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
왜 인간이 위대하다고 하는가? 짧은 생명을 살면서 문명과 문화를 일구고 가꾸기 때문이다. 마치 툰드라 지대의 온갖 식물이 짧은 여름 동안에 꽃을 피워 새로운 생명을 전하는 것과 유사하다. 광대한 우주의 흐름에 비하면 역시 인간의 삶은 찰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평소에 우리의 삶이 바람에 날리는 티끌처럼 한 순간에 사라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살아간다.
우리는 모두 사회의 일정한 영역 내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어울려 지낸다. 물론 그 기초는 가정이다. 점점 성장하면서 주변과의 교류를 통해 그 폭이 깊어지고 넓어진다. 그러한 과정에서 소위 친구들이 생기고 주로 그들과의 관계에서 모든 생활의 대부분을 함께한다. 따라서 친구는 가족을 제외하고 인간이 성장하는 전, 후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생의 동반자이다.
모든 사람들은 진정한 친구를 갈망한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때문에 직설적으로 자기 자신처럼 목숨을 걸고 지킬 수 있는 사람을 바라면서 딱 한 사람만 있어도 그는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오죽하면 『성경』의 「집회서(6장 5절~6절)」에 “부드러운 말은 친구를 많이 만들고 상냥한 말은 친구들을 정답게 한다.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과 잘 사귀어라. 그러나 네 마음을 털어 놓을 친구는 한 사람만 택하여라.”라고 했겠는가. 더구나 세태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따라서 ‘지음(知音)’과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를 남긴 「종자기(鍾子期)」와 「백아(伯牙)」의 관계가 더욱 친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역시 다양한 친구 사이의 수많은 일화가 우리 인생을 살찌운다.
대부분은 학교 혹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저절로 많은 친구들과 알게 된다. 아무래도 느슨한 시스템 내에서 이루어지는 교유는 그 끈끈한 정도의 강도가 강하지는 않다. 그냥 동창이라는 대명제 앞에 하나같이 의무적인 구성원으로서의 활동이 대부분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진짜 속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를 맺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개인적으로 의기가 투합했던 모임도 세월과 함께 이름은 있을지언정 활동이 미미하다, 젊은 시절에 「의암호」와 「통도사」 그리고 「섬진강가」에서 지냈던 추억이 마냥 그립다. 그나마 일 년 내내 전화나 안부 메시지조차 없는 것 보단 나은 정도이다. 그래도 모두가 시간을 활용하는 노력이 대단하다. 주로 문무겸전(文武兼全)하여 연구소의 운영, 화가, 음악가, 시인과 작가 등으로 지내면서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숨은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다. 다만 기존의 여러 모임도 하나씩 정리하는 시점이라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젊은 시절에 「서울대학교」에 편입하여 공부한 동료들이 있다.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마음껏 공부하고 여행도 하며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하면서 매우 자유분방한 시간을 보냈다. 모두 나름대로 학업에 열중하여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한편, 유신(維新)으로 인한 시국이 어수선하여 연일 이어지는 데모 대열의 행진과 집회를 안타깝게 지켜보기도 하였다. 더구나 「인문대학」의 분위기는 아주 비판적인지라 언행도 조심스러웠다. 그렇다고 신분상 그런 종류의 집회에는 참석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보람찬 시간을 보내고, 졸업 후에는 육사에서 생도들을 교육하였다. 소정의 근무 후에는 다시 야전에서 생활하였는데, 대부분이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두가 고위직에 진출하였다.
이런 과거의 동료들이 다시 모임을 갖는다. 물론 개별적으로는 수시로 만나기는 했지만 전체가 모임을 갖게 된 것은 무려 43년이 지난 셈이다. 모두가 반가운 마음으로 첫 회동을 하고서 3개월 단위로 만난다. 민감한 발언은 금기하며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에 인생과 문학 그리고 여행에 대한 화제가 주를 이룬다. 아예 참석자가 균일하게 분담하여 별도 회비 없이 참석자가 돌아가면서 커피를 산다.
또 다른 모임으로 문학에 취미가 있는 「문우회」가 있다. 물론 과거에 동료들과 함께 『합동문집』을 발간한 경험으로 참석하고 추가적인 회원을 안내하였다. 하지만 문학의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글을 대하기가 무척 곤혹스럽다. 본래의 취지에 맞게 문학과 인생을 논하는 자리로 환원하길 바란다. 그래야 단순한 친목회 수준을 넘어 순수한 정체성(正體性)을 지키는 명분이 있고 모두에게 떳떳한 긍지와 자부심을 준다. 단순히 글의 편수가 많다는 당착(撞着)에서 벗어나 진정한 문학의 장을 펼치길 바란다.
가장 부담 없이 자주 만나는 모임은 「역대 CEO 모임」과 대를 이은 「후손들의 회합」이다. 과거 방산분야 대표들의 조찬모임은 매월 잔잔한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전문가의 강연을 듣기도 한다. 후손끼리는 언제 만나도 즐겁고 유쾌하며, 마치 그 옛날에 선친들이 함께한 모임의 연속이란 생각이 든다. 소위 세대를 넘어 교유하는 ‘세교(世交)’ 모임이다. 언제라도 편안하게 만나 낭만과 깊은 정이 묻어나는 대화가 이루어진다.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이웃하며 형제처럼 지냈던 선친 친구의 아들이 외교관으로 봉직한 「조 대사」이다. 또한 문학을 전공하고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시며 두주불사의 대작으로 시(詩)와 인생을 논하시던 분의 아들인 「이 시인」과도 가난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속으로 눈물을 짓기도 한다.
역시 당대의 최고명필로 서예 분야에서 이름을 떨치신 분의 아들들인 「송 지사」와 「최 대표」도 자리를 함께한다. 한말 유학의 대가(석정 이정직)와 국문학의 태두(가람 이병기)이신 두 분의 손자들인 「이 교수」와 「이 사장」도 종종 자리를 함께하니 이보다 더한 보람을 어디서 찾겠는가? 더구나 선친의 음덕으로 오늘 날 서예의 대가인 「하석(何石) 박원규 선생」은 물론이고, 풍부한 문학적 학식으로 조언하고 성원하는 문예비평가인 「김 원장」과 같은 친구가 있으니, 그 어느 모임과도 비교할 수 없는 뜻 깊은 자리이다. 사실 이 다음 세대인 아들들도 이를 전수하여 길이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해 주길 바랄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아쉬운 일이지만 초, 중, 고교를 거치면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던 친구들이 일찍 세상을 떠났다. 젊은 시절의 추억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데 너무도 안타까운 이별이 못내 슬픔을 준다. 언제라도 고향을 찾으면 허심탄회하게 술잔을 기울이던 그때 그 시절이 애처롭도록 그립다. 그 대신에 불규칙적인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환담하는 시간이 그나마 옛 추억을 회상하는 즐거운 시간이다.
세상이 하수상하다보니 나보다 연배가 많은 분들과의 교유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과거에 여러 가지로 도움과 사랑을 주셨던 분들의 은혜를 어찌 잊겠는가? 물론 어떤 분은 건강문제로 접촉이 쉽지 않다. 하지만 선뜻 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항상 송구스럽게 지낸다.
동시에 후배들과 어울리기도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강요로 비치거나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상이할 경우가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따라서 소수의 단위로 개별적인 모임을 갖는 것이 효과적이란 생각이 든다.
뜻밖에도 한 동네에 거주하는 이웃사촌들과의 만남이 아주 재미가 있다. 목욕탕이나 산책을 하다가 조우하면 곧 장 간단한 식사를 반주와 곁들인다. 게다가 좋은 안주가 왔다고 부르면 서슴없이 집을 찾는다.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으니 무슨 말을 해도 편히 이해하고 경청한다. 비록 가까운 친, 인척이나 동창일지라도 단 한통의 전화조차 통하지 않는 서먹한 사이보다 훨씬 그 효용이 높아 삶에 활력소의 역할을 한다. 훨씬 젊은 사람들과의 대화는 더욱 기쁘고 권장할 일이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2023.9.8.작성/11.26.발표)
※ 금주부터 당분간은 해외여행으로 글을 게제하지 못함을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