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인터넷 공개강좌 2022년 7월 20일
시강의 6 회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최 진 연(시인,목사,창립회장)
1. 자기가 쌓아올린 탑 :
내가 시를 처음 발표한 게 ‘67년이니 55년이 된다. 출간준비 중인 연작만으로 이룬 제22시집 『사랑노래 88』과 별도의 시집 한 권 분량의 작품까지 모두 1천6백여 편의 작품을 썼다. 그러나 나는 누구에게 개인적인 시 강의를 들은 적이 없다. 모든 예술은 자기가 쌓아올린 탑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간에 끊임없이 시를 읽으면서 우수한 시란 어떤 것인가를 터득하여 나의 시론을 적립해서 써 왔다. 그러므로 시를 어떻게 써야 한다고 간단히 말하기는 어렵다. 전통적인 교훈대로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 이외에 왕도가 없다고 본다.
서정주 시인은 시를 많이 생각하는 만큼 좋은 시를 쓰게 된다는 말을 그의 시론 서적에 썼다. 그러나 아무 작품이나 많이 읽는다고 시적 안목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요즘 <시문학>지 외의 문학잡지들은 시인들의 이름을 보고 골라 읽고 버리는 편이다. 시적 특성 곧 시성(詩性)을 지닌 작품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해마다 배출되는 시인의 수가 고등고시 합격자보다 훨씬 적다는 옛날에 등장한 시인들, 몇 해만에 엄격한 심사를 거쳐 어렵게 등단한 시인들이 쓰는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빛나기 때문에 그런 시인들의 이름이 발견되면 찾아 읽고 나머지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 대충 살펴보고 버리게 된다. 자기 예술의 탑을 아름답고 웅장하게 쌓아올리시기 바란다.
2. 좋은 시란 어떤 것인가? :
좋은 시를 쓰려면 좋은 작품을 쓰려는 의지와 치열한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노력 없는 성공은 없는 법이다. 무엇보다 시 공부를 해야 한다. 정평 있는 시인들의 작품집을 구독하고 시론서적들도 구독해서 시를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시인 이름을 얻었다고 해서 시 공부를 포기한 얼치기들이 너무 많음을 문학지들이 보여주고 있다. 시적 안목이 생긴다는 것은 꾸준한 독서와 습작을 통해서 자기 시론을 적립됨을 뜻한다. 나름대로 자기의 시론을 확립해야 자신감을 가지고 쓸 것이다.
나는 시에서 중요한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관념, 사상성(思想性)이다.
언어자체가 관념을 지녔지만 이 관념이 남용되면 시적 독미(시성)가 헐해지고 설명에 흐르기 쉽다.
시는 설명이 아닌 제시이다. 이런 면에서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시인은 김춘수와 문덕수이다. 이 두 시인의 시는 모더니즘 계열로 분류되는데, 관념을 그대로 노출하지 않고 형상화한다.
김춘수는 관념을 배제한다는 의미에서 무의미의 시를 주장하다가 말년에는 그의 이론에 회의를 토로했다. 시에서 관념을 배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고 의미를 배제한 시는 말 그대로 존재 자체가 무의미함을 깨달았기 때문 아닐까 한다.
문덕수 시인의 관념의 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영향 때문인지 <시문학>지 쪽에서는 관념을 지나치게 경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내가 <시문학>지에 「탈 관념은 가능한가?」란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어느 신인 및 그를 옹호하는 시인과 논전을 벌인 적이 있거니와, 지나치게 관념을 경시해도 좋은 시가 되지 못한다. 시적 공리성과 결부된 말이지만, 뭔가 사상적인 함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회화성(繪畵性)이다.
감각적인 표현을 하라는 말이다. 인지작용은 오감에 의해 일어나고, 그 중 가장 중요한 감각은 시각이다. 눈에 보이듯이 관념을 구체화 형상화해야 한다. 그 여자는 아름답다는 말은 관념적 표현인데, 여기에 ‘장미처럼 아름답다’고 비유하면 보다 구체적 표현이 된다. 이 경우 ‘여자’를 원관념이라 하고 ‘장미’를 보조관념이라 한다. 시에 비유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지(image)는 관념을 형상화하기 위한 언어창조라고 할 수 있다. ‘시는 이미지다.’ 라고 말할 정도로 이미지는 시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미지란 관념을 오감에 의해 느껴지게 형상화한 것이다. 이에 관해 자세히 알기를 원하는 사람은 필자의 문학평론집 『상상력과 시, 환상시와 허구시』를 읽어보기 바란다.
‘눈이 온다.’는 관념을
‘찢어진 하늘 틈으로
그 집 아이들 몰래몰래
눈이 내리고 있다
(필자의 「그 집의 겨울」끝부분)라고 하면 시각적 이미지 창조를 통한 형상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찢어진 하늘 틈으로’라는 말은 이 지구상에 내가 처음 만들어낸 창조적 이미지이다. 이런 신선한 이미지가 시를 시답게 만든다.
세 번째 중요한 시의 요소는 리듬, 곧 음악성(音樂性)이다.
내가 처음 접한 시집은 경북대사대국문과에 다니는 형님을 통한 김소월 시집이었고, 이것은 곧 민요조 시의 리듬을 접한 것이었다.
이후 시에는 리듬이 있어야 한다는 내 생각이 굳어졌다. 시의 음악성에 관해서는 긴 설명을 줄인다. 『한국시가의 율격이론』(성기옥)이 그 분야의 중요 이론서이다.
이상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성의 요소들이다. 즉 좋은 시가 되려면 사상성과 회화성 그리고 음악성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 하겠다. 이것을 도식적으로 표현하자면, 정삼각형의 세 꼭짓점에 각 요소를 하나씩 놓았을 때 그 등거리인 삼각형의 내부 중심점에 시가 놓였을 때 그 시가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받게 된다는 것이다.
3. 작품의 실제 보기 :
이론적인 논설보다 작품을 중심으로 창작 면에 도움이 되게 필자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어떤 작품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작자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으로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위의 세 요소가 잘 조화된 작품이 나오는가 하면 여의치 않을 때도 많다. 또 의도적으로 어느 쪽을 강조할 때도 있다.
벌레들이 늙은 나무의 속을 파먹고 있어
청진기를 대고 들어봐, 저 소리
봄 햇살의 비명 소리
봄바람과 겨울 풍설(風雪) 사이
오색딱따구리들도 보이고
짙은 녹색 나뭇잎들로 도배한 하늘도 보여
벌레들의 까만 똥으로 떨어지는 시간과
딱따구리 뱃속으로 들어간 공간
그 구멍으로 내다봐
수수깡 안경을 쓰고 에헴, 에헴 하는 아이들은
바람개비를 돌리지만
가슴을 쿵쿵 울리는 기침 소리도 들어봐 - 「고목」 전문.
이 시는 늙은이를 고목에 비유해서 그 늙어감의 비극성을 중심 관념으로 한 작품이다. 늙은이의 대칭어로 아이들을 등장시켰다. 첫 행이 좀 서술적이지만 시 전체를 볼 때 관념의 사물화에 성공한 작품이라 생각될 것이다.
‘봄 햇살’이란 늙은이의 젊은 날을 뜻하는 표현이고, ‘수수깡 안경을 쓰고 에헴, 에헴’ 하는 부분도 노년과 대비시킨 유년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다. ‘벌레들이 파먹고 있는 봄 햇살’ 역시 노년과 유년의 대비를 보여준다. ‘봄 햇살의 비명 소리’는 시각과 청각의 공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을 ‘청진기를 대고 들어보’는 이미지는 독창성이 있다고 하겠다. 셋째 연에서 시간과 공간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을 볼 수 있다. 리듬도 잘 살린, 나의 시론에 합격한 작품의 하나이다.
억세 꽃 벙거지를 쓴
산 하나가
떠내려가고 있다
우리의 한강이 가보지 못한 바다 밑에서
넙치들이 銀싸락을 주워 먹고
배가 더 하얗게 되어가고
산을 낚아 올리는
큰 손이
天上에 하나 걸려 있다 - 「상강霜降 무렵」 전문.
이 시는 첫 시집에 실린 짧은 시이지만 이미지즘에 충실함을 보여준다. 상상의 눈을 뜨고 시가 거느리고 있는 이미지, 리듬, 의미를 음미해보면 그 시성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특히 첫 연은 매우 신선한 이미지 창조를 보여주고 있다. 만추인 상강 무렵의 파란 하늘에 솟아 있는 억세꽃이 핀 산이 마치 둥둥 떠내려가는 느낌을 받아서 쓴 작품이다. ‘산이 떠내려간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문학에 흔히 쓰이는 과장법이 원용이다. 낡은 지폐처럼 꼬질꼬질 손때가 묻은 표현을 피해야 한다. ‘우리의 한강이 가보지 못한 바다’는 파란 하늘을 바다로 비유한 표현이다. 이 시를 쓸 당시인 70연대의 한강은 오염이 매우 심했다.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바다는 ‘한강이 가보지 못한’ 바다로 의인화 되어 있다. 이 표현은 비상식적이어서 경이감(奇想 conceit)을 줄 것이다.
‘넙치들이 銀싸락을 주워 먹는’ 것은 서리가 하얗게 내린 모습을 연상시켜주는 은유적 표현이다. ‘천상에 걸린 큰 손’은 별 의미가 없으나 산이 떠내려가지 못하게 ‘낚아 올리는’ 하나님의 손으로 장치한 것이다. ‘산을 낚아 올리는 큰 손’이란 창조적 이미지가 신선하지 않은가. 이 시는 만추의 자연 풍경을 수채화처럼 그려내겠다는 생각이 관념이라면 관념이나 관념시에서는 거리가 멀고 굳이 분류하자면 순수시에 속한 사물시라 할 것이다.
이제 관념적인 시를 한 편 보자.
관념을 의도적으로 강조해서 쓴 작품이다. 지난 문재인 가짜 대통령 시절에 공산주의정부에 저항하는 작품들로 거의 채운 시집을 두 권 출간했는데, 그 하나인 제19시집 『위기의 대한민국』 중 한 편이다. 문학은 역사기록과 또 다른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입장에서 살펴보시기 바란다.
누가 침묵을 금이라 말했는가.
정의와 진실이
불의와 거짓에 묻히고 있는
지금의 한국 상황에서
침묵은 금이 아닌 금빛 똥이 아닌가.
대학교수, 박사, 장군, 목사
시인, 평론가, 신부, 스님…
침묵하는 그는 침묵하는 금빛 똥 덩이
피눈물 어린 자유민주주의 조국을
살해하는 자는 아닐지라도
그 방조자가 아닌가.
정의와 진실이
불의와 거짓에 묻히고 있는
국가 패망의 위기에
누가 침묵을 금이라 말하겠는가. - 「침묵의 똥」 전문.
이 시는 창조적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리듬은 살아 있고, 사상성은 시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시적 가치란 평가의 잣대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 시는 내가 전기한 좋은 시의 잣대로 잰다면 좋은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서는 역사성이 강한 작품으로 어느 시인도 이런 시를 발표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의미가 큰 작품이라 하겠다. 이 시집과 이듬해 출간한 시집 『강철의 노래』에는 거의 이런 유형의, 육성을 내지른 시가 대부분이다. 7,80년대에 유신독재나 신군부독재에 저항하느라 우리 시단을 실천문학이 풍미했다.
단지 민주화를 위해서 일어났던 시인 작가들이 문재인 일당에 의한 공산화로 자유대한민국이 사라질 수 있는 위기임에도 이에 저항하는 시인 작가는 거의 없었다. 공산주의 정부에 저항하는 작품을 거의 읽어보지 못했다.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자가 법무장관으로 자유민주주의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위법을 자행함에도 오히려 1천2백여 문인들이 그자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때에 쓴 시이다.
공산주의 문인들이 발호함에도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속한다고 할 문인들은 뭐가 두려워서 인지, 아니면 무관심해서 인지 저항하는 글이나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우리문단 현실에서 유일하게 저항 시집 두 권을 출간했으나 골이 빈 빨갱이들은 내게 시비조차 걸지 않았다. 나라사랑문인협회 회원들이 읽을 글이기에 우정 이 시 한 편도 소개하였다. 설명이 필요치 않을 듯해서 부연하지 않았다.
== 프 로 필 =
최진연
◉ 등단 :
1967년 시 발표 시작. <시문학>지 추천 완료(1973~5).
<문학 경부선> <남북시> <하이퍼시클러>동인(국내) 후
현재 <The Muse> <Fresh Words> <Literature Today> member
(국제), <IWA> lifetime member.
◉ 이력
<새벗> 복간 편집장,
<선교와 세계> 편집위원장
한국문인협회 이사
나라사랑문인협회장 역임.
한국펜클럽 및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자문위원,
◉ 저서 :시집
첫 시집 『용포동 일박』(‘77)
『사랑이 찾아온 뒤에야』
『눈빛 반짝이며 사랑하기에도』
『최 진연 서정시집』
『최 진연 신앙시집』
『시의;해방과 자유』를 포함한 시집 21권,
서사시극(epic drama) 2권,
『길을 묻는 영혼들을 위하여』(3쇄 시판 중)
『죽음보다 강한 사랑』 등
에세이집 4권, 영역시집 2권,
문학평론집 『상상력과 시,
환상시와 허구시』 ,
일역 서사시극
『평화를 위한 새 사랑노래』 등.
◉ 수상
<시문학>사 제정 시문학상.
한국크리스천문학상
월산문학상
미산문학상.
◉ 문학 사이트 :
<https://blog.naver.com/poetchoi>(국내)
<https://www.authorsden.com/choipaulyearn>(I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