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야훼
구약성경이 창조주의 창조활동을 적어 나갈 때에 ‘야훼’보다는 주로 ‘하나님’(‘엘로힘’ 또는 ‘엘’)을 쓴다. 그래서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하면서, 구약성경 첫머리 선언은 ‘하나님’을 주어로 한다. 시편 19편 창조 덩이에서도 피조물 우주가 나타나는 첫 싯줄에 ‘야훼’ 이름 대신에 ‘하나님’ 낱말이 쓰인다. 그러나 시편 시인은 끝 절에서 “하나님이여” 하는 대신에 “야훼여” 하고 외친다.
한편, 말씀을 주고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을 나타낼 때 구약성경은 ‘하나님’보다는 주로 ‘야훼’를 쓴다. 자기 백성과 관계를 맺으려는 하나님은 자기 이름 ‘야훼’를 모세에게 알려 주셨다(출3:14).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고 자기 백성으로 삼겠다는 약속으로 모세와 언약을 맺으며, 하나님은 이 언약의 골자(출6:6-8) 양 끝을 “나는 야훼라” 하는 선포로 묶으셨다. 하나님이 이름 없이 노래 신분에서 구원받을 길이 없고, 하나님 이름 없이 하나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셨다.
‘예수’라는 ‘성자 하나님’의 이름 없이 죄에서 구원받을 길이 없고, ‘예수’라는 ‘성자 하나님’의 이름 없이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미리 보여주신 셈이다. 신약성경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마1:1) ‘예수’라는 이름으로 끝난다(계22:21). 이름 ‘예수’가 새 언약(신약)의 양 끝을 묶는다.이름 ‘예수’가 양 끝을 차지하고, 그 안에 신약성결이 담기므로, ‘예수’는 신약성경 전체 내용과 성격을 규정한다.
이를 이루는 하나님은 ‘야훼’ 이름으로 나와 함께하신다. 그래서 나는 이름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인격체처럼 이름을 지닌 분을 만나 밀착관계를 맺을 수 있다.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 자신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사귈 수 있도록, 이름을 지니신 ‘분’으로 내게 자신을 드러내신다. 내가 하나님과 사귈 수 있게 되었으니, 하나님 이름 자체가 내게는 은총이다. 그래서 시편19편 시인은 그 은총에 고마운 나머지 ‘야훼’ 이름으로 내게 오시는 분 하나님을 향하여, “야훼!”하고 부른다. 어디 그뿐인가?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예수’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예수’라는 이름으로 나를 만나신다. 그리스도 사람은 이제 “예수여!” 하고 하나님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시편 시인은 이러한 야훼 하나님을 주님으로 하고, 자신을 그분의 종으로 내놓는다. ‘당신의 종’이라고 두 차례나(11,13절) 주 야훼 하나님의 종으로 자신을 내세운다. ‘야훼의 종’은 새로 얻은 신분이다. 시인은 아제 야훼 하나님과 주종관계에 들어가 있다. 처음 열 절에서는 하나님·야훼가 3인칭이지만, 11-14절에서는 2인칭 ‘당신’으로 바뀐다. 하나님이 2인칭으로 내게 ‘당신’이 되어 주실 때 하나님과 나 사이 밀착관계는 맺어지기 시작한다.
시편 시인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당신의 종’이라고 말할 수 있기에 앞서, 하나님은 가르침 ·계시로 자신을 나타내는 은총을 먼저 베푸셨다. 하나님과 맺는 주종관계는 말씀으로 맺는다.
처음 여섯 절에는 하나님 이름 ‘야훼’가 한차례도 나타나지 않다가 7,8,9 석 절에서 한 절에 두 차례씩 여섯 차례, 구리고 맨 끝 싯줄에서 한차례, 이렇게 모두 일곱 차례 나타난다. 숫자 7은 영적인 온전함·완전성을 상징한다. 성경에서 7은 가장 상징적인 진한 숫자다. 일주일은 7일로 채워지고, 일곱째 날은 안식일이다. 숫자 7이 완전한 한 바퀴(주기·순환)를 들린다.
“하나님이 이렛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창2:3)하는 말씀에서 하나님이 어느날보다도 일곱째 날을 특별하게 다루신 것을 알 수 있다. 안식년은 일곱째 해다(레 25:4-5). 희년은 먼저 일곱 안식년(마흔아홉,7×7)을 지키고 난 다음 해다(레25:8-10). 일년에 한차례 돌아오는 속되일 의식에서 숫자 7이 완전한 회복을 위해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에 따른 부정 때문에 같이 부정해진 제단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하려고, 대제사장은 피를 제단 위에 일곱 번 뿌렸다(레16:19). 이렇게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고자 할 때, 숫자 7을 단위로 쓰신다. 시인은 시편 19편에서 숫자 7의 상징성을 의식하고 의도족으로 하나님 이름 ‘야훼’를 일곱 번 썼다. 온전한 야훼의 가르침·야훼와 맺는 온전한 관계가 내 삶을 온전하게 만들어 나간다.
소리 모티프
‘되풀이되는 요소’(모티프) 소리가 이 시편에서 돋보인다. 소리 모티프가 창조 덩이·말씀덩이·내 실존 덩이를 꿴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하나님 영광이 내 눈을 압도해야 하는데, 대신 내 귀를 압도한다. 하나님 영광을 알리는 소리·하나님 손이 지은 것을 선포하는 소리(1절), 이야기소리·들려주는 소리(2절), ‘들리지 않는다’고 하는 소리(3절)·온 땅에 퍼지는 소리·세상 끝까지 이르는 말소리(4절)가 창조 덩이(1-6절)의 특징을 이룬다.
야훼의 가르침 소리 타이름 소리(7절)와 야훼의 명령 소리(8절)가 말씀 덩이(7-10)에서 두드러진다. 현대인은 말씀을 주로 눈으로 읽지만, 옛날 사람은 소리로 읽었고, 사람들은 그 소리에 귀기울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소리에 살려오고, 또 소리에 실려 퍼져 나간다.
이러한 소리를 받아들인 사람의 입에서 소리가 흘러나온다. 수사학 질문으로 공감대에 호소하는 소리(12)와 하나님께 간청하는 소리(13절)가 들려온다. 하나님은 내 입의 말소리·마음의 읊조림 소리(14절)를 받아들이신다. 또 마지막 싯줄에서 “야훼여!”라는 부름말 소리에 잇대어 “내 반석이시여, 나를 되차자으시는 분이여!” 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외침소리가 들려온다. 하나님 말씀 소리에 화답하는 내 소리, 그리고 하나님게 간구하는 내 소리가 ‘내 실족덩이’(11-14절)를 개성 있게 표현한다. 소리 ̄소리 ̄소리, 이렇게 시편 19편은 소리로 엮인다. 소리 시편이다.
창조 덩이 | 영광을 알리는 소리 (1절) 지으심을 선포하는 소리 (1절) 이야기 소리 (2절) 들려주는 소리 (2절) ‘들리지 않는다’고 하는 소리 (3절) 온 땅에 퍼지는 소리 (4절) 세상 끝까지 이르는 말소리 (4절) |
말씀 덩이 | 야훼의 가르침 소리 (7절) 야훼의 타이름 소리 (7절) 야훼의 명령 소리 (8절) |
내 실존 덩이 | 말씀 소리 (11절) 공감대에 호소하는 소리 (12절) 하나님께 간청하는 소리 (12-13절) 입의 말소리(14절) 마음의 읊조림 소리 (14절) “야훼여!” 하는 부름말 소리 (14절) 믿음을 고백하는 소리 (14절) |
첫댓글
내게 하나님의 이름 주시고
나와 하나님과의 밀착 관계를
맺으시며, 또한 예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복을 주시고
내게 타이름과 가르침과
내게 다시 들려주시는 성령의
소리로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읊조림으로 내 존재의 가치와
확실성으로 내 반석이 되어 주신
하나님께서 나를 건사하시며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주님께서 하십니다!!
주님께 영광!!
노래하며 살고
노래하며 나누네
소리를 채우고
소리를 나누네
주님께서 하십니다~!!
주님께 영광~!!
예수의 이름을 부를수
있는 복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