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과의 전쟁 외 1편
원우연
두 해 전 어느 날 젊은 부부가 전세를 들려고 집을 보러 왔다.
유모차에 탄 애기와 젊은 부부
대화중 새댁의 부지런함을 느꼈고 여자인 내가 봐도 순하고 예뻤다
계약을 하는 중간에 애가 셋 이라해서 순간 뜨끔하며 놀랐는데
나의 젊은 시절에 아들이 둘이라니 전세를 주지 않았던 사람이 떠 올랐다
둘이란 생각은 내가 했고 ,셋이란 소리에 계약 포기 할려니 맘이 편치 않을것 같아
새 아파트이니 깨끗하게 사용할것 과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지 않도록 부탁 하면서 계약 .
그들 부부는 고맙다면서 오래 살게만 해 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놀러 오라고 해서 한번 갔었다
예상을 빗나가진 않아 역시 선택을 잘한것 같아 즐거운 맘으로 많은 얘기하고 돌아 왔는데 ...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깊어 갈 무렵 느닷없이 이사를 가겠다며 집을 내란다 .
왜 갑자기 ?
신랑이 멀리 발령나서 갑니다 죄송해요
한마디 외에 뚝하고 전화를 끊는다
훗날 같은 동네로 갔다고 한다 이사를 왜 했는지 이유와 함께. . .
몇칠이 지나 그들은 이사를 갔고 살던 집은 바람이든 볏가리 같이 휑하게 빈 듯 했다.
사람을 들이느니 차라리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눈이 많이 오는 그해 그날 입주를 했다
직장일이 바쁜 난 늦게 잠자리에 들어 일찍 일어나므로 늘 잠이 모자랐다.
오늘 만이겠지란 생각으로 일년여. 컨디션이 나쁠땐 견디기 힘들어 올라가고 싶었지만 내일은 아니길 기대하면서 참고 참았다
단잠을 깨우는 소리 때문에 돌덩이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뜨고 바라보니 창밖은 아직 어둠이 채 물러서지 않은 새벽녘이었다.
순간 지붕이 무너졌나? 의식이 돌아올때쯤 알람이 들렸다
“드르륵 드륵, 드르륵, 드륵”
아침 이면 늘상 그래왔었지만 오늘은 새벽부터 유난히 신경을 곤두 세우며 짜증스러웠다.
단 몇 분 이라도 더 자려고 베개에 귀를 붙였지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아, 저놈의 청소기는 고장도 안나나?
잠도 않자?
아침형이 부지런하고 공부잘하고 부자로 산다더니 그것도 어느 정도지
” 푸념처럼 중얼거리며 잠을 청했으나 도저히 참을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홧김에 인터폰으로 경비를 불렀다.
수화기를 든 경비실에 짜증 부리며 위층에서 들리는 소리를 멈추게 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직접 전화를 해야 효과가 더 있다며 직접하길 권유한다
관리실에서 이야기 하면 오히려 괜한 일에 참견이라며 화를 낸다고 했다.
목마른 사람 샘 판다는 격으로 다시 경비실에 위층의 전화번호를 물으니 입주할 때 설명서를 보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에 설명서를 찾고 할 겨를이 없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경비담당 아저씨들은 친절하게 전활 받고 불편함을 해결해 줬는데,
그 사이 세태와 인심이 바뀌어 가능하면 불리한 일을 피하려고 하는 심사이다.
어쩔수없이 화를 누르며 뾰족한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서로가 기분 상하지 않게 할 편지를 써서 전하기로 작정했다.
「안녕하세요? 아래층입니다. 위층의 부지런함 과 개인적인 사정은 이해가 됩니다만 저희는 이른 아침 청소기의 소음으로 큰 고충을 당하고 있으며 가족들은 단잠을 깨고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가 없습니다.
사정이 여의하시면 이른 아침에 청소하심은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시간이 아니면 되오니 그 외 시간을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 로 서로가 얼굴 붉히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위 층의 가정에 행복과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편지글 끝에는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적고 곱게 접은 편지를 봉투에 넣어 봉한뒤 위층의 초인종 벨이 있는 곳에 붙이고 내려왔다.
늦은 오후 휴대폰에 문자가 왔다.
「이웃이면서 이렇게 인사드리네요. 청소기 소리가 그렇게 소란스럽게 들릴 줄은 미처 몰랐네요.
사정을 알았으니 조금 늦게 청소 할게요. 항상 행복하시고 좋은 일만 있으시길 빕니다.」
고마웠다.
가슴속에 맺혔던 감정이 눈 녹듯 녹아 내렸다.
여름에 이사와서 반년 쯤 살다 간 부부의 말 못했을 심적 고충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고통스러운 소음 공해를 알았다면 해결 해줬을테고. 이사 안가도 되었을텐데
이사비용 등등. 손해가 많았을텐데. 미안해져 왔다
위층에 사는 사람이 고맙게 생각됨이 쉽사리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웃에게 죄송했다는 문자를 보내기란 쉽지 않다.
그동안 캄캄하게 장막이 드리워졌던 이웃간의 마음의 길이 열리고,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게 해줘 감사했다.
다시 화났던 지난 시간을 잊고서 다정하게 웃는 마음으로 답장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저의 집 청을 들어주셔서. 항상 건 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오늘은 행복한 시간이 될것 같습니다. 당신들이 계신 위층 때문에-.」
일년 여 동안 소음 때문에 갈등과 번민에서 벗어 나게 한 것은 편지였다.
서로의 마음을 상하지 않 고 편지 대화로서 해결하게 되어 서로의 소통에 편지만큼 중요한 게 없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이로서 아래층과 위층은 소음과의 전쟁은 끝나고 화평을 얻게 되었다. <2012.6.10>
해운대나들이
원우연
봄이 무르익어 상춘(賞春)을 재촉하던 어느 날 지인의 아들 결혼식에 가려고 준비를 서둘렀다.
봄기운이 화창해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 조끼를 받쳐 입고 흰 바지를 입었다.
무르익은 봄빛 탓인지 마음은 상쾌하고 기분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거울에 비쳐진 멋스러운 모습 때문이었을까?
열어둔 창문으로 맑은 바람이 무법자처럼 방안으로 뛰어드니 알싸하게 꽃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늦지 않게 식장 가까운 곳 백화점 주차장에 차를 맡기고 지하 차도를 건너 식장으로 들어섰다
많은 하객들이 신랑 측 부모와 인사를 나누는 사이 내 눈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유심히 살폈다.
언젠가 나 또한 이런 자리에 설 것이란 바램 때문에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신부가 정말 아름답다. 누군들 그 순간이면 아름답지 않을 신부가 있으랴만
신랑에게 딸을 넘겨줄때 아버지의 눈을 유심히 봤다 눈주위가 순간 빨개지며 눈물이 맺히는것을
애지중지 키워서 보내는 신부의 부모 마음을 짚어보았다.
‘내 결혼식 때 친정아버님이 계셨더라면 아마도 더 우셨지 싶다
양념딸이라고 자신을 닮아서 더 이쁘다고 하셨으니
당시 친정 아버님은 외국에 계셨기에 작은아버님의 손을 잡고 식장을 들어섰던 일이 어제 같기만 한데
주례사에 이어 예식은 진행되었고,
신랑이 하객을 향해 큰 소리로 노래 부르는 모습, 씩씩하고 멋져 보였다.
그런 행동들이 믿음직스러워 결혼을 꿈꾸었지 않았을까
신부의 미소가 행복을 점치게 했다
결혼식은 짧은 시간에 끝나고 식사 후 용호동 이기대로 바람쇰을 나섰다.
광안대교에서 바라보는 광안리 해안과 수영의 고층빌딩이 마천루를 이룬 신도시가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잠시 착각을 일으켰다.
일행 중 한 친구가 들뜬 기분으로 “‘이기대’는 왜 이기대야?”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긴 부산 살았던 나도 모르는데 알리 없지
뒷자리 앉은 괴짜 친구 “왜 생선이름이 이면수야?” 이번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질문한 친구 왈 :어떤 어부가 생전 처음보는 생선을 잡아 고기 껍질을 벗겨 먹어보니 특이하고 맛있었대
그래서 자기 이름을 따서 이면수라 지었다고 자문자 답했다.
왜 이기대일까?
이면수 처럼 이기대도 사람 이름일까? 지명 일까?
우리 내기 할래? 사람 이름과 지명으로 반반으로 나누자
서로들 반신반의 하며 지나던 중년 남자 분에게 묻기로 했다
아저씨 질문있는데요 이기대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눈치 빠른 중년 남성. 내기 걸었어요?
예. 틀린 쪽이 술과 밥을 사니까 바로 가르켜 주셔야 합니다
중년 남성의 답은 사람 이름입니다
그렇게 이긴쪽이 공짜로 먹었고. 난 진편이였다
괜히 내기는 해가지고선 그것도. 억지로 밀려서 편가르기 했는데
어떻게 찾아먹지?
해 저물녘 집에 돌아와서 궁금한것 확인해 보니 멋지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기대는 그 지역의 지명이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 해운대 나들이는 가정에서 묵은 일상의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청량제 와도 같아서 한 주 동안은 생기 도는 삶을 영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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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만 싫지 않는다면 해결되는것 같았어요 주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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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가서 걸어보고싶어요 해안가를 둘레길인지 명칭은 잘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