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대 투수 최동원이 입학한 1976년은 연세대학교 야구부 역사상 최고의 전력 이요 르네상스의 시작 이었다.
이해 연고전 야구에서도 최동원의 역투와 김봉연 함상윤 이광은의 활약으로 고대에 2-1승 76연고 정기전의 시작을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승전보를 울리며.. 장충체육관 농구장으로 향한다.
당시 연세대 야구부 전력은 미니 국가대표팀 이었다.
경남고 선배인 배경환이 활약했던 투수진에 최동원과 이우상이 합류 했고.. 야수로는 유격수와 3루수 모두를 소화하는 장충고 출신의 양세종이 동기생들 이었다..
이미 투수진에는 만능선수 배재고 출신의 이광은이 있었고 박해종이 육군 제대 후 팀 복학 하기전 까지 강철 어깨와 빼어난 타격으로 포수를 봤었던 이광은과는 영혼의 단짝 신언호가 있었다.
경북고 트리오 유격수 정진호 내 외야를 오가며 재치있는 플레이가 돋보였던 김대진..
박해종과 함께 군 제대 후 복학한 재간둥이 이자 중 장거리가 뛰어났던 2루수 함상윤..
1루에는 연고전 노히트 노런의 사나이 군산상고 출신의 홈런왕 김봉연이 활약..
이 멤버가 1976년 백호기 1회전에서 천하의 김재박이 활약한 한국화장품과 맞대결 4-4 동점 상황 에서 9회 등판한 이광은이 김재박에게 끝내기 2점 홈런 허용 4-6으로 석패.. 결국 모든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이 경기 승자가 백호기 우승을 차지한다.
1977년 역시 연대 야구는 승승장구 잘 나갔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할까.. 1978년 공군을 제대한 배명고 출신의 박철순이 복학하며 팀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던 중 결국 우리 모두가 아는 그 사건이 벌어진다..
연세 야구 중흥기를 이끌었던 이재환 감독이 옷을 벗었고 박철순은 미국으로 최동원은 트라우마에 의한 심리적인 충격으로 야구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시간은 흐르고 1980년 최동원의 마지막 모교 무대 였다.
하지만 감독도 코치도 없이 부산상고 출신의 1루수 조호성이 선수겸 감독으로 있는 연대 야구부는 58년 개띠 트리오 중 대구상고의 김시진과 군산상고의 김용남이 활약한 야구의 서울대라 불렸던 한양대 전력은 막강 했다.
춘계 종별 백호기..등 부진 했던 연대 야구부가
추계 선수권에서
부산상고의 2년생 윤학길과 선린상고의 언더스로 3년생 고 이길환이 역투 하며 부진한 최동원을 대신 연대를 4강에 올려 놓는다.
4강 상대는 최강 한양대.. 윤학길이 선발 등판 했지만
김경표 이근식 이만수에게 3연속 2루타를 허용하며 1실점 .. 그러나 이때 인천고 출신의 우익수 손영주가 이만수의 타구를 펜스 플레이 후 2루수 김동재에게 중계 김동재는 그림 같은 홈 송구로 포수 박철영에게 다이렉트 이근식을 홈에서 잡으며 경기의 양상을 뒤집으며 김시진과 김용남이 역투한 한양대를 제압 결승에 진출 한다..
결승전 상대는 대구상고 출신의 킥이 얼굴 까지 올라오던 박영진이 에이스로 있던 성균관 이었다..
이날 서울 운동장 야구장에는 성균관대 재학생은 물론이요 졸업생들 까지 3만의 관중 이라면 2만 8천명이 성대 응원 이었다.
고 최동원이 선발 등판 3회 까지는 꾸역투로 잘 막아 나갔다. 하지만 그후 최동원의 폭포수 같은 커브와 와일드씽의 씽씽투는 성대 타선을 2안타로 잠재우는 마지막 불꽃투 대 활약 이었다.
역투 하던 성대 박영진에게 2년생 선린상고의 김문영이 좌월 1점 홈런으로 팀의 리드를 가져오며..
준결승 부터 팀에 합류한 양세종과 신입생 김영균 김성래가 활약 성대를 3-0 완봉 셧아웃 시키며 위대한 불세출의 최동원의 신촌 에서의 야구 인생은 마감 한다.
최동원은 동향의 박영길 감독이 지휘하는 아마 롯데로 양세종은 제일은행 조호성은 한일은행..입단 새로운 시작을 고했다.
2023년 연고 정기전을 앞두고 모든 상황이 불리 하기만 이 때 최동원의 맑은 영혼이 연대 5개 스포츠단의 축복을 바라며 금테 안경 너머로 무조건 자신감만 가지고 공을 던진 그를 떠올려 봤습니다.
@웅이훈이네! 맞습니다. 차라리 그때 김정수와 박노준을 맞 바꿔서 진로를 택했으면 노준 형님이 서울대전에 투구를 하는 모습을 안 봤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박노준 형님도 지지리도 복도 없었습니다. 그 좋은 테크닉을 제대로 프로에 와서 써 보지도 못 하고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웅이훈이네! 그리고 조규제는 재학시절 자기 역활을 충분히 해낸 선수중에 한명입니다. 또 타자쪽에 광주일고 출신의 김성규는 특유의 악바리 근성으로 자기 역활을 해냈다고 말 할수 있겠지요. 동기로 경북고 출신의 문병권은 고교시절 혹사로 인해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이진 못 했고요. 조계현은 1학년 초반에는 나오질 않다가 정기전때 김정수 뒤를 이어 마운드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것이 생각도 나고 오늘밤은 옛 생각이 많이 나는군요.
@김정민조규제 맨발신장은 170센티입니다. 그작은 체구에 비교적 빠른 직구와 자로 잰듯한 제구력과 변화구로 연대마운드의 에이스역할을 톡톡히 해줬습니다. 그리고 광주일고 출신중엔 박재홍ㅡ이호성ㅡ김성규순으로 잘했던 것 같습니다. 단연 으뜸은 박재홍이었구요(고대전 킬러) 김선진과 동기인 진흥의 송유석도 연대로 왔으면 참 좋을뻔 했습니다. 송유석이 유튜브에서 밝힌 사실인데 김정수의 옵션이 85학번까지 적용되어 자기와 동기 한명이 그냥 걸어서 연대로 갈뻔 했다니 연대가 김정수에게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웅이훈이 네! 맞습니다. 차라리 그때 김정수와 박노준을 맞 바꿔서 진로를 택했으면 노준 형님이 서울대전에 투구를 하는 모습을 안 봤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박노준 형님도 지지리도 복도 없었습니다. 그 좋은 테크닉을 제대로 프로에 와서 써 보지도 못 하고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웅이훈이 네! 그리고 조규제는 재학시절 자기 역활을 충분히 해낸 선수중에 한명입니다. 또 타자쪽에 광주일고 출신의 김성규는 특유의 악바리 근성으로 자기 역활을 해냈다고 말 할수 있겠지요. 동기로 경북고 출신의 문병권은 고교시절 혹사로 인해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이진 못 했고요. 조계현은 1학년 초반에는 나오질 않다가 정기전때 김정수 뒤를 이어 마운드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것이 생각도 나고 오늘밤은 옛 생각이 많이 나는군요.
@김정민 조규제 맨발신장은 170센티입니다.
그작은 체구에 비교적 빠른 직구와 자로 잰듯한 제구력과 변화구로 연대마운드의 에이스역할을 톡톡히 해줬습니다.
그리고 광주일고 출신중엔 박재홍ㅡ이호성ㅡ김성규순으로 잘했던 것 같습니다.
단연 으뜸은 박재홍이었구요(고대전 킬러)
김선진과 동기인 진흥의 송유석도 연대로 왔으면 참 좋을뻔 했습니다.
송유석이 유튜브에서 밝힌 사실인데 김정수의 옵션이 85학번까지 적용되어 자기와 동기 한명이 그냥 걸어서 연대로 갈뻔 했다니 연대가 김정수에게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웅이훈이 네! 지금 생각해도 장채근, 송유석 두 선수는 아까운 선수들이었습니다. 당시 조금만 감독이 신경을 썼으면 그냥 올뻔했었는데요.
@백양로 네! 저쪽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겠지요. 조양근은 하도 터져 소풍갔다 반학기 더 다니고 졸업 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웅이훈이 방수윈은 어느 고교 출신인가요?
@연세화이팅7 광주일고요ㅡ이상윤과 쌍두마차였는데 우승은 못했지요
@연세화이팅7 해태에서 슬라이더와 직구뿐인 선동열에게 다양한 변화구를 전수했다고 하더군요.
최동원 선수. 보고 싶네요
녜..
이맘쯤 이면
더욱 그립고 보고픈 이가 최동원 투수 입니다.
저도 최동원형님 생각하면 가슴이 찡합니다
@웅이훈이 네! 저도 동감합니다. 어떻게 보면 어려서 부터 돌아가실때 까지 죽어라 고생만 하다가 가신 것 같아서 가슴이 찡 합니다.
최동원님은 연대재학중에도 정말 대단한분이시셨군요
연세대 야구부의 역사. 최동원 선수는 대단한 선수였군요.
80년 추계 선수권에서 양세종은 왜 준결승부터 합류했는지요?
부상 이었는지
늦게 합류 했는데
6타수 6안타를 기록 합니다.
규정 타석 미달로 타격왕은 안되었지만
나오면 다 안타..ㅋ
얼굴도 잘 생기고 신장183센티에 물개처럼 몸도 잘 빠져서 별명이 카사블랑카였습니다.
양세종형님은 한참 잘나가던 OB베어스 시절에 현역병으로 입대만 안했어도 대스타가 되었을텐데....
@백양로 그랬군요
@웅이훈이 아쉽네요
@연세화이팅7 잘 나가다 정말 군대때문에 인생 망친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