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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작년이던가, 백세가 넘은 아버지를 어렵사리 큰 대학병원에다
입원시킨 일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또 여기저기서 수근거렸다.
거동도 제대로 못하는 노인을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천수가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 했다.
그러나 명재의 생각은 달랐다.
자식이 부모를 땅에다 묻는다는 것은 자식의 가슴에다 대못질 하는 것이다.
저녁을 사먹고 들어오니 눈치들이 이상했다.
막내 여동생을 조용히 한쪽으로 불러내어 다그쳤다.
"명순아! 혼나기전에 바른대로 말을 하거라!"
막내는 어려서 명재가 업어기르고 배고파 칭얼대면 찔래순이나 진달래
꽃잎 따서 먹여 길렀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자란 막내가 같이 늙어가다니...
막내는 머뭇거리다가 실토를 했다.
이번에는 명재의 아내가 총대를 멘 모양이다.
서열 순위를 따져 장남이 치료비 반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형편되는대로
조금씩 부담하자고 했단다.
그러자 분기탱천한 큰형수 작은 형수가 드디어 폭발을 한 모양이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좀 더 부담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고함을 친
모양이다. 그러자 막내 제수씨가 대들었다.
"아니! 형님! 이땅의 서열은 장남이 우선 서열이라는 것도 모르세요!"
그러자 명재의 아내는 아버님을 모시고 궃은일 마다 않고 사는 사람은
장남도 차남도 아닌 아무 실권 없는 삼남인 자신의 남편이라고 악을 쓰며
대들었단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완전 비디오다.
발정난 암코양이들의 앙칼진 소리였겠지!
그것은 겉으로는 치료비 운운했지만 속내는 해묵은 앙금덩어리가
만나 충돌을 한 것이다.
명재는 가슴이 턱턱 막혀옴을 느꼈다.
명재는 약봉지를 꺼내 들고 "명순아! 거기있는 물좀다오" 했다.
10
아버지는 육이오 전쟁 부상병이시다. 즉 1급 보훈대상자이시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명재는 아버지 앞으로 생명보험을 들어놓았다.
명재의 통장에는 그럭저럭 모은 돈이 일억 넘게 잔고가 들어있다.
이러한 사실도 모르면서 병원비 걱정을 하다니
그럴때는 먹물이 똥물이 되는 모양이다.
그런 그들은 명재와 더 멀어져만 간다.
퇴원하는 날 명재는 보험사 직원을 불러 병원비 정산을 마쳤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친구의 최고급 승용차를 불렀다.
그 친구는 마다 않고 친절하게도 운전기사까지 딸려보냈다.
한마디로 보란 듯이 들으란 듯이 오기가 발동한 모양이다.
뭘 모르시는 명재의 아버지는 병원비 걱정을 하시더니 다른 자식들은
왜 코빼기도 내밀지 않느냐고 하셨다.
또 명재! 네~이놈! 이 아비에게 허락도 없이 언제 이렇게 좋은차를
구입했느냐고 다그쳤다.
그날은 치매끼가 많이 약해지신 모양이다.
"에이구~아버지! 저 돈 많아요. 걱정마세요."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이놈아~ 혼자 돈이 많은면 뭐하느냐! 돈없어 죽는 놈이 없어야지!"
몇 달 동안 아버지의 치매끼가 많이 나아지셨다.
거의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오신 듯 하였다.
치매가 치매에 걸렸는지 아니면 돌아가실 때가 다 되어서 그러신건지
요즘들어 부쩍 옛날 일들을 꺼내들고는 하셨다.
불안한 생각이 엄습해 몸을 피부로 느끼며 하루하루 살얼음판 걷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나자신도 이따금씩 깜빡깜빡 하는데 아버지의 정신은 어떠하실까?
아무리 현대의학이 발전의 발전을 거듭한다 하더라도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어찌 할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명재의 밤은 가고 동이 트려는지 새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11
오늘은 아침부터 앞 논 둑의 미루나무 높은 곳에서 까치가 요란하게
짖어댄다.
아침상을 차려드리고 낡은 경운기의 시동을 걸었다.
이놈도 이제 늙었는지 돌아가는 소리마다 힘들다고 외쳐대는 것 같다.
"아버지 오늘은 삼월산 배추밭에 농약 좀 뿌리고 올게요.
아무래도 조금은 소독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일찍 돌아올게요.
심심하시면 중방골 아저씨 좀 모셔올까요?"
"됐다! 심심하면 티비틀면 되지 뭘 그러냐?
너나 조심하거라 특히 그놈의 멧돼지가 무섭다더라
너도 이제 나이가 칠순이야 칠순 이놈아."
"아버지도 참, 제 나이까지 다 기억하고 계세요?!"
"암! 기억하고 말고 전쟁의 끝이 보이지를 않을 때 너를 낳았으니 당연하지!"
"참, 아버지도 잘아시잖아요!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라는 것을요.
내가 젊어서 유도를 했다구요.
아무튼 조심해서 다녀올게요. 걱정마시고 티비보시고 계세요.
오늘 전국노래자랑 예선전을 한대요."
아버지의 애창곡은 전선의 달밤이다. 아주 구슬프게 잘도 부르신다.
삼월산은 왜정때 이 마을의 젊은이들과 왜경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라 했다. 원래의 이름은 산삼이 많이 난다해서 산삼산이라고 했다가
산신의 영험한 기운을 내린다 해서 산신산! 항일의병들의 혼이 서렸다.
해서 삼월산이라 불렸다.
그래서 그런지 사철 냉기가 흘러 고랭지 채소를 기르기에는 아주 적합한 땅이다.
명재는 국유지인 이 땅을 분양받는데 몇 년이 걸렸다.
아무리 음지라도 양지는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던가!
인적이 끊기고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만 들리고 밤이 되면 별님
달님 한가로이 노니는 땅! 이곳에다 부모님을 모시고 나도
그곳에 묻혀 다시는 아버지 어머니 두손을 놓치지 않으리다!
그런 곳을 찾는 것이 평생 꿈꾸던 명재의 바램이였다.
12
밭두렁에 심어 놓은 삼을 둘러보고 채소밭을 살펴보니 굳이 농약을
살포 할 이유가 없었다. 날씨 탓인지 벌레들이 거의 없었다.
멀리서 고라니 한놈이 이 곳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실하게 자란 배추 몇 폭을 뽑아 울 밖으로 던지며 한마디했다.
"고라니~ 네 이놈~ 오늘은 재수 좋은 날 인 줄 알어!"
전번에는 울타리를 뛰어넘지 못하다가 작은 구멍이 난 곳을
어떻게 발견하고는 온몸으로 비비고 들어와 무잎새를 뜯어 먹다가
들켰버렸다. 온 힘을 다해 울타리를 뛰어 넘다가 다리를 다쳤다.
몽둥이를 들고 달려오는 명재를 보고는 다시 뛰려했으나 몇걸음 못가서
주저앉고 만것이다.
다리를 살펴보니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아 몇번 주물러주고 그냥
놓아주었다. 세상에 먹고 사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더냐?
임원 승진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정수기 영업사원이 어찌저찌해서
명재의 방에 들어왔다.
"아니! 여기는 외부인출입금지 구역인데 어떻게 들어왔소" 했더니
대뜸 하는 말이 "부장님! 세상 참 먹고 살기 힘드네요."
의자를 권하며 "일단 앉으시지요!" 냉장고의 캔커피를 꺼내주며 어서
마시고 숨 좀 돌리시요! 천천히 말이요!" 묻지도 않는 말을 늘어놓는다.
"나도 한때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회사의 상무역할도 했지요만은
밀어내기 공작에는 당할 재간이 없더군요!
하마터면 회사의 공금횡령을 한 파렴치한 도둑놈으로 몰릴 뻔 했어요!
그래도 처자식 굶기지 않으려 별별일 다 하다가 여기까지 왔지요!
세상에 먹고 사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개울옆 나무 그늘 앞에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막걸리 두어잔을 마시니
그제서야 눈이 감기고 온몸이 나른해지며 스르르 잠이 온다.
하기사 사흘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리고 누워 이내 잠이 깊이 들었다.
13
억새풀은 서걱서걱 날없는 날을 세우고 산비둘기는 지집죽고 자식
죽고 지지 꾹꾹 지지꾹꾹 솜사탕 구름 몇점 한가로이 가고 먼 산 넘어
가고파라
처처에 핀 가을 꽃들은 "저 좀 보세요. 여기요! 여기요! 저요. 저요."
고사리 손을 흔드네
울타리 풍경소리는 뎅그랑, 댕그랑 심심한 바람들의 장난감
그 소리도 좋거니와 태풍에 목욕한 물색은 새색시 닮아 더욱
고와라!
굴참나무 가지마다 매달린 머루는 흙진주 닮았네
알밤 한 톨 입에 물은 다람쥐는 오물오물 아가 입 닮았네
둥둥 떠가는 단풍잎새에 작은 몸 싣고가는 청개구리야 이제는
어디로 가시나요. 예서 나하고 벗하고 살지 어디로 가시나요.
가재랑 작은 물고기 벗삼이 살지 어디로 가시나요.
밤이 되면 별님 달님 풀벌레 소리 벗삼아 살지 어디로 가시나요.
아침이슬 먹고 고운 햇살 하늬바람 벗을 삼고 살지 어디로 가시나요.
어디간들 태어나 살던 곳만 할까요.
그냥 그렇게 살지 어디로 가시나요.
명재는 어렴풋이 꿀잠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는 혼자 중얼거렸다.
명재야 잘했어! 아주 잘했어! 전무,사장인들 이런 구경 꿈엔들 보았
겠어! 아주 탁월한 선택을 했어!
서둘러 꼴을 베어 경운기에 싣고 아버지에게 드릴 머루 몇송이와
다래를 따서 가방에 넣고 등에다 걸머졌다.
“마이웨이가 따로 없군” 하면서 경운기에 시동을 걸었다.
멀리서 집이 보이는데 처음보는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뭐지, 나이를 먹더니 헛것이 보이나.
눈을 씻고 봐도 틀림없이 풍경이 평소보다 많이 달랐다.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그사이에 아버지가 그럴리가!
언덕을 올라서니 확실히 분명히 이상했다.
14
여기 저기 고급세단 승용차들이며 방송국과 신문사 차량들이
뒤엉켜 서있고 티비에서나 봄직한 커다란 카메라를 어깨에 맨 사람들이
뛰어 다니고 한쪽에서는 경찿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도대체 한낮에 도깨비가 출몰한 것도 아닌데 당최 뭔 일이지
"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하며 급히 뛰어 들었다.
아버지는 몇년째 거동이 불편하셔서 휠체어를 타고 대소변을 가리
시며 멀리 나오신다는 것이 앞마당 나뭇가지에 걸린 달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바깥세상 구경이시다.
방안에는 티비에서나 볼 수 있는 국무총리와 그 수행원들 그리고
국방장관이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아버지와 담소를 하고 계셨다.
보청기를 낀 아버지의 모습이 모처럼 밝아 보이셨다.
"이선생! 이렇게 불쑥 찾아와 소란을 떨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예! 정말 당최 뭐가 뭔지 어리둥절합니다만은....."
"허~허~허~ 그래요! 나도 실은 도깨비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에요.
그러나 분명한것은 현실이고 꿈이 아니란 것이요!"
다음날 아침 티비를 켜자 경천 동지 할 일이 벌어졌다.
아직 눈도 뜨지 않으신 아버지는 보청기를 귀에 꽃고 미동도 않으
셨다. 갑자기 아버지가 낯선 노인으로 느껴져 다가오는 기분이다.
살던 집이며 땅들이 또 주변의 모든 경관들이 낯선 땅처럼 느껴지며
자신은 길잃은 고아처럼 느껴졌다.
열다섯살 어린애가 독립군으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백범선생의 정보 참모는 참으로 감탄을 금치 못해 정식으로 독립군에
편입시켜주었다.
해방이후 사라진 기록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육이오 전쟁때는 미군에 배속되어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미군을
도와서 실패 할 뻔한 인천상륙작전의 길을 텄다.
그리고 산속에 은거하며 남몰래 독립군 후손들을 도왔다.
국가에서 주는 최고의 훈장이 수여 될 것이다.
15
그런 소란이 한달이상 계속되었다. 수십년동안
왕래가 끊겼던 일가 친척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들었다.
괘씸한 것들이 찾아올 때에는 아예 아버지를 모시고 중방골 아저씨댁에
머물때도 종종 있었다.
그런 소란이 가라앉은 후에야 오랜만에 아버지와 밥상을 같이했다.
아버지에게 고등어 살을 발라 드리며 "아버지도 참 그런일은 털어 놓으셔
야지요. 숨기면 어떻게해요.
제 입장이 곤란하잖아요." 이런 시가 있어요. ‘고등어는 바다로 간다.’
"시끄러워 이놈아. 아침부터 헛소리말고 여기 적혀 있는대로 신문사
기자에게 연락해서 총리님과 함께 김변호사도 오시라고 하거라.
타인에게는 절대 알리지 말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죽기전에 마지막 할 일과 유언장 작성을 해야겠다."
"아니 갑자기 유언장이라니요?" "잔말이 많다. 시키는대로 하거라"
그렇게 비밀에 묻혔는데도 십여명이 삼월산을 올랐다.
명재가 업고 오르다가 지치면 수행원들이 업고 올랐다.
산 정상에 오른 명재아버지의 눈이 전에 없던 광채가 발하였다.
손을 저으시며 저아래가 내가 사는 상방골 개울건너가 중방골
그 너머가 하방골 저 멀리 구름 머문 곳이 읍내이고
"어때 내 눈 참 밝지?" 하셨다.
"한때는 저기 보이는 땅들이 다 우리집 땅이였지"
"이봐, 젊은이들 내가 앉은 자리 기준으로 정확히 오미터기준
을 재서 파내려가봐
깊이는 약 이미터정도 될거야. 나도 그렇게 들었어!"
얼마되지 않아 구덩이에서 탄성이 울려 나왔다.
썩은 옷나무 상자에서 금덩어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 일은 절대 비밀에 붙이고 독립군 후손들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조금씩 도움을 주도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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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부는 삼십리가 넘는 땅을 가진 부농이였지 그러나 말이 듣기
좋아 거부이네 부농이네 했지 다른 소작인들과 같은 생활을 하셨다고
들었지. 조부의 신념은 이랬다고 들었다.
"땅은 본래 주인이 정해진게 아니다! 해서 다 같이 흙을 파먹고 사는거야
마치 어머니의 젖줄 같은 것이지! 그래서 주인이란 이름만 바뀔뿐
세월이 가고 오고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 그러니 거부와 소작인은
이름만 다를뿐이야! 이름에 팔려 주인행세를 한다면 하늘이 노할거야."
그러나 구한말 일본의 낌새를 눈치채고 땅욕심 많은 민씨 일가에게 땅을
모두 팔아 금을 사들여 남몰래 이곳에다 묻었다고 하였다.
민씨일가와 협상을 벌여 소작인들은 그대로 농사를 짓게 했다.
그리고는 개나리봇짐 하나 달랑 지고 만주로 떠나시면서 나의
아버지에게 당부하셨다. "국운이 기울었다. 나는 만주에서 다시 시작을
하련다. 너는 여기 남아서 우리 소작인들을 잘 지키고 있거라." 하셨다.
그리고 아내의 손을 잡고 해지는 삼월산 고갯길을 넘으셨다고 했다.
홀로 남겨진 나의 아버지는 항일군을 조직하여 이 삼월산에서 삼년동안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시신조차도 찾지 못하고
어머니는 아낙들과 밤에 몰래 밥을 나르다가 발각되어 돌아가셨다.
"역시 시신도 못찾았어. 왜놈들이 마을에다 불을 지르고 시신들을 그곳에다
던져버렸거든! 그때 내나이 일곱살이야 나도 죽음직전에 애들을
데리고 야반도주하여 석달만에 독립군들에게 발견되고 그곳에서
겨우 소학교를 마쳤지. 참으로 모진 세월이였지.
일본군들과 전투를 벌인 이유가 바로 이 금덩어리 때문이야
그사이에도 젊은 수행원들은 몇개의 상자를 더 들어 올렸다.
“나의 부모님과 이 삼월산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넋들에게 술 한잔
부어서 영혼이나마 달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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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변호사 내가 한 말 다 녹음했지요! 마지막 한마디 덧붙히면
내앞으로 나오는 국가의 연금도 모두 다 어려운 이웃들에게 십시
일반의 생각으로 나누어 주도록 부탁드립니다. 모두들 증인선서들
하세요! 명재 너도 가족대표로 증인선서하거라!"
"예! 아버님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중방골 논 삼십마지기는 너에게 주려고 하는데 어찌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저는 이미 아버님의 유훈을상속으로 받았으니 그 논도 아버님의
기부재산에 포함시키렵니다."
"네뜻이 정 그러하다면 그리하거라. 김변호사, 내일부터라도
조용히 법적절차를 밟도록 하세요. 될 수 있다면 언론사에 알리지
마시고요. 조용히 아주 조용히...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백종화가 피었다가 떨어지는 날
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날
철쭉 꽃잎 질때마다 오는 비를 원망하랴! 거센 바람 원망하랴!
피고 지고 피고 지고 다함없이 피고지고 나이 잊은 세월인데
어느세월에 다 피고지랴. 앞산 넘어 뻐꾸기만 속절없이 울어대네
명재의 두손을 꼭 잡더니 자신의 조부처럼 개나리 봇짐지고 미련없이
하늘로 떠나셨다.
삼우제가 끝나는 날 암소가 비척거리며 올라오더니 음매~음매~
음매~하고 크게 울었다. 그대로 산소옆에 누워 눈을 감았다.
명재는 미리 준비한 수의를 입히고 정중히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루었다. 아버지 가신 길을 따라서 뒤돌아 보며 걷는다.
명재는 허탈하고 가슴에 겨울바람 불어온다.그런 마음 누가 알까만은
옆방 사람들은 부의금 나누는 방식을 두고 고성들이 오고간다.
이것들을 당장 몽둥이 들고 내쫓을까하다가 참았다. 죽은 암소만도
못한 것들이 가족의 인연으로 내 주변에 모였으니 어쩌랴!
또 한쪽방에서는 "흥! 아버님도 미치셨지. 몇천억이 넘는 금덩이를
생면부지 남에게 기부하다니! 내 어떠한 수를 동원하더라도 반드시
다시 찾아오고 말거야. 꼭 찾아올거야! 흥! 독립군은 굶어 죽나 뭐!"
그 소리는 삼동서들의 독백이며 먹이 뺏긴 암코양이들의 앙칼진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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