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의 사과가 저녁의 옆구리를 찌른다
김성신
생을 마감한 유언들이 측면을 서성인다
밤을 솎아내 당신을 끌어내는 동안
산등성이에 초승달이 피었다, 졌다
사과는 늑대처럼 하울링 하다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껍질 속에서 공벌레로 웅크리거나
보라매인 양 푸득푸득 홰를 친다
반포대교 난간 위, 추락주의 표지판
그 어떤 지문도 남기지 않는 한강변의 내일
폭설과 함께 사라질 당신의 표정을 본 적이 있지
사과는 얼굴과 다리가 붙어있다
달빛의 좌판이 천막을 길게 펼치는 저녁
흠집 난 사과들이 옹기종기 모여 어깨를 감싸 쥔다
골목의 바람은 주술을 외는 아가미 같아
기다리며 숨을 쉬고 손끝으로 노래를 듣게 되었지
적막의 껍질을 잇댄 슬픔은 둥글게 손을 맞잡는다
당신의 딱딱해진 간
오래전에 잘라낸 正午처럼
도무지 아픈 것들 사이로 차마 말하지 못한 미안하다는 말
여기저기 날개가 돋친다
사과 한 알을 건네면, 또 다른 사과들이 굴러들어 오고,
한 마리의 사과가 저녁의 옆구리를 찌른다
ㅡ시산맥 가을호
201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