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하는 북설악 산행기
李朝年(이조년)
梨花(이화)에 月白(월백)하고 銀漢(은한)이 三更(삼경)일 제
一枝春心(일지춘심)을 子規(자규)야 알랴마는
多情(다정)도 病(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 시조는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읽어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친숙한 것으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1975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조의 초장과 중장은 유년 시절에 살았던 나의 시골집 주변의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서 내가 처음으로 읽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선호하는 시조이기도 하다. 그러나 살면서 가장 가슴을 찐하게 울리는 구절은 역시 이 시조의 종장이다. 세상에는 사람을 괴롭히는 질병이 가지가지인데 시인은 多情病(다정병)을 병명 목록에 추가하여 그 증상은 잠을 못 자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多情(다정)도 病(병)이라 하니 무엇이 병일까요? 바로 情(정)이 많으면 병이 된다는 말이니 情(정)이란 무엇인가요? 한자 情의 의미는 많이 있는데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뜻, 마음, 사랑, 멋, 욕정, 사정, 상황, 진실로 등이 있습니다. 情의 뜻이 이토록 다양하니 다정병의 발생원인도 다양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학창시절에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생기면 가슴 설레는 다정병으로 잠 못 이루었고, 절친과 싸우고 나서 후회할 적에는 우정 때문에 다정병이 생겨 잠을 설쳤고, 선을 보는 전날 밤은 상대에 대한 상상으로 밤을 지새웠으니 이 또한 다정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자식을 낳아 키우는 동안에는 좋은 일 맘 상하는 일이 얼마나 많았으며 그때마다 마음의 상처 또는 기쁨으로 인한 다정병으로 뜬 눈으로 밤을 보낸 적이 어찌 하루 이틀이랴. 생각해 보건대, 참으로 다정병이란 태어나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얻는 순간부터 구천으로 갈 때까지 사람과 항상 함께하는 병, 다시 말해서 누구에게나 있는 지병이라 할 수 있으니 과연 시인 이조년의 통찰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이 60이 넘어서는 거꾸로 다정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말인가? 60이 넘으니 신체 기능이 저하하여 요즘은 매일 새벽 2시경에 잠이 깨서 마땅히 할 것도 없고 하여 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아침까지 시간을 죽이니 이 또한 다정병이라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번에는 다정병으로 잠 못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잠 못 이루어서 생기는 생각이 많은 다정병이니 거꾸로 다정병(逆多情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정병과 거꾸로 다정병의 치료제로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빡센 등산이 으뜸이 아닐런지요? 대간산우회 북설악 구간 다녀와서 첫 밤은 푹 잤으나 둘째 밤부터는 거꾸로 다정병으로 새벽시간 보내기가 참으로 힘들어서 오늘 새벽에는 북설악 구간 산행하며 보고 느꼈던 감회를 정리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나에게 미시령-마등령 구간은 처음 해보는 미답지이다. 10월 16일 새벽 03시 지나서 버스가 도착하고 단체 사진 찍고 출발하니 03시 20분경이다. 본디 나는 등산하면서 사진은 거의 찍지 않으며 트랭글 대신 네이버 지도로만 위치와 방향을 파악하며 진행하기 때문에 특정 지점의 통과 시간도 파악할 수 없으니 출발과 도착할 때의 시간만 대충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보아하니 나 빼고 우리 산우님들은 모두 훌륭한 찍사라서 산행 후기에 올라오는 사진들 모두 작품 사진에 버금가니 내가 찍사 대열에서 빠진들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여 이 글에서 양념 삼아 멋난 사진은 곁들이지 못하니 이 점은 양해를 바랍니다.
낮은 포복 자세로 철망을 밑으로 통과하여 산행대열에 끼어드니 어림잡아 일행 중에 중간쯤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내 앞에 가는 산우님을 헤아리니 두만강님과 주이님이였더라. 머리를 우러러 하늘을 보니 절반 이상은 구름이라 별빛은 띄엄띄엄 보이더니 한쪽 구름이 휑하니 비켜서니 하현달이 나타나며 눈을 크게 뜨고 달 주변을 살피니 누런 듯 붉은 듯 화성이 안전에 나타나고 달과 화성을 길게 연장하여 살펴보니 목성이 밝게 웃고 있구나. 목성을 지나면 토성이 있을진대 구름에 가려서 아쉬움이 남았다. 하늘의 별과 우리와 가까운 형제인 행성을 보는 것도 새벽 산행의 여러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아닐런가? 앞서 가는 두만강님에게 화성과 목성을 보라 하였더니 듣는 둥 마는 둥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앞만 보고 걸어가기에 놓칠세라 고개 내리고 앞을 보며 따라가니 어느새 황철봉 너덜길이 시작되길래 살펴보니 두만강님은 뒤 쳐진 듯 보이지 않고 주이님은 나 보고 앞서가라 하니 미안하여 고개 끄떡 인사하고 앞서니 이제부터는 홀로 산행이어라. 아직은 산행 초반이라 근육에 젖산이 덜 쌓여서 너덜 비탈을 성큼성큼 한참을 걸어가도 어두컴컴하여 끝이 어딘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앞서가는 다른 산악회팀을 앞질러 가는데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과연 내가 설악을 앞으로 몇 번이나 올 수 있을까?” 하니 마음이 가라앉더라. 돌이켜 보건대 젊은 시절에 여러 번 설악에 왔지만 케이블카 타고 권금성에 간 것이 고작이며 걸어서는 비선대를 지나 금강굴에 간 것이 전부이며 대청과 공룡을 처음 만난 것은 2021년 10월 02일의 일이니 60을 훌쩍 넘어서구나. 내가 생각해 보아도 오늘따라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와서 悵歎(창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대간산우회에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겠구나. 그렇다 하더라도 작금의 울적한 심정을 형언할 길이 없어 노래로 대신한다.
老人怨(노인원)
노인의 원망
嵁巖北雪嶽(감암북설악)
북설악 바위 너덜길에서
蕭瑟有老人(소슬유로인)
쓸쓸이 한 노인이
飄葉相與恨(표엽상여한)
흩날리는 잎과 함께 서러워하는구나
北邙朔風遣(북망삭풍견)
북망산에서 찬 바람 불어온다며
북망산은 洛陽(낙양)에 있는 작은 야산인데 고대 중국의 고위 벼슬아치의 무덤이 많이 있다고 하고 백제 의자왕은 소정방에게 포로로 잡혀 낙양에 끌려가서 죽은 후에 북망산에 묻혔다고 중국과 일본의 역사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기분은 가라앉았지만 진행속도는 그대로 유지하였더니 어느덧 황철봉 너덜길이 끝나고 내리막길을 따라 조금 진행한 후 네이버 지도 확인하니 황철봉이 500m 이내로다. 잠시 후에 황철봉 직전에서 우리 산우회의 선두팀을 만났으니 반갑기 그지 없었다. 선두조엔 정딱님, 한길님, 조르바님, 아야진님 그리고 제가 닉을 모르는 몇 분이 있었다. 황철봉에서도 어둑어둑하여 주변 조망은 감상할 수 없기에 선두조와 함께 저항령 방향으로 진행하였다. 저항령을 지나면서 확인하니 선두에 조르바님, 한길님, 아야진님만 보이길래 한결님에 물어보니 정딱님 등은 뒤 팀 챙겨야 한다고 속도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근데 저항령부터 마등령까지는 4km정도 되며 봉우리를 몇 개 넘어야 된다고 한다. 그런데 아야진님의 오르막 오르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걷는다면 그 분은 날아가는 수준이라 도저히 따라가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그리하여 아야진님은 먼저 날아가고 조르바님과 한길님과 셋이서 함께 걸었다. 봉우리 한 개를 오르니 날이 새서 조망할 수 있기에 바라보니 웅장한 설악의 봉우리가 면면히 이어져 있고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들어 멋진 설악의 원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또한 아울러 황철봉 바위길에서 가라앉았던 기분은 회복되었다. 몇 구비 바위너덜을 지나 떡자갈 같은 잔너덜을 지나니 마등령 전 마지막 봉우리(아마도 산우님들이 걸레봉이라 부르는 것 같다)라. 오늘 산행중 여기가 설악의 원경을 조망할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인지라 사방을 둘러보니 눈이 호강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여기서 한결님이 아침을 먹자고 하여 마등령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서 평평한 곳에 자리 잡아 셋이서 아침을 맛나게 먹었으니 아마도 07시가 지났던 것 같구나. 한결님이 부대찌개를 맛있게 요리하였는데 나는 도구를 준비하지 않아 냄새만 맡고 두 분이 맛있게 들었는데 냄새만으로도 배가 불러오는 것 같았다.
다시 진행하니 이윽고 마등령삼거리라 여기서 오세암 방향으로 우로 돌아서 내려가니 경사는 급하여 길은 험하지만 눈 앞에 전개되는 단풍은 어찌나 고운지 걸으면서도 넋이 나가니 발목도 몇 번 접질리는구나. 이번의 코스는 오세암에서 영시암 거쳐 백담사로 가는 것이지만 한결님과 조르바님 모두 코스 변경하여 봉정암으로 가는 것에 동의하니 오세암 갈림길에서 좌로 돌아 봉정암으로 향하였다. 이제부터 봉정암까지 4km 구간은 산줄기를 가로 질러가는 길이니 오르막 내리막이 많을 것이나 고도는 낮기에 단풍은 더욱 더 고울 것이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콩짝콩짝 두근거린다. 길게 심 호흡 한 번하고 주변을 올려보고 내려보니 단풍의 빛깔이 오세암 오던 길에서 본 것 보다 훨씬 곱고 진하더라. 곧 이내 가슴에는 황홀감이 출렁이는데 이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예전부터 암송하던 멋진 단풍노래로 대신한다.
山行(산행) 杜牧(두목)
遠上寒山石徑斜(원상한산석경사)
멀리 추운산 돌길 경사를 오르니
白雲生處有人家(백운생처유인가)
흰 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있구나
停車坐愛楓林晩(정거좌애풍림만)
수레 멈춰 늦 단풍을 바라보니
霜葉紅於二月花(상엽홍어이월화)
서리맞은 잎이 이월화(봄꽃)보다 붉구나
이렇게 즐거운 눈요기 하면서 오르막 내리막을 몇 번 반복하니 이내 가야동 계곡이며 이정표는 봉정암까지 1.8km가 남았다고 알려준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 없이 급오르막이 봉정암 입구의 용아장성 갈림길까지 이어지는데 이제는 근육에 젖산이 누적되어 머리가 빙빙 돌기도 하며 순간적으로 필름이 끊기는 느낌이니 주변 경치는 그림 속의 떡이로구나. 속도를 많이 줄일 수밖에 없었으나 조르바님은 이 험한 고바위를 저벅저벅 깃털처럼 가볍게 올라가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라.
봉정암에 올라오니 조르바님 먼저 와 기다리고 있고 나와 한결님은 에너지가 고갈되어 물 한 모금 목축이고 마지막 남은 과일을 나누며 당분을 보충하고 내려갈 채비를 하고 시간을 검토해보았더니, 오후 1시까지 백담사에 가려면 2시간 반 정도가 남았는데 거리를 확인하니 10km가 조금 넘더라. 지칸대장님이 공지한 시간을 맞추려면 정상적 속도로는 불가능이라 생각하였지만 오르막이 없이 내리막이라면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봉정암과 백담사의 고도차는 700m인데 거리가 10km면 평균경사가 10%가 안되므로 코스가 평이할 것이라는 것이 판단의 근거이다. 봉정암을 출발하여 급경사를 잠시 내려오니 경사는 이내 완만해져 편안한 산행길었다. 곧 옆에 수량이 제법 많은 계곡이 나타나더니 이곳이 쌍룡폭포였더라. 폭포를 바라보니 규모도 크고 수량도 많고 높이도 높고 해서 아무리 시간에 쫓긴들 이러한 멋진 풍광을 말귀에 바람 지나가듯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걸음을 멈추고 폭포를 올려다보며 멍하니 있었는데 옆에서 조르바님 말하기를 용아장성에 올라가서 바라보면 훨씬 더 볼만하다 하길래 뒤를 돌아보니 과연 용아장성이 우람하게 쌍룡을 지켜주고 있었구나. 여기서 폭포의 노래를 찾아보니 李白(이백)의 望廬山瀑布(망여산폭포)가 제일가는 폭포노래라하니 여기에 소개한다. 廬山(여산)은 중국의 명산이라고 한다.
望廬山瀑布(망여산폭포) 李白(이백)
여산 폭포를 바라보며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해가 떠 향로봉을 비추니 붉은 안개가 일고
遙看瀑布掛長川(요간폭포괘장천)
멀리서 폭포를 바라보니 긴 내에 걸쳐져 있구나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아래로 떨어지는 삼천척 물줄기는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락구천)
아마도 하늘에서 떨어진 은하수인가 보다
참으로 장쾌하고 멋진 노래다. 붉은 안개가 인다고 하였으니 아침 해가 떠오를 때 향로봉에서 폭포 쪽을 바라본 모양이다. 떨어지는 폭포수를 飛流(비류: 날아 흐르는 물)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 또한 기막힌 비유가 아닐 수 없다. 폭포에 관한 노래로 빠질 수 없는 것이 송도삼절 黃眞伊(황진이)의 朴淵瀑布(박연폭포)로 다음과 같다.
朴淵瀑布(박연폭포) 黃眞伊(황진이)
一派長川噴壑礱(일파장천분학롱)
한 갈래 긴 물줄기가 골에서 갈아져 나와서
龍湫百仞水潨潨(용추백인수총총)
백길 못(姑母潭:고모담)으로 모이는구나
飛泉倒瀉疑銀漢(비천도사의은한)
나는 샘(飛泉)에서 거꾸로 쏟아내니 마치 은하수 같고
怒瀑橫垂宛白虹(노폭횡수완백홍)
성난 폭포는 가로 드리워져 완연히 흰 무리(무지개)이구나
雹亂霆馳彌洞府(박란정치미동부)
어지러이 우박이 내리는 소리, 번개 내리치는 소리가 계곡에 가득하고
珠舂玉碎徹晴空(주용옥쇄철청공)
구슬 방아에 부서진 옥(못에서 위로 튀는 물방울)은 맑은 하늘을 궤뚫는 것 같도다
遊人莫道廬山勝(유인막도여산승)
나그네(아마도 이 백을 지칭한듯함)여 廬山(여산)이 빼어나다 말하지 말라
須識天摩冠海東(수식천마관해동)
천마산(박연폭포가 있는 산)이 해동에서 으뜸인 줄 알리라
이 노래는 이백의 망여산폭포보다 이해하기가 난해하나 표현은 훨씬 멋지구나. 폭포물줄기에 대해서 이백은 물이 똑바로 아래로 날아 흐른다(飛流直下비류직하)고 하였는데 진이는 도리어 이를 뒤집어서 나는 샘에서 물이 거꾸로 쏟아진다(飛泉倒瀉비천도사)고 말하니 과연 비유의 도사로구나. 폭포수에 대한 또 다른 표현으로 진이는 白虹(백홍: 흰 무지개)라고 하였는데 폭포의 동의어로는 虹泉(홍천: 무지개 샘: 아마도 폭포수 근처에서 떠도는 물방울에 햇빛이 적당한 각으로 비치면 무지개가 나타나므로 폭포수를 무지개 샘이라고 부르는 듯하다)이 있기에 제3구와 제4구에 이 글자를 “거꾸로” 박아넣어서 시작의 기교를 극대화하였구나. 朴淵(박연)은 폭포 위에 있는 못이고 폭포 아래에 있는 못은 姑母潭(고모담)이라고 하니 박연폭포는 못이 위와 아래에 있는 보기 드문 폭포인 것이리라. 그리고 제2구에서 龍湫(용추)가 왜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구나. 우리나라에도 계곡에 있는 못 가운데 용추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더러 있는데, 진이가 왜 생뚱맞게 용추를 가져다 썼는지 알 길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중국어 사전을 검색해 보았는데 해설을 보고 깜짝 놀라니라. 사전 왈 “龍湫(용추): 上有懸瀑(상유현폭) 下有深潭(하유심담) 謂之龍湫(위지용추)“라고 간단히 되어 있는데 새기면 ”위에는 폭포가 있고 아래에 깊은 못이 있으면 이를 용추라 한다”로 되니 다시 말해서 龍湫는 폭포 아래에 있는 깊은 못이라는 것으로 결국 고유명사가 아니고 일반명사였던 것인지라. 따라서 제2구의 용추는 자연스럽게 고모담이 되는 것이로다. 그리고 폭포수가 못에 떨어지면 물방울이 위로 튀는데 이 물방울을 珠舂玉碎(주용옥쇄: 구슬방아에 부스러진 옥돌)이라 하니 진실로 그 절묘한 비유에 다시 또 놀라는구나. 폭포에 대한 시선 이백과 황진이의 노래를 보니 해동 황진이의 것이 훨씬 더 사실적이면서 기교가 넘쳐나는구나.
웅장하고 멋진 만추 설악의 쌍룡폭포를 보니 마음이 동하여 하고 싶은 말이 나올랑 말랑하나 미천하기 그지없는 나의 재주로는 표현할 길이 막혀서 시선 이백을 압도하는 해동 고수 진이의 것을 훔치어서 한 수 읊어보노라.
題雙龍瀑布(제쌍룡폭포)
쌍룡폭포에 부쳐
飛泉猶龍攀(비천유용반)
나는 듯한 폭포는 더위잡고 오르는 용과 같고
白虹偶龍牙(백홍우용아)
흰 물줄기는 용아장성과 짝하는구나
湫葉作舟漂(추엽작주표)
못에 떨어진 잎은 배가 되어 떠도는데
望則忘所話(망즉망소화)
바라보자마자 하고픈 말 잊어버리네
잠시 쌍폭을 구경하고 서둘러 출발하여 부지런히 뛰다시피 걸어 영시암에 도착하여 시간을 확인하니 늦지 않을 것 같아서 한참 진행한 다음에 계곡물에 발을 씻기로 하였는데, 양말 벗고 계곡물에 들어가 무릎까지 담그니 관절의 피로가 절로 풀리는 것 같구나. 만추지절에 계곡물은 차가워 곧 예민한 발가락 끝은 얼어붙는 것 같아서 후다닥 나와서 의관 정제하고 백담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1시 15분 경이구나. 줄을 서서 표를 사고 용대리 식당에 도착하니 2시 20분쯤 되었는데, 이미 대부분의 산우님들은 산행을 마치고 반주를 곁들인 점심을 들고 있기에 한 자리 쥐어 잡고 늦은 점심을 먹으매 옥수수 막걸리 반주가 일품이로구나. 식사 마친 후 자리를 옮겨가며 산우님들과 정담을 나누다 보니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 분별 못하는 지경에 이르니 紅塵(홍진)에 묻혀 살면서 이만한 즐거움을 어디에서 구하랴. 또한 "거꾸로" 多情病(다정병)에 이만한 처방을 어느 병원에서 얻을 수 있겠는가?
|
첫댓글 산음님의 노래하는 북설악 산행기를 읽으면서
사람은 겉모습으로만 판단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우칩니다.
첨에 신입으로 오셨을 때 특전사+ 해병대 출신의 강인한 인상으로
말수도 없고 해서 문사철예 (文史哲藝)하고는 거리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ㅎ(미안)
이렇게 한시에 조예가 있고 술과 낭만을 즐길 줄 몰랐습니다.ㅎㅎ
정말 멋진 산우님이 오셔 우리 산행도 업그레이드 시켜주시고
나태해져가는 산우들이 열정을 가지고 계속 대간을 진행할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주는 거 같아 정말 고마움을 느낍니다.
노래하는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이조년의 이화에 월백하고~~ 시조를 아주 좋아합니다.
예송 형님 과찬의 말씀을 주시니 쑥스럽습니다. 저는 본래 무뚝뚝하고 조용히 지내왔는데 이제부터라도 좀 재밌게 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진실로 말하건대 백두대간산우회에서 오병철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형님으로서 아우로서 술 한잔 나누며 살아온 인생을 공유할 기회가 있겠지요. 졸필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산음형님~ 노래하는 북설악 산행기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제 뒤에서 달과 화성, 목성 알려 주실 때
잘 들었어요~ 올려다 보는데 중심이 휘청하길래 더 올려다보지는 않았구요.ㅎ
저는 끝까지 한시로만 산행기를 지으시려나? 하고 봤는데요.
간간히 넣어 주셨네요~
내려오시다가 봉정암에 들리시니..
제가 버스에 내려 왔을 때는 이미 도착해 있어야 할 산음님., 조르바님, 한결님이 안 보이시고, 아무도 안계셔서... 한결대장님께도 바람지칸대장님께도 전화했더랬죠.
제가 잘못왔나해서요ㅠ
멋진 산행기 노래~ 잘 들었습니다~^-^ 매력적이세요. 사람도 글도요~
두만강님 고마워요. 그냥 나도 요즘 미친 삶을 사는 것 같네. 이런 거 하는거 내 생후 처음일세. ㅎㅎㅎ
앞으로도 좋은 산우로 함께 합시다
"서리 맞은 잎이 봄꽃보다 붉구나" 산음님 산행기는 한 편의 시네요. 산을 사랑하는 이의 기상과 사랑이 산행기에 넘쳐 흐릅니다.
산들님 고마워요 그냥 기억을 더듬어서 썼는데 이제는 기억도 다음날이면 가물가물해지는 나이라서 .....
건강하시고 다음 산행에서 뵙지요
ㅋㅋ 첫인상이 너무 강직해 보여서 왠지 예편하셨나 했는데 ~~
다정병에 산행이 치료제가 되는군요~~
산음님 덕분에 한시가 아주 친근해졌어요~~
고전시간으로 돌아간듯
"주용옥쇄" 구슬방아에 부스러진 옥돌 캬~~^^
멋지네요~~
생생한 후기 좋네요
오늘은 조르바ㆍ한결 같이 동행해서 덜 심심하셨겠어요~~
거기다 봉정암까징~~우와~~
개인적으로 누가 빠를까 궁금했는데 선두로 아야진님이 치고 나가셨단 말이죠~~ㅋㅋ
범접할수 없는 세계를 세세하게 적어 놓으시니
감정이입이 되네요
아무튼 기분이 너~무~ 좋으셨나봐요
귀경 차 안에서 산음님이 크게 말씀하시는거 처음봐요~~ㅎㅎ
앞으로도 쭉~~ 행복한 산행되시길요~~^^
고마워요 미리내3님 단풍도 좋았고 폭포도 너무 좋았어요. 근데 제가 차안에서 소란을 떨어군요, 저는 기억도 안납니다. ㅎㅎㅎ
'다정병'이란 주제가 인상적이고, 간과해왔던 많은 것을 회고할 기회를 주시네요.
어릴 적부터 한학을 갠적으로 공부하셨다지만,
어쩌면 이렇게 보이는 만물마다 한시의 소재거리를 찾아내시는지,
문외한인 저로서는 신기하기만 하네요.
봉정암과 구곡담계곡 소식도 전해주시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