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1장(통일 21장) '다 찬양하여라'
▶묵상: 연약한 인간을 통해 세상을 다스리길 원하시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사람의 근본이 됩니다.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시 8:1∼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파스칼은 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은 하나의 갈대, 자연 중에서 가장 연약한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의 생각하는 갈대이다. 즉 깨뜨릴 무기를 얻기 위해 우주까지 동원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방울의 수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비록 그 인간을 깨뜨려 버릴 수 있다 하여도 인간은 그 파괴자인 우주보다 더 위대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주는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스칼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사람이 무엇이관대'라는 중요한 대목이 나옵니다.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이 시편 8편을 푸는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어떠한 존재입니까? 성경은 인간은 연약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에노쉬 벤아담',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연약한 존재인 인간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본문은 인간을 하나님보다 조금 부족하게 하시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동일한 말씀이 창세기 1장에도 나옵니다. 결국 시편 8편과 창세기 1장 말씀 모두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이 만드신 피조 세계를 다스리게 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혜, 지식, 능력 면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도움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일을 행할 때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찬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나를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의 섭리를 깨닫는 순간 즉시 그를 찬양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나의 생애를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잖습니까?
어떤 문제가 우리 앞에 있든 우리가 분명히 할 것은 우리의 위치가 만물 아래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만물은 우리의 지배 대상일 뿐입니다. 우리 위에는 다만 하나님 한 분만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시고 부활과 함께 인류 구원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의 삶처럼, 또 바벨론 포로기의 절망적 상황에서 희망을 바라본 선지자들처럼, 여러분도 새로운 신앙적 지성을 갖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인도하는 삶의 길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기도: 주님!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세상을 다스시며 통치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현실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높으신 주님을 찬양함으로 이겨내는 성도들이 되게 하소서.
주기도문
김홍렬 목사(분당 한마음교회) |
친구의 권유로 본 다큐멘터리 한 편이 오랜 여운을 남긴다. 한 배우의 연기 인생을 조명한 내용이었는데 배우 개인보다는 그가 맡은 역할이 돋보인다는 의미에서 '(그는) 거기 없었다'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소위 드라마가 뜨면 주인공이 스타가 되는 신드롬에 반해 이 배우의 경우 자신보다는 맡은 캐릭터의 신드롬을 일으키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 이름이 아니라 캐릭터만 쭉 올라오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 작품을 했던 사람이 이 작품을 했다는 게 의심 갈 정도로 캐릭터의 차별화가 확실했으면 해요. 사람들이 제 이름을 제대로 모르고 못 알아봐도 제가 배우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죠. 저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아무리 스타라는 딱지를 갖다 줘도 저는 그거 거절하려고 그랬어요. 저는 그냥 배우로 불리고 싶었고 배우들 사이에서도 '저놈은 정말 연기 잘하는 놈' 이렇게 인정받고 싶은 게 꿈이었어요."
언젠가 그의 연기대상 수상 소감을 기사로 읽고 믿음 있는 사람이구나 싶어 눈여겨봤던 기억이 있다. "저에게 연기할 수 있는 달란트를 주시고 그걸 충분히 채워주지 않으셔서 항상 노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는 배우로서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인 리얼리티, 진실성과 현실성을 전달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과 연습은 물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세심한 부분까지 연구하고 준비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단순히 대본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에 완전히 동화되어 연기가 아닌 배역의 삶을 사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과 더불어 성찰의 아픔이 밀려왔다.
"그(예수)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닮은 자, 예수의 삶을 사는 자이다. 인생 무대의 제작자요 연출가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역할은 바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고, 만나게 하고, 믿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맡은 역할보다 내가 돋보이고 스타가 되면 배역의 리얼리티는 떨어진다. 비록 나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고 모습은 알아보지 못해도 예수의 이름이 드러나고 주를 따르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나는 그럴 듯하게 연기하는 자가 아니라 그의 삶을 사는 자가 되는 것이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연기가 아니라 진정 어린 삶에 감동한다. 설교자로서 명설교가의 칭송이 아닌 듣는 자마다 예수를 기억하게 되는 설교, 찬양자로서 명가수의 칭송이 아닌 예수를 생각하게 되는 찬양, 봉사자로서 예수의 모습만 남게 하는 봉사가 된다면 믿는 성도들 안에서도 이런 말을 듣게 될지 모른다. "저놈은 정말 예수 닮은 놈, 예수의 삶을 사는 놈!" 더 나아가 하나님께로부터 '예수의 역할에 가장 잘 맞는 배우, 예수의 삶은 바로 너를 위한 배역'이라는 칭찬을 기대하는 건 너무 현실성 없는 꿈일까? "나는 없다. 그러나 예수는 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진정한 리얼리티이다.
김석년 서초성결교회 목사 |
'벌레 눈으로 살지 말고 새의 눈으로 내다보자.'
대구 영신고등학교 설립자인 고 박재석 목사의 인재 양성관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는 좁은 비극의 땅에서 태어나 일제 침략기와 6·25 전쟁을 몸소 겪으면서 온몸으로 깨우쳤다. 교육이 힘이라는 것을. '인재를 키워서 나라를 살리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는 국토는 좁아도 큰 인물을 키워내면 큰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소망과 믿음을 품고 자신의 생애를 교육 현장에 투신했다. 박 목사는 한국보다 작은 이스라엘이 수많은 세계적인 인물과 세계를 움직이는 두뇌들을 배출한 힘 역시 교육이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 민족에게는 투철한 성경적 가치관에 따른 교육이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이 곧 벌레의 좁은 눈이 아닌, 새의 눈으로 멀리 내다보는 것이라 믿었다. 주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같이 날개를 펴고 높이 날아 멀리 볼 수 있는 것이다.
서재일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
하나님의 시험지
우리는 세상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세상이 평가에 묶여 산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 하신다. “나는 네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보고 평가하지 않는다. 네가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이 내가 너를 보는 기준이다.”
-이용규 선교사의 ‘더 내려놓음’ 중에서-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커다란 시험지 앞에 있습니다. 태어나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이루기 위해, 세상이 보여주는 화려한 성공의 모습을 쫓아 여러 가지 삶의 문제 앞에 고군분투합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유지에는 그리 많은 노력을 쏟지 않습니다. 우리를 향한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 앞에 우리는 늘 백 점짜리 자녀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시험지 앞에 스스로를 세운다면 어떨까요?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붙들림바 된 그리스도인, 세상의 평가가 아닌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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