노조가 조직의 힘으로 협박하여 일한 것 이상으로 가져가는 것도 경제행위이다. 뇌물을 받는 것도 경제행위이다. 나는 이를 모두 약탈 경제라고 본다.
[부가가치 늘리거나 빼앗기, 쓰거나 모으기]
나는 좀 간단하면서도 포괄적인 정의를 내려보았다. "경제학은 경제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경제행위란 부가가치를 만들거나 빼앗는 행위와 부가가치를 쓰거나 모으는 일체의 행위를 일컫는다." 부가가치를 만드는 행위가 생산 경제, 빼앗는 행위가 약탈 경제, 부가가치를 쓰는 행위가 소비 경제, 모으는 행위가 저축 경제이다. 유통을 비롯한 서비스업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행위니까 역시 생산경제에 들어간다.
본격적인 경제행위는 농업의 시작과 더불어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은 짐승을 몰고 다니며 유목생활을 하거나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가축을 길렀다. 유목민은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저장할 것이 거의 없었다. 살아있는 가축이 저장된 식량과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 때 그 때 필요한 만큼 소비했다. 그들은 농경민이 식량을 저장하는 것을 알고 신나게 약탈했지만, 농경민을 아주 미련스럽게 보았을지도 모른다.
[유목민은 소비 경제, 농경민은 저축 경제]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매일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 주는데, 믿음이 약한 인간들이 다음 날을 위하여 이를 숨겨 두면, 하나님이 몹시 화를 내면서 이를 다 썩혀 버린다. 여기서 우리는 유목민의 지혜와 농경민의 지혜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족속은 이집트에 정착해서 오랫동안 노예 생활을 했다. 그들은 먹을 것을 저장해 두지 않으면 머잖아 굶주린다는 것을 잘 알았다. 또한 노예들은 먹을 게 늘 부족했다. 따라서 먹을 게 생겼을 때 그 자리서 실컷 먹고 어떻게든 일부를 몰래 숨겨서 자식에게 갖다 주거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춰 두는 것이 굶지 않고 생존하는 최고의 지혜임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이 수백 년에 걸쳐서 깨달은 이 지혜를 어리석다고, 믿음이 약하다고 꾸짖는다. 붙박이 삶의 지혜는 미래에 대한 저축이요, 떠돌이 삶의 지혜는 현재를 위한 소비임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이제 노예가 아니라 주인임을 몰랐다. 노예는 내 것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몰래 감추어야 하지만, 주인은 모든 게 내 것이니까 감출 필요가 없었다.
[삶이냐 소유냐]
또한 미래가 불안해서 저축에 온갖 신경을 다 쓰다 보면, 삶(to live/ to be)이 소유(to have)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소유가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깨우치기가 무척 힘들었다. 후에 가나안에 도착한 후, 수천 년이 지나도 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자, 예수님은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이렇게 아름다운 말로 깨우쳐 준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아도, 하나님께서 기르시지 않는가. 너희가 이들보다 귀하지 아니한가?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길쌈하지 않아도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아름다운 옷으로 입히시느니라.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며 이렇게 일러 주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한 달, 한 해, 열 해 먹을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단 하루 먹을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한 것이다.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게 새로운 경제 행위]
농경민은 저장술을 나날이 발전시켰다. 힘센 자는 약탈자의 입장에 서서 일은 않고 약한 자들이 생산해 놓은 것을 거의 독차지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 생산품을 쌓아 두었다가 썩혀 버리는 수가 많았다. 부정부패가 심할수록 이런 일이 그만큼 많아졌다. 약한 자가 굶어 죽어도 아랑곳하지 않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생존과 직접 관계없는 것도 모았다. 보석이라고 하여 이것을 더 귀하게 여겼다. 옷과 집도 생존과 관계없이 갈수록 화려해졌다.
[징기스칸은 왕궁보다 천막을 사랑하다]
징기스칸이 중원의 금 나라를 멸망시키자마자 화려한 왕궁을 불태우려고 했다. 좀스러워 보였던 것이다. 답답해 보였던 것이다. 온갖 사치를 다 부린 궁궐이 그에게는 미친 자의 감옥으로밖에 안 보였던 것이다. 주위의 만류로 불태우지는 않았지만, 그는 끝내 왕궁에서 자지 않았다. 하늘의 별이 보이는 곳에, 풀벌레 소리 들리는 곳에, 사랑하는 말이 숨쉬는 소리가 느껴지는 곳에 큰 천막을 치고 거기서 코를 드르릉 드르릉 골면서 편안하게 잤던 것이다. 자연 속에 묻혀 지내는 삶이야말로 참 삶임을 그는 잘 알았던 것이다. 오늘날 여름이면 사람들이 그 좋은 집을 버리고 산으로 바다로 도망가서 보잘것없는 텐트를 치고 마냥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징기스칸이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농경민의 인구압]
인간은 자연 속에서 적당히 다른 동물처럼 죽어야 하는데,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특히 저장술이 발달하고 의학까지 발달하여 갈수록 생존율이 높아지자 인구압이 계속 생기게 되었다. 유목민들은 수천 년이 지나도록 거의 늘지 않았으나, 농경민은 날이 갈수록 그 숫자가 늘어나기만 했던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만큼 착취도 전쟁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잔인해졌다. 저장술도 갈수록 발달했다. 이어 먹고사는 것과 별 관계없는 것 중에서 희귀한 것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것은 썩지 않아서 수백 년을 갈 수 있는 게 많았다. 인간이 경제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는 그냥 무심히 보아 오던 것도 어떤 자가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다른 사람이 인정하면 그것은 부가가치가 생겼다.
[날로 늘어나는 경제 행위]
인류역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고 이것은 그 때마다 새로운 경제행위가 되었다. 원시인들이 그림을 그릴 때 그것은 종교 행위였고 예술 행위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그림을 발견하면, 그것은 경제행위가 된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 예술가들은 단지 예술을 하였을 뿐이지만, 후에 이를 알아본 비평가가 나오고 이를 돈 많은 보통 사람들이 인정하면, 그가 남긴 예술품은 엄청난 값어치를 지닌 재화가 된다.
[지적 소유권에 가치를 제일 먼저 부여한 미국]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지적소유권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이런 것이 경제와는 무관했다. 그저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정도에 불과했던 게 많았다. 빌 게이츠가 고향 시애틀 사람이 만든 DOS를 한 눈에 그 가치를 알아보고 단돈 50달러에 통째로 산 것이 좋은 예이다. 이전의 기준으로 보면 그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저 그것을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알았고 그것을 만든 사람도 그것의 가치를 거의 몰랐다. 이것을 알아본 안목, 그것이 바로 경제행위이다. 수백억 달러의 부가가치를 그가 단숨에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금방 세계 최고의 경영자이자 세계 최고 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서비스 업종은 대체로 이렇게 가치가 새로 부여된 것이다. 따라서 경제 발전 정도가 더딘 나라에서는 그 가치를 알아보지도 못하거니와 이를 미리 안 사람이 있다고 해도 시장에서 값을 쳐주지 않는다.
[한국 제조업의 생산성은 세계적인 수준]
한국의 제조업 생산성을 100으로 할 때, 일본은 103.5, 영국은 104.6, 독일은 101.4이다. 거의 비슷하다. 미국만이 143.8로 홀로 높다. 그 이유는 90년대의 정보기술(IT) 때문이다. 다른 나라는 이 신기술을 대단찮게 보았던 것이다. 결정적인 차이는 서비스업종에서 난다. 한국의 서비스 생산성을 100으로 할 때, 미국은 무려 232.3, 벨기에 223.5, 독일 186.4, 일본 163.7이다.
[서비스의 가치를 모르는 한국]
한국 경제가 생산자 경제라고 하더라도 아직 그 생산이란 것을 제조업과 거의 동일시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지적소유권을 제대로 인정할 리 없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마구 베껴 먹는 게 당연하다. 대학생이 책 사기 아까워 마구잡이로 복사하면서도 조금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 소프트웨어와 책은 생산이 아니라고 보거나 보더라도 대단찮은 생산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2500원 짜리 짜장면 하나 달랑 시키고도 배달료를 100원도 안 쳐주는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비스는 공짜로 보기 때문이다. 서비스업종의 생산성이 늘어날 리가 없다.
어리석기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에 비해 엄청나게 뒤떨어지고 있다. 제조업을 중시하는 독일도 일본보다는 낫지만 다른 선진국에 대해 많이 뒤떨어진다. 미국은 경제 발전 단계가 제일 앞서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알아내는 데 단연 세계 최선두에 서 있다. 이것이 이른바 신경제의 정체이다.
[금융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한국과 일본이 제일 낙후된 영역은 금융업이다. 그 가치를 인정할 줄 모른다. 제조업의 시녀로만 본다. 제조업으로 무역흑자 만들어 봤자 아무 소용없다. 금융도 똑같은, 아니 더 높은 부가가치 창출 산업임을 국민들이, 무엇보다 먼저 위정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한, 한국과 일본은 계속 고전하게 되어 있다. 외환위기를 맞이하여 그나마 국제경쟁력이 있는 대기업을 오로지 미국의 잣대에 맞추어 혼내기 위해 정부가 시중은행을 70%나 사실상 국유화한 것은 나라 말아 먹으려고 작정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리석은 아마추어의 애국심이 나라를 결단내는 일이다.
[공자와 맹자도 공업과 상업을 천시]
옛날 농업 시대에는 공업과 상업을 천시했다. 공자와 맹자가 바로 그러했다. 그 값어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공업은 사치를 조장하고 상업은 불로소득을 차지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가 계속 늘어나면서 이 두 영역은 발달할 수밖에 없었는데, 동양의 위정자들은 이를 끝까지 인정할 수 없었다. 도덕적인 관점에서 사악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경제 문제를 윤리 문제로 접근한 것이다. 이 사고방식 때문에 1750년대 이래로 동양이 서양에 역전 당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와 수모를 당하게 된다. 일본만이 재빨리 그 값어치를 깨닫고 바로 산업화에 들어가 상공업을 함께 진행시킨 결과 동양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이 되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졸작 "한중일--달라도 너무 다른"에서 자세히 밝힌 적이 있다.
[마르크스는 상업에 무지]
마르크스는 영향력 면에서 단연 20세기 최고의 인물인데,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월등하다는 점에서 인류의 악몽이다. 그는 농업에 이은 공업의 가치는 알았지만, 상업을 몰랐다. 거의 바보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의 이론에 탄복한 공산주의자들은 나라를 건설하면서 교주의 말씀에 따라 이 상업을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 아니라 불로소득을 갈취하는 사악한 인간 행위로 보아, 원천적으로 철두철미하게 봉쇄했다. 오로지 국가 권력에 의한 분배만이 있을 뿐이었다. 결과는 전인민의 거지화, 전공산당원의 날강도화, 전국가의 지옥화.
[일본의 저축 경제]
일본은 농업 시대의 지혜인 검소한 소비, 알뜰한 저축이 생활화된 나라이다. 저축 경제가 고도로 발달했다. 은행 이자가 1%가 안 되어도 저축을 한다. 은행에 무려 1200조엔이 묶여 있다. 그런데 이것이 생산에 재투자되어 양과 질 양쪽에서 뛰어난 생산을 가져오고, 국내에서는 부동산과 주식이 올라서 부가가치가 계속 더해지고, 상품이 여전히 외국에서 잘 팔릴 때(소비되어 줄 때)는 괜찮았다. 그러나 외국 것은 사 주지 않고 자기 것을 팔기만 하는 일본이 얄미워서 환율 정책으로 서구 선진국들이 일본의 목을 조이기 시작하면서, 일본은 사경을 헤매기 시작한다.
그런 상황에서 허리띠를 더욱더 졸라매면서 부동산과 주식의 거품이 꺼지고, 여전히 무역흑자는 신기록을 경신한다. 부동산과 주식이 곤두박질쳐서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없어지자, 더욱더 허리띠를 졸라맨다. 허리띠를 풀어서 밥을 먹고 반찬을 먹고 과일을 먹어야 하는데, 밥도 줄이고 반찬가짓수도 줄이고 과일은 아예 구경만 하니, 쌓아놓은 식량이 다 썩어 버리거나 엉뚱한 놈이 다 먹어 버린 것이다.
[국민성은 바꾸기 힘들다]
그 옛날에 한국과 중국이 산업화의 의미를 모르고 말세 타령이나 하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1990년대에 일본에서 벌어진 것이다. 유목민처럼 호쾌하게 먹고 마실 줄을 알아야 하는데, 적당히 소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삶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걸 그만 잊어버린 것이다. 생산은 좋은 것, 저축도 좋은 것, 소비는 나쁜 것, 무역 흑자는 좋은 것, 무역 적자는 나쁜 것--이 사고방식을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건 국민성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 더 갈지도 모른다. 미국이 청교도 정신으로 저축과 생산을 선하게 소비와 사치를 악하게 보았다가, 소비와 적당한 사치가 나쁜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는 데에 약 200년이 걸렸으니까.
또한 일본은 곧 죽어도 무역흑자를 고수하는 면에서는 변형된 약탈 경제를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절대주의 국가 시절에 중상주의로 나타난 것인데, 함께 살려는 것이 아니라 "너는 죽고 나만 살자"는 전형적인 유목민의 약탈 경제이다. 그러니까 일본은 두 가지가 기형적으로 합쳐진 나라이다. 농경민의 저축 경제에다 유목민의 약탈 경제가 결합된 나라이다. 약탈 경제가 살려면 빼앗은 것은 호쾌하게 똑같이 갈라서 내일은 내일 생각하고 실컷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무역흑자란 형태로 빼앗아서 그걸 아까워서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썩혀 버리거나 빚 얻어서 먹고 마시는 미국이란 건달한테 갖다 바친 것이다.
[미국의 소비 경제]
일본이 과저축이 문제라면 미국은 과소비가 문제다.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대가로 전세계에 달러를 퍼 준다. 그리고는 나중에 달러이자 쳐서 갚아 준다면서 그 돈을 다시 빌려 간다. 마침내 저축이 마이너스가 되게 되었다. 흥청망청 먹고도 모자라서 빚을 얻어 또 먹고 마시는 것이다. 이것이 전부 GDP 상승에 일등 공신이 된다. 소비가 GDP에 기여하는 몫이 60%가 훨씬 넘어 70%에 근접한다. 3분의 2 수준이다. 60%인 일본보다 약 10% 높다. 한국은 56%.
미국은 유목 국가가 아니다. 떠돌이들이 많지만, 정착 생활자가 월등히 많다. 따라서 일정한 저축이 꼭 필요하다. IT 산업이다, BT 산업이다, 자랑스럽게 떠벌리지만, 다른 나라들이 바짝 따라왔다. 계속 잘 팔릴 리가 없다. 수익이 떨어진다. 주가가 떨어진다. 주식이 저축인데, 그게 떨어지니, 마이너스 부의 효과가 와서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과소비에 의존하던 수출 중심의 아시아 전체가 휘청한다.
[한국이 나아갈 길]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생산을 더 늘려야 한다. 한국은 인구압이 높아서 생산을 줄일 수가 없다. 품질 좋고 디자인 좋은 생산품을 잔뜩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아서 필요한 양식을 사와야 한다. 그래야 다같이 먹고 살 수 있다.
소비할 여력이 넉넉한 사람은 소비를 해야 한다. 이들은 가능하면 많이 써야 한다. 사치해야 한다. 그래야 가난한 사람이 그들에게 비싸게 팔아서 자식들 먹이고 공부시킬 수 있다. 배 아파하면 안 된다. 고픈 배를 부르게 해주는 은인으로 생각해야 한다. 부자들이 외국 상품을 수입도 해 주어 무역흑자가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남들이 우리 걸 계속 사 준다.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짜장면 배달시키면 단돈 100원이라도 줘야 한다. 노랑머리에 오토바이 탄 젊은이가 서비스를 잘한 만큼 당당히 부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생은 책을 사야 한다. 술값을 아까워하고 책값을 송구스러워해야 한다. 지적재산권이 제대로 보호받아야만 고학력자들이 잘 살 수 있다.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이들이 머리에 물들일 시간이 없이 온갖 아이디어를 다 짜내어 머리가 저절로 하얗게 되면, 한국의 빌 게이츠, 한국의 스티브 케이스가 될 수 있다. 이찬진이 미국에 태어났더라면 세계적인 부호가 되었을 것이다.
금융업을 정부의 손아귀에서 떼어놓아야 한다. 대기업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동통신보다 더 중요한 산업임을 알아야 한다. 이동통신에는 대기업을 참여시킬 줄 알면서 왜 그보다 중요한 금융업에는 동네 새마을 금고 하나 경영할 능력도 없는 정부가 다 장악하고 있는가. 아니면 외국에게 팔아 넘기려고 늙은 기생 같은 눈웃음을 치는가. 스위스는 경기도 만한 땅인데도 은행이 600개나 된다. 하나같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었다.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 우린 그만한 것을 1,000개도 만들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놀아야 한다. 문화를 즐겨야 한다. 삶을 즐겨야 한다. 호쾌한 동이족의 얼을 오늘에 되살려 놀 줄도 알아야 한다. 이제 문화가 제일 큰 경제가 된다. 한국의 시대가 나무에 가득 노란 손수건을 달고서 반갑게 손짓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 특히 대기업에서 최근에 신입사원에게 꼭 물어 보는 게 있다고 한다. 그것은 전공에 관계없이 경영학 강의를 한 학기라도 들은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명문대, 비명문대, 수도권대, 지방대 할 것 없이 경영학 개론이라도 수강한 적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사고방식이 판이하다고 한다. (서울대 조동성 교수)
한국인들의 기업에 대한 관념이 너무도 피상적인 경우가 많다. 기업을 곧잘 사회사업과 혼동하곤 한다. 기업주가 도덕 군자가 되길 바란다. 번 것은 한 푼 남김없이 사회에 모조리 환원하고 기업주 본인은 13평 아파트에서 사글세로 살다가 가족은 알거지로 만든 다음, 죽어 한 줌의 재로 변하길 바란다. 돈을 벌게 된 것은 오로지 땀 흘린 노동자와 피 같은 돈을 공급한 은행과 은근한 때로는 노골적인 압력을 가한 정치인과 정부 관료 덕분일 뿐, 기업주는 한낱 허수아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주는 칼 안 찬 깡패요, 복면 안 쓴 도둑으로 본다.
블레어 수상이 영국인의 뿌리깊은 기업인에 대한 불신과 업신여김이 영국 발전의 최대 걸림돌이란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영국의 두 명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학생에게 최대의 욕은 "졸업해서 회사에 취직이나 할 작자"라고 한다. 그들은 대체로 아주 부유해서 취직할 필요가 없다. 평생을 학문만 하거나 정계에 진출하거나 금융계에 몸담으면 된다. 원래 사회의 최상층은 예나 지금이나 생업에 매달리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맹아인 영국에서도 아직 기업가는 신분이 낮은 계층이다.
기업가에 대한 이미지가 가장 좋은 곳은 미국이다. 거기는 깨끗하니까, 사회에 환원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등으로 즉시 정답을 내놓는 경우를 흔히 본다. 영국의 기업가는 그러면 미국보다 덜 도덕적인가. 미국의 기업가가 언제부터 그렇게 깨끗했는가. 지금도 그렇게 깨끗한가. 국내에서처럼 외국에서도 그렇게 신사적인가. 그들이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와 공정한 경쟁을 하는가.
천만에! 그들의 자본 축적 과정을 보면 치가 떨리는 경우가 숱하다. 엄청난 숫자의 흑인을 노예로 부린 것, 값싼 노동력과 넓은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같은 나라끼리 전쟁(남북전쟁)을 벌인 것, 해외에 식민지를 경영한 것, 국내서 재벌이 독점을 일삼은 것, 끝없이 문어발 확장을 한 것, 환경 오염 공장들을 후진국에 마구 이전한 것(인도의 보팔 사건을 생각해 보자), 등등 그들 기업가가 한국 기업가보다 훌륭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다만 자본 축적 기간이 길어지면서, 부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기업가에 대한 편견이 바뀌고, 제도가 바뀌고 법이 정비되면서, 서서히 기업가야말로 최고의 영웅이요, 애국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뿐이다. 사회에 환원한 것도 그렇다. 소유주들이 뒤로 물러났을 뿐, 전재산에서 극히 일부를 기부하고 사실은 부동산과 주식은 거의 그대로 갖고 있다. 단지 경영을 안 할 따름이다. 아니 못할 따름이다. 그러다가 있는 재산 까먹기 십상이니까. 그러나 포드의 경우에서 보듯이 후손 중에 똑똑한 사람이 나오면 즉시 전면에 나서기도 한다. 스타인 최고경영자(CEO)는 단지 일꾼일 뿐이다. 청지기일 뿐이다. 진짜 부자는 따로 있다.
미국이 안 것은 바로 이것이다. --기업을 잘 키우면 이득을 보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 첫째, 고용을 창출한다. 서민으로서 실업보다 무서운 일은 없다. 사회보장제도라는 것은 임시방편일 따름이다. 나라의 재정이 튼실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그것은 넝마조각이 된다. 기업이 발달하면, 둘째 세금을 많이 낸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덕분에 취직하게 되고 일을 못한 사람은 기업에서 내는 세금으로 일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 취직한 사람은 또 그들대로 세금을 낸다. 그 물건을 팔아서 이문을 남긴 사람도 세금을 낸다.
문제는 부실 기업이다. 이건 내버려두면 사회에서 암적 존재가 된다. 아무리 덩치가 커도 가차없이 망하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러면 간혹 이를 악물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오히려 크게 잘 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사라져서 더 이상 사회와 국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된다. 그게 망하면 더 잘하는 기업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러면 실업자는 그 쪽으로 다시 취직하게 된다. 능력이 부족한 실직자는 사회보장을 받으면서 다시 능력을 개발하면, 더 나은 직장을 구할 수 있다.
크든 작든 기업이 나라의 활력소이다. 엔진이다. 중심이다. 어떻게 하면 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 정치인이나 관료나 학자나 여기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들에게 끝없이 성현군자도 지키기 힘든 도덕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국내외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법을 잘 만들어 이를 지키게 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법으로 말해야지 도덕으로 말하면 안 된다. 그들은 배우는 학생이 아니라 일하는 성인이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자기는 전혀 지키지 않는 도덕의 잣대를 아랫것들에게 수시로 들이미는 것만큼 속보이는 짓은 없는 법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돈 번 것이 무슨 죄가 된다고 동네 구멍가게만 운영해도 별의별 사람이 다 뜯어가려고 기웃거리는가. 한국에서 기업은 완전히 봉이다. 아직도 사농공상의 뿌리깊은 사상이 의식의 세계에 양반처럼 앉아 버티고 있고 무의식 세계에 뱀처럼 도사리고 있다.
기업에 대한 잣대는 세 개면 족하다. -- 고용, 이익, 세금.
고용 많이 한 기업보다 훌륭한 기업은 없다. 영화 한 편으로 순익을 엄청나게 냈더라도 고용한 사람이 겨우 100명도 안 된다면, 순익은 보잘것없더라도 100,000명을 고용한 자동차 회사에는 상대가 안 된다. 그건 불과 몇 명만 배부를 따름이니까. 10만 명에게 준 임금이야말로 그 회사가 사회에 기여한 가장 큰 몫이다. 이걸 사회보장제도로 흡수하려고 해 보라.
아무리 고용을 많이 했더라도 순익이 없다면, 적자가 천문학적으로 쌓인다면, 그런 회사는 망하거나 팔거나 쪼개야 한다. 그건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사회와 국가의 자본을 까먹고 있다는 것이니까, 그런 회사는 존재가치가 없다. 우선 기업부터 살아야 한다. 도산이 불 보듯 뻔한 회사에서는 미리미리 사정없이 노동자도 잘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을 정부와 국회가 도와 주어야 한다. 국민이 도와 주어야 한다. 적자 기업에서 노동자를 못 내보내게 하거나 임금을 올려 달라고 하면, 일제히 손가락질을 해야 한다.
공산국가는 기업 도산이 없었다. 노동자를 살린다면서 생산성과는 무관하게 무조건 취직시켜 주었다. 한 사람이 할 일을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 열 사람이 했다. 그러다가 모두가 쪽박을 찼다. 조금이라도 파이가 계속 커져야 하지 줄어들기 시작하면 그건 적신호가 온 것이다. 이걸 빨리 기업가나 경영자는 알아내어 미리미리 고쳐야 한다. 정 가망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한다. 그리고는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한다.
기업은 세금으로 말해야 한다. 수재의연금과 방위성금으로 말하면 안 된다. 순익을 많이 내어 세금 많이 내는 기업, 그것만큼 사회에 많이 환원한 회사가 없다. 적자 보는 주제에 정치자금, 성금, 장학금, 후원금을 잔뜩 내고 거들먹거리는 것만큼 사회에 적게 환원하는 회사가 없다. 머잖아 수억 낸 돈의 수십 배, 수백 배되는 공적자금을 받아갈 테니까. 세금 못 내는 기업은 기업이 아니다. 창업 초기 단계를 벗어나는 순간, 기업은 이익을 남겨 세금을 내야 한다. 국가는 그 세금으로 나라 살림을 꾸린다. 사회보장은 국가가 그 돈으로 대신해 준다. 국가가 돈 벌어서 하는 일이 아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세금 많이 내는 사람은 애국자다. 진정한 사회사업가다. 세금 내는 사람 없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사회보장법도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과 궤짝이다. 풋 사과하나 없는 사과 궤짝이다.
80년대 초에 산업합리화 조치한다며 신군부가 애국심이 철철 넘쳤을 때가 있다. 이 때 현대 자동차는 포니2로 5대양 6대주에서 한국의 위상을 한껏 올려 주었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세계 16번째, 고유모델의 자동차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 신군부와 그 경제관료들은 국내 자동차의 영역을 이것저것 자의적으로 정해서 "합리화"시켰다. 그러면서 경제의 수장인 경제기획원 장관이 한 말이 시중에서 널리 퍼져 있던 "진리"였다. "국내서 비싸게 팔고 외국에서 싸게 팔아 돈 벌었으니, 이제 무슨 무슨 공장은 문 닫으라."고.
이 때 정세영 사장은 정중하게 항의했다.
"국내에서 차가 비싼 것은 자동차를 사치품으로 여겨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잔뜩 매겨서 그렇습니다. 차 값의 40%가 세금입니다. 나라는 그 돈으로 살림을 꾸렸습니다."
"그래요? 아, 죄송합니다. 그러나 몇몇 공장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2001.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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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한국이 망해도 세계는 놀라지 않는다.
[한국이 망해도 세계는 놀라지 않는다. ]
한국이 망하면 세계경제 호황-한국 국민의 선택만 남았다.
[소련군과 미군의 철수]
안보상 한국에 미국의 사활적인 이해 관계가 달려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미·소의 대결이 격화되어 언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지 모를 급박한 상황이었다. 미국이 그걸 착각한 적이 있었다. 1948년 12월 24일 북한에서 소련군이 완전 철수하는 것을 보고 남북 양국에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는 데 일조한다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으로, 일본열도를 미국의 최후방어선으로 설정하고 힘차게 애치슨라인을 그은 후에 1949년 6월 29일 한국에서 미군을 완전 철수시킨 지 불과 1년만에 소련의 무기로 중무장한 북한은 무인지경인 양 밀고 내려왔다. 미국은 경악했다. 아니! 저럴 수가!
[무비필환(無備必患)]
한국은 인구가 북한의 두 배나 되었음에도 국군은 10만5천으로 인민군 20만3천의 반밖에 되지 않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탱크를 비롯하여 인민군의 무기가 국군을 압도하고, 배가 곯아 떼거지 같은 국군에 비해 그런 대로 허기는 면한 데다 혹독한 훈련과 민족 해방이라는 사명감으로 사기가 충천한 인민군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인도적 차원에서 민주적 차원에서 세계 평화적 차원에서 캄캄한 정보에 찬란한 희망을 품고 명분에 떠밀려서, 가난하고 못 배우고 빽 없는 자들만 강제로 끌려가서 불만에 가득 찬 오합지졸에게 어수선한 나라를 맡기고 "거대한 평화의 바다"를 건너갔다가 곧바로 허가 찔려 "깊이를 알 수 없는 전쟁의 수렁"에 빠진 것이다. 감쪽같이, 눈뜬장님같이 속았던 것이다, 전세계의 돈과 총과 두뇌를 싹쓸이한 초강대국이!
곰과 용의 내공을 전수 받은 콩알만한 새우한테 산더미 만한 고래가 당했던 것이다! 새우의 꾀와 의지에 고래가 두 눈 번히 뜨고 당한 것이다. 아, 무서운 동이족!
[또 다시 정보에서 북한에 까마득히 뒤지는 미국과 한국]
지금 또다시 북한은 초강대국 미국과 경제강국 대한민국을 공깃돌을 번갈아 던지며 놀듯이 마음대로 갖고 논다. 역시 지금도 육이오 직전처럼 북한의 최고 무기는 다름 아닌 정보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미국은 캄캄한 밤중(철저히 외부와 차단된 나라)에 촛불(인공위성) 두어 개 켜들고 온 동네를 정신없이 헤매듯이 오리무중의 북한을 성난 황소처럼 바라보지만, 북한은 주머니 속 동전 헤아리듯이 일부러 화난 척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면서 미국을 속속들이 꿰뚫어보고 있다. 한국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주석궁에 설치된 허블망원경으로 한국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샅샅이 들여다보고 있다. 한국은 그나마 어둠을 비쳐볼 촛불 하나도 없고. 청와대에서 장난감용 쌍안경으로 북쪽 밤하늘의 별이라도 한 번 구경하면 당장 불호령이 떨어질까 봐 오히려 전전긍긍하고.
[애치슨라인은 미국 외교 역사상 최대의 실책]
애치슨라인 설정과 미군철수는 200년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외교실책이었다. 미국 스스로도 두 번 다시 상기시키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미국의 자존심에 이보다 큰 상처를 준 실책이 없다. 다행히 미국은 즉시 잘못을 깨닫고 UN을 설득하는 한 편 한국으로 맥아더를 보냈다. 맥아더는 역시 전쟁의 예술가였다.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켜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다. 그러나 압록강 너머에는 맥아더에 못지 않은 모택동이 있었다. 그는 전쟁의 또 다른 예술가였다. 다른 점은 맥아더는 클래식 예술가였고, 모택동은 대중 예술가였다는 것이다. 정규전과 유격전의 대결에서 맥아더는 연전연패했다.
[미완성 전쟁 교향곡]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만주폭격이었다. 시도 때도 없는 깽깽이의 연주를 일거에 잠재울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제4악장 연주를 그는 간절해 바랐다. 그러나 그는 악장(樂長) 트루먼의 일개 고용인이었다. 트루먼은 더 이상의 확전을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노 지휘자는 지휘봉을 빼앗기고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목숨을 치욕스럽게 부지하고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미완성 전쟁 교향곡을 남기고.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단지 사라질 뿐이다. (전쟁의 귀신인 노병은 적의 팔과 칼에 의해서는 결코 죽지 않는다. 도리어 사랑하는 형제의 혀와 펜에 의해 노병의 고향이자 일터인 전쟁터에서 허무하게 쫓겨날 뿐이다.)
[6·25동란의 교훈]
미국은 육이오를 통해 공산주의의 실체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들을 막는 방법은 힘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한꺼번에 쏟았으면 미시시피강을 가득 채웠을 꽃 같은 젊은이의 피를 "미개인"이 사는 태평양 건너 작은 나라에서 어처구니없이 흘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 바로 저 유명한 냉전(Cold War)이었다.
육이오 이후 미국은 철저하게 공산국에 대해 힘의 정책을 폈다. 이것을 일부 깨뜨린 사람이 닉슨이었다. 그는 골수 공화당이면서 도리어 민주당 정책을 썼던 사람이다. 그는 미국이 월남에 발을 잘못 들여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동남아로 더 이상 공산주의가 확산되지 못하도록 한 공은 있었지만(이광요의 회고록), 미국은 월남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정치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것을 알았다.
[월남전과 6·25동란의 차이점]
무엇보다 육이오 당시의 한국과 달리 월남은 스스로를 지킬 의사가 없었다. 이념논쟁이 그렇게 격렬했던 자유대한은 일단 전쟁이 터지자 공산당에 대한 환상에서 화달짝 깨어나서 바위처럼 똘똘 뭉쳐서 탱크를 향해 육탄돌격도 서슴지 않았지만(미구에 닥칠 제2의 동란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절한 배신감과 낯뜨거운 수치심을 부여안고 우리 하얀 천사들이 부나비처럼 전선으로 달려가 인간 쓰레기를 청소하는 붉은 악마로 변신할 것이다.), 월남은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60만 군대에서 10만 명이 장부상에만 존재하는 희한한 나라임을 뒤늦게 알고 발을 빼기로 했던 것이다. 더 이상 공산주의가 도미노처럼 확산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도 있었다. 동남아는 월남전을 지켜보면서 반공정신으로 잘 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도덕적인 흠은 많았으나 정치인으로서는 탁월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닉슨 독트린]
닉슨은 1972년 탁구나 치고 놀자며 죽의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중공과 소련 사이의 갈등을 역이용해서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법을 쓴 것이다. 또한 1973년 파리평화협정을 맺어 월맹과 월남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게 했다. 이중삼중 월맹의 침략에 대비해 두고 세계 4위의 군사장비를 무료로 주었지만, 더 이상 미군의 피는 1cc도 흘리지 않기로 했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더 이상 개죽음 당하지 않게 한 것이다. 월맹의 남침시에는 자동으로 공군이 개입한다는 조항이 있었지만, 미국의 속셈은 이러했기 때문에 월남 패망 시 미국은 민간인 구출용 배와 헬리콥터만 보냈던 것이다. 바다 건너 불을 그의 후임 포드도 입을 꾹 다물고 차갑게 지켜본 것이다.
[미7사단의 철수와 박정희의 자주국방]
닉슨은 중공을 자기 편 내지 방조자로 만들기 1년 전인 1971년 한국에서도 과감히 미 7사단을 철수시켰다. 다행히 한국에는 박정희가 있었다. 그는 즉시 군현대화와 자주국방의 길로 나아갔다. 최대한 미군을 잡아 두려고 노력하면서 후에 순진한 카터를 교육시키면서 그는 고려 3대 황제 정종의 30만 광군(光軍) 이후 무려 1,000 년만에 자주국방의 길로 나아가기로 굳게 결심했다. 자주국방하지 못한 조선시대 이래 나라의 운명이 늘 다른 나라의 총칼에 의해 결정된 부끄러운 한민족의 역사를 일거에 뒤집어 나라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한민족 역사 1,000년의 영단이었다. 다행히 경제가 열악했던 효종 때와는 달리 한국은 착실한 경제개발로 능히 10여년 후(1985년 무렵)에는 자주국방할 수 있는 여력이 갖춰져 있었다.
[서울 올림픽과 동구의 몰락]
1988년 미국의 식민지로 알았던 한국의 서울에서 올림픽을 직접 보고 한국의 풍요로움과 자유분방함에 너무도 놀란 나머지,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낀 동구와 소련이 1989년 이후 도미노처럼 무너지면서 미국은 총 한 방 안 쏘고 냉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최고의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라는 손자병법을, 미국은 육이오를 통해 확실하게 터득한 결과였다. 한국군 5만9천명, 미군 3만4천명을 포함해서 아군 9만5천800명의 희생이 비로소 무엇보다 값진 밀알로 자리매김했다. 육이오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정신력과 군사력과 경제력이라는 세 힘에 의한 공산주의 봉쇄 작전으로 냉전에서 승리한 쾌거는 밤하늘의 별보다 아름다웠다. 인류 역사에 길이 빛날 쾌거였다.
냉전 승리의 꽃은 단연 동서독의 평화통일이었다.
[다 된 평화통일을 놓친 문민정부]
여기에 남북한마저 동서독에 이어 평화통일되었으면, 아름다운 세계평화의 그림에 그것은 화룡점정이었을 것이다. 정말 안타깝게도 노태우 정부가 북방외교로 밥을 다 지어 놓아 뜸만 조금 더 들이고 떠먹기만 하면 되는 것을 김영삼 정부가 펄쩍 뛰며 극구 사양했다, 흡수통일이 웬일이냐며. 웬일이 아니고 그것은 웬 떡이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한술 더 떠서 이쪽에서 밥을 지어서 애걸복걸하면서 갖다 바쳤다. 이제 저쪽에서 떠먹기만 하면 된다. 뜸도 다 들었다. 상도 거의 차렸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이상한 흐름]
세계 흐름과는 정반대로 한반도에는 괴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냉전의 출발점이 되었던 한반도 이북에는 스탈린보다 더한 독재자들인 김씨 성의 두 부자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냉전의 종착역이 되려고 마지막 발버둥을 치는가. 정말 괴이한 일이 이번에는 이남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냉전은 끝이 났지만, 한반도에는 냉전이 더욱 격화됨에도 불구하고 반공정신이 전세계에서 가장 투철하던 한국이 스스로를 미국이나 러시아나 되는 듯이 냉전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친북 세력의 온상이 되면서 친미 성향이 가장 강하던 나라에서 반미사상이 가장 강한 나라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
[정신력과 군사력과 경제력]
월남전이나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보듯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정신력이 한국에서 사이비 평화무드를 타고 급속도로 해이해지고 있다. 괴이한 것은 월남전 당시의 월맹이나 국공내전 당시의 중공과 정반대로 북한의 공산정권은 전혀 주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애국자가 넘치는 한국에서 북한 독재정권에 대해 열렬한 지지를 보내거나 호감을 갖거나 용인하는 사람들이 지식인을 중심으로 최근 10년 사이에 급격히 늘어나 인구의 10%나 차지하게 이르렀다는 점이다. 언론과 학계와 노조와 대학을 잡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조직적인 영향력은 90%의 말없는 다수를 제치고 오히려 여론을 주도해서 마치 90%처럼 보인다. 말없는 다수는 어쩌다가 용감하게 겨우 신문의 광고란에서나 비분강개하다가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들은 10%의 북한 공산정권과 90%의 북한주민을 구별하여 공산정권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반공주의자를 보면, 한 하늘을 같이 이지 못할 원수 대하듯 한다. 그 욕설을 들으면 소름이 끼친다. 살인전과 10범에게도 차마 못할 욕설을 마구잡이로 내뱉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모골이 송연해진다.
[공포와 기아의 북한 정치]
사실 북한의 정권은 전주민을 공포로 코를 꿰고 기아로 목을 죄고 있다. 국경만 열리면 신발도 안 신은 채 달아날 사람이 90%가 넘는다. 오히려 한국은 책상물림들의 요란한 이론과는 달리, 일반 국민들이 선진국 못지 않게 잘 살고 그들 못지 않은 자유를 누림에 따라 경제개발 주역과 민주화 투사들에게 광범위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국경이 활짝 열려 있지만, 외국으로 도망가는 사람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80% 이상 긍정적인 한국의 현대사는 싸잡아 부정하고 98% 이상 부정적인 북한의 현대사에는 정통성을 부여하고서 무한한 관용으로 대한다.
[낭만적 민족주의자와 감상적 통일세력]
사탕발림으로 북한의 부자세습독재를 미워한다고 하고는, 실은 북한의 선전선동과 거의 똑같은 주장을 낭만적 민족주의자들과 감상적 통일세력들은 커닝 페이퍼나 되는 듯이 달달 외우고 있다. 지난 5년간 햇볕정책에 의한 남북의 사이비 평화무드를 입에 마르게 칭찬한다. 눈물까지 줄줄 흘린다. 북한군이 백주에 6·25동란 이후 처음으로 도발한(그 전에는 몰래 무장공비를 보내거나 간첩을 보내 테러를 가하고 시치미를 뗐음) 작은 전쟁을 서해에서 두 번이나 겪고도 우발적인 사건으로 생각하거나 북한군 일부 강경파의 소행으로 이해하려고 온갖 머리를 다 짜내다가, 북한 정권이 식량과 달러를 받아 주면 감격하고 그것 보라며 의기양양해 한다.
[사이비 평화무드]
현실은 어떤가? 전화 한 통 주고받지 못하고 한국 사람 그 누구도 안내원 없이는 북한 땅을 돌아다니지 못하는 상황이다(중국과 대만은 1년에 1억 통의 전화를 주고받고, 2백만 명이 마음대로 오감). 정상회담이니, 가족상봉이니, 금강산 관광이니, 식량과 비료 지원이니, 산업투자니, 경수로 건설이니, 아시안 게임 참가니, 북한 주민 전체를 인질로 삼고 있는 김정일 정권에게 아무 소리 않고 요구하는 대로 돈과 식량을 갖다 바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을 멋쟁이로 위대한 지도자로 선전하는 역할밖에 못하는 것을 천지개벽에 맞먹는 민족화해로 확신하고 있다.
[돈만 받아 챙기는 인질범]
수백 명이 탄 민간 항공기를 납치한 인질범이 제 아무리 흉악하다고 해도 군소리 한 마디 없이 인질 중에 단 한 명 풀어달라는 말도 없이 아무 조건 없이 경찰 한 명도 대동하지 않고 달라는 대로 굽신굽신 뭉칫돈을 갖다 바치는데 안 받을 자 누구인가? 그걸 화해라고 하는가? 그렇게 당당히 받아 챙기고도 김정일은 2천3백만 인질 중 단 한 명도 풀어 주지 않고 있다. 왜? 한 번도 요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요구하면 금방 전쟁이 나서 다 죽을 줄 알고 벌벌 떨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대한민국 전체를 갖다 바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군에 대한 큰 착각]
세상물정 모르는 산골소녀 같은 순진함은 끝이 없다. 한국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보통의 젊은이와 지식인들도 미국이 오로지 자기들 이익 때문에 한국에 3만7천명이나 되는 미군을 주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마워 할 것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도리어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미국의 북침에 의한 한반도의 전쟁을 걱정한다.
대단한 착각이다. 이제 한국은 안보상 미국에게 이익될 게 없다.
왜?
미국으로서는 이제 러시아와 중국이 선의의 경쟁자이지 더 이상 주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미국으로서는 냉전이 끝난 것이다.
이제 중·소와 맞서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을 방어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미국이 한반도보다 월등히 크고 자원도 풍부한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철수했지만, 손해 본 것 하나도 없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기껏해야 북한의 일본 침략 가능성인데, 설령 북한에 의해 적화통일하더라도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일본은 실질적으로 미국 다음 가는 세계 2위의 군사강국인데다가 미군까지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원하지 않으면 미군은 언제든지 철수 가능]
계속 반미운동이 거세지면 미국은 한국이 망해도 월남 망하는 것을 지켜보듯이 바다 건너 불구경할 것이다. 미군 3만7천명과 그 가족, 그리고 상당수의 민간인을 안전하게 피신시킨 다음에.
촛불 시위를 보고 미국에서 노골적인 미군철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우리는 섬뜩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월남처럼 스스로 분열된 나라에서 미국은 더 이상 개죽음을 하기 싫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혈맹은 혈맹을 지키는 나라에게만 유용할 따름이다. 우리는 박정희 이후 자주국방의 길을 거의 포기한 상태이다. 유비(有備)면 무환(無患)이지만 무비(無備)면 필환(必患)이다.
[한국 경제가 몰락하면 세계 경제가 웃는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
세계 12위의 경제강국에 미국의 투자가 100억 달러가 넘기 때문에?
이것도 대단한 착각이다.
왜?
동남아와 중국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망하면 세계경제는 꽃이 핀다. 특히 중국과 동남아와 일본이 그렇다.
왜?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지금 전세계가 공급과잉으로 1929년의 대공황보다 더 심한 디플레이션의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공급의 초과가 엄청나다. 인류 역사상 이런 적이 없다. 중국의 가격 경쟁력은 끝이 없다. 반값이 아니다. 10분의 1, 20분의 1 값에도 수지를 맞춘다. 이젠 싸구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최첨단 기술과 접목한 생산품이 산더미같이 쏟아져 나온다. 중국 때문에 전세계의 공장이 속속 문을 닫고 있다. 발빠른 회사는 중국으로 공장을 통째로 옮겨가고 있다. 자연히 서구와 미국, 일본에서는 실업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공황 직전이다. 한국에서 대규모 전쟁이 터지거나 한국이 망하면 이 세계적인 위기가 즉시 해결될 수 있다.
한국의 반도체가 없어지면 즉시 대만이 세계 1위가 된다. 한국의 휴대폰이 사라지면 노키아와 모토롤라, 에릭슨, 소니가 공전의 호황을 누린다. 한국의 자동차가 박살나면 미국과 일본, 독일이 쾌재를 부른다. 한국의 철강이 녹슬면 중국이 즉시 독보적인 세계 1위로 올라선다. 한국의 조선이 침몰하면 일본과 중국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한국의 섬유가 불타면 중국과 동남아가 밤잠을 못 자면서도 행복해 한다. 한국의 가전제품이 분해되면 일본과 중국과 동남아의 조립공장이 풀가동된다. 덩달아 미국 경제도 체증이 내려가면서(재고품을 싹 정리하면서) 되살아난다. 무엇보다 미국은 전쟁 특수에서 가장 큰 이득을 챙기게 된다. 그에 앞서 1년에 30억 달러나 되는 주한미군유지비용을 줄일 수 있다.
[태풍 전야의 촛불]
시간이 없다.
정말 시간이 없다.
대한민국! 태풍 전야의 "촛불"이다.
자기 국민의 피눈물에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정치집단은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고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다. 김정일 정권은 배고파 국경을 넘은 자기 국민을 처형하고 가두는 무자비한 정권이다. 김정일은 개혁개방해서는 이제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30년도 더 걸리는 피 말리는 일이다. 그래도 전혀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일이다.
[1979년의 남포 개방도시]
1979년 3월 등소평이 심천수출특구(1980년부터 경제특구가 됨)를 지정하는 것을 보고, 김일성이 제까닥 바로 그 해 곧 1979년 11월에 남포시를 개방도시로 지정하여 요란을 떤 적이 있다. 물론 거기엔 폐허만 남았다.
[명령과 지시로 안 되는 경제]
경제는 의욕과 계획, 명령과 지시로 절대 꽃피지 않는 법이다.
시장경제는 처녀 젖가슴 만지듯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YS와 DJ마저 시장경제를 변학도가 춘향이 다루듯 했다.)
결혼을 빙자하여 겁탈하면 경제 처녀는 얼굴에 함박꽃을 피우기는커녕 악에 받쳐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린다. 그게 바로 북한의 경제 현실이다. 신포지구, 신의주특구, 금강산특구, 개성공단? 동네구멍가게라도 하나 해 보고 희망을 갖기 바란다. 한국의 학자, 정치인, 언론, 정말 대책 없다. 구멍가게 안에 "위대하신 수령님"과 "경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사진을 대문짝 만하게 붙여 놓고 따발총, 수류탄, 칼, 몽둥이를 잔뜩 갖다 놓고 인상을 험악하게 긁으며 동네사람들에게 과자랑 음료수랑 콩나물이랑 사 가라고 목소리를 깔아 보라. 누가 사 가나!
["남조선"은 너무도 탐스러운 금단의 열매]
개혁개방 대신 "남조선"이란 금단의 열매가 있다. "공화국"보다 백 배, 천 배 맛있는(잘 사는) "남조선"이 있다. 공식환율이 아니라 시장환율로 하면 북한은 전재산이 100억 달러 정도밖에 안 된다. 실질 일인당 국민소득은 700달러가 아니다. 100달러 정도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900달러인 중국이 북한보다 10배는 잘 사는 것을 생각해 보라. "남조선"을 접수하면 단숨에 3조 달러 이상을 벌 수 있다. 은행 저축만 해도 1,200조원 곧 1조 달러이다. 외환보유고만 해도 1,000억 달러가 넘는다. 공장만 해도 1조 달러 이상이다. 월남 패망 직전의 분위기만 만들면, 이건 식은 죽 먹기다. 단숨에 부자 나라가 된다. 에덴 동산을 만들 수 있다. 잘하면 공포탄 몇 방 쏘고 접수할 수도 있다.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나라]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적과 친구를 구별하지 못하는 나라도 반드시 망한다.
그런 나라는 망해도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속으로 자기 나라에 돌아올 이익을 따져보고 이불 속에서 함박웃음을 터뜨린다.
[에필로그]
미군이 철수하고 적화통일되면, 어떻게 될까?
즉시 중국이 쳐들어온다.
(명분이야 만들면 된다. 국가간에는 오직 힘이 있을 따름이다. 임진왜란 때도 평양성 탈환 이후 명은 왜구와의 전쟁을 극력 피하면서 조선을 반으로 갈라 일본과 분할 통치하려고 비밀 협상을 벌이다가, 이를 꿰뚫어 본 이순신 장군의 단호한 전쟁 감행으로 무산된 적이 있다. 한말 때도 청일전쟁에서 청이 이겼으면 조선은 중국의 식민지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구려에게 수없이 당한 앙갚음을 드디어 1,300년만에 하게 되는 셈이다. 아시아 주변에서 있으나마나한 인구 3백만의 몽골 외에 유일하게 남은 인구 7천만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건재한 한반도를 그들이 가만 놔 둘 리가 없다. 압록강과 두만강에는 탈북자 잡는 오합지졸만 있을 뿐이므로, 중국 인민군은 총 한 방 안 쏘고 휘파람을 불면서 북한에 진주할 수 있다. 한반도만 접수하면 중국은 능히 미국과 겨룰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부(1년 총생산 5천억 달러)가 중국 부(1년 총생산 1조 달러)의 반이나 되기 때문이다.
재주(적화통일)는 곰(북한)이 넘고 돈(대한민국)은 되놈(중국)이 번다.
미심쩍으면 월남의 적화통일 후 중국이 월남에 쳐들어간 일을 상기해 보라. 또한 티베트를 보라. 중국은 군대를 투입할 수만 있으면 주변국에 정말 잔인하다. 강택민으로부터 권력을 이양 받은 저 점잖게 보이는 호금도가 바로 티베트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공로로 승승장구한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이미 그는 엄청난 보상금을 걸고 만주의 탈북자를 대대적으로 색출하고 있다.
이른바 민주화 세력의 사고방식 중에 경제에 관한 공통분모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재벌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재벌이란 군사정부가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할 겸 국민을 경제성장으로 호도하기 위해, 국내외 자금을 끌어 모아 정치자금을 두둑이 받고는 일부 사이비 기업가에게 팍팍 안겨 주고 국내 시장을 독과점 시켜 줌으로써 단기간에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다.-- 대략 이런 생각이다.
일견 그럴 듯하지만, 이것은 실증적 검토 없이 믿고 싶은 바를 반복해서 믿고 또 믿고 온갖 "카더라 방송"의 뉴스를 모아 소설을 쓴 것이다.
만약 이 말이 맞으려면, 이 세상에서 아마 가장 거대한 재벌은 비록 국가 소유이지만 공산국가에서 탄생했어야만 했다. 거기는 확실하게 국영기업에 돈이든 자원이든 인력이든 아낌없이, 정말 아낌없이 팍팍 밀어 주었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무어 조금 성장하는 듯했지만, 그것은 아무 효율성이 없는 수치놀음에 지나지 않았음이 금새 드러났다. 이 거대한 부실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시하고 명령하고 "호통"치다가, 끝내 국가 전체가 파산하고 말았다.
유일한 예외가 공산국가에서도 가장 가난하던 중국인데, 거기는 저 위대한 등소평이 벌떡 일어나서, 공산주의 국가에서 기도 안 막히게 "사유재산"을 단계적으로 인정하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악한" 기업가에게, 제 주둥아리만 아는 농부에게 사업을 허용하고 농토를 돌려 주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돈만 몰아 주면 재벌이 탄생한다면, 모든 후진국에는 세계적인 재벌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야 했다. 그러나 어디 대한민국 외에 선진국을 위협할 재벌이 일어난 후진국이 있는가? 섬유, 전자, 조선, 자동차, 제철, 석유화학, 반도체 등 대한민국의 대기업은 정말 괄목상대할 만한 성장을 거듭했다.
정부가 돈을 몰아 준 것도 사실이지만, 정부의 주도면밀한 장기 계획과 철저한 중간 점검 및 냉정한 사후관리가 뒤따른 것과 기업인 측에서는 국내에서 복수의 대기업이 생김으로써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했고, 무엇보다 작은 국내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정부가 채찍질하고 달래는 대로 드높은 태평양의 파도를 넘어 국제 시장에서 당당히 외국 상품과 대결하여 빈 틈을 파고들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국제 경쟁력을 갖춤으로써 계속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어려움이 많긴 하지만, 어떤 선진국이 이런 정도의 위기를 겪지 않은 나라가 있는가? 서구 열강과 일본제국주의는 오늘날 한국처럼 과잉설비에 과잉생산으로 전국가가 멸망의 위기에 처하자, 막대한 수요를 창조하기 위해서 어떤 짓을 서슴지 않고 했던가?
그렇다. 그들은 전쟁을 밥먹듯 일으켰다. 급기야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일으켰다. 그 책임을 순진하이 짝이 없게 독일에게 다 덮어씌워선 안 된다. 누군가 일으키게 되어 있었다. 양차 대전으로 서구열강과 일제는 과잉설비, 과잉생산 문제는 일거에 해결했던 것이다. 1차 대전 후 본토에서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수한 군수 물자를 수출하여 단연 세계 1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미국도 그 후 어떤 어려움에 빠졌던가?
초호황을 거듭했지만, 주식과 채권도 천장부지로 뛰어올랐지만, 신기술이 속속 개발되어 끝없이 부가 쌓여갔지만, 국내에서든 국외에서든 더 이상 소비가 뒷받침되지 않자, 1929년 일거에 주식이 대폭락하면서 하루아침에 전쟁보다 더 무서운 대공황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펼쳤지만, 그건 심리적 효과만 있었을 뿐 실지로 경제에 거의 도움이 안 되었다. 10년을 허덕였었다.
바로 이 때 "천사"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악마 히틀러였다. 엄청난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전쟁은 거의 무한한 수요를 창출했다. 그리하여 미국은 순식간에 과잉설비, 과잉생산의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1997년에 중국에 천하대란이 일어났다 해보자. 우리 나라 재벌의 과잉설비, 과잉생산은 일거에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있는 설비의 두 배 세 배로 아니 열 배로 늘려도 모자랐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 나라는 세계 제일부국이 되었을 것이다.
슈퍼 301조다, WTO다, EU다, NAFTA다, 무역외 장벽이다, 세계화다, 금융자유화다, 하여 사실은 경쟁력이 만만찮은 우리 재벌의 생산품이 선진국 시장을 공략하지 못하도록 그물을 이중삼중으로 쳐 놓아서, 우리 경제가 어려워진 사실은 조금도 인식하지 못하고 오로지 재벌을 성토하기에 바쁜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선진국이 쳐 놓은 교묘한 무역장벽을 뚫고 우리 생산품을 팔 수 있게 만들까, 그들이 사지 않을 수 없도록 상품을 매력적으로 만들까 도와줄 생각은 않고, 오로지 천신만고 끝에 키운 세계적인 대기업을 죽이려고 애만 쓴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우리는 전쟁을 통하지 않고 평화롭게 당당히 교역으로써 세계 시장을 파고들려다가, 미처 선진국의 무역장벽과 금융자본을 뚫지 못하여 이른바 호두까기(nutcracker) 안의 호두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이걸 기술과 경영 문제로만 이해하면 서구에 놀아나는 짓이다.
힘있는 선진국들은 세계 최초로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는 한국이 사실은 눈엣가시였다. 조선업은 이미 다 먹혔고 전자와 반도체, 자동차까지 밀고 들어오자, 재빨리 무차별적으로 "덤핑"의 굴레를 덮어씌웠다. 실사해 보면, 오히려 국내 가격이 더 싼 경우도 그들은 조사 기간이라며 1년, 2년 질질 끌어 우리 기업을 하나 둘 고사시켰던 것이다.
그러면서 전가의 보도처럼 세계적인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을 들먹였던 것이다. 그런 식이라면 후진국은 영원히 아무 것도 생산할 필요가 없다. 선진국의 설비만으로 얼마든지 아프리카 오지까지 쓰고도 남을 만큼 생산 가능하니까.
도대체 그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후진국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나날이 제조기술이 발달하여 자기들보다 별로 차이가 없는 품질의 상품을 생산하자, 그대로 두면 자기들 나라의 공장 문을 다 닫게 되는 게 불을 보듯 뻔하니까, 줄기차게 후진국 특히 거대기업이 만만찮게 성장한 한국을 집중적으로 각종 수치를 들먹여 들이친 것이다.
자유무역이라 하여 내버려두었다가 일본에게 워낙 많이 당하여 독일 외에는 서구의 제조업이 초토화되었던지라, 그대로 두면 제2의 일본이 될 게 뻔한 한국을 서구와 일본이 함께 집중적으로 두들겨 팬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똑똑한" 사람들은 이를 도와줄 생각은 않고 "도덕성"을 잣대로 재벌 패기에 지난 90년대 내내 영일이 없었다.
시장경제를 키워 주고 연구개발을 장려하고 대학 교육을 혁신하여, 탐스런 상품을 만들게 하여, 한국 재벌도 떳떳하게 초우량 다국적기업으로 만들어 주고 거기 납품하는 중소기업도 다 살려 주고, 선진국 시장을 매혹시키게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경제협력체"를 결성하여 서구가 아니더라도 아시아끼리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게 하여, 저들이 오히려 문을 더 열게 만들어 줄 생각은 털끝만큼도 않고 그나마 있던 대기업을 다 죽여 버렸던 것이다.
자, 이제 냉정히 살펴보자. 과연 돈만 퍼 주면 저절로 되던가? 6공화국 이후, 여야가 합하여 농어촌에 퍼부은 돈이 얼마인가? 김영삼 전태통령까지 42조원에 현 정부 들어서도 20조원은 확실하게 더 쓸 것이다. 3조원(정확히 말하면 1970년부터 1980년까지 2조7천5백21억원)도 안 든 새마을운동과 어느 것이 더 나은가?
새마을운동은 정말 돈이 거의 들지 않았다. 최소한만 지원하고 5천년 잠자던 농부의 야성을 일깨어 "스스로" 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어촌구조개선사업이라고 무려 1억, 10억, 심지어 유리온실 같은 경우에는 100억도 농부들에게 지원하자, 농민들은 급격히 근로 의욕을 상실하여 "눈먼 돈" 서로 차지하여 땀 안 흘리고 호의호식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멀쩡한 농민을 도리어 버려 놓았던 것이다.
자, 또 보자. 공적 자금 109조원. 거기다가 56조원의 국가 부채가 113조원으로 늘어나면서 들인 돈, 57조원. 더하기 새로 조성된 40조원의 공적 자금. 무려 200조원을 퍼부어 무엇을 만들어내었나? 딱 하나 있다.
--도덕적 해이!
(앞으로 들 40조원은 다를 거라고?)
정보화 시대를 화려하게 개화시킨다고 정부가 앞장서 우렁차게 팡파르를 울린 저 코스닥을 통한 벤처 기업의 양성은 또 어떻게 되었는가? 벤처기업 10만 개 만들어 일자리 100만 개 만들고, 대기업 위주의 한국의 고질병까지 고친다고 얼마나 기세등등했던가? 수십 조원의 예산을 들인 데 이어, 일선 은행 지점장을 다그쳐, 해괴하기 짝이 없는 벤처기업의 정의를 만들어 마구잡이로 벤처기업을 지정하여, 돈을 막 퍼 주고 코스닥을 붕붕 띄운 결과는 어떠한가? 멋모르고 서민들이 주머니돈 쌈지돈 다 긁어모아 일확천금을 노리다가 순식간에 알거지가 된 것 외에 무슨 소득이 있는가?
벤처기업의 "벤"자도 모르는 정책 당국자들이 돈만 들이면 저절로 되는 줄 알고 돈을 수십 조씩 퍼 주자, 그 눈 먼 돈 서로 먹으려고 오히려 벤처기업의 토양을 더욱 척박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절대 돈이 먼저 아니다. 사람이 먼저다. 기술이 먼저다. 지식이 먼저다. 정보가 먼저다. 계획이 먼저다. 연구가 먼저다.
평생을 남 욕하는 것만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막상 정권을 담당하자, 돈만 있으면 모든 게 저절로 되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마구마구 지난 40년 동안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돈을 풀어주었다. 선진국에 대한 불타는 희망을 가슴 가득 안고서.
한국의 기업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구 열강의 재벌에 비해서 얼마나 "깨끗하게" 성장했는가, 피눈물나게 일어났는가를, 단 한 번도 생각 안 해 본 사람들이, 졸부가 돈으로 자식을 망치듯이 나라 경제를 천문학적인 돈으로 도리어 망친 것이다. 40년 피같이 모은 천문학적인 돈을 단 3년에 다 써 버리고 경제는 더 엉망으로 만든 것이다.
이러고도 아직도 전정권 탓을 하고 수구 기득권 세력에 이를 부득부득 가니; 우리 서민들은, 택시 타기를 호사스러워 하고, 마을 버스비가 아까워 운동한다며 으슥한 밤을 지갑 든 주머니를 꼭 잡은 채 재게재게 걷고, 시간이 걸려도 차비 한 번만 내려고 돌아, 돌아,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소갈비 한 번 먹고 10년 후에 꼭 다시 오자고 자식들에게 굳게 약속하는 우리 서민들은 목놓아 꺼이꺼이 산 속에서, 이불 속에서 울 수밖에 없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바히 모르나이다. --
(2000. 12. 8.)
*이 글을 쓴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정부의 퍼 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이미 62조원이 들어간 농촌에 향후 10년간 119조원을 지원한다고 한다. 농촌에 가 보라. 그 누구도 돈 갚을 생각하지 않는다. 계속 버틴다. 도리어 큰소리친다. 총선을 앞두고 금융개혁에 처절하게 실패한(2004년 현재 한국의 금융은 세계 평균 C 플러스에 훨씬 못 미치는 평균 신용등급 D 마이너스) 이헌재가 IMF 곧 미국 말 잘 들었다고, 미국이 한국의 외환위기 와중에 목돈 왕창 챙기게 해 주었다고 그들이 큰 상을 주는 등 치켜올리자 정말 제가 잘 난 줄 착각하고 다시 경제수장이 되자 짐짓 표정관리하면서 제법 그럴 듯한 말을 하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열우당의 교묘한 선거운동원 노릇을 자청하여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다. 성실한 신용불량자의 원금을 깎아 준단다. 이제 꼬박꼬박 이자를 갚던 사람마저 버티기 작전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돈 갚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배짱을 내밀며 큰 소리친다.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부랴부랴 20001년에 정부 보증으로 빌려 준 2조3천억원의 원리금 상환일도 5월부터 도래한다. 우량 벤처기업도 갚을 여력이 없다고 한다. 그대로 두면 줄줄이 도산이다. 두고 보라, 틀림없이 또 퍼 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정치적인 한국의 노조만 다른 나라처럼 나긋나긋하게 만들면, 기업은 절로 살아나고 신용불량자도 절로 줄어든다. 그게 정도(正道)이다. 이런 정도를 버리고 사도(邪道)에 올라서서 이전의 군인 출신 대통령들이 30년간 벌어놓은 돈을 여기저기 마구 퍼 주니까, 심지어 가만 두었으면 벌써 김정일이 쫓겨났거나 설령 그가 건재하더라도 최소한 베트남 정도로 개혁개방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북한 정권에 갖은 명목으로 피 같은 달러를 아낌없이 퍼 주니까 김정일 정권은 스스로 벌어먹을 생각을 않고 구걸과 협박으로 먹고 살 궁리만 한다. 그뿐이랴, 도리어 기세등등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여 한국을 접수하기 일보직전이다. 물에 빠진 놈 살려 놓으니까 내 보따리 내 놓아라, 하는 격이 아니라 칼을 들이대며 한 평생 먹을 것 입을 것 갖다 바치라고 협박하는 격이다. 무식한 졸부가 돈으로 자식 망치듯 말만 번드레한 무식한 정부가 나라를 철저하게 망치고 있다. 극심한 도덕적 해이로 스스로도 망할 판인데 깡패 나라까지 불러들여 평화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나라를 누란의 위기에 올려 놓고 있다. 이제는 "길거리 정치"로 민주주의의 벼리인 법을 휴지 조각으로 만들고 있다.
어느 집단이 발전하느냐, 정체하느냐, 퇴보하느냐하는 것은 그 집단이 소멸된 후에는 누구나 쉽게 분석하고 종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집단이 건재할 때, 그 권력이 다른 집단을 압도할 때, 그 집단에 대해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 집단 내부의 사람들은 더더욱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집단 무의식에 빠져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아는 방법은 있다.
그것은 내부 비판의 허용 여부와 그 정도이다.
소련이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했을 때, 소련만이 아니라 공산권 국가들은 하나같이 소련이 영원하고 미국이 곧 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에 반대 의견을 가진 자는 별종으로 여겨지거나 현실을 너무 모르는 자로 업신여겨지거나 기껏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
한 때 동구는 우리 나라 대학가의 이상형으로 받아들여졌었다. 특히 유고는 그 독자성과 거의 완벽에 가까운 법률 체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상적 결합으로 한국의 대학생들로 하여금 밤잠을 설치게 했다. 헝가리, 동독도 찬탄에 가까운 칭송을 받았다. 1인당 GNP도 동독은 12,000 달러까지 얘기되었었다.
헝가리, 유고는 우리 나라가 3,000 달러 남짓하던 80년대 말에 7,000 달러라는 말이 있었다. 이들은 3차 산업을 GNP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실지로는 10,000달러가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말이 상당히 설득력을 가졌다.
더군다나 자본주의의 병폐인 공해도 거의 없다고 알려졌다.
뚜껑을 열고 보니 그 말들이 말짱 거짓말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3차 산업을 죄악시함으로써 양으로만 부풀린 경제는 실지로는 투입한 것(input)보다 더 형편없는 것을 생산(output)하고도 그것을 모두 GNP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마이너스 성장을 플러스 성장으로 둔갑시켰던 것이다. GNP는 부가가치의 합인데, 그들은 투입은 고려하지 않고 단지 생산총합을 GNP라고 선전한 것이다. 선진국의 객관적인 기준 중 하나가 통계의 신뢰성인데, 그들의 통계는 전혀 객관성이 없었다.
공해도 엄청났다. 심지어 동독은 서독의 산업 쓰레기를 돈 받고 받아서는 그냥 산처럼 쌓아놓기만 했다. 서독은 값싸게 쓰레기를 처리하려다가 통일 후 수십 배가 넘는 돈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웃지 못할 촌극까지 벌였다.
저 유명한 말: "공산주의는 공해가 있을 수 없다. 고로 하수도에 흘러가는 저 오물은 오물이 아니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곧바로 자본주의의 썩어 빠진 정신을 가진 자가 되어 반국가 사범으로 끌려갔다. 모두가 정신병자가 되었으되, 주위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므로 자기들이 정신병자라는 것을 몰랐다. 설령 알았더라도 "정신병동"에 끌려가지 않으려 찍 소리도 못했다.
조선도 비극의 나라였다. 병자호란 후 전쟁이 전혀 없는 평화의 세월 250년을 보내면서, 온갖 지당한 말을 골라 하면서 양반들은 꿈같이 달콤한 시절을 보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정다산의 목민심서를 보라. 얼마나 조선이 위선으로 가득 찬 나라였던가. 서민들은 호랑이보다 더한 가렴주구에 목숨만 겨우 연명했고 국고는 텅텅 비었다. 국방은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대청(大淸)의 안보 우산에 들어가 자주국방의 필요성은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은 재빨리 근대화하여 무엇보다 국방을 서양식으로 쇄신하여, 조선 병탄에 걸림돌이 되는, 허울뿐인 청과 러시아에게 차례로 싸움을 걸어 이를 당당히 굴복시키고 조선은 총 한방 안 쏘고 그냥 "주웠다". 국왕이라는 분이 일개 외국 공관에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여 피신한(아관파천) 그런 정도의 국방력밖에 없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미 이름뿐이었던 것이다.
북한도 문제는 많았지만 일제가 남긴 당시로선 최첨단 공장과 발전소, 풍부한 지하자원 그리고 소련과 중공의 원조로 한 때는 한국보다 잘 살았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 완전히 역전되어 토끼털이니 고철이니 송이버섯이니 양귀비니 미사일이니 별의별 걸 다 팔아봐야 1년 총 수출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한 개 라인 정도밖에 안 된다. 겨우 우리 나라의 탄탄한 중견 기업 정도의 수출액 정도밖에 안 되는 5억 달러 남짓하다. 그 결과 인간 중심의 주체사상과는 너무도 동떨어지게 극소수의 "양반" 외에는 물질에, 먹거리에 완전 노예가 되어 버렸다. 너무도 배가 고파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 한 대 꺾다가 실탄을 장전하고 지키는 인민군한테 그 자리서 총살당할 정도이다. 쌀 한 됫박이면 치마를 걷어 올릴 숫처녀가 이 골목 저 골목에서 까치발하고 기다리고 있을 정도이다.
도대체 왜 이런 거대한 비극이 끝없이 이어지는가.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멸망의 문을 향해 낭떠러지로 몰려가는 쥐 떼처럼 꾸역꾸역, 때로는 씩씩하게 줄 맞춰 가는가.
가장 큰 이유는 비판 세력의 압살이다. 권력 집단이 멋진 명분을 개발하여 그것이 일개 "이론"이 아니라 "진리"로 받들어 모실 때, 거대한 멸망의 길이 활짝 개통된다. 시간의 문제만 남을 뿐이다. 비판 세력이 모조리 "진리"를 거역하는 "악질"로 몰려 타도되고 나면, 자체 비판마저 밝은 태양 아래 안개 걷히듯 사라진다.
견제할 세력이 전혀 없어서 그 집단의 생명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집단이 마침내 자체 모순으로 또는 외부 세력에 의해 무너질 때, 그 굉음은 천하를 뒤덮는다.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고 태양이 얼굴을 가리고 달이 흐느끼고 별이 울부짖는다.
자체 비판이 활성화되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잘못된 길에서 돌아설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반대 세력의 비판도 "비난"과 "욕"이 아닌 따끔한 "경고"와 우정어린 "충고"로 받아들여진다. 반대 세력의 숨통을 끊을 생각을 절대 안 한다. 내부 비판이 살아 있는 한 설령 반대 집단에게 패배하더라도 언제든지 그 집단은 전열을 정비하여 다시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일성을 이긴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상대적으로 비판 세력을 대폭 허용한 점이었다. 야당의 세력이 한국에는 만만찮았던 것이다. 국회의 거의 반을 차지했다. 이른바 개발독재국가 중에 이런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한국 외에는 단 한 나라도 존재한 적이 없다. 공산독재국가인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야당은 존재할 수가 없었으니까. 항상 100% 찬성이었다. 인간 사회인 이상 생겨날 수밖에 없는 비판 세력은 그 싹과 씨앗까지 하나하나 철저히 제거되었다. 그들은 죽이거나 아우슈비츠보다 가혹한 수용소에 평생 가두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신년 공동사설이 발표되면 말할 줄 아는 전 인민이 그 긴 말씀을 줄줄 외운다. 전국이 일제히 학습총화에 들어간다. 외우기는 단연 북한이 세계 1등이다. 아무리 뒤돌아보아도 2등이 가물가물 보일 듯 말 듯 하는 압도적인 세계 1등이다.
야당을 거의 허용하지 않았거나 전혀 허용하지 않았던 장개석이나 이광요 또는 등소평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등히 관대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교만해지고 야당과 민주화 세력을 폭압적으로 내리누르려 하자, 자체 비판도 거의 허용하지 않게 되자, 운명의 여신이 그 생명 줄을 끊어 버렸다. 마지막 5년, 이미 그는 영혼이 떠난 허깨비였다. 누구보다 큰 내부 비판자였던 육영수 여사가 베개머리에서 사라지자 그의 균형 감각은 급격히 무너졌다. 천하의 아첨꾼이자 희대의 정신병자였던 차지철조차 투철한 애국자로 착각할 정도였다. 유능한 관료와 자립 단계에 이른 민간 기업에 의해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경제가 활기차게 돌아갔을 뿐이다.
진통은 틀림없이 따르겠지만, 대한민국은 반드시 북한에 이기게 되어 있다. 통일은 한국 주도로 이뤄지게 되어 있다. 한국의 국민은 집권자에게 감히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심히 우려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장담할 수가 없다. 정부와 여당에 자체 비판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로지 대통령의 심기와 대통령의 의중과 대통령의 말씀과 대통령의 논리와 대통령의 "밥상머리 교육"에 경건하게 옷을 여미고 공손히 받자와 듣고 또박또박 받아쓰고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게 외워서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알려야 한다. 사석에서도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올해의 공무원"으로 뽑힌 공무원도 하루아침에 전보발령이 나거나 대기발령이 난다. 야당과 언론과 시중에서야 무슨 소리를 하든 여당과 청와대와 정부는 오로지 대통령의 개혁 정치와 평화번영 정책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야당과 언론은 청와대로부터 반민주, 반통일, 반개혁, 부정부패의 오명을 뒤집어쓴다. 경제인들이 모여 시장이 불확실하다고 조심스레 운을 떼면, 무엇이 불확실한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라고 되묻는다. 불법대선자금을 야당에 압도적으로 많이(?) 준 죄인으로서 재계가 찔끔하여 눈치를 살피면, 딱 꼬집어 말도 못한다며, 얼굴의 주름살을 활짝 펴며 대통령을 믿고 열심히 투자하라고 격려하고는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400여명의 교수들이 제발 민생에 전념하라고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것과 때맞춰 "공공 일자리를 늘리겠다, 민간기업의 정년을 늘리겠다, 복지예산을 늘리겠다" 등등 뿌리가 같은 국민의 정부가 원도 한도 없이 발행하고 투입한 국채와 공적자금을 다 합치면 경제개발 이후 모아 놓은 국부를 몽땅 쓰고도 모자란 걸로 알고 있는데, 어디에 또 그렇게 참여 정부가 몰래 황금이라도 산더미같이 쌓아 놓았는지, 아니면 총선 전에 서해 앞 바다에서 이라크의 유전 만한 유전이 터지기로 되어 있는지, 인심을 팍팍 쓴다. 정부의 이런 발표에 대해 야당과 언론은 즉각 삿대질을 하지만, 여당과 청와대는 일제히 삼삼칠 박수를 친다. 친여 언론과 방송은 대서특필하고 특별 프로를 편성한다. 전에는 "미스터 바른 소리" 한 명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당이 갈라졌으니, 그마저도 내부 비판이 아니다. 남남끼리의 험담이요, 비방이요, 저주다. 비판을 평생 직업으로 삼은 줄 알았던 열린우리당의 의원들은 어찌된 셈인지, 대통령의 말씀은 어찌나 잘 외우고 이해하는지 그 놀라운 변신에 절로 입이 벌어진다.
잘 되는 나라일수록, 잘 되는 기업일수록 자체 비판이 활발하다. 동서고금 어떤 위대한 지도자든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완벽에 가까운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결점과 실수가 누구보다 많지만, 위대한 지도자는 마음의 귀가 커서 상대가 누구든 특히 측근으로부터 거슬린 소리를 귀담아 듣고 거기서 지혜를 얻어, 멋진 지시를 하달하여 아랫사람들이 신나게 일하게 하고 그들이 빛나는 업적을 쌓으면 그것을 슬그머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 누구도 신이 될 수 없다. 이 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인간의 생각은 그 어떤 것도 "이론"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어떤 인간도 "진리"를 알 수는 없다. 이론을 희미한 등불로 삼아 진리에 다가갈 뿐이다. 어떤 집단이 진리에 이르는 길을 독차지하고 다른 이론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면, 그 순간 그 집단은 진리에서 멀어진다.
다른 집단이 비판하면 그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집단 내부에서 비판하면 그것은 하나같이 그 집단을 살리기 위한 "보약"이다. 이마저 허용하지 않으면 그 집단은 이미 더 이상 볼 것이 없다. 긴긴 인류 역사가 이를 너무도 생생하게 잘 보여 준다.
난마같이 헝클어져서 부글부글 들끓는 한국의 여러 문제들은 대부분 전문가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데 있다고 본다.
[조선중기 이후는 전문가가 희귀했던 사회]
조선중기 이후로 우리 나라는 전문가가 별로 없었다. 중인 계급이 의학, 통역, 산술, 천문, 음악, 미술 등을 담당하여 대대로 전문가 집단을 형성했지만, 그 숫자는 미미하기 짝이 없었다. 위정자들은 조선말 2천만 인구 중에 겨우 1천 명밖에 안 되었는데, 이들은 인문학을 달달 왼 교양 있는 사람들이었지 정치에 대해서도, 행정에 대해서도 전문 지식이 거의 없는 문외한이었다. 경제와 과학기술이라는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무인들은 군사에 대해서 전문가였지만, 이들은 철저히 소외되었다.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군사에 대해서 겨우 중국 역사책과 중국 소설을 읽은 정도의 상식으로 문인이 큰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나 막상 적군이 다가오면,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가기 바빴다. 조선에서는 천 명의 관료, 그 중에서도 득세한 겨우 백 명 정도가 국정을 농단했다. 밤낮 사서오경을 인용하면서 제 일신과 가문을 위해서 나라와 임금을 이용했다. 음풍농월하면서 태평성대를 누렸다. 죽은 조상 제사 지내는 것으로 일년의 반 이상을 바쳤다.
[일제 시대에는 일본인이 전문가 독차지]
일제 시대에도 한국인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간악한 왜놈들이 백의민족이 신학문을 배울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했기 때문이다. 그 흔한 기술자도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기능공도 거의 없었다. 일본인에 비하면 전문가가 겨우 백의 한 명 꼴이나 되었을까. 조선에는 4년제 대학이 아예 없다시피 했고 그나마 2년제도 일본인이 반 이상을 차지했다. 조선인이 일본이나 중국으로 유학 가는 경우는 모래밭의 금 덩어리처럼 희귀했다.
[6·25와 경제개발은 전문가 양산의 결정적 계기]
한국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가 본격적으로 양성된 것은 해방 이후, 좀더 정확히 말하면 6·25 이후와 경제개발 이후이다. 근대 군사학을 배운 것은 일제 시대에 일본 육사와 중국 황포군관학교를 통해서였는데, 그 숫자는 미미했다. 독립군을 잡는다는 선입견 때문에 군사 전문가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한 거부감이 있어서 당시로서는 동양에서 가장 군사학이 발달한 일본 육사에 들어간다는 것은 여간 독한 마음을 먹지 않고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방은 되었지만, 군사 전문가는 아주 드물었다.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조금씩 배워나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군인 숫자만 해도 우리의 두 배가 되는 인민군이 소련에 의해 잘 훈련받은 군사 전문가를 앞세우고 압도적인 화력을 내뿜으며 순식간에 낙동강까지 밀어 붙였다.
군사 전문가들이 대거 탄생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이미 만만찮은 미국 유학파가 포진했던 군대였지만, 조직과 인력, 물자, 화력이 태부족이었던 상황에서 미국에서 배운 현대 군사학이 겉돌고 있던 차, 일방적으로 밀리는 전쟁에서, 전우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그 피로 강을 이루는 처참한 경험을 통해서, 확실하게 "필드"에서 본의 아닌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한국형 군사학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마침내 인천상륙작전으로 미군과 합동작전을 펼치면서 곳곳에 군사전문가가 우후죽순처럼 태어났다. (장교만이 꼭 전문가가 된 것은 물론 아니다. 이하 글에서 다른 부문의 전문가도 마찬가지이다. 짧은 가방 끈으로도 자기 분야에 전문가가 된 사람이 숱하다. 이른바 우리가 "도사"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전문가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전쟁을 통한 처절한 배움인 만큼 그들은 군사학에만 전문가가 된 것이 아니다. 과학과 기술뿐만 아니라 건설도 배웠다. 행정도 놀랍도록 잘 익혔다. 보급을 통해서 경영도 배웠다. 이렇게 하여 한국군은 강군으로 거듭 나면서 한국 사회 전체 전문가의 반은 족히 길러냈다.
전후에는 본격적으로 장교들이 웨스트 포인트로 유학을 가서 군사학뿐만 아니라 선진 제도를 보고 들음으로써 정부 어떤 부서보다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전문가가 많이 탄생했다. 군인 유학파가 외무부 유학파보다 많았다.
[5·60년대의 군대는 가공할 전문가 집단]
돌이켜보면 당시 군인은 자체 교육을 통해서 100% 한글을 깨우쳤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것은 군대가 가공할 집단으로 거듭나는 원동력이 되었다. 거기에 전쟁을 통해 다져진 일사불란한 조직을 갖췄다. 늘 일본인으로부터 모래알 민족으로 멸시 당하던 한국인이 일제의 관동군 이상의 효율적인 60만 군대란 대조직을 갖췄다는 것은 한국 역사에서 굉장한 의미를 갖는다. 2천만 인구의 나라에 산에서 토끼나 꿩이나 잡을 정도의 무기로 무장한 고작 3천명의 군대밖에 없었던 구한말을 생각해 보면, 비록 배는 고팠지만 현대 무기로 무장하고 전문 지식을 갖추고 사선을 넘나드는 전쟁이란 직접 경험을 통해 위에서 내린 명령 한 마디가 가감 없이 60만 전체에게 전달되는 조직이 한국에 탄생한 것은 역사적인 대사건이라고 본다. 고려 초 광군 30만 대군 이래 1천년만의 쾌거였다.
3천만 명 인구에 실전 경험이 있는 60만 군대, 한국은 평화와 더불어 대지진이나 대해일, 또는 일대 신바람이란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일어날 기반을 완벽히 갖춘 셈이다. 만약 그 힘이 경제개발 쪽으로 향하지 않고 각기 소속을 달리하는 정치인들과 손잡고 끝없는 정권 탈취 쪽으로 향했다면, 한국은 2차 대전 후 아직도 끝없는 내전을 거듭하는 아프리카의 여러 독립국과 비슷한 운명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제2의 월남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중국 아니면 일본, 또는 미국 그도 아니면 소련이나 북한 기준으로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는 바람에 우리는 이렇게 간단한 현상도 제대로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김일성은 본의 아니게 한국을 간접적으로 변혁시킨 일등 공로자(?)였던 셈이다. 한국 사회를 탈바꿈시킨 박정희란 군인도 6·25가 아니었으면 민간인으로 돌아갔던 그가 새로 군복을 입었을 리가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역사의 흐름이란 것이 몇몇 힘 가진 인간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도도히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이 전문가 집단은 소외되기 시작했다.
이들 전문 지식과 경륜에 물리력과 조직을 아울러 갖춘 군인들의 눈에 비친 조국은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민주주의"라는 말만 내세우면 아무 것도 모르는 비전문가도 하루아침에 출세할 수 있는 사회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마침내 "은인자중"하던 한국 최고 최대의 전문가 집단이 총칼을 앞세우고 한강을 건넜다. 놀라운 일은 이 때 총격전이 벌어졌지만, 단 한 사람 죽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이 때 박정희 소장이 실패했더라도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지나친 불균형으로 보아 누군가가 다시 한강을 건넜을 게 틀림없다.
[정치 안정과 치안 확보, 법치를 가져온 군인들]
이들 전문가들은 힘을 앞세우긴 했지만, 그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무엇보다 법치국가를 만들었다. 헌법만 우리말로 되어 있을 뿐, 일제 시대의 일어로 된 법과 미군정 시대의 영어로 된 법으로 다스려지던 나라가 이들에 의해 불과 반 년 만에 우리말로 정비된 법으로 다스려지게 되었다. 행정도 일사불란했다. 열흘 걸릴 일을 단 하루만에 깔끔하게 해치웠다. 대학의 전문가들도 속속 영입했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진다. 이들이 경제 개발을 주도하면서부터 어느새 산업 현장에서 사회 곳곳에서 전문가들이 상상을 초월한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다. 불과 10년도 안 되어 군인 전문가는 군사학 이외의 분야에서는 속속 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 힘으로 공장을 세우고, 우리 힘으로 건물을 짓고, 우리 힘으로 수출하고 수입하면서, 우리 힘으로 관료들이 전국민을 독려하면서, 전문가들이 불과 10여년 만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대학에서도 학사, 석사, 박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학사가 대학 교수하던 일은 중세의 낭만으로 남게 되었다.
[이공계열의 전문가가 대거 탄생한 70년대]
무엇보다 70년대 이후 이과 출신 전문가가 대폭 늘어났다. 인문 숭상 전통이 뿌리깊은 나라였지만, 거대한 공장과 종합 상사가 만석꾼 살림을 동네 구멍가게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정부가 공대를 대폭 증설하는 것에 발맞추어 인재들이 그 쪽으로 서서히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70년대 말쯤 되자 군인 출신들은 이제 높은 자리나 차지하는 장식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일은 밑의 전문가들이 거의 다했다. 군인 출신들은 로비 활동이나 담당하게 되었다. 이들은 이제 군사 전문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제2의 군사 쿠데타가 있었지만, 또 다른 군인 출신 대통령 시대에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문가들이 크게 우대 받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경제의 고 김재익 경제수석과 정보통신의 오명 전체신부장관이었다. 전문가들이 소외되기 시작한 것은 희한하게도 민주화 이후였다.
[민주화 이후 전문가가 도리어 소외되다]
민주화 이후 전문가 중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하는데, 산업화 초기에 등장하여 농업밖에 모르던 40대 기수가 70노인이 되어 어르신 신분으로 용상에 앉는 바람에 모든 게 꼬이게 되었다. 이들과 이들을 뒤따르던 무리는 만능 전문가로 자처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한 데 한국의 불행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권모술수의 전문가일 따름이다. 30년을 똘똘 뭉쳐 돌아다니다 보니까 늘어난 것은 아름다운 명분을 내세워 권력을 잡는 한국형 권모술수뿐이었다. 사회 발전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아름다운 명분에는 전문가들이 쓰는 전문 용어가 들어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암기한 것이지 절대 이해한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도 전문가가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대거 전문가들이 발탁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권이 없었다. "가신(家臣)"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전문가 대접이 얼마나 소홀했나하는 것은 그 인사정책을 보면 안다. 장관이든 차관이든 1년이면 장수 장관이요 2년이면 초장수 차관이다. 개혁이란 아름다운 명분은 내세웠지만, 전문가를 알아보는 안목이 부족한 바람에 고도의 전문가가 필요한 개혁 담당 장관들을 수시로 바꿨다.
"참여" 정부는 더 심하다. 대통령이 젊어지면서 세대 교체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나, 청와대의 84%나 차지한다는 386세대는 한국의 현실과 동떨어진 이념으로 모든 것을 재단한다. 이른바 코드 정치를 한다. 자연히 철학이 빈곤하고(칼 마르크스) 전문지식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아담 스미스). 행정의 달인인 정통 관료들은 보수세력이요 반개혁 세력이라고 쫓겨나거나 소외된다.
어느새 제대로 된 전문가는 얼씬도 않게 되었다. 알랑거리는 자들은 사이비 전문가요, 또 다른 정치꾼이다. 80년대, 90년대 접어들면서 이제 대학 교수도 전문가 집단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사회 곳곳에 놀라운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어디 가든 아는 체하다가는 혼이 나는 세상이 되었는데, 기껏해야 공부 안 하는 정치 교수를 전문가로 우대하여 모셨다가 마음에 안 들면 한 달도 안 되어 갈아치우는 일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미있는 현상은 곳곳에 전문가가 넘치다 보니까, 어떤 정책도 거센 반발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른바 집단이기주의로 나타난다. 이걸 잘 조정하는 일이 바로 정치인데, 우리 비전문가 집단 정치인들은 뭘 모르니까 한 번은 이쪽 말 들어주고 한 번은 저쪽 말 들어주고 또 한 번은 이쪽, 또한 번은 저쪽 --그러다가 강력한 경찰력을 동원하고 엄포를 놓고 법을 엄격히 적용한다. 그러다 보니 개혁이란 개혁은 모조리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게 되었다. 개혁은 하나같이 거창한 명분만 남고 속은 텅 빈 석회 동굴이 되어 버렸다.
[전문가를 키우기에 부적절한 한국의 교육 제도]
한국 사회는 전문가를 키우기에 아주 부적합하다. 우선 교육 제도가 그렇다. 고3까지 전과목을 다 잘해야 하는 체제이다. 6차 교육과정이다, 7차 교육과정이다, 요란을 떨지만 실지로 3년 동안 배우는 과목은 이전과 거의 똑같다. 오히려 늘어났다. 한 학기 당 10과목 이상 배워야 한다. 무엇보다 내신과 수능 때문에 어떤 과목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애꿎게 예체능과 인기 없는 제2외국어만 축소되었을 따름이다. 더불어 쓸데없는, 떠들고 놀아도 되는 과목이 우르르 늘었다.
[많은 외국의 교육제도는 전문가 키우기에 적절한 교육제도]
어떤 나라도 대학 입시에서 4과목 이상 보는 데가 없다. 대신 선택의 폭이 넓다. 다양한 전문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문제도 어렵다. 미국은 영어와 수학 두 과목만 보는 SATⅠ이나 쉽지 선택인 SATⅡ만 해도 그 난이도가 만만찮다. 능력이 있는 학생은 대학 강좌를 미리 신청하여 시험을 본다. 통과하면 그 과목은 대학에서 그대로 인정받는다. 이런 시험에서 한국인 2세들이 미국 전체의 10등 안에 일등 포함하여 꼭 서너 명 끼인다. 환경만 조성되면 성취욕구가 유난히 강한 한국 학생들이 폭발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반증이다.
독일은 졸업시험(아비투어)이 곧 대학 시험인데, 졸업 전 2년 동안 네 과목만 선택해서 그야말로 코피 터지게 공부해서 시험을 본다. 난다 긴다하는 김나지움 졸업자도 3분의 1밖에 통과하지 못한다. 두 과목은 기본적인 문제이지만, 나머지 두 선택 과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렵다.
불란서의 입학 시험 바깔로레아 문제는 한국 학생은 거의 손을 못 댄다. 독서량과 작문 실력이 부족하여 요구하는 양의 3분의 1도 채우기 힘들다. 애국가나 쓸 수밖에 없다. 아니면 유행가 가사나 쓰든지.
영국은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세 과목만 배워서 시험 치는데 이 시험에는 대학 1학년 과정까지 나온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아예 교양과정이 없다. 따라서 대학은 3년 과정이다.
일본의 대학 본고사가 어렵다는 건 전세계적으로 악명 높고. 그러나 그들은 수학을 보더라도 대학마다 학과마다 범위가 다르다. 수학 전체 영역을 다 보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처럼 기가 질리게 하는 두툼한 "수학 정석" 같은 참고서가 없다. 미분 따로 적분 따로 수열 따로 단행본으로 나와 있다. 그 중에 몇 분야만 고르면 되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입시 전문가는 1년 동안 수학 문제 단 한 문제만 내고도 엄청난 연봉을 받는다. 수학의 노벨상이란 필드상을 일본인이 두 번이나 탄 게 절대 우연이 아니다.
흔히 한국을 상식인(generalist)의 나라로 일본인을 전문가(specialist)의 나라로 일컫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렇게 된 역사적 문화적 연유가 있지만, 이젠 불균형을 바로잡을 때가 차고 넘쳤다. 상식이 풍부한 교양인이 지닌 넓은 안목에 전문가가 지닌 깊고 날카로운 눈매를 합하면, 시야가 좁아 오로지 자기 분야밖에 모르는 일본을 능가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 될 것이다. 제발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고질병이 없어져야겠다.
"대통령 어르신"께서 말씀하시고 "장관 아이"가 눈을 반짝이면서 메모하는 풍토부터 바꿔야 한다. 정반대가 되어야 한다. 사계의 최고 "전문가"인 장관님이 천금같은 무게로 말씀하고 나라에서 제일 큰 종인 "상식인"인 대통령이 모르는 것은 질문을 거듭하면서 또박또박 메모하는 모습부터 보여 주어야 한다. 대통령은 한 마디하고 장관은 열 마디 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그는 역사상 길이 추앙 받을 대통령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 그 졸업생을 한 명이라도 데려가는 게 소원인 인도공과대학(I.I.T.)은 10만 명의 지원자 중에서 겨우 2천5백 명을 합격시키는데, 그 시험이 얼마나 어려우면 2년 동안은 하루 네 시간 이상을 잘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합격한 학생을 교수들이 기숙사에서 같이 자면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더 혹독하게 공부시킨다. 졸업시킬 때는 10억 인구에서 뽑아 그렇게 혹독하게 가르친 이런 천재들을 인정사정 없이 5백명이나 탈락시킨다. A는 한 강좌에서 오로지 한 명만 주는데, 그것은 "신의 영역"으로 통한다. 인도가 소프트웨어 세계 2위가 된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1위로 올라서는 게 시간 문제일 뿐이다.
[내신과 입시 합쳐서 12과목 이상을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
한국만이 독특하다. 이전에는 실지로는 모든 학생이 10과목 이상을 보다가 2005학년도부터는 최대 8과목을 보지만, 이것도 너무 많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신과 입시가 따로 논다는 것이다. 내신 때문에 입시에 안 나오는 여러 과목을 3학년 때도 안 할 수 없다. 고3 때는 12과목 이상을 해야 한다. 만약 학원처럼 입시에 나오는 과목만 가르치면, 지엄한 교육부의 교과과정을 어긴 게 되어 사립학교일지라도 당장 교문에 빗장을 질러야 한다. 그에 앞서 입시 과목에 소외된 학과의 교사들이 교장실을 점거할 것이다. 지금은 구조적으로 재학생들의 성적이 잘 나올 수 없다. 고4란 말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하여튼 돌아서면 다 잊어버릴 지식을 누구나 다 배워야 한다. 공부가 지겨울 수밖에 없다. 적성과 소질에 맞게 가르쳐야 키울 수 있는 예비 전문가를 키울 도리가 없다. 자연히 개성이 강한 요즘 학생들이 입시와 관련 없는 수업에 떠들고 자는 게 일상사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평준화된 공립 학교에서. "악법도 법"이라며 잘못된 제도를 원칙대로 지키려면, 학생과 학부모와 동료교사와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
[순환보직은 전문 관료를 키울 수가 없다]
정부에서는 이른바 순환보직 제도 때문에 전문가를 키우지 못한다. 한 분야에서 10년, 20년 근무해야 민간인 못지 않은 유능한 전문가로서의 관료가 되는 법인데, 2년이나 3년이면 많이 근무한다. 이유는 이권 때문이다. 어느 부서는 "눈먼 돈"이 생기고 어느 부서는 "눈 밝은 돈"이 눈을 부라리고 --이것이 유일한 기준이다. 공무원 숫자를 확 줄이고 봉급을 획기적으로 올려 주면 일시에 해결할 문제를 미적거리다 보니까, 아직도 국민과 기업을 상대로 돈 뜯어먹을 궁리나 하게 되고 이것을 잘 아는 위정자들은 공무원을 믿을 수 없어서 마구 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쁜 아이"들에게 좋은 자리를 안겨 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은 대학도 전문가 키우기엔 부적절]
놀라운 일은 대학에서도 전문가가 크지 못한다. 보직 교수, 정치 교수가 판을 친다. 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업적을 쌓는 일은 거의 기적적인 일이다. 학과와 학과끼리 높은 담을 둘러치고 그 위에 철조망 치고 그것도 안심 안 되어 사금파리도 박아 놓고 남의 나라 책을 이리저리 짜집기해서 논문이랍시고 책이랍시고 자기도 모르는 어려운 전문 용어를 총동원하여 소리소문 없이 세상에 내놓는다. 누구도 읽지 않을 거니까 양만 채우면 된다.
대학생도 전문 지식 쌓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사회정의와 자주통일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다. 많은 대학생이 비분강개하면서 대학가의 술집, 당구장, 게임방, 비디오방, 여관에 출퇴근한다. 서점은 한산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가 전문 지식은 재학 중일 때는 학원에서 졸업 후에는 회사에서 배우고 익힌다.
제도적으로도 대학교의 시설이나 예산, 교수진에 비해 학생이 너무 많다. 우리보다 3배 잘 살고 우리보다 인구가 3배인 일본과 대학생수가 거의 비슷하다. 학생들의 전문 지식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이런 척박한 땅에서도 한국인은 위대하여 어느 분야에 가든지 귀신이 곡할 전문가가 한둘은 박혀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선진국에는 까마득히 못 미친다.
한국은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전문가를 우대하고 전문가를 키우는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민족의 폭발적인 잠재력은 싸움과 욕설로 화려하게 꽃피다가 끝내 열매 맺지 못하고 허무하게 스러질 것이다.
[중국의 위정자는 하나같이 가공할 테크노크라트(technocrat)]
중국의 정치가 아주 후진적으로 보이지만, 안으로 나라 전체가 희망에 넘쳐 있고 밖으로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이 중국을 최대의 경쟁국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고 본다. 강택민, 주용기, 이붕, 호금도, 온가보, 오의 등 중국의 전현직 지도자들은 거의 대부분 이공대 출신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구 못지 않은 전문가여서 섣부른 정치논리는 철저히 배제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들은 말의 애국은 모르고 행동의 애국을 알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말보다 행동을 중시하고 겉보다 속을 중시하는 법이다. 전문가는 과거보다 현재를 중시하고 현재보다 미래를 중시하는 법이다. 전문가는 잿밥에는 아예 관심 없고 염불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법이다. 나아가 염불보다 보시에 더 관심을 갖는 법이다. 그렇지 못한 전문가연하는 자들은 모조리 사이비 전문가이다. 유명한 사람들 중에 한국에는 유난히 이런 자가 많다. 그들은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이거나 권력과 부를 탐하는 정치꾼이나 약장수다. 양의 탈을 쓴 늑대다.
도덕 과잉이 정치를 망친다.
부도덕한 정치는 분명 타락한 정치이지만, 도덕을 소리 높여 외친다고 정치가 명경지수처럼 맑아지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 정치인은 권력의 향배에 동물적 감각이 있기 때문에 도덕도 철저히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인이나 학자 또는 청년들이 순수한 마음에서 도덕 운동 곧 정치 정화 운동을 열정적으로 펼치지만, 자기도 모르게 정치인에게 이용되어 결과적으로 그들의 주구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국에서 이민족의 왕조가 환영받았던 이유]
한족(漢族)이 건설한 왕조인 한·당·송·명(漢唐宋明)과 이민족이 건설한 원·청(元淸)을 비교해 볼 때, 한족의 나라들은 유교의 대의명분을 앞세워 도덕을 소리 높여 외치는 중기 이후에는 오히려 정치는 타락할 대로 타락한다. 왕조 초기에는 상무 정신이 살아 있고 국리민복을 중시하면서 도덕을 낮은 소리로 말했는데, 이 때의 정치가 오히려 더 깨끗하였다. 이민족의 나라들은 애초에 한족의 나라들이 말과 행동이 따로따로 놀면서 백성이 도탄에 빠져 도적 떼가 백주에 활보하고 떼거지가 고관대작의 집 앞에 구름처럼 모이는 것을 생생히 목격하였기 때문에 그런 왕조를 말발굽으로 짓밟는 데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구세주를 자처했다. 실지로 그들은 정복 후에 백성들을 배부르게 했다. 따라서 그들은 애초부터 유교의 도덕으로 요란스럽게 치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민족의 왕조도 정치가 안정되면서 차츰 통치 수단으로 유교를 받아들이고 그와 더불어 이내 몸에 맞지 않는 중국의 도덕을 흉내내게 되고, 유목민의 도덕을 상스럽게 여기게 되면서 서서히 썩기 시작한다.
[도덕적으로 가장 건실했던 삼국시대]
한국은 위아래가 함께 가장 건실한 때가 삼국시대였다. 이어 통일신라의 초기와 중기, 고려의 초기와 중기, 조선의 초기가 그 뒤를 잇는다. 삼국시대는 명재상 명림답부가 무도한 차대왕을 죽이고 그 아우를 신대왕으로 옹립한 것과 같이 신하가 왕을 시해하고 새 왕을 세우거나 신라와의 교전 중 백제의 성왕이 죽은 것과 같이 전쟁에서 왕이 죽는 등 유교적 도덕 잣대로 보면, 상상도 못할 일이 드물지 않게 발생했지만, 나라의 기강이 엄연하고 백성들이 활달하고 의연했다. 요새 식으로 좀 속되게 말하면 쿠데타나 패전을 두고 두고 '씹는' 일이 없었다. 어진 신하가 폭군을 물리치는 것이 오히려 훌륭한 현실적 대안으로 받아들여졌다. 전쟁에 이긴 왕은 국내에서 칭송되었고 전쟁에서 진 왕은 국내에서 분발하여 다시 일어서게 도와 주었다.
[세속오계는 신라의 몸에 맞는 도덕]
이 시대에는 불교와 유교를 받아들이되, 그 도그마에 빠진 적이 없었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된 상황에 살았기 때문에 두 고등 종교의 숭고한 도덕을 현실에 접목하여 각기 나라 사정에 따라 몸에 맞는 도덕을 만들었다. 이것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는 게 바로 원광법사의 세속오계이다. 이것은 그 기준이 지나치게 높지 않고 실질적이었기 때문에 지도자들을 위선에 빠뜨리는 족쇄로 작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통일신라의 후기에 접어들면, 전쟁의 위협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지배층이 오로지 기득권을 유지 확장하는 데에 골몰하게 된다. 정치 안정과 행정의 효율성을 동시에 가져다 준 유교 곧 국학(682)과 독서삼품과(788)가 후기에 들면서 골품제와 도당유학파(渡唐留學派)에 밀려 유명무실하게 되고, 불교가 중앙귀족과 지방의 호족 사이에 각기 교종과 선종으로 나뉘어 권력다툼에 이용되었다. 그러자 유불 양쪽의 도덕을 그 이전 어느 때보다 소리 높여 외쳤지만, 그것은 정적과 백성에 대해 요구하는 것이었지 자신들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전락했다.
[고려 문인들의 위선]
고려에서도 유사한 일이 반복되었다. 재통일 과정의 전쟁 중에 도덕을 깃발에 달고 다닐 수가 없었다. 위아래가 똘똘 뭉쳐 적에게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위아래가 똘똘 뭉치는 것, 그것이 현실적 도덕이었다. 궁예의 예에서도 보듯이 강압과 폭정으로 위아래가 뭉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고려가 요(遼)나 금(金)과 전쟁을 할 때도 한가롭게 칼을 든 침략자들을 도덕으로 꾸짖을 수 없었다. 이 때도 위아래가 똘똘 뭉쳐 적에게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도덕적 타락은 오히려 외세의 위협이 없어지고 태평성대가 도래하면서 유교의 도덕을 소리 높여 외치던 후기에 만연했다. 유교의 도덕을 잘 아는 문인은 무식한 무인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의 도덕 곧 유교를 단지 잘 알 뿐 실천하지 않은 자들에 지나지 않았다. 무인들이 크게 노했고 나라는 풍비박산했다. 그러나 이들은 상대적인 힘으로 보아 세계 역사상 최강이었던, 오늘날의 미국보다 세었던 몽고를 상대로 40년을 버틸 수 있었다.
[위선자가 들끓었던 조선 중기와 후기]
유교, 그 중에서도 성리학을 유일한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였던 조선은 초기는 건실했지만 일찌감치 중기부터 썩어 문드러졌다. 외세의 위협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지배자들은 백성을 오로지 착취의 수단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도덕은 소리 높여 외쳤지만, 상복을 몇 년 입느냐, 하는 지극히 사소한 것을 두고도 패를 갈라 목숨을 걸고 철저히 따졌지만, 백성들의 고충은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조세를 걷어 이것을 다 착복하고 국고는 텅텅 비게 했던 것이다. 얼마나 나라의 곳간이 비었으면, 대원군이 겨우 경복궁 하나 재건하면서 상평통보의 100배에 해당하는 당백전(當百錢)을 주조해서 강제로 유통시켰지만, 1년만에 그 가치가 20분의 1로 떨어져 버렸다. 인플레가 연 2천%가 되었다는 말이다. 양반들의 말은 빛났지만, 그 행동은 어둡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철저한 위선의 시대였다. 그 위선을 통렬하게 풍자한 것이 바로 탈춤이다.
[빈 라덴은 미국 자체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도덕 과잉이 정치를 망치는 또 다른 좋은 예는 서양의 중세와 오늘날의 중동이다. 그들은 기독교와 회교라는 밤하늘의 별보다 빛나는 높은 도덕률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러면서 지배층은 철저히 민중을 착취한다. 빈 라덴과 알 카에다가 미국을 증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실은 미국의 종교도 문화도 정치도 경제도 아니다. 그것은 존중하고 부러워한다. 다만 미국이 국내에서는 자유와 평등을 그렇게 강조하고 실지로 잘 보장하고 있지만, 국가 이익을 위해서 중동의 왕족과 귀족과 한통속이 되어 그들을 비호함으로써 중동의 부가 민중들에게 전혀 분배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독재자가 되고 말았지만, 사담 후세인이 득세하게 된 큰 이유는 서민으로서 왕족과 귀족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름도 멋진 '공화국 수비대'가 미군의 진군 나팔소리만 듣고 뿔뿔이 흩어진 것은 후세인이 중동의 도덕 과잉을 악용한 자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산국가들의 독선]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20세기의 공산국가들이다.
종교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악용되는가를 속속들이 간파한 마르크스였지만, 그를 따른 자들이 그 마르크스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음으로써 공산주의의 도덕률은 신성불가침하게 되었다. 그 도덕에 맞춰 날마다 반성하고 날마다 비판하고 날마다 재판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증오가 가득 차게 되었다. 새로운 지배층들은 이 새로운 종교를, 도덕을 철저히 이용했다. 모든 것을 너무도 선명한 선과 악으로 나누어 원수를 악마를 마녀를 실은 멀쩡한 생사람을 마구 물어뜯었다. 전인민을 흡혈귀로 만들었다. 그러나 최고 지위에 오른 현인신은 죽기 전에는 절대 비판하지 못한다. 그 사진마저도 숭배의 대상이 되어 먼지 한 알 묻으면 안 된다.
동상마저도 비에 젖으면 안 되고 눈에 맞으면 안 된다.
순진한 청소년을 '도덕(紅)'으로 철저히 무장시켜 짐승처럼 '먹고 입는 것(專)'에만 관심이 있는 썩은 자들의 피로 황하와 양자강을 붉게 물들인 모택동은 감히 누구도 비판을 못했던 것이다. 그는 현인신이었으니까. 비록 중국을 재통일하는 위업을 이룩했으나, 이내 과대망상증에 빠진 한 인간을 무오류의 신으로 만들기 위해서 3,000만 명 이상이 죽어 주어야 했던 것이다.
[위선과 독선의 나라, 북한]
한국의 주사파와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하여 공산권이 거의 자멸한 후에도 기세등등한 북한에서는 지금도 죽은 김일성과 산 김정일, 그리고 김정일의 둘도 없는 동복동생 김경희를 빼고는 언제든지 강제노동과 교화와 혁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심지어 현재 북한의 제2인자인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도 1년 이상 '삼청교육대'에 다녀왔을 정도이다.
아무리 사소한 농담도 절대 함부로 못하는 사회가 북한이다. 농담에도 여차하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 선악을 선명하게 가르기 때문이다.
『너무도 우스운 짓을 너무도 진지하게 한다.』
아무도 믿을 수 없으니까 전국민의 5분의 1이 감시감독자이다. 그래도 안 되니까, 일을 할 때는 '고적대'를 파견하여 신나게 음악을 연주한다. 그렇게 애쓰는데도 1인당 겨우 10만원이면 국제 시세로 1년을 먹고 살 수 있는 식량이 없어서 전세계를 대상으로 깡통을 내밀거나 수시로 '사시미 칼'을 공중에 대고 휙 긋는다.
조선시대의 도덕 과잉을 월등히 능가하는 사회가 북한이다. 기껏 잘 산다고 해 봤자, 미국을 곧 능가한다고 해 봤자, 이제 겨우 일인당 국민소득이 1천불에 지나지 않는 중국보다 북한이 열 배나 못 사는 나라가 된 게 절대 우연이 아니다. 모택동의 문화혁명이 지금도 계속된다고 해 보자. 중국에는 10억 명의 거지와 2억 명의 도둑과 1억 명의 깡패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은 그런 짓을 대를 이어 반세기 이상 계속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도 하고 한국과 미국과 일본이 그렇게 달러다, 식량이다, 비료다, 중유다, 갖다 바쳐도 실지로 변한 건 하나도 없다. 오로지 한국의 희망 사항만 넘칠 따름이다. 마르크스와 김일성이란 영원불변의 도덕적 잣대에 맞춰 지금도 날마다 반성하고 날마다 비판하고 날마다 재판한다.
도덕 과잉의 나라에서는 되는 일이 없다. 열심히 시늉만 내고 열심히 도덕만 외치기 때문이다. 그것이 먹고 사는 최고 최선의 방법이다. '수령님의 교시와 장군님의 말씀'을 달달 외우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도덕적 기준이기 때문이다. 당 중앙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화단에 물 주라면 비 오는 날에도 물을 주면 되고 모를 심으라면 맨땅에도 모를 심으면 된다. 산이란 산은 모조리 개간하라면 무조건 개간하고 옥수수를 심으라면 심고 심되 빽빽이 심으라면 빽빽이 심으면 된다. 오로지 주체농법이 있을 따름이다. 그렇지 않으면 즉시 자아비판, 호상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런 도덕 과잉의 사회는 전혀 희망도 없다. 희망은 역설적으로 전쟁뿐이다. 실지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북한의 지배층을 제외하고는 북한의 주민들과 군인들은 하나같이 전쟁이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한다.
[정치가 악몽인 한국의 현실]
민주와 개혁과 통일이라는 듣기만 해도 황홀한 명분으로 멋지게 차려 입고서, 실은 조폭이나 다를 바 없이 행동하는 자들이 한국을 어느 사이에 온통 점령하고 말았다. 말마저 얼마나 거친지 정상적인 사람은 가슴이 섬뜩섬뜩하다. 그들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욕설과 침과 몽둥이와 죽창과 화염병이 마구 날아든다. 정치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이들은 언제나 원수와 적을 찾는 데는 귀신같으니까 저 북한처럼 나라가 완전히 결딴나도 절대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졸부가 아닌 서민들의 부채가 몇 년 사이 두 배 세 배로 늘어나고 신용불량자가 불과 몇 년 사이에 수십 배로 늘어나도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할 리가 없다. 자기 자신에게는 절대 적용하지 않고 원수들에게만 적용하는 도덕률을 산더미같이 쌓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도덕은 동기, 정치는 결과]
그들은 정치인이지만 정치와 도덕도 구별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도덕은 동기로 판단하고 정치는 결과로 판단한다는 것을, 기본의 기본을 모른다. 정치는 결과니까, 정치가 잘못되면 그것은 집권자의 책임이지만, 정치를 못하는 자들일수록 도덕적 잣대를 꺼내 자신들은 동기가 순수하다며 어떻게 궁예의 독심술을 배웠는지 동기가 순수하지 못한 자들을 동서고금에서 두루 찾아 그들을 날마다 성토하고 밤마다 욕한다. 그런 식으로 다시 정권을 유지하고 재창출한다. 잘못된 것은 하나같이 동기가 불순한 남 탓이다.
[도덕은 낮은 목소리로]
도덕은 현실에 맞게 눈높이를 낮추고 몸에 맞추어야 한다. 도덕은 몸소 실천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 도덕은 조금씩 그 기준을 높여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덕이 권력을 잡는 데 비상한 재주를 가진 정치인들에게 교묘하게 이용되어 나라에 온통 위선과 독선이 넘치게 된다. 결국 애꿎은 서민만 죽게 된다.
1997년의 외환위기는 대한민국의 유치원생도 IMF를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충격적인 경제 위기였다. 그에 힘입어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2001년 8월, IMF로부터 빌린 195억불 전액을 상환하면서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했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정치 선전만 일삼았을 뿐 외환위기에 대해 제대로 된 보고서 하나 작성하지 못했다.
외환위기 극복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채를 국가와 개인의 부채로 전환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160조원에 이르는 공적 자금(IMF 구제금융의 약 7배) 투입과 대대적인 소비 진작과 획기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로 고도 경제성장이란 일시적인 착시 현상을 일으켜 "국민의" 정부가 국민을 속였을 따름이다. 근본적으로 경제 체질을 개선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그 결과 거의 생산에 직접 연결되지 않으면서 외국인 직접 투자란 명목으로 핫 머니가 꾸준히 유입되어 2003년에만 한국 증시에서 외국 자본(주로 미국 자본)이 무려 34조원을 벌었다. IMF 구제금융에 대한 이자가 아니라 그 원금의 약 1.5배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한국이 국제환경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유례없는 저성장으로 고통받고 있는 와중에 태평양 건너에서 금융귀재들이 커피를 마시며 마우스 몇 번 클릭해서 어린애 발 비틀기로 벌어간 돈이 그 정도이다. 대학 졸업이 곧 실업을 의미하는 오늘의 한국에서 34조원이라면, 200만 명이 정식 취업해서 1년간 월급으로 받아 갈 수 있는 상상을 초월한 돈이다. 국내의 대기업과 금융 기관을 "반쯤 죽여" 실업자와 신용불량자를 양성하여 번 돈을 그렇게 미워한다는 미국에게 고스란히 바치고 있는 셈이다. 불구대천의 원수 일본에도 매년 무역흑자만 100억불 이상을 선사한다. "죽어라"고 벌어서 세상에서 제일 미운 미국과 일본에 갖다 바치는 게 반미와 반일의 핵심이다. 반미의 촛불이 밝을수록 친일파 척결의 횃불이 빛날수록 성조기의 별은 더 밝아지고 일장기의 태양은 더욱 빛난다.
겨우 아마추어 바둑 3급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가 포석과 정석부터 철저히 배워서 먼 미래에 프로 9단을 이길 생각을 않고 분노와 억지를 무기로 삼고 "묘수"에 운명을 걸고 텃세를 부리며 자기 집 안방에서 계속 판을 벌리면, 언젠가 한 방에 상대방을 거꾸러뜨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천만에! 눈뜨고 코 베일 수밖에 없다. 이런 바보는 동정도 못 받는다. 동네북이 될 뿐이다. 눈 먼 돈이란 정화수를 가득 담은 "깨진 바가지" 신세가 될 뿐이다. 금융 지식 격차(knowledge gap)가 무엇인지조차 들어보지 못한 자들의 오만과 편견과 분노로 국부가 속절없이 유출되고 있다.
어디서 잘못 되었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정치 논리에서 비롯되었다. 정치 과잉이 문제이다.
한국의 위기이자 기회는 샴페인을 터뜨리던 1986년에서 1988년 사이에 왔다. 저 유명한 석유, 환율, 금리의 3저 호황 무렵이다. 이 때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했다. 1983년 아웅산에서 김재익 경제수석이 김정일의 수류탄에 목숨을 잃지 않았으면, 틀림없이 했을 일이다. 거인이 사라지자 아무도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다. 그 당시에 싱가포르는 대위기였다. 안정, 자율, 개방이란 김재익의 거대한 구도에 의해 착실히 준비한 한국은 이 때 국제적인 호조건을 맞아 물가 안정, 고도 성장, 무역 흑자란 세 방향으로 뛰는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던 것이다. 처음으로 일본이 한국을 인정하고 두려워하던 때였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이 당시 인플레, 저성장, 무역적자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한국과는 정반대 상황이었다.
한국은 그 호기를 정치의 봄으로 경제 겨울을 준비했고 싱가포르는 그 위기를 구조 조정으로 경제의 봄을 준비했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경제 규모는 많은 차이가 나지만, 기본적으로 정부 주도 하에 계획 경제에서 혼합 경제로 혼합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 압축 성장하는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혼합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 옮겨가지 못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경제 성장으로 관료의 머리가 굳어지고 기업가의 가슴이 딱딱해지는 시점에서 경제에 문외한인 정치인들이 정치 논리를 펴서 시장 경제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면, 중진국은 선진국으로 올라서지 못한다.
그 위기 상황에서 싱가포르는 정치인과 정부 관료가 그 때까지의 지시감독으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봉사"하기로 결심한다. 일부 기업인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문을 더 열어 버렸다. 금융 개방을 통한 금융 개혁, 시장 개방을 통한 기업 개혁, 정부 개방을 통한 정부 개혁, 교육 개방을 통한 교육 개혁, 의료 개방을 통한 의료 개혁--이런 대대적인 뼈를 깎고 살을 발라내는 구조조정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확보했다. 금융과 기업과 교육과 의료에 자유를 한껏 주고 정부는 더 이상 머리가 아니라 손과 발이 되어 이들이 시키는 대로 손이 닳고 불이 부르트도록 방글방글 웃으며 뛰어다녔다.
내용이 좀 다르긴 하지만, 자본주의의 본산인 유럽과 미국도 80년대와 90년대 초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공룡 정부를 도롱뇽 정부로 바꾸고 기업과 금융에 자유의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영국, 미국, 뉴질랜드, 호주, 네덜란드, 핀란드, 스웨덴 등이 대표적으로 성공한 예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들도 시장 경제가 아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들도 자율과 통제가 혼재한 혼합경제였다.
제조업의 성공신화에 취하여 구조조정에 실패한 대표적인 나라가 중진국에서는 한국, 선진국에서는 일본과 독일이다. 구조조정의 핵심인 금융개혁에 세 나라 모두 실패했다. 일본과 독일은 잃어 버린 10년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제조업으로 여전히 선진국이지만, 이도 저도 아닌 한국은 중진국의 위치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뒤늦게, 김영삼 정부 후기에 OECD에 가입하면서 아무런 준비가 없이 덜컥 금융을 개방한 결과 한국은 외환위기 또는 금융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구조조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은 3개다. 정부 개혁으로 정부가 봉사 기관으로 거듭 나는 것이 제1 구조조정이고, 노조 개혁으로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제2 구조조정이고, 금융 개혁으로 금융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제3 구조조정이다.
김영삼 정부는 민주 정권이라는 자아도취에 빠져 곧 과거에 사로잡혀 미래를 희생했다. 선진국도 갈피를 못 잡을 정도로 전혀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경제도 구태의연한 민주의 깃발만 꽂으면 저절로 비상할 줄 알았던 것이다. "인기 영합"을 "민주적 의견 수렴"으로 착각하고 노동 시장의 유연성 확보라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기껏 그 전 정부가 거의 자리를 잡아 놓은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무노동 부분 임금"으로 후퇴시켰다. 임기를 1년 앞두고야 비로소 그 잘못을 깨닫고 노동 개혁을 서둘렀으나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노조가 너무 커졌고 그와 결탁된 야당의 공세가 너무 세찼던 것이다. 금융 개혁도 그런 대로 방향은 옳았다. 그러나 그것도 너무 늦었다. 금융 개방을 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이미 일을 그르친 후에, 외국의 단기 금융이 정부 통제 밖에서 마음껏 들어온 후에 그것도 홀로 깨끗한 척하던 "문민" 정부의 각종 권력형 부정부패가 드러난 후에 그것을 추진했으니, 야당과 금융노조가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오로지 정치 논리가 난무할 뿐이었다.
외환위기 후에 오히려 문제는 더 커졌다. 첫째는 새 정부가 야당 시절에 구여당의 발목 잡기로 노조 개혁과 금융 개혁을 못해서 닥친 위기를 오로지 그 이전 정부와 그 이전의 이전의 정부들에게 죄와 원죄를 덮어씌우면서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전혀 않았던 것이다. 분배의 정의를 내세워 노동귀족의 이익 단체인 노조에 더욱 힘을 실어 주고 금융 기관들을 외국에 거의 통째로 넘겨 주었다. 국내의 재벌이 밉다며 역차별의 벽을 높이 쌓아 전체 제조업 못지 않게 큰 금융 시장을 금융 지식이 몇 수나 위인 외국에게 애원하다시피 안겨 주었다.
그나마 국제 경쟁력이 있던 유일한 기관인 대기업마저 과거는 함께 참회하고 새로이 열린 마당을 만들어 거기서 함께 뛰자며 손을 잡아 주는 게 아니라, "집안 식구끼리만 알아야 할" 일까지 온통 세계만방에 훨씬 더 부풀려서 들추어냄으로써 낯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하고 부채비율을 당장 200% 이하로 줄이라고 다그쳐 급전이 바짝 마른 30대 대기업 가운데 절반이 도산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는 한편 어떻게 하든지 70년대의 중동 못지 않은 노다지가 북한에 있다며 꼬이는 척 뒤로 협박하여 현금을 끝없이 갖다 바치게 하고 그렇게 말을 잘 듣는 기업은 제3 공화국 때보다 더 물심양면으로 잘 도와 주었다.
김대중 정부의 적자인 노무현 정부는 아예 선두에 서서 1년 365일 정치 투쟁에 골몰한다. 김대중 정부는 그래도 외환위기를 맞아 야당 시절에는 반대했지만, 노조 개혁과 금융 개혁에 시늉은 냈으나, 경제에 최소한 관심은 가졌으나, 노무현 정부는 경제에는 입이 벌어질 정도의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오로지 표만 계산한다. 7%의 경제 성장을 호언장담한 경제가 국제 환경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3%에도 이르지 못하고 실업과 개인 부채, 신용불량자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오로지 입법 기관까지 장악하여 마음대로 통치하겠다는 일념뿐이다. 미국에는 단 한 방도 못 써 먹을, 자살용도 아닐 거고 중국이나 일본에 써 먹을 것도 아닌, 오로지 써 먹을 나라는 한국밖에 없는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사생결단하고 있는 북한에는 한도 없이 끝도 없이 너그럽고 다수당인 정적과 고분고분하지 않는 국내의 대기업과 북한을 미워하는 혈맹국 미국에는 한없이 가혹하다. 한국의 미래가 암담하다. (2003. 12. 29.)
법 위에 도덕이 있고 도덕 위에 양심이 있다. 양심은 누구나 타고나지만, 경험과 교육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진다. 인간 고유의 언어 능력이 각 개인의 언어 환경에 따라 겉모습이 전혀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양심도 허다하다. 양심은 선악을 구별하는 잣대인데, 한쪽에서 선이라고 확신하는 것을 다른 쪽에서 악이라고 확신하면 음극과 양극이 부딪칠 때처럼 두 양심이 만나는 순간 강렬한 불꽃이 일어난다.
양심은 원래 개별적인 것이지만, 그 양심이 노출된 문화에 따라 집단적인 모습을 띠는 경향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문화가 종교이다. 기독교인의 양심, 회교도의 양심, 불자의 양심, 힌두교도의 양심, 유교도의 양심은 근본을 거슬러올라가면 비슷하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과 이권이 축적되고 스며들고 끼어 들면서 나라마다 인종마다 판이하게 달라졌다. 심지어 동일한 종교 안에서도 종파에 따라 두 양심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거대한 강이 있다. 이 집단적인 양심이 오늘날까지 파릇파릇 살아있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중동이다. 회교도의 양심은 전세계를 경멸하고, 시아파와 수니파의 양심은 서로 상대방의 머리를 신발로 후려친다.
르네상스 이래 종교의 자리에 과학이 들어앉고 18세기 이래 농업의 기반을 상공업이 무너뜨리면서 인간의 양심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양심이 개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개별화된 양심은 급격히 약화되어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내팽개쳐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사회와 국가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간은 도덕보다 법을 앞세우게 되었다.
20세기에 공산혁명이 성공하면서 공산권에서는 그 양심이 다시 집단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규모였다. 방법은 모든 인간 사회를 크게 둘로 나누어 지배계급을 악으로, 피지배계급으로 선으로 정의하는 정교한 사회과학의 힘을 빌린 세뇌 작업이었다. 악의 뿌리를 물질의 소유로 확신하고, 생산 수단을 보유한 자들과 그들을 용인하고 부러워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국가는 파괴하고 해체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자 종교이자 붉은 양심이 되도록, 새로운 지배계층은 전인민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세뇌작업을 펼쳤다. 이런 와중에 정착된 말이 양심수이다. 30년, 40년이 지나도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장기수가 저쪽에선 불멸의 영웅이 되었다. 집단화된 사회주의의 양심은 자본주의의 법을 철저히 무시한다. 그것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지키는 사악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파업과 폭력과 전쟁이 찬양되고 고무된다.
진실이 아니라 허위가 도덕과 결합하면, 그 양심이 악을 선으로 확신하고 선을 악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그 사회와 국가는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70년 공산주의 실험의 실패가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 동일한 철학과 과학을 공유하지만,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점진적인 변화를 모색한 북구와 서구의 사회주의는 허위가 도덕과 결합하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진실이 도덕과 결합하도록 부단히 노력한 결과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을 거의 없애고 중산층이 두텁게 자리잡은 사회를 만들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현재 전혀 다른 두 양심이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격렬히 부딪치고 있다. 그 양심을 대통령과 그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코드라고 부르며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작업을 착착 진행시키는 한편, 북한은 그 체제를 보존하라고 양심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진심으로 전세계를 향하여, 특히 유일 초강대국 미국을 향하여 목에서 피가 나도록 외친다.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한국의 현대사는 전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북한의 현대사는 전파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풍토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저들은 한국의 부분적 진실과 북한의 총체적 허위를 정교하게 과학의 이름으로 다듬고 이를 도덕과 결합시켜 강철같은 새로운 양심을 만드는 일을 1980년 이후 급격히 진행시킬 수 있었다.
저들은 방송과 인터넷을 완전 장악하고 신문도 여럿 거느림에 따라 이제는 저들이 의도적으로 일으키는 끝없는 혼란의 바다에 시커먼 잠수함을 투입시켜 신천지를 향해 유유히 나아가고 있다. 혼란의 바다에서 쪽배와 돛단배, 유람선이 부딪치고 불타고 가라앉는 것을 통쾌하게 즐기며, 일찌감치 축배의 잔을 부딪친다.
허위가 도덕과 결합하면 하나님도 말릴 수 없는 양심을 갖게 되며, 그런 양심이 집단을 이룰 때, 그 사회와 국가는 파멸할 수밖에 없다. 히틀러의 독일, 스탈린의 소련, 모택동의 중국이 좋은 예이다. 그들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김일성 부자의 북한이 사망 직전에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진상한 신비한 약으로 회춘한 데 이어 도리어 남녘을 오시하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